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2일 설교

“우리가 보고 믿게 하라!” (막 15:16-32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 2021.8.22.)

지난 주일이 제76주년 8.15광복 기념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주권을 회복하려고 일제강점기 36년간 피땀을 흘린 선조들의 희생은 고귀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당당히 맞서 두 주먹을 쥐고 다짐하며 고난을 자청할지라도 간직해야 할 그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할 시국정황이다. 그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언론에 보도시킨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뉴스나 안티 교회들이 폭로한 교회의 흠집들일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광야에서 먹고사는 문제만 중요시하는 모세였던 것처럼 해보라는 강요였다. 그렇게 하면 신앙하고 따르겠다는 유혹이었는데, 경제문제, 무병장수, 성공출세를 가능하게 하면 참 종교로 인정하겠다는 태도였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라고 충동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그런 장단에 맞춰 표적을 보이려고 우선 눈에 띄는 대형건물, 화려한 실내장식, 예수무당 목회까지 희한해져 갔다. 더구나 그런 게 교회의 사명인 것처럼 착각을 자랑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생활을 잘 하면 부자도 되고 자식이 성공하며 무병장수하는 게 축복이고 은혜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아졌다. 이제 목사님들이 그렇지 않다고 올바로 설교를 하여도, 이미 안티 교회들에게 그렇게 소문을 내놓아서 그들은 세상의 가치기준과 교회의 가치기준이 똑같으니 세속화교회라고 조롱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꾸며야 할 성전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이기에 건물 성전보다 ‘임마누엘 신앙’이다.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권능과 참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성전 삼고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참 성전이지, 대형건물이나 각종 이벤트, 유명인물은 교회의 본질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새 관계를 맺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의 삶을 올바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임을 이루어, 믿음 사랑 소망의 공동체로 활동하는 교회를 드러낼 일이다. 성령이 거주하시는 성전은 성경적으로 각 사람의 영혼이다. 그 영혼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신사참배의 죄악과 노동착취, 배움강요에 억눌린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를 되찾으려고 희생했던 영혼성전들의 그 가치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어가야 한다. 그게 신앙양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중요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아멘.

오늘 설교본문도 본질과 본질을 대신하려는 비본질이 충돌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보여주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30, 32. 이 두절 말씀의 공통점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임.)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초인적인 인물로 굉장한 인기몰이를 누렸겠지요. 그러나 그 인기 사건은 십자가의 대속구원과 전혀 상관없어진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순종하여 승리하시는 방법은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사탄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들을 충동시켜 ‘하나님의 메시아라면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라’고 마귀 짓을 유혹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하나님 아들의 삶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다. 그때 사탄이 찾아와 주님에게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엎드려 경배하라.’고 유혹하면서 주님에게 제안하였던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었다. 그렇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 마 27:40에 똑같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제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면, 예수님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말씀을 성취하는 중이셨고, 그때 거기서 예수님을 조롱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암기하고 있었음에도 사탄의 도구로 이용당하였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현장은 실제로 두 세력의 싸움장이었다.

칭기스칸은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을 ‘타르탄’이라고 칭하다가, 그가 거대한 몽골제국의 황제가 되자마자, 타르탄들에게 6가지 특권을 허락했단다. ➀ 당신들은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➁ 당신들은 전쟁이 끝나면 노획물을 제일 먼저 골라가질 수 있다. ➂ 당신들은 앞으로 세금을 면제한다. ➃ 당신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는다. ➄ 당신들은 이 나라 땅을 가지고 싶은 대로 가질 수 있다. ➅ 당신들은 이 권리를 4대까지 유효하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타르탄이길 축복한다. 몽골장수 칭기스칸에게 충성해도 엄청난 특권을 보장받았는데, 하물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얼마나 크나큰 사랑을 받게 되는가? 여러분이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힘들어도 하나님께 기대를 걸어보자. 시작 당시에는 갈등과 망설임에 흔들릴 수 있지만, 감당하노라면 하나님은 신비한 은혜의 길로 인도해가시고, 감격과 감탄, 감사로 찬송하게 하신다. 체험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자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현장에 어떠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확실히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점검해보자.

