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3일 설교

“멀지 않도다!”(막 12:28-34 ‘성경의 가장 큰 계명’ 2021. 5. 23.)

‘2%가 부족하다’는 이 말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음료회사 롯데칠성이 ‘2% 부족할 때’라는 음료를 만들어 팔았는데, 1999년 7월에 출시했으니까 벌써 22년이 다 됐다. 그 당시에 유명배우들이 광고에 동원되었고 상품이름도 특이하여 단번에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아서, 상품은 당장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 부족’을 그 무엇으로 채워준다는 것인데, 사람마다 궁금해졌다. 사람의 몸은 수분이 정상보다 1% 부족하면 목마름을 느끼고 2% 부족하면 갈증에 시달리게 됨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착안하여 상품 이름을 ‘2% 부족할 때’라고 지어서 2%를 채워주는 음료라고 암시하였다.

이 아이디어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했던지 일상생활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낄 때 ‘2%가 부족하다’라고 표현하였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험을 봤지만 성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2%가 부족하였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부족을 찾아내 채우려고 애를 썼고, 요리를 정성껏 해냈는데 딱 원하는 맛이 아니어서 미련을 남길 때 “2%가 부족하다.”라고 진단하면서 요리의 재료나 양념, 순서, 시간 등등을 다시 점검하여 결국 “이 맛이야!”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맛집’을 이루었다.

오늘 설교본문도 신앙생활을 ‘2%가 부족하게’ 하는 실제 그 모습을 우리 예수님께서 아주 인상 깊게 보여주고 계시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보자(34.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이란 말씀은 대화하는 상황인 것을 말해줌. = 28). 그런데 “지혜 있게 대답함”의 그 장면을 좀 확실하게 보자(καὶ ὁ Ἰησοῦς ἰδὼν [αὐτὸν] ὅτι νουνεχῶς ἀπεκρίθη εἶπεν αὐτῷ· οὐ μακρὰν εἶ ἀπὸ τῆς βασιλείας τοῦ θεοῦ. =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대답한 그를 보신 후에 그에게 말했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지 않다. ἰδὼν 이돈 = 단순과거 분사, νουνεχῶς 누네코스 = νους<누스 frame of mind, understanding, intellect, judgement, thought> + εχω<have>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Καὶ οὐδεὶς οὐκέτι ἐτόλμα αὐτὸν ἐπερωτῆσαι. 그리고 아무도 더 이상 감히 그에게 질문하는 것이 없다. “And after that no one ventured or dared to ask Him any further question.” -Amf- 그리고 그 후로 아무도 감히 모험하여 그에게 더 이상 질문을 묻지 않았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두개인들, 서기관... 이들이 질문공세를 딱 끊었다는 것임.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2% 부족함을 알아차리게 됐다는 것임!).

그렇다면 서기관이 보여준 ‘2% 부족한 신앙생활’은 바로 32-33절에 기록된 것인데, 황당하게도 “지혜 있게 대답함”이었고, 핵심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이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번제물보다 낫다’라는 대답이었지요. 사실 그대로 말하면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알아들은 바를 그 자리에서 응답함이었다. 우리의 상황으로 표현하면 ‘설교이해’(성경공부 이해)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중요시 하자는 것은, 설교이해를 하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처방을 내려주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처방받게! 설교를 몇%나 들어왔는지 우리도 냉정히 점검해 보고 시도한다면 그분의 믿음은 진보를 이루어 날로 새로워진다는 이치를 체험하자는 것이다. 아멘!!!

만약 ‘2% 부족한 신앙생활’을 고친다면 저와 여러분의 현재신앙 삶에도 막강한 의미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죽음과 부활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제자훈련만 받았기에, 예수님이 십자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한 제자도 예외 없이 부인하고 배신하여 십자가동참으로 받을 면류관을 놓쳐버렸다. 그렇지만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증인이 됐다. 그 이유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오순절 때 성령님께 완전 지배당하여 보혜사 되심을 따라 천국과 부활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순교도 각오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보혜사 되심에 순종하여 부활을 믿고 증언생활할 때 제자 ‘베드로’이지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고 쓰고 외우고 설교를 들은 들 ‘시몬 베드로’이거나 ‘시몬’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진실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천국복음을 증언하는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의 이 답이 관건이다. 천국은 ‘죽어봐야 알지’라는 대답이라면, 당장 주님께 엎드려 가슴을 치면서 “주님, 부끄러운 믿음으로 무능하게 살아가는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울부짖어 응답받는 일보다 더 중대한 일도 드물 것이다. 아멘.

