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설교

September 27, 2020

                                                   “들을 귀인가?” (막 4 : 1–13 ‘말씀 알아듣기’ 2020.9.27.)

   미국의 39대 대통령 가터(Jimmy Carter)는 이런 간증을 했단다.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 매년 300명 이상을 전도했습니다. 주중에 거의 하루에 한 명씩 전도한 셈입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대통령에 출마하였을 때 석 달 동안 유세기간에 무려 30만 명을 만났습니다. 30만 명과 악수하면서 ‘제가 카터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 년에 300명 정도에게 복음전도를 하였지만, 내 이름을 선전하는 일에는 석 달 동안에 30만 명과 악수를 하고 다녔으니, 내가 과연 하나님을 미국대통령보다 더 훌륭하게 여기는 성도인가? 하나님보다 미국대통령을 더 좋아한 게 사실 아닌가?’ 스스로 자문자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저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국대통령 임기 동안에 단 한 번도 주일예배에 불참한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지내는 시간보다도 주일 교회학교에 나가서 어린 영혼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이 더 행복했습니다.” 가터는 미국대통령을 하는 것보다 마음 밭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 그렇게도 좋았다는 것인데,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서 교회학교에서 씨를 뿌리면서 무슨 비밀을 체험하였기에 그토록 좋아했을까? 이 답은 오늘 설교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저랑 같이 천천히 확인하여 보자.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13).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들으라’(3)로 시작하여 ‘들으라’(9)로 끝내셨는데, ‘들으라’ 이 명령어에 그만큼 핵심의미를 포함시켰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들을 귀’를 준비한 자는 최적격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예수님은 불치병을 수없이 고쳐주시면서 ‘복음의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을 입증시켜주어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위 ‘씨 뿌리는 비유’를 하게 됐는데, 이 비유는 씨앗이나 농부보다 땅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씨 뿌리는 비유’라고 하기보다 ‘땅의 비유’라는 제목이 더 합당하다. 땅은 예수님(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상태를 가리켰다.

   스코필드(C.I. Scofield 1843-1921) 목사님은 미국 캔저스주 의원과 검사를 지내다가 34살에 회개하고 37살에 목사님이 되었는데 66세 때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발행할 만큼 성경학자이기도 하였다.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단다. “육(肉)은 세상을 자각하고(World-consciousness), 혼(魂)은 자아(自我)를 의식하고(Self-consciousness), 영(靈)은 신을 의식한다(God-consciousness).” 그렇다면 육으로 자각하며 살아가는 삶은 세상적인 쾌락과 향락으로 사는 사람을 말하고, 혼으로 사는 삶은 정신적이고 이성적으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영으로 사는 삶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보는 것 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육과 혼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불못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갈라디아서 6장 8절에도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육으로 사는 사람이 길가 교인이요, 혼으로 사는 사람 역시 육으로 사는 사람보다 이 세상에서는 좀 더 낫겠지만 영생복락이 없는 돌밭이나 가시떨밭 교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영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밭은 어디에 속하나? 이 대답을 마이동풍(馬耳東風)처럼 지나가는 말로 할 게 아니다. 예수님(것)을 얼마나 알아차리고 반영하는지 엄밀하고 신중하게 점검해보자는 것이다.

   미국의 석유회사 사장이 중국에 석유회사 지사를 내면서 그 관리자를 찾고 있었다. 그 회사가 내건 관리자의 자격요건은 30세 미만, 고졸이상, 영어와 중국어를 잘하고,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자 등이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적임자를 한동안 선발하지 못하였다. 여러 달 후에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신네 회사에서 찾는 적임자를 내가 알고 있는데, 그를 데려올 방법이 까다롭네요.” “그는 어디서 월급을 얼마나 받고 있나요?” “그는 선교사인데 월 6백 달러를 받지요.” “만일 그 선교사님이 우리 회사로 온다면 월 1만 달러, 아니 12000달러를 주겠소. 그래도 싫다면 15000달러까지도 줄 수 있소.” 회사의 제안을 선교사에게 전달하였다. 그러자 그 선교사님이 대답하였다. “싫습니다. 왜냐하면 석유회사의 일이 너무 시시해요. 돈 15000달러를 받으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석유를 파느니, 지금처럼 600달러를 받고 중국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게 훨씬 위대한 일이니까요.” 바로 이런 게 살아있는 믿음이다.

   오늘 설교본문은 이어서 14절부터 20절까지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그 해석을 해놓으셔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12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13). 이 비유를 올바로 알아차리면, 다른 비유들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들 가운데서 가장 기본이요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그럼으로 이제 설교 본문말씀을 올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세밀히 살펴보자.

