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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 설교

“돌아서라!”(딤후 3:1-9 ‘경건의 모양과 능력’ 23.1.29)

충남 부출신 농사꾼 장로님이 오래전에 이런 간증을 했단다. 그는 집사 시절에 포도나무 중에서 가장 좋은 나무를 선정해 놓고 “이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포도는 우리 교회의 성찬식 포도로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포도 농사는 해마다 풍작일 뿐 아니라, 질도 좋아 ‘좋은 포도’라고 입소문이 났고, TV에 소개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수박 농사도 병행하였다. 한번은 수박 꽃이 만발하여 인공수정이 시급한데 하필 주일과 겹쳐서 갈등을 하게 됐다. 그런데 집사 때 “나는 꼭 주일성수를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일이 생각났다. 더구나 이제는 장로님이니 “교회에 더욱 본이 돼야 한다.”라는 생각도 들더란다. 결국에 그는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드렸단다. “하나님, 올해 수박 농사를 망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부터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교회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배도 드리고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갔더니, 희한한 일이 벌어져 있더란다. 수박 덩굴에 웬 개미가 그렇게 많은지... 자세히 살펴보니 개미들이 수박 꽃에 인공수정을 시켜주고 있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개미를 모아 수정시켜서 수박 농사를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수박 농사나 포도 농사가 모두 잘되니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을 받았고, TV와 라디오에 출연도 하고, 300개여 교회가 초청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오늘 설교 본문도 숱한 곤란으로 갈등에 빠지게 될 때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는 신앙생활을 바울이 디모데 목사에게 강권하는 모습이다(1, 5 “고통”<χαλεποί 칼레포이 신약성경에 딱 두 번 나옴; 딤후 3:1, 마 8:28[“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사나워” = χαλεποί 너무나 사나워서 다루기 곤란한 인간이나 동물들임. 이렇게 미친놈처럼 사나운 고통 짓이 말세의 증상들인데, 바울은 19가지로 2~5절에 밝혀놓았음.>).

그러면 2~5절까지 말씀을 함께 보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하며 급하며 자만하며 쾌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어떤 생각인가? 이런 증상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통을 만들어 주는데, 바울 당시에만 그런 게 아니라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2천 년 전이나 중세 암흑기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실존하니까 말세의 증상이며 고난환경이라는 거다. 이러한 일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고통의 증상은 어떤 시대나 반복되었고 재림까지 지속하게 된다.

그런데 설교 본문 1절은 이렇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ἐν ἐσχάταις ἡμέραις ἐνστήσονται καιροὶ χαλεποί 엔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 엔스테손타이 카이로이 칼레포이 마지막 날들올 것이다<will come>, 고통들을 하는 시기다<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기간>) 이러므로 “말세”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우리 사회를 엄청난 혼란으로 몰아간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셔서 십자가의 속죄제물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다시 심판의 주님으로 오신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초림하신 때부터 지금 현재까지를, 그리고 재림 때까지도 “말세”, 또는 ‘종말’ ‘마지막 때’라고 성경은 말해준다. 히브리서 13:1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기록된 이 말씀이, “말세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어떠한 곤란을 당해도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불변하는 절대 진리라고 증언해 주고 있다.

옛 중국 춘추시대 때 나라의 ‘백리해(百里奚)’라는 사람은 너무나 가난해 나이 40까지 온갖 고난 속에 살아도 재주는 탁월했단다. 그의 아내가 최종 결단을 내렸다. “여보, 당신은 큰일을 할 사람이요. 처자 걱정을 말고, 당신을 써주는 을 찾으세요.” 백리해도 부인의 결단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밥상을 위해 씨암탉을 잡고 문짝으로 삶아 배불리 먹이고 눈물로 배웅하였다. 백리해는 걸인으로, 소치기 머슴으로, 떠돌면서 제나라로 우나라진나라초나라로 다니다가 결국 진나라에서 나이 70에 재상이 되었다.

백리해의 아내는 그동안 품꾼과 식모살이로 떠돌다가 백리해가 진나라의 재상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잔뜩 기대하며 찾아가 멀리서 보는데 할아버지가 긴가민가하였다. 그래서 부인은 백리해의 빨래일꾼으로 지원했다. 부인은 말없이 열심히 세탁해주었는데 백리해는 부인을 몰라봤다. 그럴 때 백리해가 잔치를 열었고, 잔치가 무르익었을 때 부인이 잔치진행자에게 허락을 받아 노래를 불렀다. “백리해여! 이별하던 그 날을 기억하는가? 암탉 잡고 서숙 절구질하여 문짝으로 익히던... 이제는 부귀하시니 나를 잊으셨네. 아버지는 좋은 음식 먹건만 자식은 배고파 우네.” 그러자 백리해는 부인을 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예수님은 옛 중국의 재상보다도 훨씬 더 영광스러운 심판장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된다. 그것을 믿고 참으며 충성하다가 춤을 추며 주님의 품에 안기는 여러분과 저이기를 소망한다. 아멘.

