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2일 설교

July 12, 2020

                       “시몬의 장모를 보자!” (막 1:29-34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현장’) 20.7.12.

   목포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은 길을 걷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구약성경 용어로 평강이란 뜻인‘샬롬! 샬롬!’하고 인사를 하고 다녔는데, 하루는 예배당 문을 막 나오다가 시꺼먼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웃으면서 ‘샬롬!’하고 인사를 했단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주일부터 예배에 참석하더란다. 그 후로 3개월 쯤 지났을 때 그 시꺼멓던 교우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식사를 대접하겠고 제안했다. 목사님은 거절할 수 없어서 그 분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때 그 분이 이런 간증을 했단다.

   “자기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왔고, 사업도 잘 되어서 돈도 벌었고, 명예도 가정도 만족할 만한데, 왠지 자꾸만 몸이 피곤해지더니 손발이 붓기도 하고, 얼굴도 까매져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간암이었다. 그것도 간암말기라서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고 하더란다. 의사에게 솔직한 소견을 물었더니 “이제 잘해야 3개월 살겠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니 가족들이 낙심하고, 회사원들도 울상이고, 친구들도 걱정을 하고... 모두가 죽게 된 암 발병을 안타까워했단다. 누구를 만나도 자신을 ‘죽을 놈’으로 생각하고 안 됐다는 표정을 짓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살 놈!”하셨다는 것이다. 의사를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을 놈, 죽어가는 놈’하는데, 목사님은 처음 만나자마자 “살 놈!”하시니까 그 말이 귀에 번쩍 들렸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죽을 놈이 아니고 살 놈이야. 그렇다면 살길을 찾아보고 그 길로만 나가자.’라고. 그래서 당장 ‘살 놈!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기로 결심하고 주일마다 참석하였는데, 희한한 일은 병원에서 3개월도 살기 어렵다고 했지만, 어느 덧 6개월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더 건강해졌고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살 놈!’이라고 생각하니까 소망을 갖게 되고 웃음도 생기더란다. 그는 예배를 드리고 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건강식을 먹고, 약을 먹고, 잠시 쉬고, 가볍게 산책하면서 중얼거리기를 “나는 살 놈이야! 우리 목사님이 ‘살 놈!’이라고 말씀하셨지 않는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6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살 놈’인지라, 목사님이 고마워서 인사를 드릴 겸 식사대접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 암환자가 ‘샬롬’을 ‘살 놈!’이라고 알아들었지만, 아무튼 하나님의 임마누엘로 이루어지는 ‘평강’ ‘안전’ ‘복지’ ‘발전’ 등등의 샬롬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시몬과 그 일행이 한없는 신바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을 연상시켜준다. 왜냐하면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완치 받았기 때문이다. 그 열병은 아마 염병이나 콜레라일 텐데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다가 죽는 병이다. 그런데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지라.’라는 말씀처럼, 시몬의 장모는 사위(사돈)의 집에서 투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바늘방석 같은 나날이었을꼬! 설교본문을 열병부터 잘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중한 열병’(눅 4:38. πυρετω μεγαλω ‘퓌레토 메갈로’ = fever great ; πυρ<fire ‘속에서 불이 나는 것’ ‘복장 터지는 병’ ‘화병’, 또 ‘누워있는지라’<κατεκειτο 카테케이토 미완료. 장기중환자>. 어부였던 사몬은 어느 날 갑자기 청년 예수에게 홀랑 미쳐서 들로, 호수로 싸돌아다니고 아예 집에 오지도 않다가, 그 예수와 사둔 안드레, 친구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그것도 안식일 점심때 갑자기(식사준비 불가!) 예수님은 회당에서 안식일 예배 중에 귀신병자를 고쳐주시고 나왔다고 했으니(29), 피곤해하시고 점심때쯤이니 시장하실 예수님을 시몬이 자기 집으로 모셨다. 물론 투병환자가 있었지만. 그런데 이런 사위의 꼴을 보고 참아야 한다면 열병환자 시몬의 장모만 복장 터질까? 누구든 열불 터진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집이든 들어가시면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예수님이 그 가정에, 그 교회에, 그 인생에 찾아가셨다면 인생일대의 행복시작이었다. 시몬의 집도 똑같았다(31- 34. ‘온 동네가 그 문<시몬의 집> 앞에 모였더라.’ 길조소문!<‘복음의 시작’ = Good news>을 들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임. “와! 가버나움 회당에 예수란 청년이 나타났는데 대단했대! 권위 넘치는 새 교훈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귀신들도 꼼짝 못하고 쫓겨났대! 시몬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켰더니 아 글쎄, 열병이 당장 떠나갔대요.” 이런 입소문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소문의 핵심원리’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헛소문에 덩달아 안타까운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 일을 이단이라 하는데 교회역사상 수없이 반복되곤 했기 때문이다. 우선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들어 순종’<‘聽從’ שָׁמֹועַ תִּשְׁמַע 솨모아 티쉬마 듣고 듣고 ‘listen carefully’-NIV-, ‘diligently heed the voice of the LORD your God’-NKJV-> + 의<ישׁר 야살 straight, upright, approve>. ‘내가 보기에’ :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눈에 칭찬’은 ‘하나님의 언약, 명령’에 순종함이고, 그 모델은 창세기 1장 31절 ‘심히 좋았더라.’이다<바울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리니’라고 증언> + 계명 + 규례 = 치료<4가지 조건>).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특별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설교본문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꼭 요긴한 성경교훈을 챙겨들자. 아멘.

