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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4일 설교

“기록된 대로!” (막 14:10-21 ‘가롯 유다의 배신현장’ 2021. 7. 4.)

1869년부터 40년간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던 찰스 엘리엇이 어느 날 노부부에게 면담요청을 받고 바쁜 일정 중에 그 부부와 면담을 약속했더니, 약속시간에 노인부부가 허름한 차림으로 총장을 찾아왔더란다. 엘리엇 총장은 노부부에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면담용건부터 물어봤단다. 노부부는 몇 년 전에 갑자기 젊은 아들이 죽어서 그 아들의 이름으로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엘리엇 총장은 노부부의 차림새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단다. “혹시 아드님 이름으로 장학금을 기탁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아이를 기념하기 위해 구체적인 것, 예컨대 건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엘리엇 총장이 “좋은 생각입니다만 건물을 세우려면 거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수준에 맞게 장학금으로 하시지요.”라고 권했다. 총장의 권면을 들은 노부부는 실망한 나머지 아무 대꾸도 않고 총장실을 떠났단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엘리엇 총장은 책상을 치며 후회하였는데, 1년 전에 허름한 차림으로 면담하러왔던 그 노부부가 리랜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의 빌딩 건축비용 2천 6백만 달러를 기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리랜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는 철도재벌이며 상원의원이었던 리랜드 스탠포드가 아들을 추모코자 1885년에 설립한 대학인데, 오늘날 미국이 자랑하는 대학교의 하나이다. 그날 이후 엘리엇 총장은 하버드 대학교 정문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하버드 대학총장도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다가 자기학교로 굴러온 재물을 놓쳤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의 옷차림이나 첫 인상을 보고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은 내면의 가치관을 보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외모만을 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 나의 구주요, 나의 목자라고 신앙고백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요, 시골 나사렛 출신이며, 기껏해야 기적을 많이 행한 선지자 정도라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유월절 식사 중에 내면의 가치관을 네모반듯하게 고치려고 애를 쓰시는 우리 예수님을 보게 하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ὅτι ὁ μεν υἱος του ανθρωπου ὑπαγει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περι αὐτου, “For the Son of man goes as it is written of him,” -RSV- ὑπαγω to bring under, to go away, to depart life. “The Son of man will die” -GN-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시나리오대로 성취되는 일이라는 것임. 예수교전문용어로 ‘섭리’ ‘언약성취’ ‘계획실현’이라고 함. 그런데 이 언약실현은 예수님을 파는 역할을 누군가 하게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범죄이니 그만큼 최대 최고 최악의 범죄라는 것임. 이 무서운 범죄자는 결국 가룟 유다였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귀의 짝꿍으로 이룬 자기성공, 자기성취를 축복이라고 하는 교인은 누구든지 가룟 유다처럼 범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사실상 아담이 선악과를 불순종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고 그 특징은 쉽게 마귀의 짝꿍으로 살아가는 법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마귀의 짝꿍인생이라도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를 만나 화목제물을 수용하면 마귀에게 속은 최악의 범죄들도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 즉시 하나님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시점으로 하나님의 뜻을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요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가룟 유다처럼 아니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이 자기 의를 실현하는 종교생활에 도취되어 있지 않던가? 하나님께 영광은 가끔 박수로 끝내고 있지요. 그들의 신앙생활은 신앙고백이라기보다 교인들에게 잘 보이려는 ‘쑈놀이’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한 진단이다.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1-22). 가룟 유다와 함께 12제자들이 쟁쟁한 신앙생활이라고 자부했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낙제였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믿음생활을 해야 낙제되지 않는가? 설교본문에 정답이 있다.

1) 어디로(12)

유월절 식사준비를 굉장히 특이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유월절식사를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받은 예수님이, 제자 둘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시며 “물 한 동이를 나르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 집 주인에게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할 객실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동이를 나르는 사람(ανθρωπος 안드로포스<남성명사>로 기록해 놓았음<유대인의 풍속은 여인들이 물을 길렀음>)을 금방 알아봤을 것이고, 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제자들과 물동이를 나르는(βασταζων 바스타존 βασταζω의 현재분사 carrying) 사람이 서로 길을 가면서 만나 것은 아주 극적이다. 그 당시에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치려면 얼마나 우연이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은 난감한 중에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믿었고 제자들에게 그 섭리에 동참하게 하셨다. 그 결과 유월절 식사(양고기와 무교병, 쓴 나물...)는 다 해결됐다는 것이다. 결국 마가는 무엇을 강조하는가? 예수님은 21절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나리오를 마귀가 수정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순종하시길 축복한다.

2) 아니지요(19)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더니, 12제자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22에는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하였고, 25절에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라고 기록해서 유다는 중심부(Head Table)에 앉자 맨 나중까지 몹시 근심했다고 밝혀놓았다. 요 13:26-28은 더욱 심각한 사실을 알려준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우리가 반드시 깨닫고 반영할 바는 무엇인가? 회개의 은혜! 회개를 알아차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복음시작’의 서두!).

3) 손을 넣은 자(20)

설교본문 10절과 11절에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하고 대제사장들을 찾아간 일이 유월절 식사 이전에 있었음을 밝혀놓았다. 그러고 유월절 식사를 마련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그 다음에 다시 17절부터 유월절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배신신앙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자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의 배신행위는 예수님께서 아무리 회개시키려고 하여도 유월절 훨씬 이전부터 시작하여 유월절식사 준비과정과 유월절식사 중에, 그 후에도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본래 유월절 식사는 가장 중요한 절기였다(“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1-2>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25-27>). 따라서 유월절 식사는 출애굽의 구원하심을 하나님께서 역사적이고 감격적이게 해주셨음을 깊이 되씹으며 감사하고 즐기고 현재화하는 신앙공동체로 결속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유월절 식사를 애지중지하게 준수하셨음을 설교본문의 분위기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중에 유월절 풍속만 지키지 않고 제자들을 회개시켜 믿음중심을 네모반듯하게 고치려 하셨다. 경건의 모양만 대충 갖추는 교인은 가짜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탐험가요 선교사로 유명하였던 리빙스턴이 어느 추장을 전도했는데, 그 추장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찌나 기쁘고 감사한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리빙스턴에게 밀가루 한 봉지를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리빙스턴은 밀가루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추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백마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다. 리빙스턴은 하나님께는 백마도 부족하다고 했다. 추장은 슬픈 얼굴로 돌아가더니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머리깃발을 쓰고 와서 “이것은 나를 대신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였다. 리빙스턴은 엄중하게 그것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추장이 버럭 화를 내면서 그렇다면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나”밖에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리빙스턴이 힘 있게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우리자신에게 주신 신앙푯대를 챙기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애제자요 기대주였기에 예수님의 살림살이를 책임 맡은 보좌관이었다. 그렇지만 출세욕에 사로잡혀 위장취업자로 속이고 순종도 위장하였다. 뺨도 아니고 입맞춤으로 은사님을 배신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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