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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6일 설교

힘써 행할 바는?” (스 10:1-5 ‘기도에 동참함) 20.4.26.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뉴스는 날마다 쏟아지고 있지요.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우리나라를 ‘방역 모범국가’이라고 칭찬일색이다. 미국CNN, 영국BBC, 독일슈피겔 등 나라밖 외신들은 공통적으로 대한민국은 국민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투명한 정보공개와 전수검사 방식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확진자 1만 명이 넘는 국가들 중 신규확진자를 두 자릿수까지 떨어뜨린 나라는 중국과 오스트리아, 한국뿐이다. 신규확진자 수만 따지면 세 국가는 모두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단 신천지가 무지한 고집으로 확진자 수를 증폭시켰던 아쉬움을 남겼고, 중국은 총 확진자가 8만 명을 돌파한 이후에 확진자 억제를 이루어냈다.

그런데 방역과정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나라는 중국이었지만, 중국은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지요. 바이러스 발원지 우한에서 중국정부가 초기대응 때 은폐·축소하며 ‘감염지역 전면봉쇄’로 확진자를 억제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 ‘팬데믹’(전 세계로 확산감염)하게 됐다는 ‘책임론’은 세계적인 여론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중국에게 코로나19의 시초를 투명하게 밝힐 것을 압박하고 있고, 실질적인 보상을 하라고 소송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코로나19 책임문제로 중국정부를 상대로 약 6조 달러(약 7300조 원)규모의 민간소송을 제기하였고, 미주리주는 미국의 주 정부 중 최초로 중국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인도의 변호사협회도 중국을 유엔인권 이사회에 제소하고 20조 달러(약 2경 5천조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방역평가에 대하여 중국과 180도 다르게 ‘극찬’을 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달리 민주적인 사회체제 속에 투명하게 코로나19 방역을 해냄으로 성공한 사례라서 더욱 집중조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성공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우수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속임수로 ‘팬데믹’(전 세계로 확산 감염)이라는 엄청난 국제적 재앙을 일으키면서 코로나19 방역에 자기만 성공하였고, 대한민국은 오히려 ‘팬데믹’을 예방시키는 선례를 보여주면서 성공하였기에 모범이라는 것이다.

모범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라서 충분히 돋보이게 할 필요가 있지요. 오늘 설교본문도 아주 모범적으로 기도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3-4. ‘당신이 주장할 일’ = 구체적으로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였음. 그렇다면 실제로 일생일대의 문제였음!). 우리 자신의 가정이 그러한 일을 당했다면 어떠하였겠는가? 그런데 설교본문은 중요한 단서를 밝히 보여주고 있다. =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בַּעֲצַת 바아차트 advice, counsel, plan.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게 하는 가르침이나 계획, 기준인데, ≠ 성경글자나 문장. 그러면 뭔가? 성경의 글자나 문장이 설명해주는 그것임! 의미, 즉 행할 바임. 이 행할 바를 알려주는 것을 ‘설교’라고도 함).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범죄를 마구 짓고 있는 사실을 제사장 에스라가 알고 ‘울며 기도하고 죄를 자복할 때’ 결국 설교대로 삶을 고치자고 건의한 일을 기록한 것이 오늘 설교본문이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존귀한 것은 틀림없다.

새는 주로 자기주변만 자세히 보는 새와 멀리까지 정확하게 보는 새로 구분할 수 있다. 참새나 비둘기는 전자에 속하고 후자는 독수리나 매이다. 사람도 자기주변만 자세히 보고 일을 처리할 때 ‘근시안적’ 이라고 하여 무시를 당한다. 사람이 사물의 전후정황을 보지 못할 때 단순한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실제로 모든 문제는 항상 흐름 속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흐름 그 자체만 판단하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다. 그 사물의 정황 속에서 주체와 주변 관계성을 알고 또 지향점을 알아보아야 한다. 현상만 보면 자기주변의 먹이와 위험만 보는 새와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각을 주신다(‘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동물은 탁월한 후각과 민첩성을 가졌지만 단지 생존을 위한 조건반사에 따라 자기먹이와 안전 위주로 살아간다. 그래서 동물은 항상 지금, 이곳이 중요하다. 이리저리 눈을 돌려 잘 살피지만 지금 여기서 자기보호 때문이다. 동물은 몇 천 년 동안 살아왔지만 그들의 생애는 먹고, 자고, 싸고, 짝짓기하고, 태어나고, 키우고... 그게 전부였다. 그들의 생활은 반복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일관하였다. 인간도 동물이지만 동물을 넘어서는 그 위대함은 사고한다는 점에 있다. 사람은 몇 백 년 이전을 볼 수 있고, 또 몇 십 년 이후를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너의 문제를 보고 나의 문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고, 나와 내 편만을 위하지 않고 우리(공동영역)를 만들어 살아간다. 만약 누군가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음식을 먹으며 많이 가진 것만 축복이요 은혜라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는 아직 동물의 본능을 벗어나지 못한 이요. 성경을 더 배우고 반드시 중생해야 할 교인인 것이다.

