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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4일 설교

“들은 말씀이 자라는가?” (막 4:21–32 ‘말씀의 특성’ 2020.10.4.)

하나님의 사랑을 전체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책은 단연코 성경이지요.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바울의 삶 자체도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려고 애를 쓴 기록이다. 또 에덴동산과 소돔성 그리고 가롯 유다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본질 그대로 웅변해준다. 그러니까 성경은 어느 책에서 무슨 내용을 읽든지 성경독자가 실제로 주목, 주시, 주의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놓치지 않는 점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마음, 의도, 판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영화나 TV drama를 보면서 자칫 등장인물의 연기능력이나 미모에 반해서 그 작가의 주장을 놓치고도 발광수준으로 환호하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을 역설하려고 그 배우의 미모와 명연기를 고집했는지 파악할 때, 감상을 올바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든 쓰든 암기하든 그 목적은 성경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때 그 말씀은 비로소 살아있고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그런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 편지에 있는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자 그러면 설교본문을 보자. 마가복음 4장에는 비유가 4가지나 기록되어 있다. 씨앗을 뿌리는 땅들(1-9), 등경 위에 두는 등불(21-25), 땅에서 자라가는 씨앗(26-29), 겨자씨(30-32). 이렇게 비유를 4가지나 한꺼번에 기록해 둔 것은 마가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의도를 알아보는 것은 필요충분하다. 비유 넷 모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좋은 땅은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 방해를 이겨내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지난주일 설교했다. 우리가 좋은 땅에 해당한다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추수하곤 했을 것이다. 똑같은 설교를 한 예배당에서 다 같이 들었다고 은혜와 축복을 똑같이 생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 많은 여 전도사님이 기독교서점에서 전도지를 주문하면서 점원에게 힘없이 말했다. “오늘 전도지를 사가는 것이 어쩌면 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전도지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힘이 들어요. 그동안 수많은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아직까지 내가 전해준 전도지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못 만났어요. 그동안 헛수고만 한 것 같아... 못내 아쉽네요.” 그때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한 젊은이가 다가와서 할머니 전도사님을 바라보더니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저는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10년 전 6월 25일 오후 6시 30분쯤 안산역에서 저에게 전도지를 주신 할머니, 맞지요? 저는 그 전도지를 읽고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들도 모두 저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제 동생은 선교사로 인도에 가있습니다. 저는 방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할머니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믿음 열매란 게 이렇다. 그러면 설교본문의 비유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1) 등불의 비유(21-25)

‘등불 비유’는 ‘천국의 투명성’을 밝혀주신 말씀이다. 등불은 발광체이다. 흑암의 세력이 가득한 이 세상이라도 천국복음으로 생명의 빛을 비춘다면 생명길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할렐루야!!! 그런데 예수님은 등불을 말씀하시다가 왜 헤아림(24-25)을 말씀하셨을까? 등불과 헤아림은 무슨 연관을 갖고 있는지? ‘헤아림’(μετρεω 메트레오 ‘측량하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 하나님나라에 들어오면 감동감화와 양심으로 깨닫는 삶이기 때문에 먼저 양심으로 내적갈등을 앓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성찰하게 되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시인하며, 결국 회개하여 죄의 세력을 끊고 죄들을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남에게 잘못한 일을 알아보게 되고, 또 교회의 부패도 괴로워하게 된다. 반대로 이웃의 흠을 잡아내는 것은 옛사람 짓인데, 그것을 예수님은 24절에서 헤아림’이라고 표현하셨다. 아무튼 헤아림에 빠지면 그 사람은 생명길에서 빗나가 다시 어둔 세상으로 돌아가, 교회에 소속하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사탄의 사람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다(23). 9절처럼 육체의 두 귀가 아니라 말씀을 알아듣는 깨달음을 가리킨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24)는 말씀은 천국복음을 알아듣는 정도를 강조하신 것이다. 시 145:20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했으니 심판 때 하는 대로 받는 인과보(因果應報)일는지? 행한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인과보(因果越報)일지? 가늠해 보라는 것이다.

미국유학생 윤원준(27) 군이 1999년 7월 4일 주일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가다가 인종우월주의자였던 벤자민 스미스(21)가 무차별하게 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 당했다. 윤원준 군은 서든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경제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며 꿈을 키워가던 청년이었다. 희생당한지 8일 후 7월 12일 오후 7시에 추모예배가 미국 전 지역에 방송되고 있었다. 예배를 끝내는 시간에 희생당한 윤원준 군의 가족을 대표해서 아버지 윤신호 장로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였는데, 그의 인사말이 수많은 미국인에게 감동을 주었단다. 그 인사말이다. “나는 오늘 가족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를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의 꿈을 빼앗아가고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벽에 서진 말이다. Hate is not the answer, only God's love is.(미워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정답입니다.)할렐루야!

