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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설교

“그대로 거두리라!” (갈 6:6-10 ‘그리스도인의 삶’ 22.6.26)

영국의 한 초등학교 1학년에 여자아이가 입학하였는데 잠시도 앉아있지 않았다. 노상 떠들고 숙제는 해오지 않으니 성적은 바닥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몇 번이고 타이르다가 꾸짖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선생님은 더 견딜 수 없어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이 아이를 도저히 가르칠 수 없으니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아본 부모님은 앞이 캄캄해졌다. 지금 같으면 그 아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가 심하였다. 어머니는 아이를 상담병원으로 데려가 보았다. 상담을 끝낸 의사는 아이에게 다가와 칭찬해주었다. “얘야, 잘 참는구나. 그런데 조금만 더 참으렴. 엄마는 나와 잠깐만 더 얘기하고 올 거야.” 그러고 라디오를 켜놓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 후에 상담실을 나왔다. 의사는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아이의 행동을 살폈다. 그 아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더란다. “이 아이는 문제아가 아닙니다. 춤에 재능이 많네요. 이 아이에게 가만히 앉아있게 하면 고통을 주는 겁니다. 무용학교에 보내세요.” 의사의 조언을 듣던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동의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이를 런던의 로열발레 학교로 옮겨주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 매일 춤을 추었다. 새벽부터 춤 연습을 그렇게도 좋아하더니 춤꾼이 되었다. 오늘날 그녀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아이가 1926년에 태어나 92세에 세상을 떠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질리언 린’(Gilian Lynne)이었다. 그녀는 세계 4대 뮤지컬인 ‘캣츠’ ‘오페라의 유령’의 멋진 안무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도 사실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아이였단다. 빌게이츠는 휴학하며 심리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분명한 장애를 보면서 재능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키워가자 대가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나 가능한 개성을 주신다. 하나님이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바로 단점 속에 숨겨진 재능을 살려내심을 가리킨다.

오늘 설교 본문도 선을 찾아 행하면서 낙심하지 말라고 강권한다(9 “선”<καλος 칼로스 beautiful, excellent, honourable, worthy, delightful, profitable>. 그런데 “낙심하다”<ἐγκακῶμεν 엥카코멘 ἐγκακεω 가정법 현재 despond, faintheart, remiss>).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증언하는 바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표식(表式)이었다. 즉 거짓 복음으로 선동을 당할 때 참된 복음을 붙잡고 돌이키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할례나 율법행위에 의한 구원 대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제물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확신 반응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갈라디아서를 읽고 들으면서 나 자신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고? 그 이유를 확인했는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을 확인해 보자고 설교를 해왔기 때문이다.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12.11 - 2008.8.3)은 ‘러시아의 양심’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작가였지요. 그러나 그는 군 복무 시절에 독재자 스탈린을 비난하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강제 수용소에 유배되어 매일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다가 암 병에 걸려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가족들도 다 흩어지고,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캄캄하여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휴식 시간에 삽을 팽개치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렇게 하면 감시원에게 죽도록 맞게 되는데 차라리 맞다가 죽고 싶었다. 완전히 포기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서 막대기로 땅바닥에 십자가를 그어주고 갔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십자가를 바라본 순간 그의 마음에 평화가 임했고, 신기하게 희망의 힘이 느껴졌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소련보다 더 큰 힘이 실존한다는 사실, 그리고 온 인류의 소망이 그 작은 십자가의 형상으로 상징될 수 있고, 십자가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일어나서 팽개쳐버렸던 삽을 들고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솔제니친은 십자가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건강도 좋아졌다. 그는 소련에서 추방당하였는데 신기하게도 미국에 살면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란 복음에 정통한 성도를 가리키고, 복음에 정통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제물을 반드시 믿고 구원받았음을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갈 5:24-26에 보면 바울은 하갈과 사라를 대조시켜 하갈은 옛 언약이요 종으로, 사라는 새 언약이요 자유인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지요. 순전히 인위적인 넓은 길의 방법이었는데도, 이스마엘을 축복이라고, 은혜라고 하는 교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과 전혀 상관없다. 이삭이라야 축복이고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도 갈라디아 교회가 인간적인 넓은 길을 선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다운 교회’를 증언하였다. ‘교회다움’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의미했는데 교회 내에서 ‘신령한 성도’의 역할이 건강하게 이루어지는 교회였다.

