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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1일 설교

“무슨 말을 할까?” (막 9:1-8 ‘올바른 순종’ 21.1.31)

어떤 집사님이 천국에 들어서자 뜻밖에도 아주 고급스런 레스토랑이 눈에 띄더란다. 그래서 역시 천국의 레스토랑은 ‘멋지구나!’라고 감탄하면서 살펴보는데, 반갑게도 자기 교회의 장로님이 카운터에 앉아계시더란다. 그래서 “장로님! 장로님은 우리 교회처럼 특별석에 앉아서 식사대접을 받고 계실 줄 알았는데 예상대로 레스토랑 사장님이 되셨네요.” 그러자 장로님은 이렇게 설명하시더란다. “교회를 잘 되게 섬기라고 세운 직분이 장로인데, 나는 충성점수가 낙제라서 여기서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중이네.” 그래서 “그럼 우리 목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목사님을 만나 뭐하려고?” “장로님도 참! 당연히 목사님께 인사부터 드렸잖아요.” 그러자 장로님의 대답이 아주 뜻밖이었단다. “그랬었지. 그런데 목사님은 나보다 점수가 더 나빠서 계속 배달 다니고 있다네.”

1779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가(305장)를 작사하신 John Newton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천국에 가면 놀라운 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꼭 올 줄 알았던 성도가 보이지 않아서 놀라고, 두 번째는 지옥에 갈 줄 알았던 교인이 천국에 와 있어서 놀라고, 마지막 세 번째는 상급이 아주 시시할 줄 알았던 교인이 예상과 달리 큰 상급을 받아 있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성도가 끝자리에 앉아 있어서 놀란다는 것이다.

그렇다.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는 최종목적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이 분명하지만 그 영생복락에도 상급은 있다. 그런데도 요즘 한국교인들은 영원히 영생복락 할 천국에 대한 관심보다 오직 이 죄악세상에서 무엇을 더 먹을까에 신앙중심을 빼앗기고 있으니 천국에 가면 얼굴이 화끈거릴 교인들이 많겠지요.

오늘 설교본문은 웬만한 교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변화산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변화산으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본연의 신격 권능과 위엄을 증언수준으로 목격시켰다. 설교본문을 읽어보면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황홀하게 하였던지 세 제자들은 신나서 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고 베드로는 당장 거기에 초막 셋을 지어 바치겠다고 자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변형사건은 1절처럼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증시키는 일이었는데, ‘죽기 전’은 사실 ‘엿새 후’(2)였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초급하게 실현하셨는지 공감하게 한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형은 바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천국의 영광과 권능을 목격하게 하는 실증이었기에 그토록 초급하게 진행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의 뼈대(“주는 그리스도시니 이다.”)를 예수님께 확실하게 배웠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이 죄인세상에서 그리스도로서 반드시 하실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 비로소 제자들에게 밝히셨다. 결국 십자가 화목제물의 구원사역을 드러내 놓고 말씀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역설하셨다. 사실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나 험악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로잡혀 십자가 형장으로 끌려가실 때, 제자들은 ‘그리스도’라고 확인했던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버렸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이렇게 큰소리쳤던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을 세 차례나 부인할 때 저주도 하였다. 그랬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행전시대에는 온 천하로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순교자로 살았다. 예수님은 그러한 전도자 삶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산 소망의 씨앗을 심는 일을 변화산에서 하셨던 것이다.

유도선수 김 재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2012년 런던올림픽 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김 재범 선수가 은메달과 금메달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단다. “베이징에서 죽기 살기로 뛰었더니 은메달을 땄고, 런던에서는 죽자는 심정으로 뛰었더니 금메달을 땄습니다.” 육신을 죽였더니 상이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감당할 사명을 위하여 자기 이기심을 죽여서, 대충 그리고 편리를 선호하는 그러한 자기를 부인할 때 영광스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우리의 육체는 자기 십자가를 교회에 맡기고 편한 순종만 선택하라고 충동한다. 그런데 그게 베드로의 ‘항변’이요, 사탄의 짓인 것이다.

