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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1일 설교

"언약의 피!” (막 14:22-26 ‘최후의 만찬’ 2021. 7. 11.)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는 삶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아기낙타가 엄마낙타에게 궁금해 하던 것을 물어봤단다. “엄마, 왜 나는 이렇게 커다란 발가락을 세 개나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엄마낙타가 대답하였다. “우리의 세 발가락은 사막을 건널 때 모래언덕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단다.” “그러면 눈썹은 왜 이렇게 길까요?” “사막을 건너는 동안 모래바람이 불어도 긴 눈썹은 모래가 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내기 좋단다.” “그러면 등에 불룩한 혹은 어느 때 쓰나요?” “그건 메마른 사막을 건널 때 반드시 필요한 물을 저장해 두기 좋단다.”

아기낙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엄마낙타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 우리는 빛나고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군요. 모래언덕에서 큰 발가락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고, 모래바람이 불어도 긴 눈썹으로 모래먼지를 잘 막아내고, 불볕사막도 등 혹에 물을 저장하면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엄마, 우리는 왜 발가락도 눈썹도 혹도 사용하지 않고 동물원에서 살고 있지요?”

지금 우리가 아기낙타를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값진 교훈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교회나 그리스도인각자에게 많은 은혜와 은사를 주셨고, 그리스도인마다 시간과 재능을 다양하게 주셨다. 그 모든 것을 교회나 세상에서 활용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며 살아가는 게 옳다. 예수님이 모든 교회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셨잖아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수없이 듣고 읽고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말씀이다. 오직 복음을 들고 뿌리고 가꾸며 추수하는 순종이 정답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만 먹었지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준비가 부족하여 시행착오를 할지라도 순종할 때, 이상하게 동물원에서 관람만 당하고 살아가는 낙타처럼 신앙생활을 엉뚱하게 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멘.

오늘 설교본문도 많이 부족했던 제자들이 우리 예수님과 함께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갔던 사실을 보게 한다(26 και ὑμνησαντες εξηλθον 카이 휨네산테스 에켈쏜 ‘그리고 그들은 찬송한 후에’ Aorist 분사<선재한 동작>. And when they had sung a hymn, -NKJV- 과거완료.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한 후에 감람산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십자가기도를 하였다는 것임<32>).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찬송하기 직전에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유월절식사를 하시다가 갑자기 성찬예식을 새롭게 제정하셨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22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 22:19>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γαρ ... καταγγελλετε 가르 ... 카탕겔레테 = because ... proclaim, announce.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십자가대속 죽으심을 선포하심이라는 것! 재림 때까지도. -바울- 십자가의 구원사건을 가시적으로 나타내어 우리가 누리도록 해주는 굉장히 의미 있고 유익한 예식이 성찬예식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믿음은 인식과 결심, 결행을 포함한다. 봉사든, 기도든, 헌금이든, 전도든 다 믿음을 결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유부단하면 믿음의 결단을 할지라도 쉽게 변하고,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속이게 된다. 아주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중심을 빼앗긴 교인은 흔하다. 어떤 교인은 입으로만 만리장성을 쉽게 깨뜨리지만 정작 향유옥합은 깨뜨리지 않는다. 나중에 멋지게 깨뜨린다고 상담만 한다. 그러고 함흥차사로 끝낸다. 왜 그런지 아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화목제물을 맛보지 못했거나 천국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견이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安重根 1879~1910. 옆집 천주교 신앙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부활의 믿음을 행동하였던 신자로 판단되지 않나요? 옳은 것은 옳다고 시인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임).

자 그러면 성찬예식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현재화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을 착안하여야 하는가? 설교본문에 정답이 있다. 저랑 함께 찾아보자.

