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7일 설교

June 7, 2020

                                                 “같게 하십니까?” (막 1:2-8 ‘복음을 되게 하는 시작’) 20.6.7.

   세계적인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영국 런던의 귀족집안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뛰어난 글재주로 주위의 칭찬을 받으며 성장하면서,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후에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종교학 시험시간에 있었던 일이란다. 시험문제는 가나 혼인잔칫집에서 있었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을 신학적 관점으로 논하라”이었다. 학생들마다 자기생각을 답안지에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한참 후에 시험감독 교수님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 앞에 멈추어 섰다.  그는 아직 한 글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이 학생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답을 작성하지 않는가?”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라고 학생이 대답했다. 교수님은 납득할 수 없었다. 시험을 끝내기 5분 전이었을 때, 강의실에는 교수님과 그 학생뿐이었는데 그 학생은 계속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그 학생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단 한 줄이라도 써둬야 낙제를 면하게 되네.” 그러자 그 학생이 펜을 들고 몇 자 써놓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 학생이 답안지에 써놓았던 말이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다.”(“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답이 최우수 학점을 받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학생이 나중에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 된 바이런이었다고 한다.

   논술시험에서 단 한 줄로 쓴 답안지를 최우수 학점으로 인정했다니 눈물이 핑 돌만큼 부러워진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평가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오늘 설교본문에서 볼 수 있는 세례요한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 닭 무리들 속에 있는 학 한 마리)처럼 단연 돋보이는 가치관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었다.

   오늘 설교본문은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파송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이루어가는 그 순종을 상당히 알차게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설교본문 2절에 많은 암시(hint)가 있다(‘보라’ ιδου< behold 감탄사>,  ‘내 사자’<τον  αγγελον  μου  나의 천사  ‘My messenger’ -NKJV->,   ‘보내노니’  <αποστελλω   I  send,  = 눅 9:1-2,  6:13<αποστολους ‘사도들’ = ‘종’ ‘심부름꾼’ ‘사명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예수님께서도 파송하셨다!>  = 모세 때!<“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 2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말 3:1. = ‘선지자’ ‘예언자’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자’ ‘천사’..... 성경에는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아무튼 우리 하나님은 자기 심부름꾼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언약계획을 성취하시곤 하셨다는 것이니,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언약성취의 법칙이요 방법임).

   성찬예식 때 포도주는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고, 하얀 성찬보는 예수님의 보혈로 이미 씻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이 값진 일을 위하여 파송되는 일꾼을 헬라어성경은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 ‘사도’)라 하고, 그 심부름 자체를 “디아코노니아”(διάκονια 시중, 봉사)라고 하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하며 시중드는 그 심부름꾼’을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내서 ‘목사님’이나 ‘장로님’ ‘교사’라는 ‘직분’(διακονος)을 받고 충성한다면 똑같은 하나님의 일꾼이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을 뿐, 하나님의 일을 거룩하게 성취시키는 사명은 동일하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10- 12, 29). 건강하고 건전한 직분감당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하나님의 복음실현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아멘.

   자 그러면 하나님의 복음실현을 멋지게 이루어가는 세례요한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 자녀 삶의 정답을 찾아내고 챙겨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해보자. 아멘!!!

   1) 곧게(3)

