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1일 설교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4-16 ‘경건한 교회의 비밀’ 22.9.11)

매년 8월 13일은 ‘세계 왼손잡이 날’(International Lefthanders Day)이란다. 미국인 딘 캠벨(Dean Campbell)은 왼손잡이들이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1932년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하고 이 협회는 1976년 캠벨의 생일인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 날’로 제정했단다. 그리고 영국의 ‘왼손잡이협회’도 1992년 8월 13일 기념행사를 하며 오른손잡이들에게 왼손잡이용 병따개나 가위 등을 쥐여주고 왼손잡이의 불편을 체험하게 하였단다. 그 후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세계적으로 개최하였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왼손잡이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밥상머리 교육에서도 왼손잡이에게 강제로 오른손잡이의 식사습관을 강요했고, 또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왼쪽을 무시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금줄’로 사용하였고, 오른쪽 손을 ‘바른 손’, 또 강등이나 지방발령을 ‘좌천(左遷)’이라고 하였고, 2003년 정몽준 의원은 왼손잡이를 위한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였지만 법안 제정은 여지없이 부결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환경은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30cm 자를 이용하여 선을 그을 때 왼손잡이는 보통 오른손으로 자를 잡고 왼손으로 왼쪽으로 선을 긋는데 이때 숫자를 30부터 거꾸로 세게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영어도 ‘올바르다’는 의미로 Right(오른쪽)라 하고, ‘나머지’라는 뜻으로 Left(왼쪽)라 한다. 사사기 20:16에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 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베냐민 자손들은 백발백중의 왼손잡이 DNA가 강세였음을 암시해준다.

아무튼, 왼손잡이는 장애인으로 볼 수 없는데도, 단순히 오른손잡이에 비하여 적은 무리라는 사실 때문에 차별을 당해 왔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들이 왼손잡이들을 인정하여 오히려 배려하고, 생활용품을 오른손잡이용과 왼손잡이용으로 같이 만들어 사용한다면 어느 쪽도 불편을 당하지 않게 된다. 이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회이다. 모든 사람이 차별당하지 않게 서로 배려할 때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열매를 잘 맺고 있는 나라이다. 아멘.

오늘 설교 본문도 하나님의 심오한 창조의도를 조금도 빠뜨리지 말고 고스란히 반영해야 함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우리 한글 성경으로는 감을 잡기 어려워도 헬라어 성경 16절은 두세 단어로 된 짧은 문장이나 형식상 시적 운율을 잘 맞춰 6행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6행마다 동사를 3인칭 단수 수동태(아오리스트)로 기록해서 ‘θη(쎄)’ 발음이고, 또 5행은 동사 바로 뒤에 전치사를 5개 모두 ‘ἐν(엔, 안에)’으로 일치시켜 놨다. 이런 점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이 짧은 시에 예수님의 성탄부터 승천까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치밀하게 엮어 놓았다. 그렇다면 바울은 구세주 예수님에 대하여 그 숭고함을 알리고자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잘 보여준다.

바울이 쓴 6행 시는 한 마디로 ‘예수님 생애의 신비’인데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성육신의 신비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요 1:1-3에 이렇게 밝혀놓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본래 예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 1:14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죄인 세상에 성육신하셨다는 거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요, 100% 인간이시다. 그러한 예수님에게서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알아본다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성육신은 신비 중의 신비이다. ②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 말씀은 바로 롬 3:25-26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형을 받아 사망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는데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대속죽으심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게 예수님 안에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비밀 중의 비밀 바로 십자가의 신비이다. ③ 승천의 신비.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후 천국으로 올려지셨다는 것인데, 승천하심을 말한다. 이게 예수님 안에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신비이다. 요 14:2-3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저 천국에 우리의 거처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거다. 천국에 예비된 영생 복락의 거처야말로 우리의 소망 중에 참 소망이 아닐 수 없으니 엄청난 신비이다. 아멘.

자 그러면 크고 비밀한 예수님의 신비를 제대로 누리려면 신앙 삶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바울의 권면을 더 들어보고 챙겨 담자. 아멘.

