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9일 설교

“외식을 알아차리자!” (막 12:13-17 ‘신앙고백과 외식’ 2021. 5. 9.)

안타까운 자료인데, 검찰수사 중에 자살한 고위인사들이 2010년에 8명, 2011년에 14명, 12년에 10명, 13년에 11명, 14년에 21명, 15년 상반기에만 15명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던 6년 동안 매년 평균 14명이 자살하였다. 공직자, 국회의원 출신, 회장, 교회의 장로님들도 계셨다. 장로님들도 부정한 뇌물의혹 때문에 조사받다가 극단선택을 했다니... 너무 허탈하다.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선별되어 교회에서 교인을 대표하던 분들이 부정한 뇌물이나 세금탈세, 불법행정 등등에 관여하다가 가롯 유다의 길로 끝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당과 엿새 동안에 두 얼굴로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큰돈보다 예배자의 성결함을 바라신다. 욕심에 걸려서 세금을 숨겼다가 헌금하고 또 자신이 사용한다면, 국가를 속이고 자신의 신앙양심도 속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거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세 곳, 주일 교회와 엿새 동안 가정과 일터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저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야. 정말 정직해. 뭘 맡겨도 되는 일꾼이야.” 이런 말을 교회나 가정, 일터에서 들어야지. “저 사람 언제 사라져? 있으나마나 해서.”라는 평이라면 엉터리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뇌물거래나 탈세로 생긴 돈을 하나님께 십일조헌금하고 감사헌금하면 좋지 않느냐고 말하는 교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헌금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보신다.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신 25:14 -16)

오늘 설교본문도 엉터리 교인들을 고발수준으로 보여주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본래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서로 적대시하는 신앙시국관을 갖고 살아갔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율법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민족주의자들이었고, 헤롯당은 로마황제에게 유대 왕으로 임명받아 분봉 통치함으로 로마에 우호적이니까, 유대인들이 볼 때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친로마파였다. 좀 실감나게 설명하면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과 친일파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손을 잡은 것은 예수님을 없애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 그 일을 시도하였다. 이런 게 정치잖아요. 서로 정치적 이념과 추구하는 노선이 달라 서로 물고 찢던 사람들이, 공통목적이 생기면 서로 손잡고 친구가 되고 합당까지 하잖아요. 그들도 간교한 야합으로 예수님을 한심한 궁지에 빠뜨려서 백성들의 관심을 시들게 하려고 하였다.

흉계는 이렇게 시작됐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14) 그들은 예수님에게 와서 서로서로 말해댔다(καὶ ἐλθόντες λέγουσιν αὐτῷ 카이 엘쏜테스 레구신 아우토. 단순과거분사와 현재형<and/ they came/ they say/ to Him>. “And they came up and said to Him,” -Amf-).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5가지로 추켜세웠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존경하여 한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들의 질문에 안심하고 대답하도록 심리전을 폈는데, 그들은 ①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하였다(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어르신께 랍비(선생님)라고 호칭하여 존경하였음으로). ② 예수님을 ‘참되시다’라고 말했지만, 실상 그들은 예수님이 거짓되며, 백성을 미혹한다고 비난해왔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부하였다. ③ 예수님은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는 점을 드러내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나 여론에 따라 말하지 않는 예수님을 드높였다. ④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신다고 칭송하여, 예수님이 권세자들이나 민초들 앞에서 똑같이 자기 소신껏 주장하시는 점을 칭송하였다. ⑤ 예수님은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 점을 밝혀서, 예수님이 세상의 도나 로마의 도를 가르치시지 않았음을 띄웠다. 그래서 순전히 사탕발림으로 술책을 부렸다.

물론 그들의 칭찬은 다 진실이었지만 거기에 무서운 덫을 감춰놓았다. 그 덫에 걸려들면 예수님을 총독재판으로 처형시킬 함정이었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창 3:1-2).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많은 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먹도록 허락하신 진실인데도 뱀은 살짝 부정심리를 자극하는 질문을 했잖아요. 우리도 긴장을 풀고 있다가 그냥 허망하게 속는 술책이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리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사 1:15 -17. 새번역).

자 그러면 우리가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스승의 노래를 불러드리며 특별회식으로 5월을 끝낼 게 아니라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그 악독한 술책을 어떻게 대응하시는지 함께 본문을 살펴보고 어른됨을 알아챙기자.

