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3일

September 13, 2020

                               “예수님을 알아보십니까?” (막 3 : 20–30 ‘신앙의 맹인생활’ 2020.9.13.)

  예수님이 선발하신 12제자들 명단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살펴보면 항상 맨 끝자리에 고정되어 있거나 아예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유명한 가룟 유다인데 바로 예수님을 은30에 팔아먹은 배신자였지요. 그런데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는 한 마디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던 가룟 유다로 본다. 무엇보다도 상황분석을 민첩하게 할 줄 알았고, 그래서 정확한 이해타산을 판단하였고, 특히 재무회계능력을 갖추었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약점은 사탄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예수를 팔아먹는 배신자와 결별하지 못하고 말았다. 유다와 베드로를 비교해 볼 때 두 사람은 똑같이 사탄의 유혹에 걸려들었고, 똑같이 배신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시 등용되었고, 유다는 끝까지 배신자의 생애를 고집 부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잘못됨이 생각났을 때 통곡하며 시인하고, 고치고 돌아서느냐 아니면 대충 하다가 마느냐 이 차이였다.

  인류역사상 약점 없이 태어난 사람은 어느 때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빨리 시인하고 고쳐서 위인전에 오른 인물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뚜렷한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불러서 훈련을 시키고 사명을 맡기셨다. 그러니 약점자체를 문제로 삼을 게 아니다. 그러나 약점을 고치지 않으면 않을수록 비참한 실패자로, 구제불능한 배신자로 굳어지게 된다.

  오늘 설교본문도 네 부류의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다. 먼저 ‘무리’를 볼 수 있고, 둘째는 ‘예수의 친족들’이고, 셋째는 어떻게 하든 예수님께 치명타를 입히려는 ‘서기관들’, 마지막은 12제자들을 보게 한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상 네 가지의 신앙생활을 보여주고 있다(三人行必有我師 論語).

   첫 번째 ‘무리’에 해당한 사람들이다(20).

   예수님을 식사할 겨를도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μη δυνασθαι αυτους μηδε αρτον φαγειν 메 뒤나스싸이 아우투스 메데 아르톤 파게인 they could not so much as eat bread. -NKJV-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6:31). 예수님께서 식사하실 시간까지 빼앗은 것이죠. 이렇게 상대방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면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며 감사라고 한다. 우리도 많이 보았지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언제든지 어디라도 가서 예수님을 찾는다. 예절, 상식, 배려... 전혀 무시해버린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기심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을 만나주시고 고쳐주셨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무리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전도는 이기주의자들을 만나주고 고쳐주며 기뻐 뛰게 해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기심의 사람들을 소중히 상대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말 식사할 겨를도 없는 정황이지만 ‘이기주의’ 사람들을 만나 상대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기주의 사람들을 만나서 정성껏 그들을 들어주며 복음을 보여줄 때, 성령님이 감동시켜갈 것이다. 아멘.

   두 번째 예수님의 친족들(21)이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왔네요(κρατεω 크라테오 ‘seize’, ‘grasp’, ‘vanquish,’ 어머니가, 동생이 미쳤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음).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그 당시에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퍼트린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30). 문제는 그 소문이 사실이었느냐는 것이다(바울도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복음증언을 설명할 때 유대총독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라고 비난하였다. 바울이나 예수님께서 복음전도를 열심히 하는 그런 모습을 정신이상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그렇다. 마귀는 소문으로 일하고, 성령님은 말씀으로 일하신다. 그리스도인답게 속아 흔들리지 아니하려면, 소문에 흥분하지 말고 말씀에 착실히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아멘.

   사실 인간관계에서 든든한 버팀목은 가족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가족들은 소문에 휩쓸리고 말았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과 30년을 같이 살았다. 판단과 선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예수님을 보고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30년 삶을 무시하고, 떠도는 소문을 따라갔다. ‘내 생각이 올바른가?’ ‘내가 결정하는 게 맞는가?’ ‘내 판단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소문에는 헛소문이 있다. 아멘.

   세 번째 부류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22)이다.