자 그러면 변화산의 체험이 성경독자들에게 주는 신앙교훈은 무엇인가?

1) 진실로 체험(1)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αμην 아멘 truly אמן 아만 to stay, to nurse, bring up, to be firm, believe in.)이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실현하실 일을 제자들에게 신중하게 말씀하셨고, 결국 제자들의 대표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체험시켰다. 체험의 핵심은 ‘광채’ 나 '희어진 옷'의 자체가 아니라 광채나 희어짐이 의미하는 바였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심이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메시아에 속지 말고, 메시아 문제로 흔들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메시아설로 흔들렸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는 전환점으로 삼고 아멘 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행 26:13)라고 했고, 그 후로 사울은 어떤 훼방과 고난과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박해와 건강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체험이 가장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다.

2) 초막 실수(5)

예수님의 변형체험 목적은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이며, 또한 십자가의 고난완수 후에, 천국영광을 받게 됨을 세 제자들에게 확인시켜주려는 것이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눅 9:30-31 την εξοδον 텐 엨쏘돈 exodus 出애굽, the way –GN- His decease –NKJV- his departure –NIV, RSV- His exit [from life] -Amf-)

엘리야가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나눈 대화는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사역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전하고 기록한 사람이었고, 엘리야는 바알추종자들을 담대히 척결한 선지자였다. 그렇다면 엘리야와 모세는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고, 율법과 예언은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마 5:17)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별세대화는 이미 구약성경에 여러 번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일을 증언한 것이었다.

그때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라고 자원했다. 엄청난 헌신 같지만 생뚱맞다. 왜 그런가? 그때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눅 9:32) 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예루살렘으로 가지 말자는 심리) 그러면 예수님도 죽임을 면하고, 자기들도 죽임의 고난을 당하지 않게 되니까 서로 좋다(win-win)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설교본문은 전혀 다르게 평가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6)

왜 예수님은 특별히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광채를 밝히 드러내셨을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십자가 화목제물로 바쳐질 메시아며, 후에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하나님의 계획을 밝히 증언하는 자리였다.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고 성경에 계시된 일인 것을 증언하는 증인이 엘리야와 모세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선택했다가 예수님한테 혼났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아직도 사람의 일을 따르는 버릇을 끊지 못하고 또 사람의 일에 맞추어서 초막 셋을 짓고, 계속 그곳에 머무른 게 편하다고 제안하였다. 참 미련하고 더디 믿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진보를 이루도록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아멘.

3) 기도 실패(6)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왜 예수님은 제자들과 높은 산에 올라갔을까? 소위 힐링을 위한 산책이나 등산? 눅 9:28-29에 결코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세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고 했고, 또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신앙 삶의 비결까지 배우게 되었다(7)고 하였다. 한심한 기도시간에도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동일하게 세 사람을 데리고 가신 것을 보면 세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인물들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깊이 졸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눅 22:44-45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라고 했다. 제자들은 그들의 슬픔을 끊이기지 못하고 했다고 본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하게 되었고 경솔하게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했다가 그만 사람의 일을 따르게 되었다.

어느 집사님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의 80%가 매일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몰려왔단다. 그런데 교회의 부흥집회에 참석하려면 오후 5시쯤 퇴근해야 했다. 더구나 병원과 약국은 시작과 종료를 개인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부흥집회에 참석하고 싶었던 집사님은 기도하였단다. “하나님! 오늘부터 5시쯤 퇴근해야 부흥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데, 환자가 5시부터 7시까지 몰립니다. 이 환자들을 오전에 보내주소서. 아멘.” 성경을 배우고 싶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5시부터 7시까지 몰리던 환자가 예전과 달리 3일 동안만 오전에 몰리더란다. 그것도 2시간 연장해서 진료한 날보다 더 많은 환자를 맞이했단다.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심을 보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아멘!!!

자 이제 설교결론을 짓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십자가 화목제물이셨고 십자가는 천국영광의 전제였다. 그래서 ‘들으라’(7 ακουετε 아쿠에테 ακουω 현재 명령형). 너희는 예수님의 말(설명, 설교, 증언)을 계속 들어 맞추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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