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6일 설교

July 26, 2020

                                    “내가 원하노니!” (막 1:40-45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20.7.26.

   르네상스의 3대 화가로 존중받는 미켈란젤로가 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4년 동안 그렸다는 ‘천지창조’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지요. 그 그림 중앙에 아담창조를 그려놓았다. 오른쪽에 하나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아담이 있다. 하나님은 아기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제 창조하게 될 하와를 왼팔로 끌어안고 아담을 향하여 돌진해 오시자, 대지에 누워있는 아담은 하나님을 향하여 몸을 일으키고, 왼손을 왼쪽 무릎에 올려놓고 내밀어보았지만 축 처지자 간절한 눈빛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축 처진 아담의 외손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어 생기를 불어넣어주셨다는 것이다.

   또 손을 내미는 유명한 장면이 있었다. 애굽 탈출 때 홍해를 앞에 두고 바로의 특수부대가 추격해오는데 진퇴양난인지라. 공포에 사로잡혔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울부짖다가 모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원망 불평 항의를 쏟아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내밀라는 것이었다. 그 순종결과는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 마른 땅 길을 만드셨다고 성경 출애굽기 14장에 밝혀져 있다.

   손을 내밀어 기적을 체험한 일은 또 있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밤중에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위로 걸어서 오시는 모습을 보고 12제자들이 유령으로 착각하고 잔뜩 겁을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오늘 설교본문에도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바로 창조적 권능사건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줌으로 알아차리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려고 도와줄 때 손을 내밀어 붙잡아준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믿었던 것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던 하나님의 방법과 똑같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창조행위를 예수님께서 친히 나병환자에게 행하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완치하여 구원하시겠다는 강력한 결심을 곧바로 실행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41) ‘불쌍히 여기사’ 이 말씀은 예수님의 속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생명사건을 통하여 완치하겠다는 막강한 의지이다(‘불쌍히 여긴다’ σπλαγχνιζομαι 스프랑크니조마이 : 본래 ‘창자’나 ‘아기집의 자궁’을 의미하였는데 ‘애 타는 마음’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보고 ‘찢어질 듯한 마음’을 가지게 됐고, 곧바로 나병환자를 친히 만지셨다(‘Jusus moved with compassion’  -NKJV-   ’com’ + ‘passion’) 그 당시에는 나병환자라면 어느 누구도 대면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제사장만 눈으로 나병을 확인할 뿐이었다. 이유는 첫째 만지기만해도 부정해지니 토굴에 살면서 사람이 지나가면 “나는 부정한 놈이요, 부정한 놈!”하고 외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고(레 13:45-46), 둘째는 전염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셨다.

   사람들끼리 서로 만지는 것은 친밀관계를 입증해준다. 악수나 포옹, 어루만짐, 입맞춤이 다 그렇다. 만약 싫은 사람이 와서 일방적으로 만지려고 하면 그것은 폭행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만지시는 행위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할 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너를 회복시켜 축복공동체에 동참시키겠다.’ 이 예수님의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손을 내밀어 만짐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만짐으로 신앙관을 뒤바꾸어놓으셨다. 어떻게? 유대인들은 나병의 독이 전염됨으로 독이 성결함을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결함과 단절시키고 내쫓았다. 나병 독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면 폭행으로 단정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아니다. 성결함이 나병 독을 이긴다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병 독을 만지면 나병독이 성결에게 내쫓긴다고!” 이것은 은혜요, 축복실현이며, 믿음혁신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연약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만져서 고치셨다. 믿음의 대개혁을 하신 것이다. 아멘!

   자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을 대개혁하게 감동시킨(σπλαγχνιζομαι 불쌍히 여기심) 것은 누가, 무엇으로 하였는가? 어떤 일로? 예수님의 마음을 찢어질 듯이 아프게 하였던 것은 타고난 미모? 암기한 지식? 쌓아놓은 재물? 전혀 아니었다. 저랑 같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그것을 확인하여 보자. 먼저 나병 환자였던 한하운 씨가 쓴 시(나)를 보자. 한하운 씨는 함경남도 함주 출생인데, 동경 세이케이 고등학교와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에 함경남도 도청에 근무하다가 나병에 걸렸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억겁을 두구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벌이올시다. 벌이올시다)

