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5일 설교

April 11, 2020

                                            “믿음을 행동하자!” (스 8:24-32 ‘임마누엘 신앙의 실제’) 20.4.5.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해외에서는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우간다에서는 매질하고, 헝가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군인들이 총 들고 순찰, 필리핀 사살 명령 허가. 케냐에서 체류탄 발사하고 케냐 수도 나이로비 총살까지... 요즘 갑자기 유행어처럼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사회적 거리’인데, 이 말은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1914~ 2009)이라는 교수가 사용하기 시작한 전문 학술용어인데도 일반 통용어인양 ‘IMF’만큼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이다.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를 연구하여 거리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인간관계를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 ; 45.7cm미만, 가족, 애인관계),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 45.7cm~1.2m 악수거리, 친구),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Zone ; 2m~3.8m, 모임의 거리, 제3자를 개입시킬 수 있는 관계)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 ; 3.8m이상, 강연, 연설, 관람 공간), 이렇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는데 문화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고 분석하였다.

   사람을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 사이)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거리에 따라 생기는 공감(말 그대로 상대와 같은<共> 느낌<感>을 가지게 됨)이 ‘소통’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어떤 모임의 한 회원이 어느 날 갑자기 친밀한 거리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부인을 상대한다면 그게 간통이고 이혼사건으로 번지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은 이 거리감각을 잘 이용하여 각자 자기의 ‘도망거리’로 삼고 살아간다고 한다. 즉 사자가 나타났을 때 사슴처럼 생긴 톰슨가젤과 코뿔소는 도망치는 그 거리가 각각 다른데, 그것은 각각 자기 생명에 위험을 느낄 때 도망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도망거리가 좁혀올수록 약한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그래서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뀌고, 심하면 생식의 변고까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물들은 짝짓기나 집짓기는 불가능하게 되고, 그들의 공동체 조직도 붕괴되는 비극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에드워드 홀이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적어도 인간거리를 하나 더 추가했을 것이다. 바로 인격무시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상대를 ‘투명인간’으로 속단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민들을 대하는 습관이다. ‘쌍놈의식’으로 천한 직업인들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인데, 사람을 봐도 못 본 척하고, 관심 자체가 없고, 아예 사람이 없는 것으로 무시해버린다.

   오늘 설교본문도 평소에 인간거리를 잘 유지하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공감하게 해주고 있다(30). ‘받으니라.’(וְקִבְּלוּ 웨킵벨루 קבל 키벨 to receive, take, undertake. 히브리어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넘겨받았다’ -새 번역-, ‘인수하였다’ -공동번역- ‘take charge of’ -GN-). 설교본문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떠맡아 운반할 물건들은 ‘은과 금과 그릇’이라고 하였다. 물론 사용용도나 그 의미나 가치로도 귀하고 값진 것이었지요. 그런데 무려 4개월 동안이나 걸어가는 포로귀환 길이었다. 개인 짐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엄청 부담스런 책임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동참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설교본문 30절에서 ‘받으니라.’라는 말씀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바로 그 믿음을 넉넉하게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31. ‘하나님의 손이 도우사... 건지신지라.’ 즉 ‘친밀한 거리’임). 아멘.

   아도니람 저드슨(1788-1850)은 미국 해외선교사 중 최초였는데 ‘버마의 사도’로 평가받았단다. 그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3살 때 책을 읽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도 유창하게 읽었으며, 16살 때 건전한 기독교 브라운대학에 전학하였다. 하지만 그는 논쟁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교회를 떠났고 뉴욕극단에 빠져 배우가 됐단다. 어느 날 밤 여관에서 옛 논쟁 좋아하는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결국 그해 연말에 회개하고 신학생이 되었단다. 그리고 결혼한 지 12일 만에 선교사로 떠나 미얀마 선교에 전념하였다. 미얀마는 선교금지국가라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궁핍을 당하다 결국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가 차례로 열병으로 죽었을 때 결혼한 지 14년 때였다. 그런데도 저드슨 선교사는 1840년 10월 23년 만에 미얀마어 성경번역 66권을 완성했단다. 그리고 폐렴과 이질로 고생하다가 61세(1849)로 일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저드슨이 선교생활 말년에 보스톤에서 만여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을 했단다. 그는 너무 허약해 부축을 받아 연단에 올라왔고, 겨우 의자에 앉자 연설했는데 사람들은 움직이는 그의 입술만 봤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단다. 하지만 청중들은 울기 시작했고, 그날 청년들 21명이 앞으로 나와서, “버마로 가서 저드슨을 대신하여 전도하자!”라고 헌신을 선언했단다.

   저드슨이 자주 했던 말이란다. “진심으로 기도하면, 어느 때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응답은 온다.” 또 저드슨이 죽을 때 남긴 말이다. “나는 학교 문을 나서는 아이처럼 기쁘게 갑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너무도 강함을 느끼고 있네요.” 저드슨과 예수님의 친밀거리를 보여준다.

