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설교

May 31, 2020

                                          “복음의 시작을 아십니까?” (막 1:1 ‘마가복음의 푯대’) 20.5.31.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기쁨과 환호 가운데 브라질이 우승하고 독일이 준우승하였지요, 그때 독일선수 한 명은 브라질 선수의 등에 “100% Jesus I Love You”(예수님, 나는 당신을 100% 사랑합니다)라고 써주며 함께 기뻐해주었단다. 그리고 브라질선수 ‘카카’는 “I belong to JESUS.”(나는 예수님께 소속한 선수입니다.)라고 유니폼에 써 놓은 말을 보여주면서 환호하더란다. 카카는 이탈리아 AC밀란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뛰었는데, 2013년 카카가 소속해 있던 AC 밀란이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그때도 카카는 입고 있던 유니폼에 새겨진 “I belong to JESUS.”라는 말을 보여주며 환호하며 날뛰었단다.

   고국 TV 프로그램에서 카카의 삶을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자막이 나왔다고 한다. “He thanks God and we thank God for his talent.”(카카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는 카카에게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카카 선수가 자주 했던 말이란다. “저는 축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축구를 잘하게 됐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저에게 그 은사를 주셨어요.”라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주님께 소속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축구선수 카카만 그럴까?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소속한 성도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칼뱅은 “모든 직업이 성직”이라고 설교하였다. 목회자만 성직자인 게 아니라 회사원이나 가정주부도 하나님이 보실 때 거룩한 일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마르틴 루터는 “직장이 하나님의 가면”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과 손발과 생각을 가지고 엿새 동안에 일터에서 작업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러하단다. “예수님을 믿고 싶지만 예수님처럼 살기는 싫다.” 그래서 이런 무시를 노상 당하지요. “교회를 다녀도 달라진 것도 없던데....” 이 지적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요? 예수님을 믿고 복도 받고 위안도 받으며 천국을 가고 싶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그렇게 순종하고 충성하며 헌신하는 것은 주일예배 정도로 끝내고 싶다는 거다. 축복은 누리되 충성과 헌신은 피하겠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비난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순수한 진짜 그리스도인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인의 본질 그 자체를 밝혀가는 성경책이 있다. 마가복음이다. 우리는 오늘부터 매주일 진짜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함께 확인해 보고 우리자신의 신앙 삶과 비교하게 될 텐데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아멘.

   오늘 설교본문은 단 한 문장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다. 원문은 ‘이라’가 없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소유격이 3<6>개나 있음. 서술문장이기보다 제목의 효과를 주는 시작구절임). 너무도 짧아서 여기에 무슨 선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을꼬? 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실상은 마가가 야심차게 써 놓은 마가복음의 머리말이다. 머리말은 그 책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설명할 내용을 그 배경이나 방향, 목적, 구성방식 등을 간략하게 밝혀놓은 말이다. 그래서 머리말이 서론이라면 꼬리말은 결론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설교본문 마가복음의 첫 절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저와 여러분이 지금 먼저 할 일은 마가복음이라는 큰 산 전체를 한 번 둘러보는 것이다. 그래야 마가복음에 대한 터무니없는 착각과 혼란을 예방하게 된다. 마치 ‘남대문에 문턱이 있다고 우겨대는’ 그러한 옹고집을 없애자는 것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이라는 성경에는 ‘마가복음’이라는 말이 없다. 헬라어 원어성경에는 ‘KAΤA ΜAΡKΟΝ’ (카타 마르콘, ‘마가에 의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어성경은 그냥 ‘MARK’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기쁜 소식’을 의미하는 단어(Gospel)를 첨가하여 ‘The Gospel According To MARK’(마가에 따른 복음)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마가가 전하여준 복음을 기록해 놓은 책이 마가복음인 것이다.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한다면 마가복음은 마가가 작심하고 밝혀놓은 복음에 대한 책이다.

 ‘총명’(聰明)의 총은 ‘귀 밝은 총’ 자이고, 명은 자신의 말과 의견을 내세우기 이전에 남의 얘기를 잘 듣고 밝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세종대왕이 그랬다. 세종은 그의 아버지 태종 때 수많은 신하들이 권력투쟁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세종의 두 형은 골치 아픈 황제자리를 내던졌다. 맏형은 미친 척했고, 둘째 형은 중이 되었다. 세종이 선택한 통치는 ‘강압적인 개혁보다 인간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에 기반을 둔 동고동락(= 與民同樂)이었다.

 황희는 애초에 태종의 사람이었고 양녕대군을 황제로 옹위했다. 그래서 세종은 황희의 청렴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시자를 붙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황희의 충직함을 얼마나 잘 알고 신임했으면, 황희를 6조의 판서를 모두 역임하게 했고, 20여 년을 정승의 자리에 앉혔겠는가! 그런데 황희는 평생 세종의 정치적인 후원자이자 스승으로 묵묵한 신하였단다. 또 세종은 통치기간 동안 강연(임금 앞에서 경서를 강론함)을 1,898회 했단다(태종 이방원은 30회 정도였음!). 세종2년에 집현전을 싱크탱크로 설립하여 37년간 100여명의 학사를 배출하면서 서적의 수집 편찬, 왕의 정책자문, 학문토론을 수행했단다.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기반으로 올바름을 탐구함)는 세종대왕이 평생 실천한 이상이었다고 한다. 우리도 세종대왕처럼 평생 실사구시로 신앙생활을 해보자!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바로 마가복음에 그 정답들만 가득 담겨져 있다. 1절부터 찾아보자.

