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4일 설교
“하나님 앞에 선한 것!”(딤전 2:1-7 ‘기도하는 증인’ 22.8.14)
독일은 동서를 ‘베를린 장벽’으로 가로막아놓고, 동쪽은 공산독재 국가요, 서쪽은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한창 대적할 때, 한 교회가 조그맣게 ‘촛불 기도회’를 시작한 사실을 아셨나요? 라이프치히에 당시 817년 된 니콜라이 루터교 교회에서 퓨러(Christian Führer) 목사님이 ‘칼을 쳐서 쟁기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1982년 9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평화 기도회’를 가졌단다. 그 자리는 평화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공산주의자나 반체제인사 누구도 제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자신들과 독일 땅에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기도했는데, 기도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매주 불어나, 동독의 치안담당 조직에 속한 700여 명이 니콜라이 교회의 자리를 미리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도 목사님의 설교를 같이 들었다. “좋은 목표를 이루려면 성취하는 길이 올바르고 이용하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라고. 그렇지만 1989년 10월 9일 동독 정부의 경찰이 집회를 통제하고 주변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차단했지만, 예배당에는 2천 명, 마당에는 1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가까운 성 토마스 교회도 평화기도회를 위해 교회를 개방했다. 기도회를 끝내고 평화행진을 하는 군중은 10만 명으로 불어났는데 그들은 유리창 하나 깨지 않았다. 경찰은 통제를 중단하였다. 평화 기도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여행의 자유’를 요구했고, 평화시위대의 구호도 ‘언론의 자유’ ‘자유선거’ 그리고 ‘우리는 한 민족이다’로 점차 바뀌더니,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독일 통일도 선포되었다. 독일 통일의 불씨는 총칼도, 노조 데모도, 정치적 행사도 아니고 기도 모임이었다. 이래서 기도하는 교회가 민족의 소망이요. 그런 기도응답이 우리 민족도 우리 교회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각 지도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아멘.
오늘 설교 본문도 기도의 중요성을 한없이 강조하고 있다(1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 “권하노니” παρακαλω 파라칼로 παρα + καλεω. exhort, beg, encourge, comfort. παρακλητος<보혜사, 다정다감하면서 간곡히 권면함> “첫째로”<“first of all” -영어성경- 무엇보다도 먼저, πρῶτον παντῶν 프로톤 판톤, παντῶν 생략함. 그런데 설교 본문에 ‘둘째로’ ‘셋째로’라는 말이 없으므로 “첫째로”는 단순히 차례를 표현하기보다, 일이 중요함으로 우선순위의 ‘으뜸’이란 뜻.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 목사에게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에베소 교회가 당장 시작해야 할 만큼 시급한 핵심사역이라고 강조한 것임>. 그리고 기도도 자상하게 넷으로 나누어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δεησεις προσευχας εντευξεις ευχαριστιας ; δει<must>의 파생어, προς + ευχομαι, 타인을 위한 기도, ευ + χαρις 기도응답을 시인하는 고백) 권하였음).
요즈음 목사님들에게 “목회사역에서 가장 비중을 두고 많은 시간을 배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 ‘설교’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약한 설교 때문에 교회에서 시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바울은 설교보다 기도를 더 앞세웠다. 교회는 말씀의 공동체 이상으로 기도공동체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도행전 6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교회는 제자가 더 많아지는 모범부흥 중일 때 기도와 말씀사역을 소홀히 하였더니 ‘원망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이 간구와 기도와 도고, 감사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도고하고 감사하는 게 교회를 살리고 건강하게 회복하는 처방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목회의 우선순위로 기도를 으뜸으로 삼으라고 강권하였다.