   자 그러면 설교본문을 좀 더 살펴보고 친밀거리로 표현되는 그 믿음을 확인하고 터득하자. 아멘.

   1) 따로(24)

   ‘그 때에 내가… 따로 세우고’(וָאַבְדִּילָה 와아브딜라, 히브리어는 두 단어로 되어 있음(ו 와우<and> + בדל 바달<to separate, portion>, 사역형<Hiphil. 단순한 분리의 의미 뿐 아니라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선택한다는 의미를 가짐> 미완료 1인칭.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지명했다.’ ‘Then I set apart’ -NIV-). 그렇다면 제사장 에스라가 성전비품과 예물을 운반할 자로 세레바와 하사바 그리고 그의 형제들 10명을 ‘제사장의 우두머리들’로 뽑았다고 하였지만 18절에는 제사장이 아니고 레위인이다. 그런데도 제사장의 우두머리라고 했던 것은 성전비품들을 운반할 때 제사장처럼 책임감독을 할 수 있는 적임자이었음을 반증해준다.

   구체적인 실례를 보자(느 6:15<성벽공사 종료>, 8:1<이스라엘백성은 7월 초하루는 특별히 나팔을 불고 성회로 모이는 나팔절임. 이 날은 노동을 금하고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수송아지 1마리와 숫양 1마리로 번제를 드리고 또 소제를 드리고 숫염소 1마리로 속죄제를 드림. 특히 7월은 유대민간력으로 1월임. 그렇다면 7월 1일은 새해 첫날임. 우리 같으면 송구영신예배나 신년기도회로써 한해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로 다짐하는 결단에 해당함. 그런데 이러한 일에 적극 협력한 사람이 세레바였음<8:6-8, 9:1-5). 제사장 에스라나 도우미 세레바는 ‘친밀한 거리’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고 우리 하나님은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던 것이다. 아멘.

   2) 달아서(25)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650 X 34kg = 20t, 100 x 34kg = 3.4t ... 막대함!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1달란트 = 5000데나리온, 5 x 5000 = 25000 = 68.5년, 27년, 13.5년>. 그렇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주신 봉사직분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던 것이다. 아멘.

   어느 신혼부부가 대전에서 새 삶을 시작하느라고 일하는 아줌마를 불러서 새집 청소를 의뢰하고 청소를 다 끝낼 시간 쯤 가보니까 벌써 청소를 다 끝내고 가버렸더란다. 새 신랑이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비 입금해드릴 테니 계좌번호 좀 불러주세요.” “지금 부를 께유.” 그런데 아주머니가 불러주는 계좌번호가 이상하게 길었다. “296 496 3296 7296” “아주머니, 계좌번호 숫자가 너무 긴데요.”라고 말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대뜸 말했다. “뭔 소리래유? 4개밖에 안 불렀는디유. 다시 부를 께유.” “2구유, 4구유, 3이구유, 7이구유.”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려야 소통이 제대로 되는 법이다. 이것을 한자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봉사하며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것과 그 자리를 값지게 알고 어려울 때도 합당하게 순종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멘. לַיהוָה

   3) 거룩(28)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קֹדֶשׁ 코데쉬 prepare, devote, apartness, sacredness, holiness<신성함>). 그런데 설교본문에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전비품을 운반하는 일꾼들이나 예물들이 본질적으로 차별나기 때문에 거룩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 사용되는 특별한 목적에 일치하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목사님 자신이 거룩함이 아니고 착하고 충성된 종 일 때 거룩함 된다(‘여호와께’<לַיהוָה 라이흐와 ‘여호와를 위하여’>,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구약성경에 보면 소망을 종종 ‘티크바’(תקוה hope, expectation)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 ‘티크바’는 ‘카바’(קוה to twist, bind, cord, line, confide in, wait for, to be strong. 서로 꼬아 하나로 결합시킨 밧줄처럼)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진 명사이다. 그러니까 따로 떨어져 있는 두 개를 하나로 연결하여 서로 꼬아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게 성경이 가리키는 소망이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이 하나로 엮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보좌에 잘 묶여있는 밧줄을 사실은 거룩이라고 한다. 이 밧줄은 기도나 찬송, 예배, 봉사, 전도로 만들 수 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실라와 함께 기도와 찬송으로 해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코로나처럼 고난환경이 휘몰아치고 그래서 낙심이 짓누를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은 바울과 실라처럼 소망밧줄을 잡아당기면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안식으로 가는 길이고, 그 안식으로 다시 힘을 얻고, 그래서 낙심환경에서 찬송하며 순종하고 충성하여 역전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라도 아직 희망 중이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은혜이며 축복인 것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의 핵심을 확인하자. 오늘 설교는 불안, 답답함, 불평거리 앞에서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지게’ 믿음으로 결단하고 실행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제사장 에스라는 책임감독 자를 선정하였고, 어마어마한 충성(자리)을 맡겼으며, 하나님께 거룩함을 입증시켰다. 우리도 시도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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