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2일 설교

January 12, 2020

                                       “이겨내며 건축하자!” (스 4 : 1 – 6 ‘성전건축의 방해’) 20.1.12.

   28년간이나 아프리카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김종양·박상원 선교사 부부가 있다. 이들은 스와질란드에 최초로 의과대학을 세우고 있단다. 국민전체 중에서 약 39%(22만 명)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는 나라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그야말로 침몰하는 세월호에 나타난 구명보트와 같은 것인데, 완공되면 교수 2,000여 명이 학생을 가르치는 아프리카 명문 의대라는 비전을 갖게 한다. 이 의료선교의 명 비전은 1976년 한 엔지니어의 회심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연수를 받던 한 엔지니어가 전도를 받고 회개한 다음,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김종양 선교사인데 영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뒤 아프리카로 떠났다. 1985년(39)이었다. 김 선교사는 원주민 교인의 집에서 원주민생활을 하였다.

   부인집사님은 남편의 금의환향으로 행복한 가정을 꿈꾼 적이 있었지만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공항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분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남편이었다. 2년 만에 만난 남편은 너무 마르고 새까만 얼굴로 변해 있었다. 아들에게 물어봤단다. “너는 아빠인 줄 알겠니?”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그날 밤에 한숨도 못 잤고, 벗어 놓은 남편 바지의 허리띠는 살이 빠져서 새로 뚫은 구멍이 6개나 됐다. 들끓는 모기떼와 도마뱀, 원주민생활, 외아들에게 우유1컵, 계란1개를 먹이지 못하는 곳,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남편, 한국에서 아쉬운 것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아프리카에 와서 원주민 생활, 아내는 수시로 남편과 싸웠고, 그러다가 황달병과 말라리아에 걸렸단다. 약도 듣지 않았다. 의사도 그냥 집에 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결국 실어증에 걸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너무 아파서 잠을 깨고 마루에 엎드려 기도했는데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다.” 이 음성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또 “내가 너를 사용하겠다. 하지만 먼저 네가 거듭나야 한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때 그림 몇 장도 보였다. 자기 아들을 위하여 밥을 감추는 모습, 원주민 애들에게는 빵을 얇게 썰고 아들에게만 빵을 두껍게 썰어주는 모습, 남편과 싸우는 모습...... 그녀는 아침에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100일 동안 매일 1끼만 먹고 철야기도를 하였는데, 황달과 말라리아 병이 사라졌다. 그래서 28년 동안 아프리카 7개국에 500여 개의 교회와 신학교, 기도원, 고아원, 초중고 학교를 세웠고, 최근에 의과대학을 세워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확실하고 또 우리 하나님이 이루고 계시지만, 그 계획실현의 과정은 참으로 험난하고 복잡한 경우도 흔하지요. 오늘 설교본문도 엄청난 함정과 방해공작들 속에서 성전건축을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저랑 같이 확인해 보자(3). 지금 우리가 함께 읽어본 말씀은 성전건축에 동참하겠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너희는 우리와 상관없느니라.’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그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성전건축에 동참시켰다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유익하였을 것이고 또 그럴만한 이유도 많았다. 얼른 생각해도 건축기술자나 노동자, 건축자금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방해도 피했을 것이다(4).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매몰차게 끊었을까?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는 열왕기하 17장에 있다. 6절.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주민 교환이주 정책)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혼혈, 혼합주의 신앙생활!). 혼혈, 혼합주의를 꼭 그렇게까지 비정하게 단절해야 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런 점을 생각하여 보자. 성전을 건축한 후에 성전에 십자가를 걸어 놓으면 절을 표시한 것도 걸자는 파와 부적을 붙이자는 파 때문에 바람 잘날 없게 된다.

   주님이 사랑하심은 당연하였지만 주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도 주님을 놓친 적이 있었지요. 한밤중에 갈릴리 호수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본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를 오라 명하소서.”라고 간구했다. 즉시 주님은 ‘오라!’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오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호수위로 걸어갔다. 잠시 후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물에 빠져갔다. 이유인즉 주님을 보면서 물위로 걸어갔던 베드로가 시선을 바람에게 돌리는 순간 곧바로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사실은 주님이 떠나시지 않았다. 베드로가 풍랑과 바람의 중압감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한 것뿐이다. 하나님이 안 보일 때 그 사람은 대부분 근심걱정, 논쟁에 집착하고 있다. 혼혈, 혼합주의 신앙인들은 근심걱정과 불평, 논쟁거리를 자꾸 만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는 혼혈, 혼합주의 신앙인들을 과감하게 잘랐던 것이고,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척 잘한 충성이었다. 아멘.