   첫째로 비유의 이유(1~2)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1) 여기에 나오는 ‘바닷가’는 갈릴리 호수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동네 갈릴리의 가버나움 부근이었다(35, 5:1, 막2:13). 사람들이 에워싸 밀어대기 때문에 예수님은 반달처럼 생긴 호숫가(‘Bay of Parables’)에 떠 있는 배를 강단삼아 큰 무리에게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토록 큰 무리 모두에게 ‘예수님(것) 받아들이기’를 제대로 깨우치려 하셨다. 그때 ‘큰 무리’(οχλος πλειστος 오클로스 플레이스토스 최상급 지금까지 몰려든 무리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 ‘에워싸 미는 것’<3:9>,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3:20> 무질서와 혼란을 잘함)가 예수님께로 몰려왔던 것이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2 ‘비유’ παραβολη 파라볼레 by the side of another, simile, comparison. ‘서로 나란히 놓다’ 일상 삶의 이치로 천국의 진리를 설명하는 문학형식). 예수님께서 깊고도 오묘한 천국의 진리를 알아차리도록 일상생활로 대하는 일들을 실례로 설명하셨던 것이다. 다윗 왕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에게 어떤 손님이 찾아왔을 때, 부자는 가난한 이웃의 양 새끼를 빼앗아 접대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부자’는 실제로 다윗 왕이었고, 가난한 이웃은 신하 우리아였으며, 양 새끼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이렇게 천국의 실재(實在)를 알아차리게 하려고 비슷한 현실로 설명하는 것을 비유라고 한다. 그러니까 ‘양 이야기’를 필사하고 암기하기보다 ‘다윗 왕의 갑질’을 알아차리는 게 훨씬 성경을 잘 읽은 셈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4:34)고 했다. 그 이유는 이중목적 때문이었다. 순기능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진리를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고, 역기능으로는, 불신자들에게 천국진리를 감추려는 것이었다(11-12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그래서 믿음 없는 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어도 겉모습만 암기할 뿐이었다. 그들은 그 비유의 참 진리를 끝내 깨닫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 예수님의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길이요 해답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던 바리새인들에게는 미로요 착각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이적을 통해서도 자신이 구세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고도 충분하게 입증해드렸다. 그런데도 막3:22처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더러운 귀신왕초가 들렸다는 착각을 하였고, 막3:29처럼 그들은 성령님을 모독하여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성경은 좁은 생명길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책이기도 하고, 졸리게 하는 책이기도 하는 것이다.

   둘째로 비유의 내용(3-8)

   예수님의 비유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게 중요하다(11). 이제 그 비밀 ‘찾아내기’를 해보자. 우선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라고 비유는 시작된다. 핵심사항은 뿌리는 씨나 씨를 뿌리는 농부가 아니고, “길가에 떨어지매”(4) “돌밭에 떨어지매”(5) “가시떨기에 떨어지매”(7) “좋은 땅에 떨어지매”(8) 씨가 떨어지는 땅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밭과 밭의 경계선 땅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밟혀져 씨가 떨어져도 땅 속에 묻히지 못하고 땅위에 씨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러면 밟혀서 부서지거나 새들이 먹어버리면 끝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교인도 사탄이 무단출입하면 그 말씀 자체를 망각하고 만다는 것이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는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농부는 씨를 파종하기 전에 크든 작든 돌들을 보는 대로 주어낸다. “바위 위에 떨어지매”(눅 8:6)라고 했다. 이 바위는 땅 속에 숨겨진 바위이다. 바위 위에도 흙은 있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씨들은 싹을 내고 자라가지만 문제는 뿌리를 제대로 뻗지 못한다. 그래서 뜨거운 계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말라죽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참 동안 교회에서 활동하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포기하는 자”인데, 이러한 마음밭은 십자가 앞에서 12제자들이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이 경우는 가시떨기라는 잡초가 있는 밭이다. 잡초는 번식력이 강하다. 마 27:29에 보면, 군병들이 가시(ακανθων 아칸쏜)를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었다. 바로 가시떨기들(ακανθαι 아칸싸이)로 만든 가시관이었다. 그 만큼 흔했다. 가시떨기와 씨앗은 땅 속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는 생존경쟁을 벌린다. 또 가시떨기에, 햇볕도 가림 당하고 결국 결실까지 못 견딘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교회를 포기하는 교인이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

   지금까지 세 종류의 땅은 아예 싹도 못 내는 길과, 싹은 트지만 쉽게 말라죽는 돌밭, 싹이 나서 자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 밭이다. 막중한 사실은 싹이 자라 결실하느냐 이다. 세 경우의 공통점은 씨가 떨어졌다는 사실과 결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 종류의 땅은 모두 불합격이라는 심판이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좋은 땅’은 세 종류의 땅과 다르다. 흙이 부드럽고, 깊고, 잡초도 없다. 떨어진 씨들이 자라서 결실하도록 관리한다. 물론 좋은 땅이라고 토양이 똑같지 않다. 물론 농사기술도 중요한 결실조건이다. 그렇더라도 결실을 좌우하는 것은 땅의 토양이란다. 그래서 예수님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결실하는 땅을 구분하셨다. 이러한 결실사실은 그 당시에 아무나 하는 일상경험이었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겉모습이었지 숨겨진 비밀은 아니었다. 아멘.

   셋째로 비유의 결론(9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게 이 ‘땅 비유’에 숨겨진 하나님나라의 비밀이었다. ‘들을 귀 있는 자’나 ‘들을 귀 없는 자’나 누구나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다. 귀는 ‘꺼풀’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비유를 문장만 암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을 읽고 써도 천국비밀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 분은 성경을 지극 정성껏 예찬하고 그래서 성경을 읽고 쓰지만, 삶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욕 먹이는 언행을 하고, 자기이익만 챙긴다. 그러면 들을 귀 있는 자는 어떤가? 막 3:35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예수님의 올바른 가족으로 살아간다. 또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아차리고 동참한다. 고전 4:2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를 매듭하자. 설교핵심은 ‘좋은 땅’이었다.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누가복음 8장 15절에 밝혀져 있다. ‘좋은 땅’으로 살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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