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8일 설교

June 28, 2020

                                             “나를 따라오너라!” (막 1:16-20 ‘제자를 부그시는 예수님’) 20.6.26.

   인생을 ‘나그네’ ‘마라톤’ ‘일장춘몽’ ‘도박’ 등등으로 표현하지요. 모두 인생과 닮은꼴이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인생을 ‘도박’으로 표현한 것은 승부를 거는 결단을 강조한 말인데, 도박꾼들은 ‘올인’(all in)을 아주 중요시한다. 모든 것을 집어넣는 것, 즉 판돈 전체를 한판승부로 결정짓는 것을 말한다. 인생살이도 크고 작게 한판승부를 하게 되는 처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살이를 20세기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덱거(M. Heidegger 1889~1976)는 ‘피투성’(被投性)과 ‘기투성’(企投性)으로 설명하였다. 피투성이란 ‘이 세상에 내던져지는 존재’를 뜻하는 말로 운명적인 것들 즉 혈연관계나 성별, 국적... 이런 요소들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결정되지요. 이것을 하이덱거는 ‘던져지는 존재’(被投性 입을 피)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인간은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면이 분명히 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그래서 하이덱거는 기투성(企投性 꾀할 기, 기회활용; 배우자 선택, 직업선택, 교회선택... 이런 것은 자기 판단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런 피투성과 기투성을 잘 알고 있었던 라인홀드 니버(1892.6.21~1971.6.1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는 기도를 이렇게 했단다. “오! 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을 나에게 주시옵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주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하루하루를 성실하며 즐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곤란한 일을 당할 때면 평화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소서.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말고 예수님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을 믿게 하셔서, 이 생은 사리에 맞는 행복을, 저 생에서는 다함이 없는 행복을 영원히 누리게 하옵소서.”

   프랑스의 수학자요 종교사상가 파스칼도 ‘팡세’에 이렇게 말해놓았다. “내 인생의 짤막한 시간이 내 앞과 뒤에 연결된 영원 사이에 놓여있는데,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공간이, 나를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는 무한한 공간 속에 놓여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왜 저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가?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놓았는가? 누구의 명령, 누구의 지시로 이 때, 이 장소에 내가 있게 되었는가?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지금, 여기’라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알맞은지 판단해보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예수님께서 어부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보라고 하였더니 이렇게 반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막 1:18).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20). 이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세가 갑자기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지극히 담대히 하라’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셨지만 여호수아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었지 담대하지 못하였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르쳐준 처방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이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철저하게 하는 것(세 가지 = 율법책을 네 입과, 주야로 묵상과, 지켜 행함), 이게 담대해지는 방법이고 평탄과 형통의 비결이라고 우리 하나님이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여호수아서 제1장은 이런 말로 끝마친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 1:16-18). 여호수아가 담대한 모습을 오죽이나 보여주지 못했으면 말 안 들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도 좋다라고 하였겠는가!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59-62. 예수님을 따르는 일 대단한 결단필요! 아무나 못함!).

   한 노숙자가 미국의 대형마트 앞에서 마트용 카트 두 대에 자기 살림살이를 가득 담고 옮기더란다. 노숙자의 살림살이니까 거의 쓰레기 같은 짐들이었다. 그런데 노숙자는 카트 두 대를 동시에 밀어보다가 할 수 없이 한 대를 먼저 가져다 내려놓고, 다시 와서 나머지 한대를 끌고 가더란다.

   우리도 예수님이 보실 때 별로 중요하지 않는 노숙자 짐 같은 것들을 가득 담아 끌고 다니느라고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우리 인생의 내용과 그 목표를 하나님 앞에서 잘 점검해보면 너절한 것들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고 우리의 삶을 니버처럼, 파스칼처럼, 어부 시몬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맞추고 동참하는 결단을 담대히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멘.

   자 그러면 설교본문을 좀 더 살펴보면서 우리 예수님이 제자선발(scouting)을 하시는 그 기준을 배우자.

   1) 던지는(16)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 하느라고 그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 예수님께서 중요시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16절 헬라어 성경에는 Και(그리고)로 시작한다. 이것은 14-15절에서 이어지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문장 중에 대문자로 기록함으로써 굉장히 막중한 사건임을 암시해주는 헬라어 어법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열둘을 세우셨으니”(3:13-14) 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눅 6:12-13).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시몬은 자기 의견을 꺾고 많은 고기를 잡은 후에 제자로 부르셨다고 밝혀놓았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는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났고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자 예수님이 보시고 제자로 선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마가복음은 모두 생략하고 예수님이 특별히 네 사람을 제자로 선발하신 이유를 ‘그물을 던지는’과 ‘그물을 깁는’으로 강조한다. 이 두 단어는 모두 현재형 분사(진행의미)이다. 그리고 ‘깁는’ (καταρτιζοντας, 카타르티조 καταρτιζω. repair, to unite completely, adjust thoroughly. 수리하여 준비를 온전히 마친 것).

