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일 설교

May 3, 2020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지게!” (스 10:6-15 ‘하나님의 진노’) 20.5.3.

   지난 4월 30일이 석가탄신일이었다. 이런 날은 대체로 이름난 중들이 올바른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훈계하는데 그것을 불교전문용어로 ‘법어’(法語)라고 한다. 그런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4월 30일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및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의 입재식(入齋式;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사전행사) 때, 법어 중에 강조한 핵심내용은 ‘각성’(覺醒)과 ‘절제’(節制)였는데, 그날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입재식 때 총무원장 원행은 이런 말을 했단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무명(無明ㆍ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상태)을 깨우쳐준 건 코로나19”인데, “인간의 이익을 위한 뭇 생명 생존의 위협 및 과도한 욕심과 지나친 소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제대로 알게 해줬다”라고 지적하면서 “코로나19는 탐진치(貪嗔癡)의 삼독(三毒)을 가르쳐준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탐진치(貪嗔癡)의 삼독(三毒)’을 설명하기를 “코로나 와중에도 꽃구경을 가야겠다는 탐심(貪心), 학교가 문을 닫고 가족 모두가 가정에 머물러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화나는 마음(진심ㆍ嗔心), ‘사회적 거리두기’를 게을리 하고 과도하게 불필요한 접촉을 하거나, 의학적 학문과 종교적 신념의 영역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치심ㆍ癡心)인데, 이 세 가지의 어리석음이 코로나19를 주변 확산으로 이었다.”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총무원장 원행은 “연등에 불을 켜고 어둠을 밝히는 것은 내 마음속의 어리석음과 무명(無明)을 밝히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이제 일상생활을 그런대로 가능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게 됐으니 일천 만 명이 연등을 한 개씩 더한다면 그 공덕으로 코로나라는 괴로움의 세상을 꽃동산으로 바꿀 수 있는 원력이 될 것”이라고 설득시키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자. 일천 만 명이 연등을 한 개씩 더 매달아놓는 그 정성 때문에 과연 코로나19의 괴로움이 꽃동산 세상으로 바꿔질까? 연등 일천 만 개로 마술을 부리자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의학적 학문과 종교적 신념의 영역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그 어리석음(치심ㆍ癡心) 짓을 바로 연등달기로 해보자고 모순된 법어를 용감하게 공개적으로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러분, 뭇 청중을 앞에 놓고 화려한 연단에 올라가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다 ‘진리의 선포’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오늘 설교본문을 살펴보면 올바른 진리선포를 목격하게 한다. 지금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6-7.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바로 이 심각한 상황을 제사장 에스라가 해결해가는 현장을 기록해 놓은 게 오늘 설교본문임. 물도 마시지 아니할 정도라면 얼마나 극심한 고통에 빠져있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음. 에스라가 물도 마시지 않고 철저히 금식하던 그 장소를 보면 충분히 공감하게 됨<‘여호하난의 방’ 6>은 은밀한 골방을 의미해 주고 있음. 아직 실감하지 못한 분들은 금식기도 하던 때를 살펴보자 ;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울며 기도할 때 많은 백성이 통곡하였고, 남녀 어린 아이들까지 모여들었고<1>. 그러고 이방여자 아내들과 자식들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기로<3> 했는데, 바로 그럴 때! 제사장 에스라는 골방금식기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저와 여러분은 본격적인 신앙개혁을 위하여 제사장 에스라가 선택했던 방법이, 철저한 금식기도였음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오늘 설교 중에 우리 모두 반드시 챙겨 담아야 하는 가르침이다. 올바로 되는 신앙개혁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본질이요 핵심동력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그 실제이기 때문이다.

   올바로 된 부활신앙생활은 당연히 ‘평강 삶’이다. 부활하신 직후에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와서 하셨던 첫 마디는 평강이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21) 그 당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평강의 반대개념이었다. 평강을 꺾고, 작아지고 식어지게 하는 환란자체였다. 그런데도 그 환란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기뻐하였다고 했다. 이게 진정한 은혜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2-4)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4: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밝혀놓았다.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탐진치(貪嗔癡)의 삼독(三毒)’ 중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자들처럼 두려움과 근심걱정, 초조함과 좌절감 등에서 벗어나려고 연등 달기를 할 게 아니라 ‘평강’(샬롬 ;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위로와 안정, 승리, 강건함, 번영...) 삶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자신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근심걱정, 의심과 초조함, 낙심 등등 때문에 어깨가 쳐지는 게 사실이라면 오늘 설교본문에서 보여주는 제사장 에스라를 좀 자세히 주목하면서 근심 끊기를 깨닫고 우리 주님이 바라셨던 평강생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를 저와 여러분의 실제 삶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아멘!!!

