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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2일 설교

“옳지 않다!” (막 6:14-24 ‘세례요한의 죽음’ 20.11.22)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또 집사 스데반도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죽어갈 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다. 물론 두 분 다 억울함이야 하늘까지 솟구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억울한 죽음 앞에서 원망이나 불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고함치며 돌을 던져 자신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이야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데반은 참으로 놀랍다. 그는 저와 여러분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데반은 죽임을 당할 때, 예수님과 일치한 판단을 하였다. 또 그토록 처절한 박해를 당하다가 순교의 죽임을 받아들이고 찬송하였던 성도들이, 교회역사상 수없이 많았음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순교자들이 아무런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유일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믿음, 천국백성에 대한 증거가 그들을 죽임 앞에서 그러한 결단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믿음에 의한 판단과 선택은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던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 그 사실만 점검해 보면 정금 같은 믿음인지, 보통 믿음인지, 부끄러운 믿음인지 알 수 있다. 정금믿음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이루어진 일을 이 세상에 행하실 때 불평과 원망, 핑계는 생각지도 안하고 오히려 동참하고 찬송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금신앙인 바울은 가말리엘 학벌과 로마시민권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래서 빌립보 전도 때 두들겨 맞고 밟히고 감옥 구덩이에 갇혔고, 또 억지누명을 쓰고 죄수도 되었으며, 유라굴로 폭풍으로 14일간 표류를 당했다. 이런 일들로 바울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음을 성경이 보여준다.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닥치는 생활환경 속에서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을 바울은 자신의 신앙관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대응하였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소름끼치게 죽임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 대”(24-25). 우리가 설교본문의 사회상황을 살펴보면 성경기록자 마가가 밝히려는 ‘복음의 시작’(1:1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을 보다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12제자들이 전도실습여행을 함으로 복음소문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가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유대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엘리야로, 또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마 14:1)는 특이하게 자신이 죽인 세례요한이 살아나서 그 영혼이 제자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했다니... 예수님을 올바로 전도하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예수님이 오실 길을 잘 준비하였기 때문이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그러나 그는 정의를 외치다가 헤롯 왕에게 억울하게 순교를 당하였다.헤롯 왕이 이복형제인 빌립 1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것을 세례요한이 단호하게 계속 책망하자 헤롯 왕은 그를 감옥에 감금시켜버렸다(ελεγεν γαρ 엘레겐 가르 미완료 과거.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NIV-). 그런데 시숙의 아내로 둔갑한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눈의 티끌처럼 싫어하고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그녀는 헤롯 왕의 생일잔치 때, 딸 살로메에게 생일축하 춤을 추게 하여 왕의 환심을 사로잡은 후, 결국 세례요한을 참수하는 작전에 성공하였다.

헤롯 왕은 본래 세례요한을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며 두려워하였다(20). 그래서 그는 세례요한을 참수할 때 아주 근심하였다. “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6 ‘심히 근심하나’(περιλυπος 페리뤼포스 exceedingly sorrowful :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때문에 ‘심히 고민하여’<14:34> 하실 때 그 모습을 나타낸 말임. 그만큼 헤롯 왕이 극심한 고민에 빠졌음). 하지만 헤롯 왕은 망설이다가 결국 세례요한을 참수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인물이 아무리 막중한 분이라도 불신자들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파리목숨 마냥 희생제물로 삼고 만다. 그래서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엄청난 영광을 전파할지라도 대부분 무관심이나 핍박으로 반응하기 쉽다는 것이다. 한 불륜 아줌마의 꾀 때문에 참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세례요한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전도계획은 전혀 막힘없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법이다. 세례요한이 억울하게 참수를 당해도 그 사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영혼구원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자비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복음전도를 이루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불신자들의 무시함과 핍박을 전도자들의 핑계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불신자들의 오해와 무관심과 핍박은 심판대에서 우리의 핑계거리로 전혀 통하지 않는 사실을 명심하자. 오히려 하나님은 당연하게 여기실 것이고, 그러한 사회에서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신앙생활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멘.

자 그렇다면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깨우치려는 마가복음의 의도는 무엇인가?

