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9일 설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막 1:35-39 ‘전도자 예수님’) 20.7.19.
성경은 여러 곳에 문둥병에 대하여 기록해 놓았다. 문둥병에 걸리면 눈썹이 다 빠져지고 손가락, 발가락, 코가 사라져버리니... 무서운 병이다. 그래서 문둥병 환자들은 모자로 코가 보이지 않게 덮어쓰고 다녔다. 그리고 떨어져나간 손가락들은 붕대를 감아 숨기고 살았다. ‘문둥병은 자기도 모르고 3년, 자기만 알고 3년, 남도 알게 3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끈질긴 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문둥병의 증상이 몸에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문둥병 환자인 게 아니다. 이미 한 3년 전부터 그는 문둥병에 걸렸는데 이제야 병증세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둥병 증세가 꼭 드러나지 않아도 문둥병 환자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둑질이 들통 나지 않아도 도둑놈들이 있고 살인범으로 붙잡히지 않아도 살인범들은 있다. 여러분, 박근혜, 안희정, 박원순 이 분들이 들통 나기 전에는 다 훌륭한 지도자였고, 막강한 대통령 후보 아니 ‘각하’였잖아요. 그렇지만 이미 감옥살이 시켜야할 죄인들이었는데도 멀쩡한 인물님들로 살아가다가 붙잡히고 만 것이다. 들통 나기 이전의 분명하게 범행한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도 죄인이라고 확정하고 심판하시겠다고 성경에 밝혀놓았는데, 여러분은 시인하시나요? 그런데 이 심판은 대단히 엄격하고 진실하다. 그래서 무서운 공포의 자리요 냉정한 시간이 될 것이다.
간첩이 자수하면 대한민국은 새롭게 살아갈 삶을 보장해 주고, 또 생활기반도 도와준다. 그럴지라도 간첩은 자수하기 직전까지 불안 속에 조마조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간첩이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광명한 인생을 찾게 되나요? 자수하면 된다. 경찰서에 가서 “경찰관님, 저는 간첩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게 전도이다. 간첩을 자수하게 하는 것, 경찰서로 안내하는 것, 경찰관을 만나 광명을 찾게 도와주는 것을 전도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전도자 예수님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38-39.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어느 한 가지라도 우리가 손수 시도해 보려고 한다면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평생질병을 치료해준 기적소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그렇게 하였다면 ‘본격적 전도순종’으로 보아야 한다(38 ‘왔노라’ εις τουτο γαρ εξηλθον 에이스 투토 가르 에크셀쏜 for that is why I came out. -Amf- = 천국보좌에서(εκ) 출발하였음! 철저한 사명의식). 눈에 보이는 기적들로 흥분한 대중의 인기와 명예와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덩굴째로 굴러 들어오는데도 그걸 마다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마가복음 독자들은 예수님의 인식을 더욱 올바르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복음에 관심을 끌게 한 후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전도를 따라 하려면 적어도 5가지 정도는 갖추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①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게 모든 전도의 기본이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3-14). 전파로 시작함 = ‘전도’<막 1:38 κηρυσσω 케뤼쏘 to announce openly and publicly>. ② 기도와 전도는 한 묶음이다(“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골 4:3). ③ 불신자들은 복음을 설명해주기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복음을 누리고 살아가는 삶에 더 영향을 받는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④ 자신을 하나님이 그곳에 보내신 전도자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⑤ 성령 충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인 동시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꾼생활이며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보혜사가 ...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ελεγχω 엘렉코 ‘he will convince.’ -RSV- 요 16:7- 8).
어느 교회 홈페이지의 광고에 “전도대회 상품: 소형승용자, 김치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자전거”라고 알렸다. 이러한 전도는 백화점 특별할인행사의 방법이지 예수님의 방법은 아니다.
자 그러면 우리 ‘예수님의 본격적 전도순종’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필요한 것을 챙기자.
1) 새벽(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πρωι εννυχα λιαν 프로이 엔뉘카 리안) in the morning, early/ by night/ great, much/ ‘Very early in the morning, long before daylight,’ -GN- ‘Very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NIV- 해가 뜨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새벽시간. 남들은 곤히 잠자는 시간에 예수께서 기도하셨음을 알게 해줌. ≠ 식사기도, 예배시간 기도.
