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설교

“종이 되라!” (막 10:35-45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중심’ 21.3.28)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ㄱ자’ 한옥예배당인 금산교회가 있다. 1908년도에 미국 선교사 테이트(Tate, Lews Boyd)가 그 당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유별이라는 높은 과제를 예배당으로 해결하려고 ‘ㄱ자’ 건축을 하였고, 현재 전북 지방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선교사 테이트(Tate, L. B.)는 말을 타고 금산을 통과하여 정읍으로 다녔는데, 말을 쉬게 하는 마방(馬房)이 금산의 일등부자 조덕삼 씨 집에 있어서 자주 들렸고, 자연스럽게 전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덕삼 씨는 자기 사랑채에서 예배를 보도록 했고, 이것이 금산교회의 시작이었단다.

그 당시 조덕삼 씨 댁의 머슴은 이자익이었는데, 그는 경남 남해에서 6살 때 고아가 되어 입에 풀칠할 곳을 찾아 떠돌다가 17살 때 조덕삼 씨가 마방잡일을 시켰단다. 글을 배운 적이 없던 이자익은 오며 가며 듣던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 그러다가 주인 조덕삼 씨가 예수님을 믿었고 함께 예배를 드리게 했다. 열성파 머슴 이자익은 주인 조덕삼과 함께 세례 받고 또 집사로 교회를 섬기다가 함께 장로선출투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뜻밖에도 김제 부자로써 금산교회 재정을 모두 담당하던 주인 조덕삼 집사를 제치고 머슴인 이자익 집사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물론 교인들이 술렁이었다. 그때 조덕삼 집사가 얼른 앞으로 나가더니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 머슴 이자익 집사가 저보다 신앙의 열성은 대단합니다. 그를 뽑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불안해하던 교인들이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고 한다.

이제 두 사람은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로, 교회에서는 집사와 장로의 관계로 서로 존중하며 자기 본분을 지켜나갔는데, 이자익 장로님이 테이트 선교사를 대신하여 설교하면 조덕삼 집사는 교회바닥에 앉아 설교를 들었고, 3년 후에 조덕삼 집사도 장로가 되었지만,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주고 모든 학비를 지원하였단다. 그러고도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가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자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이자익 목사는 금산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를 성장성숙 시켰고 놀랍게도 장로교 총회장을 3번이나 역임하여 교회역사상 출중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이게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관이다. 자기 집 머슴을 자기보다 먼저 장로님으로 받들고 또 신학공부를 시켜서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청빙하며 교회를 섬겼던 조덕삼 장로가 그렇다. 이 조덕삼 장로의 손자가 오래전에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장로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예수님께서 이 죄악세상까지 내려오셔서 십자가 화목제물로 자신을 희생하실 것을 밝힌 말씀이다. 그럴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해, 그 일에 대한 시기를 감도 못 잡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황제폐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좌의정 우의정을 누가 하게 될까? 내가 먼저 해야지.’ 이런 야심만 꿈꾸고 있었다. 그 증거가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 간청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내가 마시는 잔”을 몰라서 그러한 엉터리 기도를 하게 됐다고 지적하셨다(‘마시는 잔’ = 시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 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 철저하게 죄악심판 하심).

“할 수 있나이다.”(39. 이건 ‘아멘’도 아니고 ‘할렐루야’도 아님. 현을 전혀 몰라서 철없이 대답한 말). 그래서 예수님은 42절에서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42-44 새 번역. ἔσται παντων δουλος 에스타이 판톤 둘로스 you shall be/ of all/ slave “whoever of you desires to be first shall be slave of all.” -NKJV- 또 눅 17:10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이라 우리가 하여야 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예수님은 그러시면서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새 번역)라고 말씀하신 게 45절이다(예수교 전문용어로 대속<代贖 贖錢지불: 남을 자유하게 하려고 내 생명을 내놓고 죽음>).

야고보와 요한의 간청은 하나님의 뜻 실현에 무지한 세상출세의 욕심이었다. 우리의 기도도 자기 유익만을 욕심 부릴 때가 없다? 있다? 많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4:3). 인간의 야망과 욕심은 자기 입장만을 앞세우려고 해서 기도응답을 지연시키곤 한다. 아멘.

자 그러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여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종으로 섬기고 으뜸상급을 받게 되는가? 저랑 같이 설교본문을 살펴보자.