자 그러면 설교본문이 보여주는 모범적인 기도사례의 현장을 좀 더 살펴보면서 꼭 배울 것을 챙기자.

1) 통곡(1)

‘통곡하매’ 통곡을 누가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대단히 중요하다. 누구인가? 제사장 에스라가 아니라 놀랍게도 많은 백성이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이렇게 대답해주고 있다. 제사장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 하였기 때문이라고. 조금도 착오할 수 없는 선명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챙겨야할 교훈은 동참이다. 즉 제사장 + 백성(제사장 기도 + 백성 통곡)은 모범이요 아름다움이며 본받을 점이라는 것이다. 아멘.

어느 대학식당에서 일하는 성실파 아주머니는 좋은 성격에 친절하기까지 해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식사시간에 쟁반에 음식을 담아 나르다가 그만 쟁반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웅성거리더니 곧바로 아주머니의 실수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어떤 학생은 ‘나이스!’ 하며 영화감독이 연기를 잘했을 때 보내는 사인흉내를 내기도 하였다. 식당관리인이 뛰어왔다. 그때, 쏟은 음식을 손으로 쟁반에 쓸어 담고 있던 아주머니가 일어서서 울먹이며 말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내 손에 힘이 다 빠져나갔나 봐요. 오늘 아침에 군대 간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받았거든요. 내 아들도 여러분 같은 대학3학년 때 군대에 갔답니다.”

식당 안은 갑자기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는데, 여학생들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몇몇 남학생들이 아주머니에게 뛰어갔다. “어머니... 그런 아픔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이제 저희들이 ‘어머니!’로 대하겠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易我思之 易汝思之 易神思之) 하면 농담 웃음판이 공감감동으로 한 마음 되고 얼마든지 모자지간으로 바꿔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지사지가 동참을 만들고 통곡을 이루기 때문에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아멘.

2) 큰 무리(1)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이 큰 무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남녀와 어린 아이’로 되어 있다. 남녀는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린 아이’는 철저함을 충분히 웅변해 준다. 특히 백성의 ‘통곡하다’와 에스라의 ‘울며’는 모두 בכה(바카 weep, mourn, lament, droop)’로 같은 말이었다. 즉 신앙지도자의 회개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회개가 신앙개혁을 위하여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다.

많이 기도해도 응답이 흐지부지한 이유를 아는가? 기도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라는 찬송가처럼 ‘저 높은 곳’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가 무거우면 솟구쳐 올라가는데 많은 방해를 받게 되지요. 즉 탐욕과 이기주의, 불평과 불만, 근심과 걱정, 출세와 권세, 의심과 불신... 이런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면 엄청난 하중을 준다.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기도는 직선으로 솟아오른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상달에 맞추세요. 세상적인 축복이나 성공, 자랑거리는 기도응답을 적어지게 한다.

북극광(北極光 Northern lights, 오로라)은 대기의 발광현상인데 찰란하고 황홀하기 그지없단다. 태양에 거대한 폭발현상이 일어날 때 다량의 입자들이 지구의 초고층 대기에서 공기 분자와의 충돌하여 빛을 내는 현상이란다. 그래서 지구의 자기극(磁氣極)에 가까운 북반구와 남반구의 극지방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극광(極光)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점은 극광을 볼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곳(관계)이 별도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에스라 앞에 모인 통곡 무리가 그랬다는 것이다. 우리도 통곡무리에 가담하길 축복한다. 아멘.

3) 소망(2)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מִקְוֶה 미크웨 expectation, collection, hope. קוה 카바 to twist, bind, to be strong, confide, wait for. =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삼상 15:22->. 제사보다 낫은 순종이 소망임!).

서양에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진주를 ‘Frozen Tears’ (얼어붙은 눈물)라고 불렀다. 딸이 시집살이하다가 속상해질 때, 조개가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내는 고난을 생각하면서 참아내라는 뜻이었다. 진주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다 조개의 몸속에 모래가 들어와 조갯살 속에 박히면 그 고통은 환장한다. 그럴 때 조개는 ‘nacre’(진주층)’라는 특수생명 즙을 짜내어 모래알을 덮고 싸기 시작한단다. 그렇게 몇 년을 계속하면 바로 그것을 진주라고 부른다.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생활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모래들이 들어오곤 한다. 그것을 예수교 전문용어로 연단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생길 때 ‘내가 이제 진주를 만들게 되나 보다!’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오늘 내가 흘리는 눈물이 훗날 값진 진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라고 성경은 말해 준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이 가리켜주는 믿음신호등을 확인해 보자. 오늘 설교는 기도에 동참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 에스라의 기도에 온 백성이 동참한 일이었다. 통곡하면서 동참하였고, 큰 무리가 동참하였으며, 소망과 연결시키면서 동참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19 고통을 바로 우리가 동참기회로 활용할 수 있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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