중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의 체험담이다. 그는 20대에 폐결핵으로 고생하다가 협심증까지 겹쳐서 살 가망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설교를 듣고 바로 그 하나님께 자기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다가 잠들었는데 꿈에 자신이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양쯔 강을 건너고 있더란다. 그런데 강 한가운데쯤 가서 배가 큰 암초에 걸려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꿈에서도 “하나님, 내 배가 강을 건너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라고 간구했단다. 한창 울부짖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바위를 옮겨주랴? 아니면 강물이 불어나 바위를 덮어서 배가 그 암초 위로 지나가게 해주랴?” 그는 얼른 “배가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더니,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나 바위에 걸렸던 배는 둥둥 떠 강을 지나갔다. 그는 그 꿈을 깬 후에 폐결핵과 협심증을 분명한 암초라고 깨닫고 그대로 가지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69세까지 전도사역을 했단다. 그분이 바로 ‘워치만 니’라는 목사 전도자였다. 시련을 극복하는 신앙생활은 기도가 필수라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기도생략에 길들지 않기를 축복한다. 아멘.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기도를 생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가? 설교 본문을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그 정답을 찾아보자.
1) 하나님의 뜻(4)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진리를 아는’ 그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강조해 놓았다(진리 수준을 선명하게 드러냈음. “아는” επιγνωσιν 에피그노신 επι<upon, in the presence of. in respect> + γνωσις<knowledge>. 그리스도인의 진리지식 수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함! 그래서 바울은 “원하시느니라”(θελει 텔레이 현재 능동형)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계속 원하신다고 표현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 직전에 하셨던 중보기도를 길게 26절로 기록하여 놓았다. 그중에 3,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합당하게 살아가면 영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많이만 읽을 것을 자랑할 게 아니라 더 중요하고 필요한 올바로 확인독(確認讀)하고 생활화하는 것이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아멘.
2) 대속물(6)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받쳐진 “대속물”(ἀντίλυτρον 안티뤼트론 ἀντί<대신, 정면에> + λυτρον <노예나 죄수의 몸값, 贖錢. 강조형>이라는 것이다. 맞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통개혁이냐 인본주의냐로 기울어진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贖錢)으로 내어주신 단 한 분 중보자이시다(바울은 “화목제물”이라고 밝혔음<“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ἱλαστηριον 힐라스테리온 = ‘속죄소’ 히 9:5>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35>).
강화도 ‘교동 감리교회’는 1899년 권신일 목사님이 설립했는데, 그 교회에 70세 된 할머니가 집안일을 다 며느리들에게 맡기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직분도 없고 성경 지식도 바닥인데, 예수 믿으면 천국 백성 되고 착하게 살아간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하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동네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확실히 기억하는 것을 전해주고 교회로 인도했단다. 그중에 목사 70여 명이 나왔단다. 성경을 많이 읽고 쓰고 외워서 열심히 전도하는 게 아니라 ‘오직 예수 믿으면 천국 백성 되고 착하게 산다’는 설교를 확신하고 생활화한 것이 풍성한 영혼 전도의 열매를 거두게 하였다는 것이다.
3) 평안한 생활(2)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 이 말씀은 “경건”(εὐσεβίᾳ 유세베이아 = devotion, worship, reverential)에 안성맞춤이다. 신앙생활을 내용과 질을 갖춰서 그만큼 품위 있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세상 임금들과 고위직 관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는데 당시에 세상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불신자들이었고 대체로 기독교 신앙을 대적하였다. 그러한 높은 지위의 지도자들을 도고(중보기도)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으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당연해지겠지요.
여러분, 내가 지지하지 않은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나라의 일을 그릇되게 결정해갈 때 그 영향력이 우리 자신의 미래를 괴로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좁은 안목인 데다가 참모들의 조언마저 편견일 때 그 결정들이 우리의 미래 재앙으로 올 수 있기에 그를 위해 기도하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중국과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 대하여 결단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과 교회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일터의 책임자를 위해 기도하며, 양들의 영혼을 위하여 깨어 보호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는 목자들을 위해 기도하셔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고요하고 평안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체험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신앙생활의 무게중심이다. 교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자기 욕심 채우기로 신앙생활을 해버린다.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기분이 좋고, 교회에 충성할 맛이 나고, 그러한 풍요를 축복이라고 자랑한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우선 자랑할 수 있어도 심판대는 초상집이다. 구약시대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지요. 엄청난 자랑이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다가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비참하게 그의 삶을 끝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뜻 중심으로 목회할 것을 강권하였다. 목회도 하다 보면 내 뜻을 이루고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위험 속에 있는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앞세우는 목회를 올곧게 하라고 편지하였다. 명심하는 우리이기를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