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0일 설교

August 30, 2020

                                        “옳은 것을 분별하느냐?” (막 3:1-12 ‘올바른 믿음식견’) 20.8.30.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만 해도 호랑이가 북악산을 거쳐 경복궁에 곧잘 나타났단다.조선태종 때 충신이요 명사수였던 김덕생이 태종임금의 경호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종이 후원에 나갔다가 갑자기 발소리를 죽이고 태종 임금에게 접근해 오는 호랑이를 김덕생이 보자마자 단 한발 화살로 호랑이를 명중시키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태종임금을 구하자,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 호랑이 사살을 대역죄로 몰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공로를 시기하여 모함한 신하들이었다. 아무리 임금이 위기에 처했더라도 임금을 향해 활을 쐈다면 시해행위에 해당된다는 법 논리를 역설하는 대신들 때문이었다. 김덕생은 호랑이 그림을 도처에 세우게 하고 백발백중하여 한 발도 실수하지 않는 실력을 입증해 보였으나 억울한 사형을 당하고 말았단다. 현실적인 충신보다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의 논리가 더 득세하던 시대의 한 단면이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뒤 그를 동지중추부사에 진급시키고, 그의 묘를 고향 영광에 묻어주도록 하였다고 한다.

   오늘 설교본문도 선행을 악행으로 둔갑시키려고 작당을 하는 짓을 예수님이 바로잡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2 ‘주시하고’ παρατηρεω 파라테레오 = 행 9:24<‘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보초행위>). 또 4절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나눈 대화이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님의 질문은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엿보며 음모를 꾸미려는 바리새인들을 有口無言하게 만들었는데, 사실은 기독교나 교회의 본질을 명백히 밝혀준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질문에 정통하여 신앙 삶에 반영하기를 축복한다. 핵심내용은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 있느냐 이었다. 그 당시 안식일에 환자를 고치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바리새인들이 감시하였는데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회당에서 환자를 고쳐서 율법의 본뜻을 깨우칠 기회로 삼으셨는데, 이 일은 실제로 예수님을 살해공작하게 하였다(6). 예수님께서는 그 분위기를 잘 알았지만 팔이 완연히 메마른 중환자를 불러 예배당 한 가운데 세우고, 선행과 악행, 그리고 생명과 사망, 어느 것이 안식일에 옳으냐? 라고 물으셨던 이 공개질문은, 율법의 본질이 선행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대답은 하나마나 선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바리새인들의 화석화된 종교를 목격하고 있다. 교회에는 이렇게 화석화된 신앙관을 고집하는 종교인들과 살아 행동하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인들이 섞여있다. 독수리의 그림과 절벽을 솟아오르는 독수리는, 장례식장에 있는 사진 앞에서 묵념하는 것과 그 사진의 주인공을 살아생전에 만나 대화한 것만큼이나 생사자체의 차이가 있다.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예배당에서 정해진 절차대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그만하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꽃 그림이나 조화가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향기는 없다. 그렇지만 생화는 향기가 분명히 있다. 생명작용이 실존하기에 향기도 생산도 하게 된다. 살아있기 때문에 작은 아픔에 통증을 느끼고, 작은 선행에도 감동하며, 작은 양심의 가책에도 괴로워한다. 교인들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틀에 박힌 종교행동만 한다면 화석신앙인 것이다. 살아 생명작용을 하는 믿음이라면 설교 중에도 말씀을 먹고 감격하고 확신하는데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겠는가? 생산활동을 하게 된다. 건강한 사람은 제 시간에 정량음식을 먹고 일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도 굶거나 폭식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병자라는 증거이다. 이러한 이치를 예수님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질문으로 깨우쳤던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운동을 보아왔다. 새마을운동, 환경운동, 미투운동... 이런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전도하면서 ‘새 생명운동’을 시작하신 셈이다. 이 새 생명운동은 실제로 신앙개혁운동이었다. 아멘.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크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해주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되고, 율법은 사랑실현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증언해 주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미국인들에게 “2+2는 답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계리사는 “4입니다.”라고 딱 잘라 대답하고, 수학 이론가는 “3과 5 사이 어디쯤에 있는 숫자이다.”라고 설명을 요하는 대답을 하고, 변호사는 문을 닫고 아무도 엿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답을 어떻게 만들어 드릴까요?”라고 묻는단다. 이 이야기는 법규정과 그 법규정 의도를 올바르게 실천하는 일은 현실생활에서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율법을 예수님은 인간의 축복을 위한 것으로 강조하셨고,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신앙생활을 지키기 위한 율법이라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자 그러면 설교본문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면서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찾아 챙기자.