   29절을 함께 읽어 보자. 과거 성경에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성령을 모독하는 자’라고 고쳐 놨다. 그리고 다른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성령 모독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어느 죄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다 간과시킨다고 성경은 말씀해 준다(롬 3:25).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설교본문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고 밝혀놓았다. 예수라는 청년이 무엇을 하는지 조사해보려고 찾아왔다는 것인데, 그들이 조사한 결론은 “예수는 귀신의 왕초인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하였다(‘바알세불’ βεελζεβουλ 베엘제불 ‘마귀의 왕’, ‘귀신의 왕초’ ‘사탄의 별명’). 그러니까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의 왕초가 돕기(접신接神, 무당<巫堂> 짓)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마귀는 사람을 지배하여 귀신병자로 만드는 악한 영이지 귀신병에서 사람을 해방시켜주는 선한 영이 아니다. 귀신병을 고치는 영은 어떤 귀신보다 강한 성령뿐이다. 이 사실은 진리이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27)라고 예수님께서 밝히신 것이다. 사탄에게 억압당하고 있는 귀신병 환자들에게서 사탄과 그 졸개들을 예수님이 성령의 권능으로 쫓아내셨지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성령님을 왕초 사탄으로 둔갑시켰다. 이것은 선악과 죄악만큼이나 사악하였다. 그런데 귀신병자에게서 귀신추방을 서기관들이 정말 몰랐을까? 아니다. 다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거짓속단을 강행했다. 그래서 ‘성령 모독죄’인 것이다.

   ‘진실로’(28 אָמֵן 아멘 firm, certainly, truth, so be it. 거짓이 없이 막중한 진리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말!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셨던 치유사역과 말씀선포는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언약성취라는 것임). 이게 사실이었지만. 서기관들은 ‘내게 싫고’ ‘내게 손해되니까’ 나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댔다. “예수의 권능은 왕초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다.’라고 일부러 우겼던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이 진리였는데도 가짜라고 억지훼방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령 훼방죄’가 되는 것이다. 마귀의 지배를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바꿔주신 것을, 오히려 사탄왕초의 지배라고 억지를 부리면 예수님은 당연히 가짜로 둔갑되고, 서기관들이 주장하는 율법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여호와의 나라가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억지는 오늘날 교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어 비극이다. 목사님들이 교회를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늘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소유로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과 기도, 예배, 교회, 예수님... 한없이 예찬한다. 하지만 속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뜻 성취를 이뤄가는 것인데 예를 들면 자기교단에서 제명당한 전광훈 씨 같은 가짜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양심의 가책을 속이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것이죠. 성령님께서 보혜사 하심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때, 회개할 기회인 것이다. 아직 용서받지 못할 훼방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멘.

   넷째 부류는 제자들이다(20. μη δυνασθαι αυτους μηδε αρτον φαγειν. Jesus and his disciples had no time to eat. -GN-).

  제자들이라고 하지만 이제 막 선발된 신앙훈련생으로써 초보입문 단계답게 ‘우뢰의 아들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을 배신자였지만 뽑혀 있었다(19). 귀신 병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여론은 다양했다. 치유 받는 환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본 사람들도 많았고, 설교본문의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을 ‘미친놈’으로 비방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막 6:41). 이토록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차리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2-33). 이렇게 더러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보기도 하였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언약하신 메시야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믿고 싶어 하는 메시아는 세상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을 현실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영웅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언약하신 메시아는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메시야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실제로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만 절실해 하렸고, 사탄의 지배아래 죄악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실상을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쳐주시는 실제를 보면서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초가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둔갑시켜버렸다. 이러한  혼란과 거짓 속임수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깨우친 신앙인들이 제자였던 것이다(μανθανω acquire a custom or habit, to learn by practice or experience).  아멘.

   설교본문의 네 부류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즉 교회의 실태인데, 이기심을 따라, 소문대로, 의도적인 계산대로... 이 세 가지는 다 아직 하나님자녀의 신앙관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앙의 맹인들이다. 예수님의 치유는 출애굽과 일치한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바로를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으로 굴복시키고 결국 해방시켰다. 인간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난다. 마귀의 지배에서 인간이 해방되려면 실제로 마귀를 이기는 방법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해방시켜 병을 고쳤던 것이다. 하지만 서기관들이 거짓결론을 내렸는데, 이 거짓결론에 속으면 해방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바는 인간은 출생부터 사단에게 붙들린 병자이며, 사망에 처한 자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도 불가능해지지고 구원도 멀어지고 만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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