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설교

“어린 아이들처럼!” (막 10:13-16 ‘예수님의 축복관’ 21.3.7)

이런 이야기가 페르시아에 전해 내려온단다. 알리 하벱드라는 농부가 큰 농장과 과수원을 경영하며 별로 부러운 게 없을 만큼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도사가 지나가시다가 만족하게 살아가는 농부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은 이제 다이아몬드만 소유하면 더 행복할 게 없겠다.”라고 충고해주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농부는 당장 다이아몬드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참 세월이 흘러도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물론 생활도 틀어지고 그렇게 만족하던 농부의 마음도 점점 옹색해졌고, 인생에 대한 불만을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농장도 과수원도 마지막으로 다 팔아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데 끝까지 열심을 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를 찾아다니다 지친 그는 가난에 빠지고 병들어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농부의 농장을 사서 살던 사람이 하루는 낙타에게 물을 먹이려고 농장에 있는 조그만 개울로 갔는데,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데 낙타의 콧등 앞에서 무지개 빛이 반짝였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까 유리 조각 같은 조그만 돌멩이였다. 그래서 그 돌을 주어서 감정해 보니 바로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바로 그 농장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농장을 산 사람이 다이아몬드 광산회사를 설립하여 큰 거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이 전설을 지금까지도 간직해온 이유는 뭘까?

어떤 일이든지 대충으로 하지 말고 진실하고 올바르게 처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예수께서 그 시대의 고정관행을 깨부수고 계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꾸짖었다(13)고 했다. 그 당시 어린 아이들의 인권은 쉽게 무시당했고 그래서 아이들은 허약한 존재였다. 이러한 모습은 제자들에게 여실히 나타났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다(μαθηται επετιμησαν αυτοις 마쎄타이 에페테메산 아우토이스 제자들이 그들에게 꾸짖었다. 복수형.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을 때 혼냈던 말. 꾸짖는 말 자체와 이유는 기록하지 않았음). 아이들은 떠들거나 무분별한 행동을 아주 쉽게 한다. 아이들의 언행은 어른들이 듣는 설교를 너무나 훼방했다. 더구나 아이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관행이었다. 즉 아이들이 예수님의 축복안수를 받아서 뭘 하겠냐는 풍조 였다. 남존여비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데도 꾸짖었던 것이다. 14절에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제자들은 꾸짖기만 한 게 아니라 아예 아이들이 예수님께 접근도 못하도록 가로막고 마구 혼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시고 노하셨다(15)라고 하셨다. 그 당시의 관행을 여지없이 박살내신 것이다(‘노하다’ αγανακτεω 아가낙테오 to be pained, angry, indignant). 예수님께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그토록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화를 내셨던 이유는 뭔가? 예수님께서도 도저히 참지 못해 분통을 터드리시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아주 엄중한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 앞에서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까지 해주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마 23:13에 기록되어 있다(“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바리새인 짓이었음. 신앙관이 빗나갔음!).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능력이 있고, 실력이고, 돈 많고, 잘 생기고, 이러한 사람들이 인물님으로 인정을 받지만, 천국에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알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라 하면서도 이 세상의 관행을 믿음이라고 둔갑시키면 신앙적으로 큰 사고를 치는 것이다. 아멘.

불교의 어느 중이 개종하여 신학을 마치고 목회를 하고 계셨다. 너무나 희귀성 때문에 여러 교회가 청빙하여 부흥집회를 하였는데 대부분 교우들이 실망을 하여 역효과만 내게 되더란다. 그 이유는 그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었다. 그 목사님은 20년 넘게 중으로 있을 때 그때의 일들을 너무 많이 자세히 설명하였고, 자주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설교하였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은 박식하여 30분쯤하고 성경의 복음은 대충 10분 정도하였다. 그래서 부흥회라기보다 불경을 공부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세상관행으로 대충대충 하려는 제자들을 보고 엄격하게 혼내셨던 것이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 혼나지 않고 오히려 칭찬받아 천국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옳은가?