1) 아시고(15)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대화는 2가지 질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으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치리까? 말아야 합니까?”이었다. 이 대답은 4가지로 할 수 있다. ①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옳다고 말하고 삶은 바치지 말라(옳은 일에 언행일치를 말래니 나쁨). ② 가이사께 세를 바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삶은 바치라(옳지 않은 일에 동참하라니 불량함). ③ 가이사께 세를 바치는 게 옳지 않으니 세도 바치지 말라(로마제국에 반란을 선동했으니 사형재판을 당할 포석). ④ 가이사께 세를 바치는 게 옳으니 세를 바쳐라(하나님 백성에게 이방황제숭배를 권했으니 유대인들을 충동하기 좋은 근거자료 임). 그러니 진퇴양난이었다. 평소에 서로 비난하던 원수지간이 예수님을 자승자박시키는 일에 연합군으로 찰떡같이 뭉쳐서 합동작전을 펴고 있는 음모를 우리 예수님은 꿰뚫어 보셨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저와 여러분도 이 세대의 선악을 분별하는 지각으로 믿음생활하길 축복한다. 아멘.

2) 누구의 것(16)

​책잡으려고 포진한 사람들과 직면한 예수님은 일단 데나리온 하나를 요구하였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인데 한 면에 월계관을 쓴 황제의 흉상과 “거룩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TIBERIUS CAESAR DIVI AUGUSTI FILIUS AUGUSTU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글과 함께 황태후 리비아가 신들의 보좌에 앉아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 은화는 로마의 신성한 왕권을 의미해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대인들은 분노한곤 하였다. 이러한 정황에서 예수님은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었고 그들은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씀이 가이사와 하나님을 동등하게 보게 한다고 해석하고 종교와 정치를 서로 분리함이 옳다고 독재도 묵인하였고... 또 ‘가이사의 것’만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지켜주기 때문에 세금은 당연하다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잘 바치지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조롱한다. 또 ‘하나님의 것’은 인정하나 가이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인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신념에 따라 국방의무를 거부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라고 말씀하고,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4),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6)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가이사는 다만 잠시 동안 세상의 창조질서를 위해 위임받는 일꾼이다. 교회는 마땅히 납세와 국방, 근로, 교육의 의무도 잘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도 잘해야 올바른 신앙인이다. 아멘.

3) 바치라(17)

예수님은 ‘옳다 그르다’ ‘내라, 내지 말라’보다 데나리온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 것이냐?”고 아주 절묘하게 반문하여 각자의 판단과 결정대로 하고 하였다. 그런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의 ‘가이사에게’와 ‘하나님의 것’ 사이에 있는 쉼표는 헬라어성경의 ‘και’(카이)를 번역한 것이다. και는 대체로 ‘그리고’의 뜻인데 간혹 ‘그러나’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성경(LB)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All right,” he said, “if it is his, give it to him. But everything that belongs to God must be given to God!” And they scratched their heart in bafflement at his reply.(좋다. 그가 말했다. 만약에 그것이 그의 것이라면 그것을 그에게 줘.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좌절한 그들의 마음을 긁어팠다.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극히 일부분<it>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모든 것<everything>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창조한 주인이시라는 뜻임).

무엇을 말하는가? 15절의 “바치다”(διδωμι 디도미 give, present)와 17절의 “바치다”(αποδιδωμι 아포디도미 to pay a debt, refund, restore, to give in answer to a claim or expectation.)는 분명히 차별된다. 예수님은 단순히 ‘바치다’ ‘선물하다’라는 질문을 받고 채무자가 그 빚을 반환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되돌려주다’라는 단어(αποδιδωμι)로 바꿔 말했다.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너희가 가이사께 속한 것까지만 인정한다면 세속적인 풍속대로 하나님과 상관없이 바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인들은 신앙고백대로 하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실감하였는가? 책잡으려는 자들이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했던 반응을 17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이제 저와 여러분은 단순히 예수님의 지혜를 본받자는 정도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물론 저들의 흉계에 대처하신 예수님의 지혜는 독보적이셨지만 단지 그것으로 끝낼 수 없는 값진 깨우침을 챙길 기회이기 때문이다.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를 현실로만 구별하는 이방인들과 십자가의 화목제물로 구별하는 성도로 나눠져 있다고 예수님이 깨우치셨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나라를 믿지 않는 성경 지식쟁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지도자로 활보하면서, 로마의 독립국가로 다윗과 솔로몬의 번영을 재현할 메시야를 고대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상나라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천국, 이 두 나라를 분별하지 못했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었고 지옥백성이었다. 우리가 그러지 말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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