1) 떡의 원리(22)

본래 유월절은 출애굽사건(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 자유와 생명을 누리게 되는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그런데 10가지 재앙 중 9가지는 모두 애굽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0번째 재앙만큼은 하나님의 사자가 모든 장자의 목숨을 거두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도 포함시켰다. 단 유월절 양을 희생시켜 그 피를 집 문틀에 바르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하였을 때, 죽음의 천사는 그냥 넘어갔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일을 기억하는데 집중하는 절기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덩어리의 “떡(αρτον 아르톤 단수)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유월절 떡은 곡식 알갱이가 부서져 고운 가루로 변화되고 서로 엉겨 떡이 되는데, 이것은 십자가 화목제물의 의미와 과정이 일치함을 잘 아시고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셨다. 십자가 제물이 분명히 저주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편으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죄인들에게 영혼을 살려주는 유일한 방법임으로, 예수님은 아시고 “축복”하셨던 것이다. 곡식 알갱이가 짓이겨져 떡이 되듯이 십자가의 제물도 죄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시려고 십자가에서 짓이겨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마태복음은 “받아서 먹으라”(26:26)라고 기록함으로 실제적인 연결행위를 강조하였다. 그것은 제자 모두 하나의 떡(αρτον 아르톤 단수)을 먹는 한 식구요, 모이면 떡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함께 은혜 받아 함께 봉사하고 함께 충성, 함께 사랑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 신앙적으로 깊은 사귐과 고난을 나눌 수 있는 생명의 신앙공동체임을 각인시키셨던 것이 성찬예식이었다. 아멘.

2) 피의 원리(23)

“또 잔(ποτηριον 포테리온 단수 “the cup”)을 가지사 감사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 말씀은 잔 안에 포도주가 담겨있었음을 말해준다.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포도역시 짓이겨져 발효된 후에 잔에 담겨진 것이다. 예수님도 모든 피를 쏟아낼 정도로 짓이겨질 십자가의 화목제물을 잘 알고도 “감사기도”를 하셨다. 그래서 마가는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기록함으로 제자들이 마시는 일을 끝낸 후에 포도주의 의미를 설명하셨음을 밝혀준다. 마태복음은 “또 잔을 가지사 감사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라고 기록함으로 잔을 나누시면서 말씀하셨고 말씀을 들은 후에 마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마가는 행위를 강조했고, 마태는 의미설명에 비중을 두고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죄 사함은 기쁨의 요인이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릴 희생의 피가 있었음을 명심시키고, 또 그 “언약의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흘리실 보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예식은 십자가 보혈의 죄 사함을 올바로 알고, 고백하며, 감사와 함께 기쁘게 참여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현재화하는 것이 된다. 아멘.

뱀은 800일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개는 20일을 견딜 수 있고, 새는 9일간 생존한단다. 그런데 사람은 12일이다. 그래서 미국교회는 종종 거북이 교인(Turtle Christian)이라는 말을 사용한단다.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장기굶식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을 ‘거북이 크리스천’이라고 놀린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때 꿀 송이처럼 달고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신앙관으로 삼고 삶을 만들어가는 신앙생활에 저와 여러분이 주인공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3) 개혁의 원리(26)

“그들이 찬미하고” 이때,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찬미의 참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강림이 이루어지자 제자들은 뒤늦게 하나님의 언약성취임을 깨달아졌다. 그래서 유월절의 출애굽을 기억하는 시대는 종료되고 십자가의 화목제물을 믿는 시대를 시작하는 것이요. 레위족의 제사장시대를 믿는 모든 이가 제사장이 되는 만인제사장시대로 바꾸는 것이다. 또 안식일 시대를 마감하고 안식 후 주일시대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유월절 식사는 애굽 노예생활을 종결한다는 뜻도 있었지만 새로운 언약생활로 출발한다는 의미는 더욱 컸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찬예식은 구약의 그림자시대를 끝내고 실체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이었다.

​ 이렇게 중요한 믿음의 핵심도 개혁하셨기에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회개시키려고 애를 쓰셨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여전히 종교적 외식에 빠져있었다. 즉 참된 제자인 척만 하였지 배신하는 자아를 숨기려 하였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을 속이고 그들과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속이지 못했다. 특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일에는 그 숨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쇼를 하는 배우의 신앙이 드러나게 하시는 자리는 십자가를 지고 개혁하는 순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몸으로 이 인간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 2:14~17) 우리의 신앙 삶은 예수님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개혁에 맞추고 예수님이 전해질 때 올바른 성찬예식이요, 순종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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