1) 이런 자(14)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των γαρ τοιουτων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톤 가르 토이우톤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투 쎄우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such as these.) ‘이런 자’(των ... τοιουτων 지시대명사 소유격<어린 아이의 대표적 속성 즉 순수성, 단순성, 부모님 의존성>.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유치원 아이라도 혼자 집에 두면 형사법으로 벌을 준다. 그래서 무조건 아이 혼자 두지 못한다. 아이는 부모 의존도 100%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자’라는 말씀은 어린 아이를 가리키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온통 어린 아이들밖에 없는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가 소유하고 있는 특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해당된다. 그래서 천국가게 될 신앙인들이 가지는 신앙적인 특징은 어린 아이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초등학교 2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 나는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주제로 쓴 일기이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 왜냐면 친구를 배려하면 경찰서에 잡혀갈 수도 있으니까. 병원비를 내야 하니까요. 친구를 배려하기 싫습니다.”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어 속마음을 솔직하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이런 자’란 진실한 중심이기도 하였다.

2) 받들지(15)

“진실로 ...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눅18:17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자”라고 번역했음<δεξηται 데크세타이 he will receive δεχομαι 데코마이 to take into one’s hands, receive, welcome>. 어떻게 하는 것인가? 순수함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누림이다). 어린 아이는 가진 소유나 자격은 전혀 부족하다. 그저 부모님만 의존할 뿐이다. 바로 이게 어린 아이의 실존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인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천국백성이 되는 길을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 믿으라”고 외쳤다(1:15). 핵심은 ‘회개’(Conversion)와 ‘믿음’이다. 이 핵심을 올바로 하면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인이다. 즉 순수성과 의존성이다.

어느 교회학교의 선생님이 ‘오늘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들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다가 내렸다. 선생님이 “왜 너는 천국 가는 게 싫은 거야?”라고 물어봤단다. 그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가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이토록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진하고 부모를 의존한다.

3) 바라는(13)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ἱνα αὐτὼν ἅψηται 히나 아우톤 하프세타이 in order to/ their/ he will touch. 어느 부모의 마음이나 공통점은 “자식 잘 되기를 바람”이다. 성경에도 자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천국에서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혀달라고 부탁한 일을 기록해 놓았다. 입시철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흘리는 한국 부모들을 쉽게 본다. 자식들이 잘된다면 부모들은 희생인생을 자원한다. 자식들을 낳았으니 키우고, 공부시키고, 대학졸업하면 자신이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취직난을 외면할 수 없다. 어렵게 취직해도 결혼시켜주고, 이제 끝났나 했더니 손주들 양육이 부모들의 몫으로 떠맡겨진다.

그런데 자식 잘되기만 소원하는 또 한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잘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설사 독생자를 내어놓는 일도 아낌없이 하신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못나서, 사고만 저지른 데도,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리신다. 하나님께 충실한 목자라면 양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진정으로 중보기도를 드리고 좋은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어느 농부가 산골에서 닭도 키우고 개도 토끼도 키웠다. 그런데 개 중에 한 마리가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닭이나 토끼를 잡아먹는 것이다. 그래도 그 개가 집을 지켜 주기에 때문에 없애지 못하고 키우고 있었다. 갑자기 닭들이 비명을 지르면 얼른 밖으로 나가보면 예상대로 그 개가 닭을 쫓고 있었다. 그러면 주인은 개를 잡아서 때렸다. 그래도 그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더란다.

그런데 암탉이 병아리 아홉 마리를 부화시켰는데 한 마리는 병들어 죽고, 또 한 마리는 솔개가 잡아 먹었다. 개는 수시로 잡아먹으려고 했다. 남은 병아리들을 지키는 게 농부의 걱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벌어졌다. 개가 병아리 가까이 다가가면 어미닭이 목덜미 깃털을 세우고 달려들어 죽기 살기로 개를 쪼아댔다. 어쩔 수 없이 개가 포기하더란다. 평소에 힘이 없어 도망치기만 하던 암탉이 훨씬 크고 사나운 개를 이겨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모성의 저력이다.

그렇지만 어미닭의 모성이 아무리 탁월해도 그게 아무 소용없게 되었다. 달이 바뀌니까 병아리들이 커서 어미닭을 떠나 혼자 돌아다니더니 개에게 솔개에게 잡혀 먹혔다. 그토록 놀랍고 감동적인 어미닭의 모성애도 개별행동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비슷하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이 거울 되어서 우리 자신을 비춰준 그 모습을 다시 챙기자. 오늘 설교본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축복안수를 어린 아이들에게 해주시는 예수님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품에 안고 아주 인상 깊게 축복해주셨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중심 때문이었고,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으며, 예수님의 품을 그토록 사모하였기 때문이었다. 자주 생각나서 시도해가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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