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일 설교

February 2, 2020

                                             “하나님이 돌보시게!” (스 5 : 1 – 5 ‘성전건축의 순종과 방해’) 20.2.2.

   “아가야, 미안해. 엄마를 용서해다오. 이젠 어쩔 수 없구나.”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운 지 300일 된 6살 딸아이에게 엄마가 사별 인사를 건네는 말이다. 의식불명이던 아이가 갑자기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중국 허난성의 샤오진진(6)이라는 아이의 사연이 인터넷 매체를 타고 중국대륙으로 퍼졌고, 단 2시간 만에 1억220만 원 정도 성금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샤오진진은 지난해 10월 뇌염판정을 받고, 입원치료를 13일간 받다가, 폐렴이 악화되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아이는 생명 유지장치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넘겼다. 엄마는 300일 동안 꼬박 병실 밖 복도에 담요를 깔고 아이의 곁을 지켰다. 병원주치의가 여러 차례 ‘포기’하자고 해도 엄마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엄마는 50만 위안(약 8500만 원) 치료비에 손을 들고 중환자실에서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마치 “엄마, 나 아직 살아있어요.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물을 흐린 것이고, 그 아이는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딸이지만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포기하려 했던 엄마를 우리는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사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았다는 것을 성금이 입증해 준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성전건축현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내는 일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나는데 지금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3.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통치자의 고위급 행정관들이 예루살렘 성전건축 현장을 시찰하러 와서 물었던 말인데, 적대감정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가서 다리오 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에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8)이란 말이 있다. 이렇게 극존칭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보면 오히려 방백 사마리아 거주자들이 올린 방해조서에 일치하게 훼방불평을 해대니까 형식적으로 답방조치를 하였다고 본다. 그렇지만 성전건축을 추진하는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의 편에서 보면 훼방세력은 끈질겼다는 게 분명하다.

   다윗도 당했다. ‘다윗의 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 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시 109:2-5). 우리 예수님께서도 시달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 4:12-13).

   사람의 인생은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작년이나 올해나 별로 달라지지 않고 계절만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인생의 의미를 상승곡선으로 끌어올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자기인생의 질을 내리막길로 떨어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 하향곡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죽어버린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도 로마서 1장 28절에 이렇게 밝혀놓았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성령님의 보혜사 되심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상태’(fixation)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과거의 유치하고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이 손가락을 빠는 행위 같은 것이다. 문제는 고착상태에 빠진 사람은 변화를 무조건 싫어하고 낡은 것에 매인 것을 안정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착심리는 예수교 신앙의 암인 셈이다. 이런 교인은 신앙적인 결단을 육체의 욕망대로 하고 만다. 그래서 믿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알게 모르게 육으로 마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라고 역설하였다. 이 말씀을 중요시 하는 것은 바울이 예수교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11장까지 마치고 실제 믿음생활 편을 12장부터 시작했는데 그 시작 첫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중심인 지성소를 새롭게 바꾸어야, 바로 이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이 추진하였던 그 성전건축현장을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챙겨야 할 광야의 만나 같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함께 찾아보자. 아멘.

   1) 일어나(2) 

   ‘일어나’(קוּמ 쿰 rise up, appear, prosper, to be fixed, fulfil, enjoin. 이 말은 일어나는 몸동작만이 아니라 ‘어떤 중대한 일을 하기로 결단하고 그 일을 시작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도 사용하였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 :1). 그렇다면 본문에서도 성전건축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사와 하나님의 계획실현에 막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스데반이 순교할 때처럼 하나님이 하늘문을 열고 보실 만큼 중차대한 동참이었다. 이렇게 값진 일에 우리가 삶으로 아멘 하자는 것이다. 아멘.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1950년 12월 총회에서 65세를 세계각국의 고령화지표 기준으로 정하였다. 그 이후 복지정책을 입안하거나 인구통계조사를 할 때 65세가 노인연령의 기준으로 정착되어갔다. 하지만 이 연령기준은 나라마다 고령화현상이 점점 심해지자, 나라에 따라 노인연령을 67세나 68세로 상향조정하기 시작하더니, 미국은 70세로 올렸다가 아예 나이제한을 폐지하였다. 그런데 2015년 유엔이 연령기준을 새로 정립하여 발표했는데 ① 미성년자(minor) : 0세~17세 ② 청년(youth) : 18세~65세. ③ 중년(middle) : 66세~79세. ④ 노년(old) : 80세~99세. ⑤ 장수노인(longlived elderly) : 100세 이후.