   자 그러면 성전건축 현장을 좀 더 살펴보면서 방해세력의 속성을 똑똑히 확인하고 새겨두자.

   1) 대적(1)

   하나님의 자녀 삶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갖고 있는 속성 중의 하나는 ‘대적’(צָרֵי 차레이 distress, adversity, narrow, enemy. 대화의 공통점이 좁아서 고민하게 되고 압박감에 시달림)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1-2. ‘하나님 앞’이란 말씀이 중요함!).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게 온전한 것으로 통하여 칭찬되고 ‘하나님께 영광’이라 하고, 긍정적이라고 그냥 넘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개미가 열심히 일할 때 베짱이는 놀다가 겨울에 베짱이는 개미에게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게 원본이다. 그런데 개정판이 나왔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 디스크 파열로 입원하였다. 그 동안 벌어놓은 재산을 다 치료비로 지급하고 거지로 돌변하였다. 하지만 베짱이는 노래만 하더니 가을에 음반을 냈는데 몇 백만 장이 팔려 부자가 되었다. 현대의 혼돈사회를 대변해 준다. 새 개정판이 나왔다. 개미는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깨끗이 나았다. 그래서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다.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 담배, 마약에 빠져 결국 사람구실 못하다가 병사하였다. 현대의 혼돈사회에서도 올바른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해진다는 교훈이다. 전도가 아니라면 네모반듯한 신앙중심을 가진 성도와 협력할 때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치를 체험하고 터득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2) 찾노라(2)

   ‘우리도 너희와 같은 하나님을 찾노라’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을 때 굉장히 안심되고 호감을 갖게 되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말은 설명과 실제 삶이 상당히 달랐던 게 문제였다. 한 번 더 말하면 실제 믿음생활은 혼혈, 혼합주의로 하였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함정을 내포한 사탕발림이었다. 그래서 사사기 3장에 있는 말씀을 명심해 두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삿 3:4-6. נָסַה 나사아 test, prove, trial, temptation). 설명은 그럴 듯한데 실제 삶이 대충대충 이었다는 것이다.

   독일군을 피하여 산으로 도망가다가 일행과 헤어지고, 어느 동굴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다 마침내 외롭게 죽은 유대인 소녀의 손에서 발견된 메모란다. “나는 지금 햇볕을 볼 수 없을지라도 이 동굴 밖에는 분명히 햇볕이 비치고 있음을 안다.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시지 않으나 난 하나님이 이 동굴 속에도 계심을 확신한다. 지금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소식을 모르지만 하나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분명히 믿는다.”     

   이 얼마나 삶을 만드는 신앙고백인가! 나이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주님의 언약을 통하여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이 살아있었기에 동굴의 공포와 자신에게 닥치는 죽음을 정면으로 맞대응한 게 틀림없다. 비록 어리고 나약한 한 소녀이었지만 그녀의 믿음중심은 철저하게 좁은 생명 길에 잘 맞춰져 있었다. 저와 여러분도 삶을 만드는 믿음으로 좁은 생명 길을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3) 뇌물(5)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뇌물이 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자라고 틀린 것을 ‘괜찮다’라고 속이게 하는 짓이 뇌물이다. 뇌물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언제나 흉하고 부끄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의 혼혈, 혼합주의 신앙인들은 이 추한 뇌물을 신앙중심에 숨기고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뇌물방법을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아멘.

   주님의 종 폴리캅이 불에 타 죽게 될 형편이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와서 “로마황제도 신이라는 말 한마디만 하게, 그러고 죽음을 면한 후에 회개하면 하나님이 자네의 입장을 참작하시지 않겠나?” 하고 회유할 때 폴리캅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의연하게 죽음의 길을 택하겠네.” 그러고 그는 확고한 모습으로 불속에서 타 죽어갔다고 한다. 과연 그 용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그가 붙잡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뢰하면 할수록 산 소망과 용기를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비밀이요 특권이다. 바로 이 용기가 신앙인의 의지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키며 마침내 일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서 우리 성령님께서 나 자신에게 믿음의 신호등으로 감동시킨 교훈을 단단히 붙잡자. 오늘 설교말씀은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그 현장을 보게 하였다. 방해세력의 속성은 좁은 대적과 ‘찾노라’의 속임수와 뇌물방법이었다. 항상 맑은 날씨만 계속된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그 땅은 결국 사막으로 변한다. 종종 비바람이 불어 귀찮고 속상한 일도 생기지만 그럴지라도 그게 비옥한 땅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같은 이치로 좁을 생명 길을 가게 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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