어느 권사님이 아장아장 걷는 외손자를 데리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더니, 목사님이 격려를 해줬다. “권사님, 참 귀업죠?” “청량제지요. 애비는 다 훌륭한데 한 가지 결점이 문제래요.” “그 결점이 뭔데요?” “우리 사위는 노름을 할 줄 모른대요.” “권사님, 사위자랑을 은근히 막 하시네요.” 권사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사님, 기도부탁을 하려고 애를 데리고 왔습니다. 할 줄도 모르면서 자꾸 하니까 심각한 결점이지요. 딸이 또 싸우고 친정으로 피난 왔네요.” 2% 부족이 골칫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2% 부족한 신앙 삶을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교본문을 통하여 확인하고 배우자.

1) 다하여(30)

예수님께서 서기관을 깨우치려고 신 6:5를 인용하셨다(“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유대인들이라면 아이 때부터 암송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다하고’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하여 사랑했느냐고 예수님께서 서기관에게 반문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계명은 613개였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적극적인 명령 ‘하라!’인데 사람의 몸의 지체숫자에 맞춰 248개, 또 소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금령을 1년의 날수대로 365개로 정해놓고, 이 많은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려니 유대인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대충’ 하게 되었다. 이게 문제였다. ‘다하고’에 함량미달이 생겼고, 특히 목숨을 다하지 못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다하고’를 못하고 살기 일쑤지요. 분주하게 여기저기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하나님께 쏟는 정성은 정작 ‘대충’이잖아요. 또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그래도 괜찮은 줄 알고 믿음세월을 보내다가 권사, 장로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줄였으니 속 시원했겠죠. 그러나 사랑! 실제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사도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라고 강조한 후 이어서 13장에 무거운 사랑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말 알고 있지요?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은 믿음 좋은 모범학생으로 유학준비 중이었는데, 그만 1948년 여순반란 때, 살해당했지요. 손 목사님은 아비 됨의 비통함에 빠졌다가, 다시 상심을 다스리고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단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녀가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던 아들이 미국보다도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홉 가지로 감사했다고 하는데, 그 감사기도 중에 하나이다.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친 아들을 둘이나 죽였는데, 바로 그 원수를 양아들로 삼게 하시는 그 크신 사랑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손양원 목사님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은 장례식장에서 감사기도로, 또 삶으로 순종하였다니... 저와 여러분, 또 현재 한국교회의 믿음 삶과 너무나 차별나지 않나요?

우리도 그저 머리 숙이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는 수밖에요.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내 안에 ‘미움’이 하나님의 사랑에게 밀리고 작아지며 무기력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인내하며 성취하고, 손양원 목사님의 감동순종도 자주 생각나서 행하게 하소서.”라고 말이다. 아멘!!

2) 네 자신과 같이(31)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암송하는 말씀 레 19:18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서기관에게 대답하신 것인데, 이 말씀의 난이도는 “네 자신과 같이”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 수준, 농도를 자기가 자신을 사랑함과 비슷하게 높이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우리가 올바로 사랑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바울의 설명을 들어보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이러니 이웃을 사랑함은 보통 숙제가 아니다. 더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웃을 내가 먼저 사랑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니 그 일은 현실적으로 애간장을 녹인다. 그러니 기도응답 없이는 불가능하다. 12제자들이 시몬이나 시몬 베드로의 삶에서 베드로라는 언약성취의 믿음세계로 들어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 기도로 성령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이었다. 바울도 “주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고후 5:14)라고 밝혔다. 아멘.

3) 멀지 않다(34)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서기관의 믿음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총평하신 말씀이다. 서기관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데, 그때 서기관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도 예수님께 이런 평가를 심판대에서 받을 수 있고, 그 실례는 성경의 부자청년이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마태복음에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는 말씀을 더 기록해놓았다. 부자청년은 말씀을 어려서 듣고 배웠고 지켜온 지 오래 됐으니 자신 만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 청년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의무로 시도했지만 결국 2% 부족을 채우지 못해 천국입성을 실패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잖아요.

개척교회 목사님이 복사기 살 돈을 더 급한 데 쓰고 그냥 주보 없이 예배드렸다. 어느 날 개척을 시켜준 목사님이 그 개척교회를 위해 기도하는데 자꾸 ‘복사기’가 생각나더란다. 목사님이 생각을 바꿔도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하나님, 제 지갑을 보고 계시네요!” 지갑 돈을 몽땅 꺼냈더니 딱 복사기 값이었다. 감동될 때 바로 따라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믿음의 2%를 채우는 명품순종이기 때문이다. 아멘.

서기관이 가장 큰 계명을 예수님께 물었다고 했다. 마태복음에는 ‘율법사’라고 했고, 누가복음에는 ‘율법교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문가인데, 그럴지라도 그의 믿음 삶은 2%부족이었다. 의무로만 했지 사랑함이 아닌 때문! 선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 2%부족을 고집했기 때문! 우리의 신앙신호등이길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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