   ‘곧게’(ευθειας 유쎄이아스 straight. = “빗나가지 않음!” 곁길로 빠져서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않는 그러한 순종을 가리킴. = 3절의 ‘주의 길’이고, 2절의 ‘네 길’인데,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직접 와서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인도해가는 것임. = 오늘날 우리의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설교’이고 ‘목회’이며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자체’인 것임).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 ‘곧게’라는 목회활동이 ‘기록된 것과 같이’에 해당하느냐 이다(‘기록된 것과 같이’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according to it is written, 완료 수동태, 하나님께서 기록해 놓으신 것과 일치함!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이 ‘곧게’(‘주의 길’의 일치함! ‘네 길’이 ‘심히 좋았더라’)가 ‘복음의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이라고 마가는 마가복음의 첫 단추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교회 식당에 그려놓은 벽화이다.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라는 말씀을 하실 때, 열두 제자들이 놀란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다빈치는 예수님을 중앙에 앉아 계시게 하고, 양쪽에 제자들이 여섯 명씩 앉아있는 구도로 그림을 그려놓고, 예수님은 손으로 은잔을 들고 계시게 했단다. 그림을 다 완성하고, 다빈치는 절친한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잘 된 부분과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에 대한 소감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단다. 그 친구가 그림을 보더니 “와! 최고로 걸작품이구만. 예수님이 손으로 들고 계신 이 은잔은 어찌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눈을 뗄 수 없는데.....”라고 칭찬일색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이 손으로 들고 계셨던 그 은잔을 다빈치가 당장 지워버렸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인간의 시선을 사로잡아서는 안 되며, 예수님이 중심이고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더란다. 올바르지 않는가! 예수님 외에 그 어느 것도 우리의 판단과 생활에서 중요할 수 없다. 이게 세례요한이 보여준 ‘곧게’인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곧게’ 신앙생활을 해 가길 축복한다. 아멘.

   2) 죄 사함(4)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이 말씀이 보여주는 게 금방 그림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그려졌나요? 하나님의 언약실현에 빗나간 자신의 생각과 행위나 생활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하나님께 실토하여 용서받는 그 실제를 가리킨다. 이것을 예수교 전문용어로 ‘회개’라고 한다. 손을 들고 떨면서 하든, 고함치면서 하든, 울면서 하든..... 다 방법들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회개가 ‘곧게’의 내용이면서 복음의 시작(αρχη 핵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사도교회가 집사 7명을 뽑았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스데반이었고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하였다. 예수교의 최초 순교자요 평신도로서 최초 순교자였다. 예수님을 거절하던 이스라엘사람들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스데반이 죽어갈 때 그 모습을 성경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 56. = ‘하열인 성가대’라고 작명함).

   그런데 스데반이 순교를 각오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빗나간 신앙생활을 지적했던 핵심은 이것이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도다.’(행 7:51). 성령님의 보혜사 되심을 소홀히 하다가 무시하며 거절했던 것이다! 아멘.

   3) 전파(6-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설교하며 성경공부하고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6절은 세례 요한의 의식주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데 많이 보이지요? 한마디로 ‘들사람’이고, ‘머슴’이며, 요즘 TV프로로 방송되는 ‘나는 자연인이다’와 비슷하다. 아무튼 세상풍조와 무관하였고, 세례 요한은 설교내용이나 전도핵심과 믿음생활에만 충실하였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복음의 시작’이기 때문이었지요. 아멘!!

   로마의 바티칸에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이 있다. 수 백 년 전에 어떻게 그토록 화려하고 웅장한 예술품 성전을 지었는지 감탄할 뿐이다. 그런데 로마시 외곽에 사도시대 이후에 수십m 지하 굴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카타콤(catacomb)이 있다. 카타콤을 안내하던 관광가이드가 이렇게 소개하더란다. “여러분은 바티칸에서 호화찬란한 성 베드로 성당을 보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하이지만 가장 순결한 순교신앙의 터전 위에 세워진 참 예배당에 오셨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은 건축헌금을 마련하느라고 면죄부를 팔았고 그래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종교개혁신앙인들을 만들었지요. 베드로 성당의 화려한 외모중심이냐? 저 카타콤의 지하교회처럼 순결한 순교를 속 내용으로 삼는 신앙이냐? 세례 요한은 외모보다 속 내용 중심이었다. 이게 복음시작을 좌우하기 때문이었다. 자주 생각나 저와 여러분의 신앙 삶을 만들어가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우리 자신의 속사람을 심각하게 긴장시켰던 그 찔림에 우리의 신앙관을 맞추자. 복음신앙 삶의 첫 단추는 ‘곧게’중심이요, ‘죄 처리’중심이며, ‘속 내용’중심이다. 해당하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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