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4일 설교

“큰 담력을 얻자!”(딤전 3:8-13 ‘집사의 자격’ 22.9.4)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John Knox)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찬란한 교회 부흥시대를 맞아 위대한 설교를 많이 남겼단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의 설교는 예전과 달리 점점 무관심해지는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존 녹스는 이런 일기를 써놓았더란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일구어 갈 거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다시 불을 붙여주실 거다. 하지만 불을 붙여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중에 나는 계속 밭을 갈 거다.” 존 낙스 목사님은 천국에 입성하는 날 분명히 예수님에게 이런 칭찬을 받았을 거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그렇다. 존 낙스 목사님은 그가 신앙생활 한 목회로 빛나는 상 면류관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일들에도 성실히 행한 그리스도인들을 다 명심하시기 때문이다.

충실함은 결승점을 향하여 뛰어가는 마라톤 선수에게서 누구나 볼 수 있다. 42.195km를 잘 조절하면서 줄기차게 뛰어가는 마라톤 선수는 확실히 단거리 선수만큼 빠르게 뛰지 않는다. 사실 100m 단거리 선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하고 평가를 받아 상을 받고 즐긴다. 그러나 마라톤은 100m 단거리 경기를 400번도 넘게 치를 수 있는 동안 인내하면서 훈련한 대로 계속 달린다. 이 마라톤은 분명히 충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마라톤 선수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삼고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교회 집사로 세우라고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 목사님에게 강권하였음을 오늘 설교 본문 중에서 확인할 수 있다(11 “여자들”에 대하여 성서학자들은 두 가지로 해석하는데, ‘집사의 아내들’과 그냥 ‘여자 집사들’이다. 어느 쪽이든 교회의 일꾼답게 봉사하려면 충성하는 여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모든 일에 충성된”(πιστας εν πασιν 피스타스 엔 파신 “faithful in all things” -NKJV- ‘모든 일에서 믿음이 넘침’ 끝까지 헌신적으로 봉사함. πιστας는 πειθω<influence by persuasion, convince>에서 파생된 단어임)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에서 결론적으로 분명히 밝히신 바를 보면,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충성 자체는 일의 크고 작음에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학벌이나 시간, 돈을 핑계 삼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상 변절을 안 하는 신앙인들이 수없이 순교하였다. 다윗도 자기 아버지를 위하여 양을 먹일 때 충성된 목자였다.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 16:11) 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 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7:34-37). 이러한 다윗의 충성심을 하나님은 크게 보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붓게 하셨다고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설교 본문은 “이와 같이 집사들도”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집사의 자격을 제시하고 있다(“이와 같이” ὡσαυτως 후사우토스 “in the same way” –NIV-)라고 말했다. 앞에서 밝힌 감독의 자격과 같은 방식으로 집사의 자격을 살피라는 것이다.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서 집사 직분은 세상적인 매력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집사들에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굉장한 보상을 주신다. 그 보상을 사도 바울은 두 가지로 밝혔다. 첫째, 아름다운 지위(βαθμος 바드모스 a step, standing, degree)이다. 충성을 다한 집사들에게 돌아오는 대우이다. 둘째, 큰 담력이라고 하였다. ‘담력’(παρρησια 파르레시아 freedom in speaking, confidence, authority.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행함이나 표현에서 거침없이 자유로운 자신감’을 가리킨다. 좀 더 설명하면 집사로서 충성스러운 봉사를 하는데 필요한, 믿음의 확신을 더욱 증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παρρησια)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받은 존재가 되었음을 밝혀준 말씀임. 지성소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어서,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음.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제물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만남의 장소로 정하신 지성소에 당당하고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임. 그렇다면 집사 직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의 통로인 셈이다. 하나님의 응답통로, 축복통로...

자 그러면 담대한 은혜의 통로인 집사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교 본문을 통해 바울의 권면을 잘 들어보고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점을 챙기자.

1) 정중(8)

“정중하고”(σεμνος worthy of respect. “must be reverent” –NKJV- “have a good character and be sincere” –GN- 좋은 성품을 가지고 성실하다. 좋은 평판을 얻음으로 교회 안팎에서 존경받음) 그런데 “정중하고”(σεμνος)는 11절의 “정숙하고”(σεμνας 여성 복수)와 같은 헬라어 단어이다.