1) 알자(38)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οὐκ οἴδατε τι αἰτεισθε 우크 오이다테 티 아이테이스쎄 with the sense of the present 현실감각 없음! 그리고 αἰτεω 아이테오 demand, desire. 기도를 끈질기고 간절하게 하는 것은 좋은데 기도하는 실제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간구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하면 동문서답(東問西答)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너무나 엉뚱하게 빗나간 것이다. 그래서 기도나 성경읽기를 수량으로 많이 하는 것을 무조건 칭찬하는 박자를 조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멘.

예수님께서 교인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직접 살펴보셨다. 부자들이 큰 액수를 바치는 것을 보셨고, 가난한 사람들이 동전을 바치는 것도 보셨다. 그러고 이렇게 평가하셨다. “이 과부가 가난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다.” 헌금액수보다 헌금으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을 더 중요시 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소유를 만족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이보다 값지게 사용하는 분을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벌어들이는 돈이나 지식, 기술보다 사용하는 돈, 지식, 기술, 은사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김성은 장로님은 27살에 별을 달고 장군이 되어 해병대 사령관을 지냈고,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도 만들었는데, 백과사전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1963년 3월부터 5년 동안 제15대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했으며 대한민국 역대 국방부 장관 중 최장수 장관이며 동시에 현재까지 유일한 해병대 출신 장관이기도 하다. 독실한 장로교(통합) 신자로 예편 후 서울 신당동의 신일교회에 출석하였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후임자이기도 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전시 작전권 환수 추진에 반대운동을 벌였다.”

아주 특이한 기록은 ‘해병대 사령관’도 ‘국방부 장관’도 아니다. “독실한 장로교(통합) 신자로 예편 후 서울 신당동의 신일교회에 출석하였으며”라는 기록이다. 얼마나 돋보이는 신앙관으로 교회에 뜨겁게 충성하였으면 백과사전의 일생요약에 기록해 놓았느냐는 것이다. 이 분이 국방부장관을 지낸 후에 장로님으로 시무하실 때 신일교회에 부임한 29살 청년 목사님에게 매일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고, 명절이면 세배를 하였고, 담임목사님이 중풍을 맞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통곡하며 회개기도하자 그 목사님이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2) 준비(40)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ἡτοιμασται 헤토이마스타이 ἑτοιμαζω 헤토이마조 ready, prepare 완료 수동태. 하나님께서 준비완료 해놓으셨음. 자원동참하면 순종! =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자기만 위하여 쌓아두는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라고 하셨다.

어느 집사님이 임종을 앞두고 목사님을 불러서 손에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목사님! 500만 원입니다. 작은 돈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 좋은데 교회 앞에 술집이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나올 때마다 짜증났습니다. 그래서 저 건물을 사서 하나님께 바치면 되겠다 싶어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았습니다. 제 소원을 이루지 못 하고 하나님 앞에 갑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저 건물을 살 때 보태십시오.” 건물 값에는 코끼리 비스켓 같지만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하였다. 교우들이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헌금하다가 사서 교육관으로 사용한단다.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임종이었다. 아멘.

3) 가치관(44)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모든 사람의 종’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려보자. 종(δουλος 둘로스)은 노예(slave)라고 앞에서 설명하였다. 더구나 ‘모든 사람’에 해당하려면 얼마나 어떤 경우까지 하느냐 이다! 녹슬어 없어지는 쇠로 살아가지 말고 닳아 없지는 쇠가 되라는 가치관으로 굳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삶이다(弱肉强食, 信者育强食).

경찰관을 ‘민중의 지팡이’ 공무원을 ‘공복’(公僕 ‘public servant’ 僕 = 종, 머슴)라고 한다. 올바른 공복은 식사를 거른 허기의 공복(空腹)에 수없이 시달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공복이 드문 것이다. 군대의 대령이 별을 달면 30가지 정도 달라진다고 하고, 국회의원이 되면 특권이 20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권력과 부를 쥐고 쓰다 남아서 섬기는 것은 취미생활이다. 자리보다 일이 중요하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그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니 그 역할을 할 지 안 할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제자들의 선택과 예수님의 선택은 달랐다. 그래서 고전 4:20 말씀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바울은 강조했다. 섬김 신앙관으로 닳아 없어지는 쇠로 자원하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확인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믿음생활을 알고 자원동참을 깨우치려고 역설하셨다.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는 삶은 봉사를 하는 삶인데, 전도보다 더 큰 봉사는 없다. 영혼을 구원하여 삶을 바꾸게 하는 일에 무보수 수고는 과연 가장 가치 있는 삶이다. 그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예수님의 신앙관! 이었다. ‘오직 예수’만 외치지 말고 따라 해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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