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6일 설교

“다 무너지리라!”(막 13:1-11 ‘무너져 파괴 될 성전’ 2021. 6. 6.)

구전(口傳)에 의하면, 서머나 지방의 어느 과부가 안디옥에서 노예 폴리갑을 샀는데, 그 노예가 어찌나 총명하던지 그녀가 죽을 무렵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단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로 가서 사도 요한의 제자가 되었고, 41년간(서기 115년경부터 156년경까지)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섬겼단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폴리캅을 박해하더니 로마에 대적한 역적이라고 참소함으로 폴리캅은 원형극장으로 끌려갔다. 집정관(執政官)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로마황제를 경배하라. 그러면 너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폴리캅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단다. “내가 86년간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나를 해롭게 한 일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내가 모욕한단 말이요?” 결국 폴리캅은 화형으로 순교를 당하였다.

그 당시 서머나 교회의 형편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11). 서머나 교회는 괴롭고 힘든 악조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환난과 궁핍, 사탄의 짓 하는 자들의 비방, 장차 받을 십 일 동안이라는 환난...). 따라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축복도 은혜도 흉년인 교회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면 믿음 소망 사랑의 신앙 삶은 ‘부요한 자’였다. 그러므로 그대로 충성을 이어가면 생명의 관을 받을 게 확실하였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무척 강조하는데, 마가복음 13장도 그 말씀 중 하나이고, “감람산 강화”(the Olivet Discourse 講話 감람산에서 하신 예언의 말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유명한 말씀이다. 오늘은 우선 1-11절까지만 설교본문으로 삼았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십자가 형장으로 가시면서 성전에 들리신 일을 마가복음 11장부터 기록해 놓았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변질됨과 그렇게 타락시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시고 예수님은 분노하여 내쫓고 질책하시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셨다. 또 성경의 본뜻에서 너무나 빗나간 그들을 확증시켜주셨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성전에서 나올 때 그 성전의 웅장한 겉모습에 감탄하였다.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합니까?”(“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눅 21:5-) 그렇지만 예수님은 성전의 속 내용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분노하신 나머지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라고 평가절하 하셨다. 이 성전은 헤롯이 세 번째 80년 걸려 재건한 성전이었다. 제1성전은 솔로몬 왕이 건축했지만 무너졌고, 스룹바벨이 다시 수축하였지만 또 무너졌다. 친로마파였던 헤롯은 유대 땅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자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성전을 재건시켰는데, 예루살렘 성의 1/6에 해당하였고, 가로 360m 세로 460m이었고, 주춧돌이 11.4m, 폭이 5.8m, 높이 3.7m나 되었다( 크기). 성전건물들의 외부는 하얀 대리석이고, 지붕은 황금색인지라. 태양이 성전 위를 비추면 찬란한 황금색과 백색의 조화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서, 거대한 예술품으로 누구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단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랜드 마크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성전의 겉모습만으로 자부심을 가졌고 예배자들이 모이면 강요, 강도, 강탈 짓을 당연하게 하였다.

농구경기 중에 경기종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던진 볼이 성공한 극적인 골을 ‘버저비터’( buzzer beater)라고 부른다. 농구경기 내내 앞서오다가 승리직전에 상대의 버저비터를 막아내지 못해 이겨오던 경기를 패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패배를 당한 선수들은 얼마나 속 쓰릴까요? 마지막 몇 초를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과 자책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뼈아픔을 만들지요. 하지만 그러한 고충은 농구경기에만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인생도 일생의 마무리 때 평생 동안 피땀으로 쌓아온 업적과 명성을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찢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도 최후심판은 희비극일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 설교본문이 최후심판의 희비극을 희극으로 준비하라고 강권하는 말씀이다.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무엇을 착안하여야 최후심판의 자리를 희극으로 만들게 될까요? 설교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인하여 보자.