1) 하나님의 집(15)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지”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목회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말씀이다(“하나님의 집에서” οἴκῳ θεοῦ 오이코 쎄우 in God's household -NIV-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의 교회관을 보게 됨). 정상적인 집에는 엄마 아버지가 당연히 있지요. 자녀가 없이 남편과 아내만 있다면 그 집은 하나님의 복(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자녀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주는 미래라서 소망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 수준이다.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만 사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점점 소(小)한민국으로, 죽어가는 사(死)한민국으로 기울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절간과 교회가 다른 점은 절간은 사람이 적어 조용하였고 교회는 쉬지 말고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시끄러웠다. 오두막 초가집이라도 사람의 웃음소리가 지속하면 화목한 가정이다. 가정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도 땅도 아니고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렇다. 하나님의 집도 거기에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착하고 충실하면 좋은 교회이다. 교우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교회가 하나님의 집과 장사하는 집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어느 목사님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 중에 하나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였단다.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나길 원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불량청소년의 뉴스를 보고 기도를 바꿨단다. ‘우리 자녀들이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애들을 만나는 사람은 복을 받게 하소서.’ 성령이 보혜사로 머무는 성전으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2) 하나님의 교회(15)

구약성경에 보면 노아는 홍수심판 직후에 제단을 쌓고 정결한 제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제단을 쌓고 숫양을 아들 대신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고, 야곱은 외동딸 디나의 성폭행을 보복하고 풍전등화처럼 불안해졌을 때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를 벗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거룩히 예배드렸다. 다윗은 인구조사로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어갈 때 오르난의 타작마당과 제물을 금육백 세겔(1인 100년 품삯)로 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거룩히 번제를 드렸다. 솔로몬은 다윗이 준비한 하나님의 성전을 최상으로 지어 하나님께 바쳤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신령하게 예배드리는 그 무리를 ‘내 교회’(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on the rock [petra, feminine, a huge rock like Gibraltar] I will build My church, -Amf- = 마 16:16 신앙고백 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 = ‘하나님께서 불러내신다’ 하나님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무리를 향하여 불러내시고, 죄에게 져서 지옥으로 달려가는 무리에서 천국의 영생복락의 길로 불러내신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게 우리와 함께 하신다). 바울도 하나님을 거룩히 예배하는 교회에 대하여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ἥτις ἐστὶν ἐκκλησία θεοῦ ζῶντος,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NIV-)라고 증언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하는 장소나 시간, 마음가짐, 태도를 확연하게 차별하여 살아계심에 맞출 때 ‘거룩한 예배’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장례식장과 확실히 다르다. 장례식장은 핵심내용을 사망에 맞춰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멘.

3) 진리(15)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기둥이 없는 건물은 항상 불안하다. 기둥은 그 건물을 반듯하게 세워주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과 만나는 사람들이고 장소이니, 구별된 진리의 현장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과 만남으로 실존하는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니 교회마다 거짓과 더러움에 민감하고 조심해야 한다.

계 3:12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약속해 주셨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과 시련을 만난다. 모두 이겨내면 강해져서 기둥감이 된다. 배의 돛대는 해변에서 맨 바닷가에 있는 나무를 골라 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몸통을 아주 매끄럽게 다듬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매끄럽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리고 심지어 상처를 입게 되고, 또 바다 쪽 나무는 수많은 비바람과 태풍을 직접 맞부딪쳐 이겨내면서 강해지기 때문이다. 맞다. 그리스도인도 교회의 기둥감이 되려면 환란과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교회의식’이 허약해 쉽게 핑계를 대고 옮겨 다니게 된다. 그래서 고려말 충신 야은(冶隱) 길재는 노래했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라고 탄식하였지요.

교회는 예수님의 신비를 발견하여 깨우치고 그 깨달은 분을 일꾼으로 세워야 예수님이 구상한 교회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남가주 사랑의 교회가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데 매일 아침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서 참석하는 집사님이 있었다. 담임목사님이 물어봤다. “집사님, 교회가 너무 멀지요?” 집사님이 대답하였다. “저는 한 번도 교회가 멀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집은 멀지요.” 이게 소망 사고방식이다. 물론 교회의 기둥감으로 충분하지요. ‘기둥감 신앙 삶’이 자주 생각나길 축복한다. 아멘.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 Ὃς ἐφανερώθη ἐν σαρκί, 호스 에파네로쎄 엔 사르키 He was manifested in the flesh, )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 ἐδικαιώθη ἐν πνεύματι, 에디카이오쎄 엔 프뉴마티 vindicated in the Spirit,)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 ὤφθη ἀγγέλοις, 앙첼로이스 seen by angels,)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 ἐκηρύχθη ἐν ἔθνεσιν, 에케뤼크쎄 엔 에드네신 preached among the nations,)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 ἐπιστεύθη ἐν κόσμῳ, 에피스튜쎄 엔 코스모 believed on in the world, )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 ἀνελήμφθη ἐν δόξῃ. 아넬캠프쎄 엔 독세 taken up in glory.) -R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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