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24일 설교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자!”(딤전 1:3-11 ‘다른 교훈과 바른 교훈’ 22.7.24)
예수님은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깨우치려고 설교할 때 비유로 즐겨 하셨는데,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 비유를 6개나 모아놓았고, 그 비유 중에 2개를 직접 해석까지 해주셨다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런데 그 두 해석 중 하나가 ‘알곡과 가라지’ 비유이다. 농부는 일부러 알곡만 밭에 파종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밭에는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농부도 모르게 사탄이 알곡 밭에 가라지를 파종한 탓이었다. 그럴 때 농부들은 가라지들을 당장 뽑아내려 한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가라지와 알곡의 생김새는 너무 비슷해서 농부들도 자칫 알곡까지 뽑는 실수를 하기 때문에 가라지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린단다. 가라지의 열매는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부들은 가라지를 그대로 놔두었다가 열매 때 얼른 뽑아 불태워버린단다. 이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의 자녀 삶을 교훈해 준다. 즉 교회라는 밭에는 실제로 가라지 교인과 알곡 성도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령의 보혜사에 잘 순종하는 성도가 있고 또 사탄의 충동에 마구 놀아나는 가짜 교인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바른 성도와 가짜 교인을 식별하는 것은 목자들에게 무척 괴로운 숙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주 혼동하는 일이 생기고 그 혼동은 안타까운 실수로 이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도 젊은 목사님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던 에베소 교회에서 생길, 신앙적인 혼란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일을 보여준다. 행 20:29-30에 보면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 교회를 지나갈 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교회를 신신당부한 말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남아서 이리들을 잘 식별하고 올바른 교훈으로 신앙생활을 잘 지도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도 바울이 예상한 대로 에베소 교회에 이리들이 들어와 설쳐댔다. 그렇지만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얼른 방문하지 못해 목회서신으로 대신하였다.
에베소 교회에서 신앙적인 혼란을 일으킬 가라지들을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이라고 표현했는데, 구체적으로 ‘신화와 끝없는 족보’ 그리고 율법주의였다. “신화”(μυθοις 뮈쏘스 신비하게 창작한 이야기, 결국 꾸며서 만든 이야기). 그래서 그리스 신화나 로마신화 같은 것인데, 어느 신이 세상에 내려와서 어떤 성을 세웠다느니, 신이 어떤 여자와 혼인하여 한 가문을 이뤄다느니... 한 마디로 허황한 이야기이다. “끝없는 족보”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 아브라함인데 자기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당연하다면서 우월감을 가지며 구원의 근거를 오직 혈통에 두었다. 그래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는 성경을 올바로 깨닫는데 혼동을 일으킨다. 고전 1:28-29에서 바울이 밝히 증언해 놓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도 요단강 앞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설교하였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반드시 지옥 백성으로 판정 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핵심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사랑하심! 이라고 찬송한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이렇게 다른 교훈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혼동시켜서 에베소 교회를 괴롭힐 게 뻔했지요. 사실 이러한 신앙생활의 혼동은 교회의 역사상 늘 있었다. 한국교회도 초창기부터 계속 그랬고, 요즘도 한국교회는 다른 교훈들이 올바른 교훈인 양 한심하게 둔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신천지 이단이다. ‘신천지의 추수꾼’은 꼭 성경을 내세워 자기들이 참된 성경 중심이라고 속이고 많은 기존 교인을 혼동시킨 후에 그 교인들을 끌고 가는 간첩들이다. 그런데 신천지 이단이 그토록 강조하는 성경 중심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내세운 게 교주 이만희의 성경해석이다. 이만희만이 유일한 보혜사요 직통 계시를 받기 때문에 이만희의 성경해석이 제일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그렇지만 이만희는 요한 계시록 14장의 “144,000명”을 올바로 해석하기엔 독서능력도, 성경언어도, 신학지식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희의 성경해석은 순 마구잡이요, 설교 본문 용어로 “다른 교훈”이지요.
자 그러면 가라지의 다른 교훈들에 속지 않고 올바른 교훈을 따르는 신앙생활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설교 본문을 통하여 바울의 가르침을 더 들어보자.