1) 드러난지라(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φανερον γαρ εγενετο το ονομα α υτου 파네론 가르 에게네토 토 오노마 아우투.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φανερος shine, manifest, well-known). 12제자들이 했던 전도실습은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베드로도, 요한도, 갈릴리도 아니었다. 전도자 자신이나 교회를 소문내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온 천하에 빛냄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고, 그게 올바른 전도라는 것이다. 그러한 전도라면 교회가 아무리 대형화되어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조롱당하는 일을 꿈도 꾸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적이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왕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도 그러한 전도자 삶을 살아보라고 예수님께서 보내신 그 세상에 와서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을 받았느니, 천국백성이니 하면서 이 세상에서 여전히 자기이름을 드러내고 있다면, 아무리 ‘축복’ ‘은혜’ ‘교회부흥’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해대도 예수님께서 둘씩 보내신 그 12제자들이 했던 전도는 아니라는 게 마가가 밝히려는 ‘복음의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이다.

2) 들을 때(20)

분봉왕 헤롯과 헤로디와의 불륜을 비판한 세례요한을 헤롯왕이 감옥에 감금시켜놓고도, 그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분으로 알고 있었기에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크게 번민하면서’ ‘달갑게 들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헤롯 왕은 요한을 상당히 존경하였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보호하며’(συνετηρω 쉰테레오 미완료과거, 세례 요한을 죽이려고 계속 간청하는 헤로디아, 요한의 목숨을 거듭 보호하는 헤롯 왕! ‘두려워하여 보호하며’(εφοβειτο ... κα ι συνετηρει 에포베이토 카이 쉬네테레이 헬라어의 두 동사는 미완료 과거라서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보호하고 있었다.’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γαρ> ≠ 두려워한 그 결과 보호했다. 또 하나,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πολλα ηπορει 폴라 에포레이. απορεω 아포레오의 미완료 과거, a + πορος 포로스<부정 접두어 + 길> ‘길을 알지 못함을 많이’ ‘결정을 못함’ 헤롯이 헤로디아와 세례 요한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따라야 맞는지 몰라서 계속 고민하고 망설임을 생생하게 보여줌. 이게 불신앙임. 불신앙들은 옳은 것을 말해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음). 설교를 수없이 듣고, 성경을 읽고 쓰지만 결단을 올바로 안 하면, 헤롯 왕처럼 체면에 따라 행동하는 엉터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멘.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의 설교 때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았다. 책망을 통하여 또 감동을 받았다. 그러고 제자들의 전도소문을 들을 때 잠자는 양심이 깨어났다. 그렇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조지아 주에서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던 두 형제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할 때, 형은 신앙양심대로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의 인권옹호에 가담하였고, 동생은 조지아 주에서 알아주는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취직했단다. 그런데 형이 동생 변호사에게 흑인변호를 부탁했더니 동생 변호사는 괜히 흑인변호에 끼어들었다가 자기의 직업에 막대한 손해를 당할 거라는 염려 때문에 형의 부탁을 거절하더란다. 그럴 때 형이 동생에게 “네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가졌다면 이 흑인변호에 뛰어들라.”라고 간청하였더니, 동생이 이렇게 설명하더란다. “형,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따라갑니다. 하지만 내가 십자가에 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 십자가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이지 제 십자가는 아니거든요.” 동생의 설명을 듣고 형이 이렇게 대답했단다. “그렇다면 너야말로 예수님을 찬미만 하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아니구나.”(Then you are an admirer of Jesus, but not his disciple.) 우리 자신은 어떤지?

3) 인하여(26)

헤롯 왕이 멋지게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 5:4-6).

누구든지 경솔하게 함부로 맹세했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에 허물을 입힌 셈이기 때문에, 제사장을 찾아가서 자신 실수를 시인하고 속죄제를 드려서 속죄 받으면 되었다. 그런데 헤롯은 그렇게 하는 것보다 자기 위신과 체면에 맞춰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오라고 명령하였다. 물론 스스로 의롭고 거룩하다고 인정하고 보호해왔던 세례 요한이었다. 그래서 잠언 15:23절은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헤롯 왕의 잘못은 우유부단한 권력과 음란하고 앙심 많은 헤로디아, 그리고 지독한 그의 딸 살로메와 함께 살다가 나중에 전도소문을 들을 때마다 “내가 목 잘라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기만 하고 회개를 미루었다는 것이다. 회개가 복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선택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을 하나님께 영광되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할수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헤롯 왕은 세례요한의 말을 달갑게 듣고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계속 보호해 주었다. 그럴지라도 헤롯 왕이 헤로디아와 불륜을 저지르자 그 사실을 세례 요한은 지적하고 끈질기게 책망하다가 끔찍하게 순교를 당하였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께 순결하고 충성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어떤 것) 때문에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면 바로 이게 헤롯 왕! 불신앙! -세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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