   그물을 깁는 것을 예수님은 왜 그렇게 중요하게 보셨는가? 모세(출 3:1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엘리사(왕상 19:19 ‘밭을 가는데’), 아모스(암 7: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사도요한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같이 근무 중이었다. 게으르고, 그 태만을 변명하고, 속이는 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처럼 추방당함!

   2) 되게(17 γινομαι 기노마이)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γινομαι to come into existence, to be create, born, produce) = 실체 :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ζωγρεω 조그레오 to take captive, to take alive<instead of killing). 덜 읽은 감은 떫고! 덜 탄 숯은 수많은 눈물을 흘리게 연기를 낸다!(목사, 장로, 권사라도 봤을 것).

   밤중에 안개로 칠흑같이 캄캄한데 한 군함이 조심스럽게 바다를 항해하였다. 선장은 잔뜩 긴장을 하면서 어둠 속에 바다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보이던 불빛이 그대로 항해를 한다면 충돌할 것 같아보였다. 선장은 충돌을 피하려고 그 불빛 배에게 무선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함장 제레마이어 스미스다. 오버.” 당장 답신이 왔다. “함장은 남쪽방향으로 십도만큼 돌리십시오! 오버.” 함장이 안개 속에서 불빛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다시 답신이 왔다. “스미스 함장님, 저는 일등병 토마스 존슨입니다. 즉각 배를 십오도 남쪽으로 돌리십시오! 오버.” 함장이 즉시 무선을 보냈다. “존슨 일병! 나 스미스 함장이다. 다시 너에게 명령한다. 지금 이 순간 네 항로를 십오도 북쪽으로 돌려!” 일병이 다시 답신을 보냈다. “함장님! 그 배 항로를 지금즉시 이십도 남쪽으로 바꾸십시오! 오버.” 함장이 명령하였다. “존슨 일병, 너를 군법재판에 회부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미합중국의 함장권위로 명령한다. 네 배의 항로를 이십도 북쪽으로 돌리라. 이 배는 군함이다.” 일병이 마지막으로 답신했다. “함장님, 진로를 이십도 남쪽으로 꺾으십시오. 여기는 등대입니다!” 아무리 함장이라도 덜 익으면 막무가내로 등대하고 맞장을 뜬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멘.

   3) 버려두고(18)

   ‘버려두고 따르니라’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그 전에 무엇을 버렸다는 것인가? 세 가지였다. 그물과 배와 아버지인데, 그물과 배는 전문직이요 가업이며 일생사업이었고, 아버지는 부자지간이었다. 전통풍속과 윤리도덕 여론, 생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는 멍에들이었다. 이래서 어렵다!

어느 날 아침, 목사님이 교인들을 태우고 운전하고 가는데 “교인 중에 정말로 어려운 교인에게 성탄절 선물로 500불을 주어라.”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란다. 그런데 그 생각이 성령님의 감동일 수 있다는 마음도 생겼다. 문제는 500불이 그 목사님에게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미적거리다가 새벽에 기도했단다. “하나님, 정말로 제가 500불을 선물하기 원하신다면 주님의 환상으로 확신시켜 주십시오. 아멘.”

그러고 며칠 동안이나 기다려도 하나님의 환상은 없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다른 기도를 드렸지만 홀로 중언부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드디어 성탄절 설교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강한 감동을 주셨다. “종아, 왜 나의 생각을 환상으로 바꿔달라고 하느냐? 너는 처음부터 그 생각이 나의 것인 줄 알고 있지 않았느냐?”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들어도 내 처지와 실력에 맞나 저울질 해보고 보류하기도 하고 심지어 거절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자국을 더듬어보는 기회이길 바란다. 아멘.

   우리는 오늘 설교말씀을 듣는 중에 밤새 기도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제자들을 선발하시는 예수님을 확실히 보게 되었다. 우리 예수님이 중요하게 보시는 제자선발의 기준은 ‘근무 중’과 ‘변화계획’ 그리고 ‘동참결단’이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 삶의 거울이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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