그리고 남자 집사는 일구이언(一口二言), 술에 인박히는 것, 더러운 이익, 이러한 것과 멀리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구이언(διλόγους 딜로구스 ‘두 번 말하다’ 이 집에서는 하얗다고 말하고, 저 집에서는 까맣다고 말하는 것, 한 입 가지고 두말함) ‘술에 인박히다’(προσεχοντας 프로세콘타스 προσεχω 프로세코 현재분사 능동태, occupy ‘계속 술을 먹고 있다는 뜻’ 술 때문에 말이 많아져서 험담하고 쓸데없는 논쟁을 하니까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부끄러운 이익’을 끊으라는 것이다. 여호수아 공동체가 아이성에 실패한 후에 통곡 기도한 후에 그 원인을 알아냈는데 ‘아간’이 부끄럽게 전리품을 도둑질했기 때문이었잖아요.

감리교회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설교하곤 했단다. 첫째, 너에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 너에게 준 재산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셋째, 너에게 맡긴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느냐? 이런 신앙의 신앙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교회가 침체에 빠졌을 때 종교 개혁적인 감리교회를 창시하실 수 있었다고 본다. 웨슬리는 교회전통을 따라 예식과 조직을 중시하면서도 성경을 연구하고 체험하여 병자와 빈민, 감옥에까지 방문하여 전도하는 Methodist Movement(감리회 운동)을 벌렸단다. 그래서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Method 이치, 도리에 맞게 잘 정리된 방법)라고 부른다.

2) 믿음의 비밀(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이 말씀은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려 하고 그렇게 행하지 못하면 회개하는 양심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다. 사도 바울은 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집사로 세우라고 권했다. 여기서 “믿음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섬김의 믿음생활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깨끗한 양심”은 그릇을 의미하고, “믿음의 비밀”은 보석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체험하는 비밀은 가정에서 부부생활과 자녀교육에 아주 중요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난 베르너 렘케(Werner Lemke)라는 사람은 유년 시절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이 공격해 옴으로 온 가족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들은 내일을 보장할 수 없어 말없이 짐을 꾸리고, 마지막으로 정든 집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때 큰아이가 “잠깐만요!”하더니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더니, 그동안 가족이 함께 웃고 찬송하곤 했던 찬송가 71장 ‘예부터 도움 되시고’를 피아노에 맞춰 찬송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따라 찬송했는데, 그 찬송 가사 가운데 하나님을 ‘내 소망 되신 주’라고 고백하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을 찬송할 때 온 가족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정말로 임마누엘 하신다는 확신으로 위로받고 담대해져 평안한 마음으로 피난길을 떠났단다. 그러고 렘케 가족은 피난길 내내 ‘내 소망 되신 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물론 그 가족은 안전한 피난길이었단다. 아멘.

3) 시험(10)

“시험하여 보고”(δοκιμαζω 도키마조 assay, to prove by trial, judge worthy). 판단력, 실천, 책임감 등등을 체험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교회의 일꾼을 뽑을 때 크게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신앙적인 면이요 다른 하나는 인품이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일꾼 7명을 뽑는데 그 기준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칭찬을 듣는 사람은 인품을 의미한다.

때로는 사업이 힘들고, 가정이 힘들고, 인간관계가 힘들어도 교회의 직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이 아름답고 값진 사람을 “가시밭의 백합화”(아 2:2)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합화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가시나무의 기운에 지쳐 대개 말라 죽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백합화는 지극한 향기를 토해낸단다. 그런데 그 백합화는 가시밭 속에 있기에 오히려 안전하게 보호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가시밭 여건이라도 꾸준히 교회를 섬겨 헌신하여 충성하면 특유한 매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가 위기를 맞았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교회위기 극복’에 무엇보다 필요충분한 답은 ‘헌신하는 교회일꾼’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많이 읽고 쓰면 좋겠지만 그리하지 못해도 몸과 시간, 재능, 재물로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결단만 단단하면 그 교회는 든든히 서서 사명을 잘 감당해 가게 되어 있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에 맞게 저와 여러분의 신앙관을 정리해 보자. 교회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는 하나님의 병원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연상태 그대로 죄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을 체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들은 그 변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병원은 명의를 알아주고, 학교는 뛰어난 학자를 존경하고, 군대는 용맹한 장수를 지도자로 세운다. 그런데 교회는 잘 섬기는 종을 뽑는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본을 따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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