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 설교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18 “순전한 믿음 생활” 2021.11.28.)

미국의 워싱턴 D.C에 뉴욕 에비뉴 장로교회(New York Avenue Presbyterian Church)가 있는데,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출석한 교회라고 한다. 그 교회는 링컨이 애용하였던 성경을 보관하고 있단다. 그 성경책에 유난히 손때가 많이 묻어있는 곳이 있는데, 시편 37편 1-4이라고 한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주시리로다.”

링컨은 청년이 된 이후 돈을 직접 벌겠다고 집을 나와 루이지애나로 간 후에, 가게 점원과 뱃사공, 측량기사, 프로레슬러, 우체국장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사업도 두 번이나 실패하고 그 빚을 갚는 데 17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 그는 여러 번 선거에서 낙방하였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공격과 비난으로 쓰디쓴 잔을 수없이 마셔대며 인생을 살아갔다. 그렇지만 그는 그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시편 말씀을 읽고 읽으면서 묵상하여 소망을 확인하고 이겨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 본문도 살아있는 소망이 영향을 주어야 가능한 일을 강권하고 있다(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καθως παντοτε ὑπηκουσατε<카쏘스 판토테 휘페쿠사테 as, always, you obeyed / ‘as you have always obeyed’ -NKJV, RSV, NIV- ‘너희가 항상 순종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새번역-> ... μετα φοβου και τρομου την ἑαυτων σωτηριαν κατεργαζεσθε” 메타 포부 카이 트로무 텐 헤아우톤 소테리안 카테르가제스쎄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NIV- ‘Keep on working with fear and trembling to complete your salvation,’ -GN-).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구원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으로 생각하여 예수교 전문용어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빌립보 교회에 강권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대속 제물인 십자가를 믿을 때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받은 후에, 그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가고 있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 구원을 착하고 충성된 종답게 끝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그 구원은 개인적인 구원과 공동체적인 구원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사실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구원은 대단히 크고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 이어가면서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서 국가와 민족, 세계, 그리고 사회와 문화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인식은 바울의 확신이었고 소신이었으며 사상이었다(17-18 ἀλλὰ εἰ καὶ σπένδομαι<알아 에이 카이 스펜도마이 however, if, also, ‘I am poured out’> ἐπὶ τῇ θυσίᾳ καὶ λειτουργίᾳ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 χαίρω<카이로 I am glad> καὶ συγχαίρω<슁카이로 I rejoice with> πᾶσιν ὑμῖν· 빌립보 교회가 믿음으로 드리는 제물과 섬김<예배 λειτουργίᾳ 레이투르기아 a public service>에 부어지는 피나 포도주는 바울 자신이 기쁨으로 되겠다는 것임. = 빌립보 교회의 제물 + 바울의 술).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최고의 명마를 타는 것을 최고의 자랑 중 하나로 여겼단다. 그런데 그 명마를 알고 나면 자랑할 만했다. 왕실의 전용 말 조련사들은 일단 특출한 말 새끼들을 골라 최고 명품의 말로 조련시켰는데, 멈추라는 지시를 하면 어떤 처지라도 그대로 멈출 만큼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말들이 훈련을 다 마치고 나면, 말들을 사막으로 데리고 가서 물을 한 모금도 주지 않고 견디게 하다가 3일째 되는 날, 말들을 오아시스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 말들은 미친 듯이 물웅덩이로 뛰어가겠지요. 말들이 물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조련사들이 멈추라고 소리치는데, 그때 그냥 멈추는 말은 100여 마리 중에 2~3마리라고 한다. 그 2~3마리 중에서 왕이 마음에 드는 말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주인의 지시를 들으면 그대로 따르는 순종! 그러한 순종을 바울은 “전제로 드려도 기뻐하는” 충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님의 뜻이라면 당장 멈추어 서는 삶! 최고의 명마같이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분이 바울이었으니 우리도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정말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아멘.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도 어떻게 하면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게 되는가? 그 답이 설교 본문에 있다. 함께 찾아보자.