1) 예수님(23)

십자가 형장에는 물론 예수님이 계셨는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바는 무엇이었는가? 모세 때 죄인의 안수를 통하여 죄를 옮겨 받고 대신 번제물로 죽었던 숫양처럼 대속제물이었다. 설교본문은 독자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사실로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4번이나 ‘십자가에 못 박는다’(20-27)는 말을 기록했다. 그리고 자색 옷과 왕관을 가시관으로 왕의 외투와 왕관을 대신하여 치욕적인 멸시와 조롱을 하였음을 보게 한다. 또 ‘치며’(ετυπτον 에튀프톤)와 ‘뱉으며’(ενεπτυον 에네프튀온)는 둘 다 미완료과거 이다. 군인들이 멸시행동을 자꾸 반복했음을 보게 한다. 그리고 ‘절하더라’(προσεκυνουν 프로세퀴눈 그 앞에 온몸을 숙이고 손등에 입맞춤으로 절하는 것, 완전존경을 표현함). 23절에 “몰약을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로서 고통을 경감시켜 주려고 예수님께 주어졌지만 예수님은 타협을 일체 거절하시고 말씀성취에 충실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6-7)

초기 기독교 때 ‘황금의 입술’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명 설교자였던,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 대주교가 교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의 사회가 그 결정을 몹시 반대하였단다. 그 사실을 크리소스톰에게 보고드렸더니, 크리소스톰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 세상이 반대한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온 세상을 반대해야지.” 온 세상이 반대해도 교회는 진리를 선택하여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신앙중심이라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게 인도하신다. 세상과 타협하며 대충대충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믿는 것과 결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소신껏 생활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2) 시몬(21)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는 오늘날 북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이다. 그런데 ‘시몬’이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쓰는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구레네 시몬은 유대인 어머니와 아프리카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서, 유대교 신자로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로마군인이 강제지시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롬 16:13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사도 바울이 밝혀놓았다. 이것은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졌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으며, 특별히 사도 바울을 친밀하게 협력하였음을 말해준다. 그 참혹하고 부끄러운 예수님의 십자가에 귀중한 진주가 있었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구레네 시몬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마 13:43)고 말씀하셨는데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날 의인이 됐다.

지금 주님께서 나 자신을 향하여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미국 보스턴 대학교 교수였던 E. B Marlatt(1892-1976) 박사는 헌신예배 때 부를 찬송가를 지으면서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하였단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라는 신앙고백을 461장 찬송가로 만들었단다. 말랕 교수의 이 찬송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만드는 신앙고백이길 축복한다. 아멘.

3) 대제사장들(31)

십자가 형장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있었는데 이들은 분명히 지도자들이었지만 심각한 소경들이었다. 우수한 성경지식으로 흉악하게 신앙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ου δυναται σωσαι 우 뒤나타이 소사이 he is not able to save.) 이 말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기적행위들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친 일을 부인한 말이다. 중풍 병자, 소경, 청각장애인, 귀신병자, 죽은 나사로, 오병이어... 이런 기적들을 다 알고 있는 지식쟁이들이었다. 그렇지만 말씀들이 그들 마음 밭에서 겨자씨만큼도 싹트지 못한 길가였다. 그들은 돈과 출세, 풍요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ο χριστος ο βασιλευς ισραηλ 호 크리스토스 호 바실뤼스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왕’ 앞에 정확히 정관사<ο 호 ‘그’>를 사용하여 고유인물을 확실하게 지칭하였음. 우수한 전문지식인을 입증함)라고 마귀 짓을 열심히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일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훼방하였다. 그 뛰어난 지식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멘.

자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형장을 살펴본 그 증인답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정리해보자.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겉으로 볼 때 처참하고 미련한 실패로 보이지만 그 안에 구원하는 생명능력이 들어있다. 십자가는 허약함이다. 그러나 그 안에 막강함이 있다. 한없이 초라한 게 십자가? 맞다. 그런데 거기에 위대한 진리가 살아있다. 십자가는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지혜가 있다. 십자가는 저주받은 것으로 보이나 거기에 언약성취의 축복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증언했고, 자신이 쌓아올렸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함부로 무시할 수 있나? 절대로 아니지요. 십자가의 감격과 감사가 신앙 삶을 만들어가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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