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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4일 설교

“재물이 많은 고로!” (막 10:17-25‘믿음의 중심’ 21.3.14)

1762년에 설립된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Barings Bank)은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하여 상류층 대다수를 고객으로 확보함으로 런던에서 최고의 역사와 명성을 지닌 금융기업이었단다. 베어링스 은행이 최고 전성기를 누릴 때는 자산규모가 영국 은행들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은행이었는데, 그 큰 은행이 1995년 2월 26일, 모든 거래를 중단하고 파산절차에 들어가더니, 끝내 1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가격에 네덜란드 ING그룹에 매각되었다. 그 이유는 닉 리슨이라는 직원 한 사람 때문이었다. 닉 리슨은 1989년 베어링스 은행에 입사하여 1992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 중에 발생한 실수들과 손해를 정상적인 계좌에 기록하게 되어 있었지만 비밀계좌를 만들어 숨겼다. 비밀계좌는 자신과 부하직원만 알게 하였다. 그런 사실을 은행 경영진은 몰랐다. 닉 리슨은 많은 일과 돈을 맡았고, 1994년 최고의 매니저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그래서 5,000만 파운드를 손실했다. 그런데 니슨은 다시 원상회복할 줄 알고 숨겼는데 손실액은 갈수록 불어났고, 약 8억 2,700만 파운드(한화 약 1.5조 원), 당시 베어링스 은행 전체의 자본금에 2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잘못을 실토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끝내 세계 최고였던 베어링스 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닉 리슨의 나이 만 28세, 이 젊은 나이에 200년 역사의 최고 은행을 침몰시킨 것이다. 한 때 월급 5만 파운드에 13만 파운드의 보너스를 자랑하는 실력파 일꾼이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지요. 사소하지만 못된 흠을 방치하면 버릇되고 나중에는 상상도 못할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베어링스 은행이 침몰한 것은 닉 리슨이라는 사소한 흠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작은 성격이 하나님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성도의 교제를 힘들게 하며, 교회에 상처를 주어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싸우는 교회를 보자. 저도 어쩌다 총회 재판국에 있어봤지만 교리의 진리와 정의,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런 문제보다 밥그릇(돈)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 2:15)라고 교훈한다.

오늘 본문도 어떤 사람과 예수님이 나눈 대화를 통하여 인간의 탐심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한 결말로 몰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람은 부자(막 10:22)였고, 청년(마 19:20)이었으며, 관원(눅 18:18)이었다. 청년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상담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그런데 이 부자 관원이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부자 관원은 마음을 재물에 빼앗겨서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 없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다. 삽비라 부부 역시 탐심 때문에 성령을 속였다가 횡사 당했다. 그러나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바쳤던 여인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아름다운 믿음으로 기억되게 하셨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가르쳤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우리 예수님은 대화종결을 이렇게 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 이 말씀은 아무리 나라(사회, 교회)가 번성하여도, 믿음사랑소망이 정의롭게 실현되지 않는다면 헛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예수님이 보신 그 당시의 사회현실은 사랑과 정의가 무너진 신앙삶인데도 축복이고 은혜 받았다고 선포하는 설교가 난무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면 어찌 이리 마음이 답답해질까?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노동존중의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통치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렇게 촛불의 염원으로 출범한 정부가 그 뜻을 점점 꺾더니 회의와 분노에 국민을 빠뜨리고 있는 시국이다. 교회나 목회자들이나 신학교는 다른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부족해서 이토록 되는가? 정의감이 시들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이 외치셨던 나라 즉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우위를 자랑하지 않고, 인의와 사랑을 고양하는 문화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이루자던 그 소원이 간절해진다.