1) 소원을 두고 행하게(13)

설교 본문 13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한다(θεὸς γάρ ἐστιν ὁ ἐνεργῶν ἐν ὑμῖν 쎄우스 가르 에스틴 호 에네르곤<ἐνεργεω의 현재분사> 엔 휘민 “because God is always at work in you” -GN-). 성령님이 보혜사가 되시어 빌립보 교우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하게 감동감화, 발동시키시고, 또 성취할 수 있는 능력(energy)도 주시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바울이 밝히면서 ‘신앙공동체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키우면서, 빌립보 교회가 시도하도록 격려하였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성경을 읽고 계신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나하고 놀지 않고 계속 성경만 읽으세요?” 할아버지는 돋보기안경을 벗고 빙그레 읽으며 이런 대답을 해줬단다. “손자야, 너도 받아쓰기시험을 보려고 시험준비를 했잖아. 할아버지도 이제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볼 때가 되었으니까 시험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러면 실기시험은 자신 있으세요? 학과시험만 준비하게.” 손자는 최근에 아버지가 운전면허 실기시험에 자꾸 떨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손자의 ‘실기시험’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하더란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암기한들 삶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실기시험은 낙제이기 때문이지요.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소원을 두고 삶을 이루 감동 감화시키고, 깨달아 확신시키며, 생각나게 하여 동참하게 하신다. 성령님의 보혜사 되심에 민감하길 축복한다. 아멘.

2) 원망과 시비(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γογγυσμῶν καὶ διαλογισμῶν 공귀스몬<muttering, murmuring, complaint> 카이 디알로기스몬<doubt, dispute>). 그리스도인의 대화는 정직하고 명쾌하게 표현해야 한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frame’(틀)이라고 한다. 먼저 부정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을 통하여 보면 판단은 틀대로(네모, 세모, 까맣게 노랗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원망이고 시비인 것이다. 신앙공동체를 좀먹는 독균이 바로 원망과 시비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모든 일”이라고 권면했다. 한 번 두 번? 한 때? 몇 가지만? 대충 예배당에서만? 아니다. 전부이다! 언제나이고, 어디서나이다! 그러니 성령충만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자영업을 하는 집사님은 몇 년간 적자를 이어갔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회사 형편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어느 새벽에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에 큰 찔림을 받았다. 그러고 “내 자영업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것”을 실감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제부터 내 사업장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단다. 그러고 집사님은 주일마다 목사님의 설교를 잘 요약했다. 그리고 그 요약설교를 월요일 아침에 사원들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실천하였더니 회사의 분위기도 변해갔다. 회사의 적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아예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는데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층이 달라졌다. 사업 규모도 늘어났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가 실제 자영업의 실력이 되었다. 쉽지는 않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신앙 삶’을 시도해보기를 축복한다. 아멘.

3) 빛들로(15)

“흠이 없고”(ἄμωμα 암모마 without blameless, 빗나감으로 생긴 얼룩을 나무랄 게 없음. 신실한 자들). “빛들로 나타내며”(φωστῆρες 포스테레스, 빛 자체보다 해와 달과 같은 ‘발광체’ 역할을 말함. 그리스도인들이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밤하늘의 달처럼 빛을 비춰 밝게 하는 역할임. 그래서 “나타내며”<φαίνεσθε 파이네스쎄 φαίνω의 수동형 ‘나타나지게’> 산상보훈 마 5:15에 예수님은 등불을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고 교훈함. 전도되게 살아가라는 것임).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시작되어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 지속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려면 “흠이 없고 순전하여”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라는 말씀에 해당하는 삶이라야 한다고 바울은 강권하였다(“생명의 말씀을 밝혀”<16> ἐπέχω 에페코 “holding fast the word of life” -NKJV-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반영하는 삶이 말씀을 밝히는 방법임).

두 친구가 각자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자고 꽃가게에 들어갔는데, 두 사람이 꽃 가게에서 입씨름을 하더란다. “꽃을 선물하면 꽃을 선물하는 사람이 행복할까? 아니면 꽃을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꽃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꽃을 받는 사람이다.”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자 결국 꽃가게 주인에게 물어봤다. “사장님,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꽃가게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꽃을 파는 제가 제일 행복하지요.”

생각해 보자.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이 세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어그러지고 거스르게 살아간다면, 과연 누가 빛을 밝히 비추겠는가?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자. 사회 전체가 어그러져 있다. 특히 법조계가, 정치판이, 학교들은 그토록 어그러진 지식쟁이들만 배출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들은 발광체 역할을 살려내고 있는지 물으면 우문우답(愚問愚答)이 되는 현실이다. 저와 여러분이라도 발광체 역할을 하는 신앙 삶에 성실하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말씀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확인하여 보자.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세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과거완료’와 ‘현재 진행’과 ‘미래완료’이다. 이 세 모습이 매 순간 발광체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천국에 입성하는 날은 축제일이 될 것이다. 아멘. 이런 삶에 가치를 두고 산다면 오늘 설교 본문에서 바울이 강권하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에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에 들어서서, 구원을 누리고, 마지막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구원의 미래완료에 빗나가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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