1) 하나님의 경륜(4)
“경륜”(οικονομιαν 오이코노미아 a building of house. οικος 오이코스<집> + νομος 노모스<규칙>의 합성어. ‘집의 규칙’ ‘집의 관리’. 따라서 ‘청지기의 책임 직무’, 의미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획실현). 그래서 올바른 교훈을 따르는 성도는 믿음의 진보에 해를 끼치는 변론이나 논쟁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일꾼을 세우는 봉사와 사랑함에 열심을 낸다. 그렇지만 가라지들은 거짓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다른 교훈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일 때 디모데가 막아내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이유이며 목적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사명’이라고 일컫는다. 그리스도인이 관여하는 일이 사명 감당일 때 하나님께 박수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고 계신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우리가 관여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이루는 사명 감당인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려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어떻게 하였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혹시 자리만 차지하고 사명 감당은 보류하지는 않았는지? 드러나지 않는 작은 일이라도 괜찮다. 주님이 보고 계신다. 주님을 사랑함 같이 교회 일을 사랑하고 성실히 하면 된다. 물론 그 사명은 피곤할 수 있다. 그냥 지내는 것보다 귀찮겠지요. 그렇지만 그 수고는 심판대에서 빛나게 된다. 사명으로 하지 않았다면 축복도 은혜도 성공도 다 이기심이기 쉽다. 불법판정은 아직 남아있다.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생활에 충실하시길 축복한다. 아멘.
2) 사랑(4)
올바른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게 하고 그 조화에서 사랑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 + 양심 + 믿음 = 사랑’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이 공식대로 순종하는데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청결한 마음”을 점검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선한 양심”을 점검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점검해보라는 것이다.
청결한 마음(καρδια 카르디아 ‘인간의 지, 정, 의의 좌소<座所>’ 균형잡힌 인식! “청결한” καθαρος 카싸로스<물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깨끗한, 죄악에서 벗어난 상태> 우리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또 “선한 양심”(συνειδησεως 쉬네이데세오스 συν 함께 + ειδω 본다.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선을 알아차림. 그래서 흉악한 양심이 있고 화인 맞은 양심도 있는 법). “거짓<ανυποκριτος 아뉘포크리토스 ὑποκρινομαι 휘포크리노마이 꾸미다 가면, 속임!>이 없는 믿음”
그리스도인의 신앙 삶은 참사랑이 결론이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헛믿음 생활이요.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게 하는지, 진심으로 서로 축복하게 하는지,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성실하게 공동의 선을 이루는지 살펴보면 우리는 “다른 교훈”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명심하자. 아멘.
3)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11)
“이 교훈”(ὅ 호 = 8-10절, “이 교훈”<5절> παραγγελιας 파랑겔리아스 παρα + αγγελος 명령, 지시, 교훈, “경계” -개역- 명령을 통해 이루어야 할 목적,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다시 말하면 디모데가 에베소에 머무는 목적(사명)은 바로 “사랑”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었다(하나님의 της δοξης του μακαριου θεου 테스 독쎄스 투 마카리우 쎄우 소유격!“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גְּאֹון 게온 excellency, “splendor” -NIV->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גְּאֹון 게온> 같게 하시나니”-훔 2:2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כבוד 카보드 glory>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 40:33-34-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4-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9-).
신천지는 ‘모략’이라는 방법을 포교로 활용한다. 모략은 신천지 전도용어인데 ‘거짓말을 하더라도 포교하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청소년들에게 학업을 포기하게 하고, 아내가 가정을 포기하게 한다. 그러니 신천지는 가정과 가정, 교회에서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심각한 다툼과 분열을 일으킨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의 올바른 교훈을 따르고 건전한 책임감으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가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을 정리하자. 성령의 보혜사를 무시하는 교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죄인 줄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다른 교훈에 속아 넘어간다. 그런데 이단의 수뇌부들은 자신들의 사기를 다 알고 있단다. 그럼 왜 그렇게 잘못된 열심을 내는가? 그것은 더러운 탐욕 때문이다. 결국, 피해를 보는 이는 그런 사기에 속아 휩쓸린 교인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주문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κατα το ευαγγελιον according to the glorious gospel –NKJV-)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