   그러면 자신의 연세가 80세 이상인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아무도 없네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노인이 한 분도 계시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번 더 묻어보겠다. 65세 이하인 분, 손을 들어보세요. 여러분은 다 청년(18세~65세)이다. 정확하게 유엔에서 인정하는 분명한 청년이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처럼 멋지게 일어나 동참하길 축복한다. 아멘.

   2) 돕더니(2)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전하면서 지도했음을 입증해 준다. 실제를 좀 확인해 보자. 학개의 예언을 듣고 24일 후에 말씀에 순종하였다(학 1:1, 14-15), 날짜(2:1, 10), 내용(‘옳으냐’ ‘구멍 뚫어진 전대’ <4-5>, 아직도 언약은 유효하다<2:5>, 영광이 커질 장래<9>, 지금 부정함을 알라<14>, 오늘부터 복이다<18-19>...).

최근에 영국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보호활동을 펼치던 사람이 배수로에서 날지 못하는 올빼미를 발견하고 ‘어디를 다쳤을꼬?’ 하면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친 곳을 찾지 못하였단다. 그 올빼미는 엄청난 식성을 가진 암컷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뚱뚱한 몸무게 때문에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올빼미는 정상적인 체중에서 1/3가량 더 나가는 비만상태(245g)였다. 올빼미를 발견했던 땅은 매우 비옥하고 기온도 따뜻하여, 주위에 들쥐들이 많더란다.

  그 올빼미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닌 ‘다이어트’인 것을 결론내리고 결국 올빼미는 2주 동안 혹독한 통제를 했더니 30g 정도 체중을 감량되더란다. 그래서 야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욕심대로 편하고 배부른 생활이 한 때는 좋아 보이지만 점점 자기영혼을 좀먹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게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냉정하게 점검하여 보고 믿음의 양심대로 회복하길 축복한다. 아멘.

   3) 돌보셨으므로(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결단하고 충성하면 당연히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들어보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 이다.’(사 26:3).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 5-6). 

   ‘신뢰하다’(ַַבְּטַח 바타흐 to cling to, to rely upon, safely. 위기를 당한 사람이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피난처가 될 만한 곳으로 서둘러 달려가서 안전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상이나 점치는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어려움 중에도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충성하면서 도우심을 기다리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선교에 몸을 바친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이 1975년 봄, 런던으로 가고 있었다. “테일러 목사님, 어디 가십니까?” “런던에 갑니다.” “그러시면 저하고 함께 앉으실까요?” 바브린스키 공작이셨다. 두 분은 열차에 나란히 앉았다. 바브린스키 공작이 지갑을 꺼내더니 테일러 목사님께 “이거 작은 돈인데 중국선교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 목사님이 받아보니 수표금액이 50파운드였다. 지금 돈으로 몇 만 불 쯤 되었다. 깜짝 놀란 테일러 목사님이 “이건 50파운드인데요. 혹시 저에게 5파운드를 주시려고 한 것은 아닙니까?” “선교사님, 실은 제가 5파운드를 드린다고 했는데 50파운드라고 쓰고 말았네요.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테일러 목사님이 선교본부에 와보니 중국선교회에 송금을 하려고 하는데 49파운드 11실링이 부족해서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더란다. 견고한 심지로 신뢰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믿음신호등을 붙잡자. 오눌 설교본문은 중단된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한 현장이다. 일어남으로 설교반응을 하였고, 선지자의 지도를 계속 따랐으며, 신뢰함을 체험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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