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6일 설교
“성공인가? 불의인가?” (스 4 : 17 – 24 ‘불의한 성공’) 20.1.26.
조선시대 영조임금은 나이64세 때 정비였던 정성왕후가 생을 마감하자, 2년 후에 정식으로 중전간택을 통하여 김한구(金漢耉)의 딸을 정순왕후(貞純王后)로 책봉했는데, 정순왕후는 당년15세였단다. 그런데 ‘대동기문’(大東奇聞)이란 책에 정순왕후를 간택할 때 있었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단다.
그 당시에 시험관이 누구의 여식인 쉽게 알아조려고 신부 아버지의 이름을 써놓은 방석 위에 왕후후보들을 앉게 했는데, 규수들이 다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 방석 위에 앉았다. 그런데 정순왕후만 방석을 피해 앉았다. 영조가 그 이유를 묻자 아버지 이름자를 차마 깔고 앉을 수 없다고 대답하더란다.
이어서 면접심사를 시작하였다. 영조임금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산이 깊다. 물이 깊다. 구름이다...라고 대답하는데, 정순왕후는 ‘인심’(人心)이라고 대답했다. 영조임금이 다소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데, ‘사람 마음은 측량하기 어려우니 인심이라고 답을 했노라고 설명을 하더란다.
다시 영조임금이 꽃 중에서 가장 예쁜 꽃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왕비 후보들이 매화꽃, 목련꽃, 연꽃을 좋아하고 예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정순왕후는 이번에도 특이하게 목화꽃이 예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은 한때 아름답지만 목화는 솜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니 예쁘다고 설명해서 영조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또 이런 질문을 했다. 고개 중에 가장 넘기 힘든 고개를 아는가? 그러자 추풍령고개 문경새재 등등 이름난 재 이름을 대답하기 시작했다. 정순왕후는 춘궁기 때 고비를 넘기는 보릿고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침 왕비를 간택하는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조임금은 상황에 맞게 기습질문을 던졌다. 면접시험을 보는 궁궐행랑(行廊) 끝의 기왓장 수를 얼른 맞춰보라고 한 것이다. 모두들 궁궐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정순왕후는 혼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영조임금이 그 수를 물었더니, 정순왕후가 정확한 수를 대답하면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알았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영조임금은 정순왕후의 영특함을 보고 왕비로 책봉하였다는 것이다.
정순왕후는 세월을 보내고 영조 정조를 이어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르자 대왕대비로 수렴청정을 하였다. 임금의 옥새를 거머쥔 정순왕후는 친정 편에게 힘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래서 정조의 실학을 보좌하였던 인물들을 대거 살육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여 그 영특함이 근시안과 짝하고 말아 안타깝게 되었다는 지적을 남겼다.
오늘 설교본문도 우수한 두뇌와 열정을 그만 ‘매국노 짓’에 악용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23-24. ‘황제 아르닥사싸의 친서를 받아 읽은 즉시’-공동번역- אֱדַיִן מִן-דִּי 에다인 민 디 from the time/ at that time when. at that time when from the time. = 그 시간으로부터 정시에. as soon as –NIV, GN- ‘편지를 읽고, 곧’ -새번역- ‘급히’ בִבְהִיל֤וּ 비베힐루 terrified, alarm, hurry. 성전건축을 악랄하게 훼방하던 일을 불같은 열정으로 진행했다는 것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저녁에, 외과의사 반 아이크 박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그랜드 폴스 병원 하이든입니다. 한 소년이 총을 오발하여 생명이 위태합니다. 박사님! 곧바로 와 주실 수 있습니까?” “예, 당장 출발하겠소.” 아이크 박사는 그 즉시 100km쯤 떨어진 그랜드 폴스 병원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한참 후에, 웬 아저씨가 차를 가로 막고 차를 세워달라고 손짓하였다. 아이크 박사는 차를 세웠다. 급하게 차에 오르던 아저씨는 총을 머리에 대고 위협했다. “두말 말고 무조건 차에서 내려!” 아이크 박사는 강도에게 애원했다. “나는 의사입니다. 방금 총을 맞고 쓰러진 환자에게 가는 중이니, 환자를 진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틀림없이 이 차를 드리겠소.” “이봐, 내가 속을 줄 알아? 꾸물대지 말고 어서 차에서 내려!” 아이크 박사는 강제로 차 밖으로 떠밀렸다.
아이크 박사는 기차라도 타려고 허겁지겁 역으로 뛰어갔지만 기차도 끊어졌다. 아이크 박사는 할 수 없이 뛰었다. 한참 후에 아이크 박사는 그랜드 폴스 병원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10분 전에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아이크 박사는 힘없이 병실을 나오는데 죽은 소년의 아버지가 뛰어 들어왔다. 그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끌어 앉고 통곡하였다. 아이크 박사는 깜짝 놀라며 돌아봤다. “박사님이 아시는 분인가요?” “예에... 바로 내 차를 강도질한 그 사람이요.” “예에?” 하이든도 할 말을 잃었다. “바로 친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구만!” 그러자 소년의 아버지가 얼굴을 들고 아이크 박사를 보더니 그대로 병원바닥에 주저앉자 대성통곡을 하더란다.
