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일 설교

August 2, 2020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 2:1-12 ‘중풍을 고치신 예수님’) 20.8.2.

   지난 2002년에 개봉되었던 ‘집으로’라는 영화는 아역배우와 비전문 연기자로 제작했지만 당시 폭력성이 난무하던 한국영화에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관객 420만을 돌파하여 같은 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대 성공작이었다. 서울에 살던 한 아주머니는 형편없이 망가진 가정 때문에 일곱 살 난 아들을 산골오지에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긴다. 그 소년은 서울생활에 길들여졌는데 갑자기 친구도 한 명 없는데 놀이기구도 없이, 말도 못하고 글자도 모르는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시골생활은 멘붕에 빠지게 되었다. 드디어 가지고 갔던 오락기의 건전지가 다 소모되자 외손자는 사고를 치고 만다. 건전지를 사려고 외할머니의 은비녀를 훔친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꾸지람 한번 하지 않았다. 외손자는 영악한 서울 아이답게 욕구불만을 언어장애인 외할머니에게 다 쏟아내곤 하면서 이것저것 사고를 내고, 수시로 외할머니를 힘들게 했다. 세상의 외할머니들이 비슷하지만 외손자의 짓궂은 투정을 외할머니는 그냥 받아주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외손자는 더욱 심한 말썽꾸러기였지만 반면에 답답한 그 외할머니와 애정도 새록새록 쌓여지면서 외할머니에게 종종 글자를 가르쳐주고 간호도 해 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외손자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혼자 시골에 남게 된 외할머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엽서를 건네는 외손자가 했던 말이다. “아프거나 보고 싶을 때 아무 말도 적지 말고 그냥 엽서만 보내세요. 그러면 외할머니가 보낸 줄 알고 바로 달려올게요.” 마지막으로 외손자는 외할머니를 사랑한다고 수화로 알리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제목 ‘집으로’는 공간적인 장소이동을 의미하지만 외손자가 돌아갈 진짜 집은 외할머니의 품이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깨어져버린 가정과 상처투성이인 소년의 마음을 건전하게 치유하여 다시 서울의 생존경쟁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위주로만 생각하고 그토록 모난 짓을 해대던 그 철부지가 외할머니의 사랑에 감화되어 인격적인 소통을 하게 되었고, 또 산골문화에 갇힌 장애자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점점 회복되더니, 건강한 몸과 건전한 마음, 인격적인 가치관으로 성숙되어 참신한 생존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인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에도 심신이 다 깨져버린 중풍병자를 치유하여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1-12).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집으로 가라”라고 선포하심은 철저히 밀려났던 한 병자를 전인적으로 회복시키는 구원선포였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고(1:14-15), 동시에 가버나움에 와서 귀신들린 병자와 열병환자, 나병환자까지 연거푸 치유해주셨고, 이러한 소문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육신의 질병은 잘 고쳐졌지만 영혼구원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피해 계셨다(1:45).

   이럴 때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던 것이다. 네 사람이 메고 왔다는 사실은 ‘심각한 중환자’를 입증해 준다. 처지는 제일 급한데 순서는 ‘대문 밖 대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데려다 놓는 모습에서 믿음을 확인하고 즉시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러고 결국 그 중풍병자는 완치되었다(12). 예수님은 거라사인 지방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실 때도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막 5:19)라고 말씀하셨고, 벳새다에서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재차 안수하여 고치실 때도 역시 “집으로 보내시며”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씀은 본래 자리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감을 의미했다. 회복되었으면 삶의 자리로 돌아가 사명을 감당하는 게 마가가 밝히려는 ‘복음의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아멘!!!

   우리 예수님은 병자만 회복시키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신 게 아니다. 1945년 일본의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두 개를 터뜨려 대한민국에게도 8.15해방을 주시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 하셨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해방을 실현하시고, 지긋지긋한 종, 징용과 정신대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네 집으로 돌아가라”, “네 자리로 돌아가라!”라고 하신다. 아멘.

