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설교

“누가 꾀더냐?”(갈 3:1-9 ‘변질하는 믿음’ 22.4.3)

2017년 12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BMW 댈러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여자부 1위로 달리고 있던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을 고작 183m를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더 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 2위는 1위를 차지할 행운을 다. 그런데 2위로 달리고 있던 여자는 아리아나 루터먼이었는데, 그녀는 1위를 따라잡더니 주저앉은 첸들러 셀프를 일으켜 세우고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뛰기 시작하면서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어요.”라고 반복응원을 하며 함께 뛰었단다. 그러고 결승선 앞에서 그녀의 등을 밀어주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1위 첸들러 셀프는 뉴욕 정신과 의사였고, 2위 아리아나 루터먼은 17세 고등학생이었는데, 루터먼은 어린 나이인 12살 때부터 댈러스의 집 없는 사람을 위한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도와왔던 기특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1등이 아닌데도 오히려 1등보다 더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미담이었다.

1등 제일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살아남으려고 상대를 밟아 제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의 구조에서 1등의 기회를 낚아채는 일을 흔히 은혜라고 당연시한다. 그래서 매사에 과정을 무시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결과만 차지하고 자랑한다면 그 사회는 거짓 술수와 약육강식이 난무하여 삭막한 자국들로 가득하게 채워지고 만다. 탁월한 1등은 당연히 최고이다. 하지만 정황을 배려하느라고 2등을 자처할 수도 있고 오히려 말단의 자리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예수님을 따라 바울이 그랬으며 20세기 성자 슈바이쳐도 그랬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정심응물 수부독서 가이위유덕군자 定心應物(마음을 바르게 정하고 사물을 대하면) 雖不讀書(비록 독서량이 부족하더라도) 可以爲有德君子(덕을 갖춘 군자가 가능하다).

오늘 설교 본문도 雖不讀書 可以爲有德君子(비록 독서량이 부족하더라도 덕을 갖춘 군자가 가능함)을 잔뜩 기대하였다가 너무 실망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1 “어리석도다” Ὦ ἀνόητοι Γαλάται, τίς ὑμᾶς ἐβάσκανεν, 오 아노에토이 갈라타이, 티스 휘마스 에바스카넨, Ὦ<감탄사> ἀνόητοι<νόεω understanding, conception, thought, judgment.> 단 한 번 ≠ 1:11, 3:15... 6:18 = 9번, “나의 자녀들아” <4:19> 바울은 변절함에 실망하고, 허탈하고, 분노하고... 그래서 책망함! “O YOU poor and silly and thoughtless and unreflecting and senseless Galatians! Who has fascinate or bewitched or cast a spell over you,”-Amf-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유대주의자들이 찾아와서 십자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표를 가져야 한다.’라고 꾀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믿는 신앙들이 흔들리고, 따라가기도 하였음. 그러자 바울은 굉장히 속상해하였다는 것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 삶에서 비본질을 본질로 바꾸게 하여 믿음생활을 망쳐버린 사례를 수없이 기록해놓았는데 그 최초는 하와이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바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7번이나 반복하였다(창 1:4, 10, 12, 18, 21, 25, 31). 그런데 아담은 뱀에게 속은 자기 아내가 하나님께서 엄금하신 선악과를 따서 주니까 먹고 저주받은 땅에서 살게 되었다(창 3:17). 그래서 사람을 꾀는 자는 뱀이고(창 3:13) 거짓 선지자(계 19:20)인데, 실체는 사탄이고 마귀(계 12:9)이다. 성경을 보면 꾐에 넘어간 자들은 의외로 유능하고 유식하고 복 누릴 사람들이 많았다. 아담과 하와, 삼손과 사울 왕, 다윗 왕, 가룟 유다와 베드로... 그러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은 누구나 생각에 새길 일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자연주의 작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이 쓴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마틸드 르와젤이라는 여인은 외모는 이뻤지만 가난한 관리와 결혼했기에 빈궁한 생활을 하느라고 변변한 보석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살아갔다. 마땅히 부귀호화를 누려야 할 미모인데 초라하게 살아가는 삶에 노상 불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장관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초청을 받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도 목걸이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저금한 돈을 찾아 파티 드레스를 사 주고 목걸이는 아내의 부자 친구에게 빌렸다.

무도회에서 마틸드는 누구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큼 돋보였다. 그녀는 신바람을 내며 춤을 추고 즐기다가 새벽녘에 집에 왔는데 깜짝 놀랐다. 친구에게서 빌린 진주 목걸이가 사라진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그 부부는 빚을 내어 비슷한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다. 그러고 부부는 그 빚을 갚느라고 10년 동안 생활고에 시달렸다. 마틸드는 어느 날 우연히 산책길에서 목걸이를 빌린 친구를 만났고, 그동안 빚을 갚아낸 고생담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친구는 엄숙하게 말했다. “마틸드, 왜 그때 말하지 않았니? 10년 전에 너에게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 싸구려 진주 목걸이였어.”