자 그러면 ‘신령한 성도’의 역할이 건강하게 이루어지는 ‘교회다운 교회’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설교 본문에서 바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고 챙기자.

1) 좋은 것(6 Κοινωνείτω δὲ ὁ κατηχούμενος τὸν λόγον τῷ κατηχοῦντι ἐν πᾶσιν ἀγαθοῖς.)

ἀγαθοῖς 아가쏘이스 ἀγαθος(물질적, 육체적, 영적)의 복수(여러 가지, 여러 번). Κοινωνεω 코이노네오 to be a party to, to share.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그 대신 가르치는 자가 명심할 바가 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ορθοτομουντα 오르쏘토문타 rightly divide. 조각가, 정육점의 주인처럼. ‘rightly handling’ -RSV-)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이슬도 내리지 않는 가뭄이 해를 거듭할 때 선지자 엘리야가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었는데,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명하여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하셨다. 그러던 중에 사르밧 과부를 만나 떡을 좀 만들어오라고 부탁하였더니, 그녀의 대답이다.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좋은 것을 하나님의 종과 함께 나눌 때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심을 체험하길 축복한다. 아멘.

2) 속임(7 πλανᾶσθε)

“스스로 속이지 말라”(μὴ πλανᾶσθε 메 플라나스쎄 현재 수동태 “Do not be deceived” -NKJV, NIV, RSV- 주체는 거짓 삯꾼들이나 사탄임, 자기 탐욕에 끌려 마귀에게 유혹당하여 속아 넘어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원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자기 육체를 위해 심으면 이 세상의 육체의 열매뿐이다. 그렇지만 성령의 보혜사를 따라 순종하면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원리를 알고 확신한다면 마귀에게 유혹당해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크게 보이는 것을 선호해서, ‘대박’이라고 자주 말하고 한강다리도 전부 ‘대’자가 들어가 있다.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작대교’... 그래서 교회도 빚잔치를 해서라도 큰 예배당을 짓는다. 그리고 교인수를 자랑하고 축복이라 하며 은혜라고 한다. 문제는 많은 교인이 교회를 떠난 점이다. 세상에서 실패와 낙심을 당한 뒤에 교회를 찾아왔더니 교회에서도 실패한 사실 때문에 더 작아져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큰 것이 못 되니 교회에 가고 싶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와 너무나 달라진 교회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3) 때(9)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καιρῷ γὰρ ἰδίῳ θερίσομεν. 카이로 가르 이디오 쎄리소멘 God’s time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구원적인 일>, for, specially assigned, we shall reap. “기회 있는 대로”<10 καιρον ἔχομεν, God’s time, we have>)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너희가 믿은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2-)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고 계신 성령님을 얼마나 따르느냐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주장하느냐? 아니면 성령의 뜻과 육신의 탐욕이 선악 전쟁을 벌이고 있느냐? 그래서 우리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이다. 우리의 진실한 대답이 중요하다. 육체를 위하여 심어 썩어질 것을 거두고 축복이라고, 은혜라고 둔갑시키는 것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요즈음 안타깝게도 자살이 너무나 흔하다. 재벌도 시장도 인기 연예인들도 죽었다. 겉으로는 너무나 화려하고 멋져 보이고 많이 가졌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헤밍웨이는 재치 있고 쾌활하고 호탕하며 개방적이었고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타고난 스포츠맨이었다. 20세기 미국의 작가들 중 헤밍웨이의 명성을 뛰어넘은 분은 드물었단다. 그러던 그가 권총으로 자살하면서 자기 메모장에 써놓은 메모이다. “내 인생에는 목표가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전기가 흐르지 않는 텅 빈 전구와 같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만물의 영장인지라 다른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막강한 권력을 쥐어도, 넘치는 재물을 가져도, 아무리 많은 인기를 누려도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어딘가 텅 빈 심정이 고독과 고뇌를 만든다. 그때 인간은 허탈감에 시달린다. 하나님의 시간(καιρος God’s time)에 맞추고 기다리는 인생을 살자.

자 이제 오늘 설교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의 믿음 생활을 비춰보자. 어떠한 모습인가? 신령한가? 그래서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속지 않으며” 또 “선을 행하고 거두는가?” 해당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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