월남 전쟁이 치열할 때 실화란다. 전투 중에 일개 분대 14명이 고립되고 말았다. 고립된 곳은 가시덤불로 뒤덮여있고 도망갈 길은 엄두도 낼 수 없어서 헬기로 낙하시키고 끌어올리는 산악지역이었다. 고립된 14명은 전투식량과 물이 다 떨어졌는데, 폭염더위로 점점 탈진되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살 수 없는데, 그때 함께 고립당한 군목이 자기의 수통을 흔들어보니 물이 그래도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14명을 제쳐두고 자기 혼자만 물을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군목은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수통을 붙잡고 기도를 드리고 나니 부족하지만 돌려가면서 모두 한 모금씩 마시자고 말하고 자신부터 꿀꺽 마시고 돌렸다. 14명 모두 꿀꺽 소리를 내며 마셨다. 그러고 수통은 마지막으로 군목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군목이 수통을 흔들어보니 물소리가 그대로였다. 사실은 군목이 먼저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꿀꺽!’ 소리만 냈는데, 그 모습을 본 병사들도 차마 혼자만 물을 마시지 못하고 꿀꺽 소리만 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렇게 ‘꿀꺽!’ 소리만 냈지만 모두 목이 타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 군목은 간절히 기도하고 ‘꿀꺽!’ 소리만 내는 물마시기를 반복해서 탈진을 거의 이틀간 버티다가 구출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투작전 중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기도는 신비한 권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그렇지는 않다. 평소에 기도생활로 슬프나 기쁘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순종하다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신비한 기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체험하길 축복한다. 아멘.
2) 한적한 곳(35)
‘한적한 곳으로 가사’ 한 마디로 기도하는데 방해 받지 않는 곳이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기도에 집중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다(“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막 6:44-47>,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 22:39-40>,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이렇게 우리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던 것은 인기나 명예, 출세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에 가치를 두셨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10명에게 문둥병을 고쳐주시고 감사를 생략한 9명을 찾으셨던 일과 똑같다. 아멘.
맛 집의 음식은 대부분 ‘담백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떤 한 분야든 일을 오래한 사람에게 생기는 ‘내공’을 ‘깊은 맛’이라고 표현한다. 믿음에도 깊은 맛이 있다. 그냥 대충 겉도는 교인은 일평생 예수를 믿어도 깊은 맛을 못 내지요. 보통 부흥집회는 사건중심, 체험중심, ‘외적신앙’에 비중을 둔다. 그런데 ‘내적신앙’에 비중을 두면 성경말씀을 통한 언약법칙에 뿌리를 두고 삶을 이룬다. 건강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은 ‘외적신앙’과 ‘내적신앙’을 잘 조화시켜 ‘깊은 믿음 맛’을 낸다. 저와 여러분도 ‘깊은 믿음 맛’을 내는 하나님의 자녀이길 축복한다. 아멘.
3) 모든 사람(37)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만장일치로 찬성하고 응원하며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예수님은 다른 마을들로 가서 전도하셨다고 했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신앙관 특히 교회관을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18)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 사람들 모두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이루는 구성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시고 다른 마을들로 가셨던 것이다. ‘교인’과 ‘그리스도인’은 구원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제2장19절에 희한한 말씀이 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믿고 떠는 귀신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올바른 구원을 받은 믿음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속에 들어가 있던 귀신들이 말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막 5:7)라고 간구하였다. 군대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달려와서 절하며 부르짖어 간구하였다! 하지만 그 귀신들은 응답을 얻지 못하고 바다에 몰사 당했다. 음부의 권세는 구원의 대상에서 철저하게 제외시키는 예수님이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우리 성령님께서 보혜사 되시어 우리 자신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책망으로 확신주신 그 화살표를 챙기자. 오늘 설교본문은 전도하시는 예수님의 핵심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왔노라’(천국보좌에서) 이 사명감으로, 새벽기도로 시작하여, 한적한 곳에서 충분히 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찾아와도 음부권세를 이길 그 교회를 세워가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