2) 자라가는 씨의 비유

이 비유는 ‘천국의 확장성’을 깨우치는 말씀이다. 28절의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착한 마음 즉 ‘좋은 땅’이다. 따라서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27-28)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란 말은 ‘자동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억지 노력, 암기보다 회개를 철저히 올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보혜사하실 때 민감할 수 있도록 기도생활하고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동참하면, 말씀의 생명력은 어느새 자동적으로 자라고 자라게 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맺고 추수를 이룬다는 것이다(29).

그런데 말씀은 뿌리려 할 때 혹시 ‘죽지 않았나?’ 의심할 만큼 미약해 보인다. 그렇지만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알곡을 맺고, 최후의 심판 때 기쁨으로 추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진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씨를 뿌리는 자는 확신을 갖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 8).

이 성장의 원리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직접 조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하려고 정말 악랄한 방법을 사용한다. 우유는 새끼 밴 소라야 나오기 때문에, 매년 새끼를 갖게 하고 새끼가 먹을 젖을 사람이 강제로 빼앗아 먹는 것이다. 그것도 촉진제와 항생제를 먹이면서. 소는 1년 내내 우유를 공급하지만, 그 우유는 어미 소의 피 눈물인 셈이다. 그래서 소의 평균 수명 15년인데 젖을 빼앗기는 소는 4년쯤에 생을 마감하고, 고기로 팔려나간단다. 소에게 젖을 빼앗는 사람이 악한 짓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나요? 양계, 양돈, 양어장, 하우스 농장에서 인위적인 수단으로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농사법을 실행하고 또 연구하고 있다. 그러다가 사스니 구제역이니 코로나로 혼나는 것이다. 교회도 온갖 심리전과 마케팅 방법으로 구조를 바꾸고 선전하고 있잖아요!

씨앗에는 유전자라는 생명체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떨어진 말씀도 예수님의 성품과 향기를 드러내는 언행을 맺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바로 천국실현이요 하나님께 영광이다(요 17:4).

여러분, 하나님이 성장시킴에 따라 결실하는 삶의 시작은 거듭남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씨가 떨어지는 좋은 땅으로 바꾸어져 감을 말해주는 말씀이다. 이러한 생명의 변화를 ‘전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이것을 ‘성화’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성화는 좋은 땅의 본질인데, 우리는 우수한 본질이길 축복한다. 아멘.

3) 겨자씨의 비유(30-32)

정상적인 하나님 나라는 30배나 60배나 100배로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올바로 성장하는 게 아주 어렵기 때문에 그 온전한 성장을 겨자씨 비유로 잘 보여주고 있다. 겨자씨는 티끌처럼 작다(σιναπεως 시나페오스. 750개 정도가 겨우 1g. 1년생 풀이지만 팔 굵기로 3m 정도 자람). 그래서 마태복음 13장과 누가복음 13장에는 ‘나무’라고 표현하였다. 선지자 에스겔도 같은 이치를 예언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겔 17:22-23) 여기서 백향목(22)은 참 메시야를 의미한다(≠3 ‘큰 독수리가’ = 거짓! ‘아름다운’ אדיר 아딜 great, mighty, excellent, noble, prince. = 영적인 변화! 소망, 축복!). 복음전도가 초라하고 미약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밝히신 것이다. 설교말씀은 듣는 사람의 마음 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사람의 심령에서 아주 미약하게 시작되지만, 참된 영혼구원을 이루고 점점 세상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이겨내고 심판 때 상상을 초월한 큰 변화인 영생복락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8-19).

새들이 깃들인다고 했는데, 새는 뭣을 의미하나? 새는 사탄이었다(4, 15). 말씀을 듣고도 사탄과 내통하며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주님의 십자가 피값을 짓밟는 짓이다. 그래서 이러한 탄식을 하게 된다. “교회가 사람도 있고, 건물도 있고, 땅도 있고, 돈도 있는데 예수님만 없더라!” 어느 주일 미국의 백인교회 입구에서 흑인아이가 울고 있었는데 마침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가야, 울지 마라. 나도 거기에 못 들어간단다.” 제발 없어야 할 비극이다.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에 비춰진 우리자신을 그대로 보면서 남은 생명길을 올바르게 조종하자. “소돔성 멸망한다!”라고 롯이 전했을 때, 롯의 사위들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다(‘웃기지 좀 말라’는 뜻이었지요). 그렇지만 결국 소돔성은 유황불로 멸망당했다. 애굽 왕 바로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찾아가서 10가지 재앙을 행하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 했을 때 그때마다 완악한 마음으로 거절하다가 장자가 다 죽자 겨우 항복했다. 말씀은 대부분 살아있다. 자라서 결실해야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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