   1) 예수님께(32)

   ‘예수께 데려오니’ 이 말씀의 뜻은 ‘서로 만남’, ‘연결시킴’인데, 교회전문용어로 ‘전도’라고 한다. 전도했던 시간을 특별히 밝혀놓았네요. ‘저물어 해 질 때’: ‘온 동네가’ 몰려올 정도로 ‘길조소문’인데 왜 해 질 때까지 기다렸을까? 답을 막 3:2에 기록해놓았다(‘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안식일 노동 금지법에 걸린다는 것이다(“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출 16:29). 안식일 종료시간은 대충 해 질 때였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왔던 것이다(간절히 사모함 + 애타게 조마조마 기다림).

   인도네시아에서 ‘에디’라는 목사님이 길거리의 한 불량아에게 전도했단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이 누군데요?’라고 그 불량아가 물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 불량아의 얼굴이 금방 분노의 표정으로 바뀌더니 “그 예수, 내가 죽여 버리겠다!”라고 고함을 질러대더란다. 왜냐하면 그 불량아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결국 불량아로 살아가게 된 것인데, 예수님이 아버지와 같다는 말에 질겁했던 것이다. 그럴 때는 꼭 ‘아버지’로만, ‘하나님’으로만, ‘지저스’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된다. ‘의사’라고 ‘해답자’라고 하여도 좋다. 문제는 예수님의 품에 안기도록 친절한 도우미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후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고후 5:14)라고 고백하였다. 바로 이 강권에 사로잡힌 만큼 ‘예수께 데려오니’를 안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멘.

   2) 수종(31)

   ‘그들에게 수종드니라’(διηκονει αυτοις 디에코네이 아우토이스 ‘she began to wait on them’-GN, NIV, Amf- 이것은 상대를 상전으로 대접하고 심부름하는 것인데. 예수님한테만 한 게 아님. 사위와 사둔, 친구들까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① 완치 ② 죽다가 살아났다는 감사 감격이 살아있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용궁 갔다 왔다!’고 표현함. 그런데 ‘수종드니라’의 διακονεω의 미완료형. 계속함. 한번 인사차, 체면상, 옛날에 한 때 잘하였는데... 아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지금도 살아있어서 생각에 영향을 줌으로 이루어지는 자원함이다. 이런 게 예수님과 올바로 연합이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됨이며, 참 기쁨이요, 참된 자유함의 살맛남이고,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장성한 믿음’(히 5:14)임. 아멘.

   눅 23:27절을 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처형장으로 가실 때이다.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55절에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형장, 무덤까지 따라갔던 여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시몬의 장모도 끼어있다고 본다. 반드시 끼어 있었어야 진실하고 진보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도 ‘진실하고 진보하는 믿음’이길 축복한다. 아멘.

   3) 그 말하는 것(34)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ηφιεν λαλειν τα δαιμονια 에피엔 랄레인 타 다이모니아 αφιημι dismiss, send away, expire. “He did not allow the demons to speak”-NKJV- “He would not let the demons say anything. -GN-” 귀신이라면 일체 무시하고 냉정히 추방시키라는 것이다(막 1:25).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광선’ = בִּכְנָפֶיהָ<뻬케나페하 ‘그의 날개들 안에서’ ףנ כ 카나프 = wing of bird, extreme part>. 고대 애굽 사람들은 태양을 그릴 때 여러 날개들이 달린 원으로 그린 것을 반영한 표현. 중요한 사실은 ‘치료하는 광선<날개들>’과 ‘경외믿음’은 짝꿍이라는 것임! 그래서 예수님은 경외신앙을 훼방하는 귀신활동을 일체 허락금지하신 것임. 자주 생각나길 축복함).

   관심을 끄는 간증이다. “남편(김종태 안수집사)은 2001년 6월 양성종양 진단으로 오른쪽 귀 뒤에 머리를 수술 받았는데, 그해 11월에는 당뇨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12월부터 온몸에 피부병으로 밤낮 시달리더니, 해가 바뀌자마자 1월에 지하철에서 넘어져 다리골절수술을 받았지요, 또 4월에는 담석수술을 받았다. 그러더니 또다시 췌장에서 종양이 발견됐다고 9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아직 회복도 되지 않았는데, 그 다음 해(2003) 7월 22일 삼성의료원에서 ‘식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들린 식도암진단은 ‘이제 죽게 됐습니다.”로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국립암센터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보았습니다. “5개월을 넘기기 힘들고, 방사선치료를 해 본들 식도와 기도가 녹아서 더욱 위험해질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의사가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의술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니 이젠 하나님을 의사로 삼을 수밖에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기도원으로 가서 ‘새 생명시대를 살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고 다시 병원을 찾아갔는데, 담당의사가 무척 상기된 얼굴로 우리 부부에게 말했습니다. “암이 사라졌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네요. 기적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 자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간절한 기도는 우리 하나님께서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험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간증에서 ‘간절한 기도’란 ‘경외신앙’으로 울부짖던 간구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외신앙’과 마귀는 상극인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의 골자에 우리의 남은 신앙 삶을 맞추자. 오늘 설교는 예수님이 병 고치는 현장을 보여줌. 우리 예수님은 자신과 연결됨! 완치반응! 귀신을 일체엄금! 치유핵심으로 삼으셨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저울이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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