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0일 설교

September 20, 2020

                                               “미쳐 보입니까?” (막 3 : 31–35 ‘신앙의 가족’ 2020.9.20.)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였단다. 그중에 회갑을 넘긴 할머니가 신세한탄을 하였다. 젊어서 혼자되어서 1남 2녀의 엄마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젊었을 때 주위에서 중매도 많이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흔들리고 고달파도 자식을 위해 믿음으로 희생을 결단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중산층으로 잘 사는데, 문제는 자신이 무시당하곤 해서 섭섭하다는 사례들을 쏟아놓아서 동창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듣고 침울해하였단다.

   그래서 한 할아버지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일부러 자기자식들 얘기를 꺼냈다. 그 할아버지는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이 10년째 매달 초에 100만 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고, 딸은 대학졸업반인데 자기도 취직하면 오빠처럼 할 거라고 하고, 또 온 가족이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헌신봉사 하니까 주일마다 만나볼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간증이었다.

   그러자 신세한탄을 하던 할머니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기에 그렇게 효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 할아버지 왈, “나는 가차 없이 매로 키웠지. 그러나 때리고 나서 같이 붙잡고 울었어.” 왜냐하면 성경말씀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채찍을 아끼지 말라고 했거든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한평생 온전히 헌신하며 자녀를 키웠는데도 왜 그 자녀들이 삐뚤어져서 부모를 무시하는가? 또 매로 키웠지만 반듯하게 자라서 효도할까? 한마디로 삶의 가치관 때문이다. 아무리 헌신으로 키웠다고 하지만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을 지적하여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올바른 효를 실행하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매로 채찍질 하여도 이기심을 지적해주려는 사랑 때문이라면 그 매는 반듯하게 고쳐주는 수술과정이 된다는 것이다. 폭력과 억압으로 다스린 게 아닌 사랑의 매라면 자식을 인간답게 바로잡아준다.

   오늘 설교본문도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가정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5). 요즘 우리나라는 독신자와 이혼, 별거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가족이 한 가정(家庭)을 구성하여 살아가는 삶의 분위기(뜨락)가 어떠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정답이다. 설교본문은 예수님께서 무리에 둘러싸여 한참 전도사역에 열중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밖으로 불러내려 하였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라고 반문하신 후에,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듣는 입장에 따라 상당히 불효스럽고 기존 가족개념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볼 수도 있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말씀의 현장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았던 이유는 예수님이 귀신들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30).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바알세불 논쟁으로 서기관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중이었다. “예수는 바알세불이란 왕초귀신에 잡혀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다고 서기관들이 의도적으로 비난하자, 예수님은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지는 않는 법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렇다면 33절의 예수님의 대답은 가족들까지도 서기관들과 한 통속이 되어 예수가 귀신들려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판단에 감정적으로 대항하는 말이었을까요?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비난 분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가족에 대한 기존개념을 훨씬 더 능가하는 ‘하나님의 가족’을 성경대로 깨우치셨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가족을 역설하였던 것은 나름대로 의도하신 바가 있었다고 본다. 첫째로 하나님나라는 혈통관계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준행하는 공동체라야 당연하고 기본임으로 가족관계도 사사로운 혈통연고보다 신앙관에 따른 시야를 넓히고 삶을 펼치라는 뜻이었다. 둘째는 하나님의 가족은 천국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도의 합당조건으로 가족과 재산의 포기를 엄하게 명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4-38).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국한된 혈통의 가족구성원보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써 가족개념을 새롭게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자신에게 지금 물어보자. 과연 예수님의 가족개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 주변의 소외된 약자들에게도 가족이냐는 것이다. 가족을 영어로 ‘Family’라고 하지요.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자들을 따면 가족의 의미를 알뜰하게 담는 단어가 된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예수님이 설명하셨던 가족개념을 좀 더 진지하게 들어보고 우리가 반영할 바를 챙기자.