   1) 간구(40)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말은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꿇어 엎드리고 고백했던 말인데 예수교전문용어로 ‘기도’라고 한다. 나병은 현대의학으로도 여전히 난치병임을 볼 때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꿇어 엎드려 간구했다는 악조건 기도는 대단했다. 이러한 일은 치료의 주도권이 자신의 소원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합당하심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인데 이것도 괄목할 신앙지혜이다. 기도가 종종 자기 소원성취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기도는 결코 우리의 소원을 실현하는 방법이 아니다. 기도는 나의 소원성취를 강요하는 방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과정이다. 그래서 ‘원하시면’이라는 나병환자의 기도 말은 나병치료의 결정권이 주님께 있음을 시인하는 행위였다. 이런 것을 우리가 터득해야 믿음을 진보시킬 수 있다.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암기만 하지 말고 해당한 행위를! 행위를 번복하는 생활을 해가길! 아멘.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32세 때 미국선교사로 파송 받고 8주 동안 대서양 횡단을 하는데 26명의 모라비안 교인들도 함께 배를 타고 갔단다. 그만 항해 도중에 큰 폭풍을 만났다. 웨슬레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죽을 지경인데 독일 모라비안 교인들은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더란다. 그러다가 모라비안 교인 중 한 분이 무서워 떨고 있는 웨슬레를 향하여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나요?”라고 묻기에, 웨슬레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보다 공포심에 사로잡혀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는 그 폭풍 중에도 모라비안 교인들이 용감하게 도전하는 믿음을 보았다. 나중에 하나님께 자신의 이론신앙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된 신앙생활을 새롭게 해 갔다는 것이다. 삶을 만드는 믿음으로 신앙생활 해가길 축복한다. 아멘.

   2) 깨끗하게(40)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말을 우리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중요하게 보셨는가? 물론 나변환자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도, 꿇어 엎드린 것도, 간절히 말한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깨끗하게 하심은 예수님의 핵심본질을 알고 시인하는 고백이다. 우선 전지전능하심을 고백하였고, 또 예수님의 성탄목적(성육신 incarnation)을 정통하였다(“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38.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이 핵심본질인식을 실감하는 정도에 따라 찾아오게 만들고, 꿇어 엎드리게 하고, 간절히 호소하게 하는 그 열심지수가 달라진다. 예수님의 핵심본질 인식이 신앙관을 만들고 또 신앙자세와 신앙 삶의 수준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프레드릭 왓츠’(George Frederick Watts, 1817-1904)라는 분이 그린 ‘소망’이란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한 여인이 맨발로 거의 꺾이는 자세로 앉아있는데, 두 눈을 수건으로 싸매고 있어서 앞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악기는 쇠사슬에 묶여있고 악기의 줄도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았다. 앞을 볼 수 없는 그 가련한 여인이 단 한 줄만 남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제목을 ‘소망’이라고 붙였다. 워츠라는 화가는 소망이 살아있어서 선택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면 그 소망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우치려고 그 그림을 그렸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그림에서 희망을 보았으며 많은 용기를 얻어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실토했단다. 사도 베드로도 고백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소망이 살아있기를! 아멘.

   3) 입증(44)

  인류의 시조 아담이 선악과 범죄를 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을 때, 그 아담의 영혼을 사망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망은 창조주 하나님과 단절된 영혼을 가리킨다. 사망영혼을 살리는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것이고, 이것을 ‘중생’(거듭남)라고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 몸을 보이고 깨끗하게 되었음을 입증하라고 한 것은, 나병환자의 신분회복(가족공동체의 회복, 유대인 사회생활 회복, 신앙공동체 회복)을 위함이었다. ‘거듭남’이었지요. 이것을 신학전문용어로 ‘전인적인 치료’ ‘전인구원’이라고 한다. 육신의 질병과 사회지위, 예배참여 모두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45절을 보면 나병환자는 회복을 미루고 자랑에 빠져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혼자 ‘한적한 곳’에 가서 나병치료를 점검, 반성하면서 기도하셨다고...

   구약성경은 소망을 ‘티크바’(תקו)라고 써놓았는데 ‘밧줄’을 의미한다. 하나님자녀의 신앙관과 삶을 하나님 뜻과 꼬아서 하나로 만들 때 소망이라는 것이다. 참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좁은 생명길을 하나님의 보좌로 이끌어간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나타난 그 신호등을 다시 확인해 보자. 그것은 한 맺힌 나병환자를 만지시고 고치시는 예수님이셨다. 주도권을 시인하는 기도를 듣고 고치셨고, 성탄목적을 고백하는 기도를 보고 고치셨고, 전인구원 중단을 보시고 점검하시는 예수님도 귀한 신호등이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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