   1)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ὑιου θεου 휘우 데우 1:1, 3:11, 5:7, 12:6, 14:61, 15:39. 하나님의 음성<1:11, 9:7 = 마가복음의 주제로 강조했음>. = ‘마가의 기독론’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그 당시 로마문화의 배경인 ‘아들’ 개념을 절묘하게 융합(融合)시킨 표현(이스라엘의 메시야 대망신앙 + 위대한 영웅을 초월적 존재로 ‘신의 아들’로 인식하였던 로마인). 따라서 이 용어는 이방인 로마인들에게 일단 별 무리 없이 예수님을 유일신 메시야(구세주)로 소개하는 명품 아이디어라는 것!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하나님의 자녀 삶의 첫 걸음마이자 본질핵심이기 때문이다. 최고로 칭송받는 신앙고백이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마 16:15-19. 3가지는 모두 대단함)

   의사가 수술 후에 회복한 여성 환자의 침대 옆에 서 있는데, 그녀의 입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의 뺨에 암세포가 번져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경 한 가닥을 절단했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옆에 서서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환자가 물었다. “제 입은 이런 모습으로 평생 동안 살아야 하나요?” “끊어진 신경을 살릴 수 없으니까요.” 환자는 말없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때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돌아간 입보다 내 아내가 훨씬 귀하다구!” 그러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춰주더란다. 그 남편은 눈을 만족시키는 외모보다 속 내용과 의미를 중요시할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도 속 내용과 의미를 중요시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정통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2)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라고 밝혀놓은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ιησου χριστου 예수 크리스투, 소유격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마가가 기록한 내용은 바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사건들이었다. 여기서 ‘예수’는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준 것이다(마 1:21). 그리고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메시야’ = ‘기름부음을 받은 자’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된 직분을 주어 보내셨음을 강조한 것,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야를 신성<神性>으로 설명한 것).

   ‘복음’(ευαγγελιον 유앙겔리온 Gospel 원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 베푸는 보상’이었는데, 점차 ‘좋은 소식’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천국비유와 치유, 제자훈련, 십자가 죽으심, 부활승천)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베풀어 주시는 구원(구출, 구제)을 의미하였다. 마가가 증언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삶 그 자체가 기쁜 소식이라는 거다. 이러한 복음증언은 그 당시 파격적인 선포였다. 하나님이 보실 때 하늘 문을 열고 보실 만큼 올바른 정통출현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 아닌 열심이 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4-17. 예배가 장사질로 둔갑할 수 있다!).

   3) 시작

   “시작이라”(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는 헬라어성경엔 첫 시작하는 말이다. 그런데 유대인 2세를 위하여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LXX)이라고 하는데 ‘70인역’에는 ‘태초에’<εν αρχη 엔 아르케 = 창 1:1>라고 번역했음. 창세기 1:1과 마가복음 1:1은 똑같은 ‘태초’이고 똑같은 ‘시작’이며 창조만큼 중요하다는 뜻임. 창세기 1:1이나 막 1:1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기원의 시작, 핵심, 곧 복된 소식의 출발점을 밝힌다는 팡파르이다. 또 요 1:1의 ‘태초에’(Ἐν αρχη)란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우주를 창조한 바로 그분이 인간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가르치시고 고치시며 죽음 및 부활사건은 죄인구원의 핵심이고 이게 복된 소식의 근본이며 천지창조 태초에 이미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기 오래 전, 모세 때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와 하나님백성으로 살게 하셨는데 그게 사실상 복음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자구적 의미에 매달리다가 복음 누림에 실패함으로 모세율법과 계명은 복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죽음소식으로 변질됐다. 애석한 일!

   베트남이 통일된 다음 ‘보트피플’이란 난민들이 많았다. 베트남이 공산화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났던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밤중에 탈출하려고 배를 타고 밤새 노를 저었다. 아침에 날이 밝아오자 그들은 경악하였단다. 배는 항구를 떠난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노를 젓었지만 배를 묶어 놓았던 닻줄을 끊지 않은 탓에 그 항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복음 삶의 시작도 복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게 하는, 이전의 모세율법과 계명에 자구적 매달리기와 먼저 단절하는 것이다. 복음시작의 핵심은 아기가 출생할 때 곧바로 탯줄부터 끊어버림 같이 옛사람을 끊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반드시 먼저 옛사람과 단절함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의 뼈대를 간추리자. 마가가 밝히는 올바른 예수교는 3가지를 갖추게 된단다. 하나님아들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누리고! 예수님의 삶과 연장선이며! 하나님의 태초계획인 언약성취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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