두루미가 개울에서 우렁이를 잡아먹으려고 이리저리 찾아다니는데, 백조가 가까이 다가왔다. 두루미와 백조가 나눈 대화이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백조입니다.” “어디에서 왔소?” 백조가 “난 하늘나라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두루미가 “하늘나라요? 그게 뭐하는 거요?”라고 물었다. “하늘나라는 성벽을 정금으로, 성문을 진주로 만들고, 수정 같은 생명수 강이 흐르며, 한 나무에 12가지 열매가 열리지요.” 갑자기 두루미가 “다 필요 없고, 그 곳에 우렁이도 있소?” “글쎄요. 아마 우렁이는 없던 것 같은데…” 그러자 두루미가 “그렇다면 나는 하늘나라에 갈 필요가 없소. 나는 우렁이를 좋아하오.” 두루미는 이미 입맛을 우렁이에만 길들여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좋다는 하늘나라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이치를 깨우치셨다(눅 14:15-24). 큰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청하니 그들은 “밭 때문에, 소 때문에, 장가 때문에…” 이런 이유로 초청을 거절했다. 밭이나 소와 장가와 근본부터 다른 잔치인데도 이미 굳어진 밭과 소와 장가의 만족함 때문에 눈도 귀도 생각도 제구실을 못했다.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관원이 그랬다. 그러므로 천국입성에 탈락하게 됐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지요.

자 그러면 부자 관원이 믿음생활을 잘 못한 게 무엇인가? 설교본문에서 함께 찾아보자.

1) 선한 선생님(17)

부자관원은 예수님께서 보시면 한 가지 부족하였지만 겉모습만 보면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예수님 앞에 “달려와서 꿇어앉았다” 겸손함이 분명하다.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찬양하였다(αγαθος 아가쏘스 beneficent, upright, virtuous, profitable. 예수님은 하나님께만 해당한다고<18, 20>.

하나님께만 해당됨은 믿음의 본질문제이다<20>.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이런 증언을 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바울은 이렇게 설교하였다.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그런데 바울은 바로 앞 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 이 말씀을 읽고 있으면, 사도 바울이 애절하게 탄식하는 신음을 듣게 한다(ταρασσοντες 타랏손테스 현재 분사 ταρασσω 타랏소 agitate, terrify, anxiety 이리저리 뒤흔들어 내적 평정을 잃고 심히 불안하게 하는 것). 성경이 증언하는, ‘기독교의 본질’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구원 없는 종교생활로 빗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부자 관원이 그랬다. 교훈이 되길 축복한다. 아멘.

2) 지켰나이다(20)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라고 묻는 것을 보면, 내세를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오랜 동안 대단한 열심파였다! 그러나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따르라.”(21)라고 처방해주셨다. 그런데 부자 관원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영생을 결정했다. 명심할 바이다. 성경은 죄가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들어가고, 죄가 적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치지를 않는다.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천국에 가고, 죄가 적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부족한 한 가지 때문에 지옥에 간다!’라고 밝혀주시는 예수님이셨다.

성경에 기록된 지옥에 들어갈 죄를 살펴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계 21:8)이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9-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παρεσις 파레시스 to let pass)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26). 이 믿음이 회개한 증거이다. 해당하길 축복한다. 아멘.

3) 근심(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심히 근심을 하였지만 다시 예수님께 오지 않았다. 근심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는 반증이다. 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갈등이고, 단번에 그렇게 따르기로 결단할 수 없지만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그 경건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새 경건을 보았기에 혼란을 겪은 것이다. 예수 앞에 무릎 꿇고 묻지나 말 것을 괜히 물었다는 후회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졌지만 그것을 이웃과 함께 통용할 신앙관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다 지켰다고 큰 소리를 친들 부족한 순종이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 예수님이 그 부자에게 지적하신 한 가지 부족은 ‘사랑의 수고’(살전 1:3)가 없는 믿음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라고 깨우치려 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내 것이라고 하며 움켜쥐고 있는 것과 하늘의 보화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움켜쥔 손으로는 결코 하늘의 보화를 받을 수 없다. 왜? 받을 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의 수고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더 값진 보화를 주신다. 그게 은혜이고 응답이며 인도하심이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서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라고 증언설교하고 함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 주는 게 값지니 마땅히 하라는 거였다. 아멘.

자 이제 오늘설교가 가리키는 화살표를 보자. 부자관원의 천국탈락이다. 선함을 암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수고가 없는 율법지킴 생활 때문이었다. 근심을 회개로 열매 맺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신앙 삶의 답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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