역지사지를 못하고 내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은 일도 정당하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식이하의 짓을 하는 뉴스들이 끊어지지 않고 보도되곤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설교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의 전략을 분석해 보고 저와 여러분의 예방대책으로 활용하고 승리하는 믿음생활을 해가자. 아멘.
1) 방백(17)
‘방백’은 지방대표 행정관이고 ‘서기관’은 방백을 돕는 오른 팔에 해당한 참모였다(‘사령관 르훔, 비서 심새는’ -공동번역-). ‘뇌물’<5 ‘부터... 까지’ = 어느 왕 때나! 뇌물이라는 돈은 죄악임>.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 6:9-10).
한국 사람은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쉽게 맺어지곤 한다. 세계에서 한국 사람만큼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민족도 드물 정도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름을 쓸 때 이름이 앞에 나오고 성이 나중에 나온다. 그래서 성을 last name이라고 한다. 개인이 공동체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성이 먼저 나오고 이름이 뒤에 붙는다. 공동체가 먼저 있고 난 후에 개인은 나중에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또 자신을 소개할 경우도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다음에 어느 회사나 어느 조직에 속하였다고 말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느 회사의 아무개’ ‘어느 교회의 목사 누구’라고 자기소속을 먼저 밝힌다.
이런 ‘우리 정신’이 바로 ‘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지면 좋은 장점을 만든다. ‘우리’라는 연결소통이 서로 간의 이해이고 인정(人情)이어서 그게 끈끈한 힘이 된다. 그러나 이 ‘우리’에 정의감이 빠지면 ‘끼리끼리 하는 패거리’로 저질 되고 만다. 정의와 조화를 이루는 우리에게 소속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2) 과연(19) ומני
과연’(שְׁכַּ֔ח 솨카흐 find, obtain 확인! <시작하는 말을 번역 생략함 : ומני 우민니 그리고 나로부터 = 아닥사스다 왕이 직접 명령하여 확인했음! 확인한 내용이 ‘거역’ ‘패역’ ‘반역’이었음.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왕하 24:1, 20> 정말로 역사적인 고증이었음!).
유대인들의 율법 해설집인 ‘탈무드’에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아담의 머리뼈로 창조했다면 하와가 아담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였을 것이다. 가장 아래에 있는 발가락 뼈로 만들었다면 아담이 하와를 짓밟았을 것이다. 그래서 몸의 가운데에 있는 갈비뼈로 아담의 중심과 하와의 중심을 연결하여 놓은 창조를 하나님이 하였던 것이다. 탈무드의 설명논리로 설명을 좀 더 해본다면 턱뼈로 하와를 창조하였더라면 하와의 입은 자동화장치(automation)이었을 것이고, 손가락 뼈였다면 삿대질로 아담을 꼼짝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갈비뼈로 양쪽 중심을 하나로 연결시켜 놓으신 창조는 부부간이나 남녀 간의 화합조화에 초점을 맞추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고자질이나 이간질, 거짓말로 배신하는 짓을 상상도 못하게 되길 축복한다. 아멘!
3) 조공(20)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쳤도다.’ 이것도 사실제보였다(‘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 8.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10下. 요람이 은그릇과 금 그릇과 놋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 8:6-14). 조공은 무엇을 의미하였을까? 굴복을 자인하는 증표요 멍에였다. 그러니 상대 통치자로써 얼마나 자극시키는 제보였겠는가! 이런 못된 배신행위를 다름 아닌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였다는 사실이 벌레 씹은 불쾌감을 준다. 이런 비극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생긴다는 가르침이니 저와 여러분은 단 반 번도 걸려들지 않기를 축복한다. 아멘.
어느 크리스천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내일 이 시간에 우리가 살아있을 확률이 클까요? 죽어있을 확률이 클까요?” 학생들이 즉각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아있을 확률이 큽니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있나요?” 학생들이 머뭇거릴 때 한 학생이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큰 상자 속에 생명을 의미하는 파란색 구슬이 수없이 많은데, 죽음을 의미하는 빨간색 구슬은 단 몇 개만 섞여있다면, 그 상태에서 눈을 감고 상자에 손을 넣어서 구슬을 하나만 꺼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 파란 구슬을 꺼낼 확률은 당연히 몇 배나 큽니다.”
학생이 설명을 마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러자 수학 선생님이 다시 질문을 했는데 그 순간 조용해졌다. 바로 그 질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상자에 파란 구슬을 몇 개나 넣을 수 있나요?”
오직 하나님만 하신다. 강권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영혼을 구원시킨다. 이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성경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삶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 하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생활을 하게 하신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 속하여 십자가 사랑생활을 이어가길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그 핵심뼈대를 간추리자.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뇌물값을 하였다. 역사적 고증을 찾아내 고자질을 하였다. 굴복을 상기시켜 훼방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훼방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순종이었다(5: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