   사오정이 여름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자신도 모르게 세어 보게 되었단다. 별을 세다 보니 자꾸 실수를 하게 되었고 별은 모두 몇 개나 되는지 되게 궁금해졌다. 그래서 사오정은 결국 천문학자를 찾아갔다. “학자님, 하늘의 별은 모두 몇 개인지 궁금하여 세어보다가 자꾸 실수를 하곤 해서 찾아왔습니다.” 천문학자는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았다. 사오정이 해질 때까지 버티는 바람에 천문학자는 엄중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젊은이, 진짜로 말하네. 그만두게!” 그러자 사오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삭였다. “아~ 별은 모두 9만 2개(구만두개)구나!” 자기 생각대로 알아듣는 대화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읽기나 설교듣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 그러면 오늘 설교본문에서 중풍병자에게 믿음을 확인하시고 고친 후에 집으로 돌려보내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절실하게 올바른 가르침을 챙기자.

   1) 소문(1)

   ‘소문이 들린지라’(ἠκουσθη ὅτι εν οἴκω ἐστιν 에쿠스쎄 호티 엔 오이코 에스틴, ‘it was heard that He was in the house.’ -NKJV-. = 전도!<설교듣기, 성경읽기, 성경쓰기, 암송... 예수님이 살아계심<2절‘도’ τον λογον 톤 로곤 the word of God, word, speech, mere talk, wordy show, report, reason...>을 소개받거나 설명 듣고 기억하는 것까지). 성경을 많이 읽고, 쓰고, 암송하는 것은 틀림없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찾아가 만나서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여러 고비가 남아있음을 깨우치면 겸손해지는 법인데, 많은 교인들이 이 이치를 착각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비유’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서 살 때는 물론 아버지를 떠나 방탕할 때도 자신은 똑똑한 인생을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가진 분깃을 다 낭비하고 거지로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자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알아차렸다(εις ἑαυτον δε ελθων. 에이스 헤아우톤 데 엘쏜 “스스로 돌이켜”<눅 15:17>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표준 새번역> “He came to himself.”<-NKJV, Amf-> 그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자기 자신의 실존<실체, 實在>을 알아차릴 때까지,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버틴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 집에 같이 살아도,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을 쓰고 외워도, 자신의 실재를 못 보면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고 끝낸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지요. 예수님을 만나서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축복한다! 아멘.

   2) 네 사람(3-5)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올새” : 이 모습은 비참한 중풍병자에게 큰 장점이었다. 왜냐하면 중풍병자와 네 사람은 소문을 듣고 확신하였고, 그 확신은 소망을 갖게 했으며, 그 소망은 결국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경제적 손실을 각오하고 행동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을 ‘산 소망’이라고 한다. 바로 이 ‘산 소망’을 우리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ὑποστασις 기초)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ελεγχος 확신)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αδυνατον, δυναμαι to be able to, energy 머리로는 이해를 했고 암기하지만 못함!)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1-2, 6).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 이게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생겨나야 한다. 우리가 잘 안다고 하는 그 암기와 다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해답이라고 말하는 그 지식, 사실 머리로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단지 우리의 결정과 행동에, 실제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게 착각이다. 그래서 감사반응에 인색하고 만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불평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만히 있으면서 너희 구원을 보라!”라고 한 후에, 그 구원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좋아하였던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홍해 해변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춤추고, 하루 종일 감사 감격 감동하였다. 그런데 사흘 후 쓴 우물 앞에서 어떻게 변해가던가요? 불평불만, 원망, 항의, 혈기다툼 일색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예배는 홍해 앞인가? 마라 우물인가? 찬송가를 4절까지 부르는 동안 우리 자신의 중심을 보면 그게 정답이다. 얼마나 실감하느냐는 것이다. 이 실감 정도가 예수교와 종교생활을 구분 짓는 것이다. 심지어 유행가에도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라고 했으니까요...

   3) 중풍병자에게(10-11)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 이 말씀은 죄 사함을 받는 일이나 영혼이 구원받는 일은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 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19-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4:14).

   예수님은 협력과 조화를 기뻐하신다. 혼자 이기적인 독불장군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어긋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조화관계로 창조하셨다.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이웃과 함께 사회적 존재로 혼자보다 둘, 셋이 하나 되라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서로 만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복된 삶이다. 본문은 그 합심하는 믿음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예수님은 구원을 선물하시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아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각종 병자를 고쳐주신 사실을 보았다. 병자는 어떤 병이든지 정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한 맺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주시고 정당한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서 천사로 변화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처럼 전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일로 우리 예수님이 깨우치려는 핵심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병만 고치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킨 후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임마누엘을 실감하는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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