   1) 성전 앞(9)

   지금 함께 읽어본 말씀은 조금 꼼꼼하게 확인하여 볼 사실이 네 가지나 된다. 그것은 ① ‘삼일 내’ ② ‘아홉째 달 이십일’ ③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④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인데, 공통점은 절대순종(처절한 복종)이었다(7-8. ‘공포하기를’ ‘삼일 내’) ‘아홉째 달’은 12월에 해당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추운 때였고, 폭우성 우기였다. 그렇다면 ‘삼일 내’로 모이는 것이나 성전 앞 광장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 핑계거리였다. 더구나 ‘떨고 있더니’의 이유 중 하나를 ‘이 일’이라고 밝혀놓았는데, ‘이 일’은 이방인과 결혼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렇다면 철저한 죄 시인을 잘 말해준다. 온갖 방해나 핑계, 변명을 제치고 솔직하게 죄를 시인할 때 우리 하나님은 참된 회개로 받아주신다.

   같은 병이라도 물을 담으면 ‘물병’, 꽃을 담으면 ‘꽃병’, 꿀을 담으면 ‘꿀병’이라고 부른다. 통도 물을 담으면 ‘물통’,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지요. 우리 사람의 ‘마음’도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인격자가 되기도 하고, 천덕꾸러기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즉 불평과 탐욕, 시기를 채워두면 욕심쟁이, 심술꾸러기가 되고, 믿음과 사랑, 소망, 감사, 겸손, 등을 담아두면, 인간미를 갖춘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을 담아놓느냐 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기보다 오직 ‘나 자신’에게 있다. 그렇다면 마음에 무엇을 담아놓을 것인가? 산 믿음과 산 사랑, 산 소망, 산 감사, 산 겸손을 내 마음 판에 새겨놓고 이웃에게도 흘러넘치며 살아가시기 축복한다. 그러려면 예배와 기도, 성경읽기, 성령님께 감동감화를 올바로 하시길 축복한다. 아멘.

   2) 마땅히(12)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 이 말씀은 설교의 생활화를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설명하면 반영이요. 순종이지요. 현대 교인들은 ‘설교듣기’와 ‘설교 들어보기’를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이렇게 혼내주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설교 들어보기’로 끝나면 복과 관계없어진다는 것이다.

   셀프 주유소는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먼저 결제를 하고 스스로 기름을 넣는 주유소이다. 주유소 직원이 기름을 넣어주지 않기 때문에 기름 값이 조금 싸다. 그런데 기름을 다 넣고 나면 영수증이 인쇄돼 나오는데, 바로 그 순간에 기계에서 다급하게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나온다. “영수증이 나오는 중이니 잡아당기지 마세요.”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영수증이 전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영수증이 출력되는 시간은 10초 정도 된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잘 나오고 있는 영수증을 억지로 잡아챈다. 그래서 기계가 자주 고장 나니까 안내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해주는 소망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성취를 기다리는 것이다. 불평하지 않고, 조급함도 없이, 차분하게 믿음생활을 하는 게 소망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이런 믿음생활은 ‘설교 듣기’라야 가능해진다. ‘설교 알아듣기’를 제대로 하여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기를 축복한다. 아멘.

   3) 모든 사람들이(9)

   ‘모든 사람들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이 말씀이 웅변해주는 가르침을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요. ‘합심’ ‘하나 됨’ ‘협력공동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말 많고 분쟁을 잘하던 고린도교회에 첫 마디부터 이런 강권을 하였지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모나코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다.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데 인구는 약 3만8천 명 주요산업이 관광업인지라 유럽에서 휴양지로 손꼽힌단다. 국민들은 음악을 사랑하며 범죄 하지 않는 평화로운 심성이기에, 특히 이 나라의 국립교향악단은 유명하단다.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불러서 온 국민과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하는데 그 교향악단의 단원은 무려 85명(?)뿐이란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군인은 82명이다. 육해공군을 합친 수보다 교향악단의 단원 수가 더 많다. 사람들에게 평화공동체를 이루어주는 것은 무력보다, 아름다운 음악이 더 낫다는 깨우침을 잘 알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모나코 국민이라는 것이다. 바울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라고 에베소서 6장에 기록해놓았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나 자신의 신앙양심을 흔들어놓았던 그것을 다시 챙기자.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려고 죄 회개현장을 목격하게 해줬다. 많은 핑계 속에 성전 앞에서! 설교대로! 합심하여!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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