우리는 가짜로 치장하는 인생에 속아 살지는 않는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신앙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가짜에 속아 넘어가는 교인들을 보고 애통하였다.

자 그러면 바울이 애통해하던 그 이유를 좀 더 세밀히 함께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에 필요한 답을 찾아 챙기자.

1) 밝히 보이거늘(1)

“밝히 보이거늘”(προεγράφη 프로에그라페, 접두어 προ가 시간의 의미이면 ‘이전에’ 장소의 의미로는 ‘공개적으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처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공개적인 설교를 하였음은 물론 그 십자가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생생하게 증언하였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들이 그만큼 ‘공개적이고 명백하게’ 증언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그 당시에 얼마나 확신 넘치는 반응을 했는지 말해 준다. 그동안 자신들이 믿어 왔던 율법이 한심하게 비본질이었고, 그래서 오직 예수임을 깨달았다. 그러한 그들이 다시 꾀임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울이 밝히 보일 때 ‘아멘!’ ‘할렐루야!’를 그토록 외쳤지만 변절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도와드리게 될까요? 아는 사람 말해봐요.” 한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가 설거지할 때 도와주면 돼요.” 또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방 청소를 도와요.” 선생님이 “참 좋아요. 그러면 철수는 엄마를 어떻게 도울 거야?” 철수가 대답하였다. “나는 가만히 있을 거예요.” “아니, 왜 가만히 있어? 엄마를 도와드려야 착하지.” 곧바로 철수가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자꾸 말했어요. ‘가만히 있는 게 엄마를 도와준다.’고요.” 확실히 알지 못하면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란다.

2) 성령(2)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이 말씀은 갈라디아 교회들이 이미 성령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행 2:38에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렇다면 갈라디아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올바로 회개하였음을 입증해준다. 특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으로 행하시는 이의 일이”(5) 이 말씀이 밝혀주는 분명한 사실이 갈 5:22에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또 바울은 롬 8:9에서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엄중하게 밝혔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회들은 성령께서 보혜사 되심에 잘 순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앙생활을 육체로 마치려는 길로 빗나가기 시작해서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근심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어리석었지요.

고대 중국의 은 나라 주왕이 신하에게 명했다. “상아 젓가락을 만들어 오라.” 신하는 궁중을 떠나 산속에 기거하더란다. 충신들이 찾아가서 궁중으로 돌아오라고 권해도 그는 거절만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하자 신하가 말했다. “상아 젓가락을 만들면 토기 그릇을 사용할 수 없지요. 조화를 이루려면 금이나 은이나 주옥같은 그릇에 진수성찬을 호랑이 고기, 고래 고기로 올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집도 옷도 황금으로 만들어야 어울리지요. 상아 젓가락은 허영의 시작이지만 나라는 망조로 갑니다. 그래서 나는 미리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믿음변질도 마찬가지이다.

3) 괴로움(4)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τοσαῦτα ἐπάθετε εἰκῇ; 토사우타 에파쎄테 에이키 so many things/ have you suffered/ in vain“참말로 허사였습니까?” (새번역). ἐπάθετε = πάσχω 파스코 단순과거. 복음을 받아들이고 지켜나가기 위해 유대주의자들과 로마인들에게 수많은 고난을 받았음). 갈라디아 교회들은 믿음을 지키는 삶 때문에 목숨을 걸고 고난을 감수하였는데, 그러는 중에 성령의 권능도 지속하여 체험했다. 그런데도 다시 ‘다른 복음’의 속임수에 속아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교인들이 생겼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6-9). 결국 이신득의(以信得義)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였다.” 창 15:6을 인용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라고 하자 이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람이 믿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셨다(창 15:6). 이렇게 증언한 바울은 또 8절에서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12:3)을 인용한다.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이 말씀도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이 언약을 아브람이 믿고 하란을 떠났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직 의롭다 하심을 보류하고 지켜보고 계시다가 아브람이 엘레에셀이란 사람을 양자로 세우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라는 언약을 다시 제안하셨고, 그때 아브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자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요? 하나님의 언약을 열 번 백 번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언제 해당하게 순종하는지 하나님은 지켜보신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들이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과연 헛되냐? “참말로 허사로 만드냐? 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 교회의 위기를 보았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끈질기게 접근하더니, 결국 그 거짓에 교인들이 동조를 시작했다. 그것을 바울은 바보짓으로 보았다. 그래서 바울은 애간장을 태우면서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명심할 일을 발견하게 된다. 믿음은 삶의 중심을 올바로 맞추는 것이다. 자기 위주 중심을 하나님 위주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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