자 그러면 온갖 고통의 시기라도 확실하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신앙생활 하려면 어떻게 하면?

1) 경건의 능력(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 능력은 부인하니”(ἔχοντες μόρφωσιν εὐσεβείας τὴν δὲ δύναμιν αὐτῆς / εὐσεβείας 유세베이아스 εὐ + σεβεία = good, well done, rightly + worship, adore, devout)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의 차이는 실제로 무엇인가? “모양”(μόρφωσις 모르포시스 shaping, form, appearance) “능력”(δύναμις 뒤나미스 power, energy, to be able μόρφωσις와 실제 차이임) ‘예배를 드림’과 ‘드림을 설명하는 것’을 비슷하다고 한다면 큰일임! ‘예배를 드림’은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고, 설명은 실제로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경건의 능력이 있는 성도는 바울이 말한 19가지의 미친놈 같은 고통 속에서도 경건을 해낸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힘,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나 돈, 쾌락보다 하나님더욱 사랑하고, 교인들이 배신할 때 묵묵히 내하여 낸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이 사라진 것을 모르는 교인이 많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삼상 16:19-20) 힘만 사라졌던가? 아니다. 두 눈은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노예 신세로 돌변하고 말았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삼상 16:21) 그래서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

그러면 경건의 능력은 어떻게 해야 생기고 유지하는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6-7) 아멘.

2) 진리의 지식(7 πάντοτε μανθάνοντα καὶ μηδέποτε εἰς ἐπίγνωσιν ἀληθείας ἐλθεῖν δυνάμενα)

“항상 배우나”(πάντοτε μανθάνοντα 판토테 만싸논타 always, to learn by practice or experience, acquire a custom or habit. 얼마나 훌륭한 열심이고 장점인가? 그런데 문제점은 “진리의 지식”(εἰς ἐπίγνωσιν ἀληθείας 에이스 에피그노신 알레쎄이아스 ‘진리의 지식 안으로’)이다! 한 마디로 진리가 빠진 지식 쓰레기만 배우고 암기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이런 짓은 이단이나 습득 무당이 하고 있다.

길선주 목사님은 첫 한국인 목사님 7분 중 한 분이시고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셨다. 길선주 목사님이 아직 ‘영수’라는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길 때 ‘조사’(전도사님)로 권유를 받았단다. 당시 길 장로님의 약방 수입이 평균 80원, 그런데 조사가 되면 사례비는 6원(1/13)이었다. 하지만 길 장로님의 부인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서 길 조사님이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를 닦으러 다녔는데, 이번에는 당신이 원하던 참 진리를 찾았으니 왜 망설이냐면서,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 되시라고 격려하더란다. 100만 원 벌던 남편 7만 7천 원 주는데 남편을 신학교에 보내는 격이다. 진리 안으로 연결되면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해당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믿음(8)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은 자들” 이 말씀에서 “믿음”(πίστιν 피스틴 하나님의 언약성취를 듣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 가치관이고 삶임) 그런데 이러한 믿음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있다(ἀδόκιμοι 아도키모이 ἀ + δόκιμοι<복수형태, approve examination, to judge worthy> = ‘시험에서 탈락되어 인정되지 못한’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탈락함’ 상태이다. 불순물이 섞여 있으니, 순금이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이러한 가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증언한 모세에게 대적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시내산에서 40일 밤낮 하나님과 함께 십계명을 제작하고, 천국의 성전을 직접보고 인식한 바대로 성막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지도하는데, 그 십계명과 성막이 틀렸다고 모세에게 대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한다면 어떤 평가와 태도가 올바르냐는 것이다.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일어난 작은 일이다. 그저 찬양대원 몇명이 예배시간에 찬양을 올리곤 하였다. 찬양 대원들이 찬양 연습을 하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와서 지휘자에게 이런 말을 하더란다. “저도 찬양대원으로 찬양하게 해주세요.” 당황한 지휘자는 이렇게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얘야, 찬양대는 어른만 하는 거란다. 너는 커서 어른이 되면 오너라.” 그러자 어린아이가 대답했다. “지휘자님! 주님이 저에게 찬양하라고 음성을 들려주셨요. 저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어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왔다는 말에 지휘자가 감동하고 찬양대에서 찬양하게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이면 어린 꼬마가 어른들 틈에 끼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이 소년이 자라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였단다. 믿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말씀을 경청한 성도답게 저와 여러분의 신앙 내용을 조정해 보자.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올바로 해 가는 환경은 항상 미친놈들을 상대하는 정도로 고통이 따른다고 목사 디모데에게 충고하는 모습을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보았다. 바울의 그 충고를 저희도 붙잡고 씨름해가는 신앙생활을 시도하는 저와 여러분이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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