   1) 완악함(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말씀현장을 자세히 보자. ‘완악함’<πωρωσις 포로시스 harden, stubborn. 왕고집>. ‘노하심’<οργη 오르게 =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롬 2:5>.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형벌!>. 예수님께서 주시하는 바리새인들을 둘러보시고 탄식하사 진노하신 것은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었음!).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28일 오후 5시쯤 기자회견을 통해 총리직 사퇴의사를 정식으로 밝혔지요. 그가 앓아왔던 궤양성 대장염은 난치병으로 복통과 구토, 발열, 체중감소 등을 일으켰는데, 그동안 자민당은 ‘사퇴불가’ 분위기 일변도였지만, 그는 “질병과 치료로 체력이 완전하지 못한 고통 속에서 중대한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헌법개정 등 도중에 총리직을 떠나게 돼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다.”라고 실토했다는데, 그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답게 한국과 줄곧 악연이었다. 그의 마음 중에 완악함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완악함이 사악해지면 대통령이라도 이상한 호르몬주사를 맞아가며 동네 아줌마와 국정농단을 하면서도 그게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완악함은 복음신앙의 암인 셈이다.“

   2) 의논함(6)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완악한 바리새인들이 ‘헤롯당’을 찾아가 작당하여 예수살해를 공작했다는 것이다. ‘헤롯당’은 로마의 헤롯 왕정통치를 지지하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친로마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와 여호와의 선민사상으로 철저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친 로마파와 율법주의와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바리새인들이 함께 연합전선을 펴서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공작했다면 얼마나 살인마에 붙잡혔는지 공감할 수 있다. 이 순간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문자답해 보는 것은 설교를 잘 듣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자녀 삶을 쉽고 편리하게 하는 게 복음인가? 옳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다는 조건을 갖추었을 때이다(“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롬 8:5-7. κατα πνευμα 영 밑에 = 지배!).

   2010년 10월 3일 브라질 연방하원 선거에서 코미디언 광대요 문맹자였던 프란시스코 올리베이라가 상파울로 주에서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되었는데, 2위보다 두 배나 앞선 득표율로 135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명 선거구호로 몰표를 받았는데, “나에게 표를 달라. 결코 지금보다 나빠질 수 없다!” “하원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사실 난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표를 달라. 뭘 하는지 내가 하원에서 보고 여러분들에게 알도록 해주겠다.” 무식한 광대가 연방의원을 해도 브라질의 사회가 더 퇴보하지 않을 테니 자신을 뽑아달라고 호소했고, 브라질 국민은 기존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신물나있던 차에 청량제광대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헌법에 정치가는 반드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읽기와 쓰기를 시험 봐야 했단다. 재판은 “쓰는 것은 일부 문제가 있지만 읽기는 최소한 이해할 수 있다.”라며 당선 유효판결을 했단다.

   유식하다는 여러 졸업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올바른 지식이다. 하나님께 올바른 일을 이루어려고 의논하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축복한다. 아멘.

   3) 많이 경고함(12 )

   πολλα επετιμα αυτοις 폴라 에페티마 아우토이스 he many rebuked them) ‘많이’(πολλα : 횟수나 양이 많다, 시간상 길게, 오래 = ‘엄중하게’ ‘엄격하게’ strictly(‘그는 그들에게 자꾸 벌주며 엄하고 심하게 책임지우셨다.’ ‘He charged them strictly and severely under penalty again and again’ -Amf-). 예수님은 구속사역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정체를 함부로 알림을 막으셨는데, 특히 귀신들이 자신을 하나님 아들로 알리는 것을 엄금시키셨다(11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다.’ = 흠잡을 데 없음!(A⁺)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고자 찾아왔지만 귀신들만큼 올바로 하는 사람은 없었음! 그런데도 금지 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요 8:44-45).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진노하시고 귀신들에게 정답을 엄금시킨 이유는 역지사지(易地思之)나 알맹이를 없앤 겉포장 때문이었다. 손이 말랐음은 그 손이 장애되어 자세도 마음도 뒤틀리기 쉽다. 어서 고치는 게 그의 소망이다. 그 소망을 예수님은 역지사지하셨다. 이 역지사지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역지사지를 안 하면 규칙을 찾고, 절차를 따지며, 다음으로 미루고 만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 삶에도 규칙과 절차, 때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칙과 절차, 때를 넘어서게 하는 지혜로 판단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못했다. 명심하자!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발견한 믿음신호등을 챙기자. 오늘 설교본문은 선행과 악행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게 하였다. 완악함 때문에! 틀린 의논 때문에! 거짓 속임수 짓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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