1) 겉모습(2)

λεγει αυτω εις των μαθητων αυτου διδασκαλε ιδε ποταποι λιθοι και ποταπαι οικοδομαι레게이 아우토 헤이스 톤 마데톤 아우투, 디다스칼레, 이데 포타포이 리도이 카이 포타파이 오이코도마이. 그의 제자의 한 분이 그에게 말한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찌나 하고 이 건물들이 어찌나 한지요! λεγει(say 현재 능동태 예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함을 쏟아내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줌). και ο ιησους ειπεν αυτω βλεπεις ταυτας τας μεγαλας οικοδομας ου μη 카이 호 이예수스 에이펜 아우토 블레페이스 타우타스 타스 메갈라스 오이코도마스 우 메. “네가 ∼이 거대한 건물을 보느냐?” 제자들이 성전건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다. 그렇지만 두 번의 부정(ου μη)은 성전멸망이라는 예수님의 예언말씀을 더 폭탄적으로 무섭고 놀라게 틀림없이 성취할 일임을 강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처럼 그 성전의 웅장함이나 화려함만 보시지 않고 성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탐욕과 위선, 치졸한 거짓이 만드는 형식주의나 교권주의를 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개혁하는 회개를 안 하면 망해 없어진다고 역설하셨다. 소망이 죽은 교회로 점점 쇠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교회지도자들은 꿈쩍도 안했고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흐름법칙이 있다. 물은 산맥을 따라 흐르고 공기도 지형을 따라 흐른다. 이 흐름을 방해하면 생물은 영향을 받고 심하면 죽는다. 몸도 흐름이 있다. 음식물이 식도와 위와 장을 따라 흐르고 공기는 기관지와 폐를 따라 흐르며 피는 혈관을 따라 흐른다. 몸의 이 흐름이 막히면 병이 생긴다. 그런데 이 흐름이 왜 막힐까? 잘 못된 습관 때문이다. 안일하고 낡은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갱신하는 흐름을 막는다. 그리고 터지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멘.

2) 미혹(5)

5절은 δε(데 but)로 시작한다. 성전 멸망의 때와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 그 답변을 회피하시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계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하라(βλεπω 블레포 to have the faculty of sight, observe, perceive, beware of.)를 더 돋보이게 한다. 결국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미혹할 많은 사람들을 알아보는 믿음수준을 갖추는 거다. ‘미혹’은 πλαναω 플라나오 to lead astray, wander, deceive. 교묘한 속임수, 마귀 짓이다.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

쿠웨이트는 남존여비 사상에 갇혀서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뒤를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91년 걸프전 이후에 쿠웨이트는 여성들이 남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갑자기 그렇게 뒤집혔을까? 그것은 지뢰 때문이란다. 걸프전 때 이라크가 쿠웨이트 모든 지역에 지뢰를 매설해 놓았는데 위험한 곳은 먼저 여자들을 앞세우고 지나가게 하였기 때문이란다. 성희롱 죄가 득세하는 한국은 여성낙원인 셈이다. 한국에도 교회가 생기면서 남녀가, 양반, 상인, 백정이 함께 예배드렸다.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인 사마리아 지역에서 전도하시고, 창녀와 대화하시며, 세리 마태를 제자 삼으셨다. 그 당시에 충격적인 갱신이었다. 차별과 편견이 인격사회의 흐름을 막고 병든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올바른 믿음은 사회흐름의 막힘을 뚫고 원활하게 한다. 아멘.

3) 성령(11)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ελεγχω 엘렉코 to experience conviction>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3>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염려하게 되던가? προμεριμναω 프로메림나오 μεριμναω 마음이 나누어짐. 어려운 일을 당하여 황당할 때 판단이 흔들림. 8절에 ‘재난의 시작’이란 말씀이 있다. 영어성경은 “birth pain” “birth pangs”라고 번영하였다. 엄마가 아기를 낳는 산고이다.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만 전쟁인가? 이 세상은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가 되었다. 무역전쟁, 정보전쟁, 자원전쟁, 취업전쟁, 백신전쟁 등등 온 세상은 전쟁터이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속출하고 있고,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자 이제 오늘 설교에서 우리의 신호등을 함께 찾아 챙기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1 εκπορευομενου 에크포류오메누 현재형) 제자가 “이르되”(λεγει 현재형)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βλεπεις 현재형)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핵심은 겉모습만 보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속 내용은 빗나갔음이 심각한 문제이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무덤 신앙생활을 분별하고 ‘미혹 당하지 말고’ ‘주의하라’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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