   1) 밖에(31)

   예수님은 부활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이룰 신앙공동체를 가족개념으로 가르쳤다(요 19:25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자신의 제자 요한을 ‘아들’이라고 깨우치셨고,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고 하였다. 그 가족관계는 다름 아닌 바로 교회였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행 2:2), 또 오순절 성령체험 후 성도들이 모여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라고 밝혀놓았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라고 말했고,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골 4:15),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몬 1:2)라고 밝혔다. 사도시대의 교회는 집에서 모였던 신앙인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느 집에서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전도하고 계셨다. 그곳은 실제로 교회였다. 그런데 혈육상 예수님의 가족은 가정교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혈통을 넘어서는 가족구성원 즉 교회와 친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예수님이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이냐”라고 마치 불효자 같은 말을 하셨다는 것이다.

   병사가 전투장에서 죽을 때 대부분 어머니를 부른다고 한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런 부모로 살기를 축복한다. 항상 자식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만나보고 싶은 어머니와 아버지이기 때문에 인생길이 험하고 고달플 때마다 엄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힘을 얻고 갈 길을 당당하게 선택할 줄 아는 그런 정신적 신호등 말이다. 세상에 부모처럼 고귀한 역할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한 삶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 때 반드시 물을 것이다. “내가 맡긴 부모를 잘 감당했느냐?”라고. 그때 우리가 대답할 말은 이미 살아온 부모생활 자체인 것이다. 심판대가 기대되길 축복한다. 아멘.

   2) 둘러앉은 자들(34)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마 12:49. 마태복음은 둘러앉은 무리들보다 특별히 12제자들에게 각인시켜주려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음). 그리고 ‘보소서’(32 ιδου 이두, 희한한 일이 생겼다는 것! Look, Your mother and Your brothers). 가정은 교회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본래 가정의 특성은 엄부자친(嚴父慈親 엄한 아버지, 따뜻한 어머니) 또 물보다 진한 형제우애(兄弟友愛)이다. 가족이란 때로는 미워하지만 결국 애정으로 뭉쳐진 공동체이다. 이 세상에서 ‘웬수’라도 서로 끊지 못하고 지속하는 관계는 엄한 아버지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그러면서 애정과 의리로 뭉쳐진 사람들이다. 교회도 하나님 아버지 중심으로 닮았다는 것이다. 아멘.

   미국의 발라스키 부부는 자녀 10명을 두었는데, 6명은 선교사로 헌신하였고, 4명은 그 선교활동을 지원했단다. 맏아들이 한 말이다. “제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인데, 대단히 모범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우리 자녀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맡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둘째, 부모님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힘들고 귀찮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셋째, 아버지는 친구처럼 허물없이 자식을 대해주셨지만 결코 위엄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의 결정은 대법원의 판결과 같았습니다. 넷째,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들에게 공평하였습니다. 잘못했을 때 벌을 받았고, 잘했을 때 칭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은 항상 말씀과 삶을 일치시켰고,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가정을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 믿음중심에 새겨두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멘.

   3) 하나님의 뜻대로(35)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주일, 회당에서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평일, 가정에서도 하나님나라가 실현됨을 깨우치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가정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회생활 중에 만난 친구관계보다 가족관계가 더 끈질기다는 말이지요. 맞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서로 빗나간 의기투합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을 새롭게 가르치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흔하다. 돈에게 법이 꺾이고, 소신도 무용지물 되는 경우를 보는 것은 쉽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라고 밝혔다. 스가랴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예언했다. 하나님의 뜻을 바울은 배워서 따를 수 있고, 스가랴는 성령님의 보혜사 되심으로 된다고 했다.

   기존가족은 혈연에 의한 부자간, 형제간 사랑이 있고, 또 희로애락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새롭게 가르친 가족은 혈연관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공동체이고, 그래서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해 감으로 하나님나라가 되는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혈통 지향적인 가족개념이 모체로 형성된 각종 연고주의가 우리의 현실사회를 판치고 두루 좀먹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우리사회나 가정에 칼을 던지고 불을 던지려고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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