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5일 설교

January 5, 2020

                                       “분간할 수 없습니다!”(스 3 : 8 - 13 ‘믿음으로 한 성전건축’) 20.1.5.

   1등 나라 싱가포르의 기초를 세운 분은 리콴유(李光耀) 수상인데 그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단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싱가포르를 1등 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영국에서 배운 청교도의 삶인데, 철저한 준법정신과 합리주의, 절제생활, 그리고 치밀한 준비정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삶은 현재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에도 굉장히 절실한 생활방식으로 보인다. 이러한 청교도정신을 영국에 뿌리내리게 한 사람은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었는데, 그는 하는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아내마저 죽고, 그래서 낙심에 빠져갈 때 빌립보서를 읽다가‘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 4장 12절과 13절에 감동을 받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단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나의 예수님이 아니냐!” 이 확신과 용기를 얻은 크롬웰은 청교도혁명의 지도자로 나서서 철저한 개혁적 도덕정치를 실행하는 청교도정신을 국민의 생활과 사고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게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크롬웰은 1599년에 태어나서 독실한 청교도 부모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단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단다. “너는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과 성경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단다.” 크롬웰은 반국왕파 청교도로 구성된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을 때 전쟁터에서도 틈을 내서 기도하였고, 휴식시간에 성경을 읽곤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크롬웰은 전투 중에 총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땅바닥에서 “이제 끝장이구나!”하고 체념하고 있는데 잠시 동안 아무렇지도 않더란다. “어떻게 된 거지? 참 이상하네?” 하면서 총탄을 맞은 자리를 살펴보니 총탄은 윗주머니에 넣어둔 성경에 박혀있더란다. 총알이 멈춘 곳은 전도서 12장 1절 말씀이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때 크롬웰은 얼마나 체험적인 확신을 가졌겠는가! 그는 철저히 청교도 정신을 실천하며 본을 보였기에 부하들의 규율은 일사불란하였고, 상인들은 약속을 지켰으며, 노동자들은 부지런하였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영국을 신사의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단다.

   오늘 설교본문도 성전건축을 하는 일에 지도자급이 올바로 솔선수범하였다고 밝혀주고 있다(8). ‘스룹바벨’은 왕족(대상 3:15-19)이었고, ‘예수아’는 제사장이었다. 9절에 보면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협력했다고 밝혀 놓았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12제자들에게 언약하셨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사랑함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내 마음과 내 시간과 내 지갑을 열어 교제를 가질 때 사랑함이 온전하게 존재하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제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욕심이 소유해버리기 때문이다. 좀 생각하면서 들어보자. “당신의 본래 모습으로 미움을 받는 게, 당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랑 받는 것보다 낫다.” “가장 나쁜 거짓말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다.” 이 명언은 프랑스의 작가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였던 앙드레 지드(1869-1951)가 남긴 말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방문하였을 때 백인들이 흑인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행위를 목격하고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하고도 또다시 좋은 일을 찾는 법이다.

   어떤 스승이 바구니에 꽃송이를 담은 후에 제자들에게 물어봤단다. “이 바구니를 뭐라 부르는 게 좋겠느냐?” 제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꽃바구니요.”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다시 꽃송이를 다 들어내고 그 바구니에 생선을 담은 후에 똑같이 물어봤다. 제자들은 “생선 바구니이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스승이 정색을 하며 말하기를 “맞다. 똑같은 바구니인데도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요, 생선을 담으면 생선바구니가 되느니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마음에 쓰레기를 담고 있으면 쓰레기인간이지만, 그 마음에 향기를 담고 있으면 향기로운 사람이니라.” 사도 바울도 비슷한 말로 가르쳤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4-15). 그렇다면 바벨론 포로의 삶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건축에 동참한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신앙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자 그러면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신앙관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성전건축을 해가는 그 현장에서 좀 세밀하게 점검하면서 저와 여러분의 신앙관과 믿음생활을 비교하여 보고 배우자. 아멘.

   1) 감독(9) נצח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חצנ 나차흐 pure, excel, perfect, faithful.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하는 일에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게 살피고 관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것임.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도 그랬다고 열왕기상 6장7절에 기록되어 있음.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히브리서 13장 7절에도 같은 교훈을 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이것은 복종한다는 상하계급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음을 먼저 중요시하면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음!).

   “내가 해야지!” “아니야. 형은 애가 둘이나 있잖아. 그러니 내가 해야지.” 아버지를 위해 형제가 서로 희생하겠다고 하는 대화이다. 김철주 씨는 63세 때 2007년 간암수술을 받았지만 10년 후에 재발했는데, 치료방법은 간이식뿐이었다. 그러자 큰아들 김민배(37) 씨와 작은아들 김성환(35) 씨가 서로 자신의 간을 이식해드린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동생은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기에 간 이식수술을 하면 업무에 공백을 줄 것이었고, 결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형 생각이었다.

   결국 형제는 병원 의사의 판정에 맡기로 하였다. 두 사람 중에 아버지의 간 이식에 적합한 간을 아버지에게 드리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검사결과 두 사람 모두 간조직의 크기가 작아서 두 사람의 간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2명이 동시에 1사람에게 간을 기증하는 경우는 간이식 수술의 10% 정도인데, 2017년 12월 19일 결국 세 사람은 수술대에 누워서 수술을 하고 아버지의 몸 안에 사랑어린 두 아들의 간이 담겨지게 되었단다. 참으로 감동을 주는 사랑함을 보고 박수를 보낸다. 바벨론 포로의 귀환자들도 하나님을 사랑함이 고스란히 담겨지는 성정건축을 위해 감독자들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우리가 꼭 배워 실천할 바이다. 아멘.

   2) 지극한 선(11) 

   포로 귀환자들의 성전건축현장에서 또 돋보이는 점은 찬송인데, 그 모습을 좀 자세히 살펴보면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로 찬송하고 있고, 레위인들은 제금으로 찬송하고 일반인들도 동참했다. 그리고 찬송내용은 하나님을 높임과 감사이고, 찬송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 실감나 화답한다는 것이다(טוב 톱 to act rightly, agreeable, fair, prosperity.  כי  키 because 2번<선하시므로. 영원하시므로>. 취미나 소질 정도가 아님, 억지는 더더욱 아님!). 

   어느 목사님이 논문을 쓰면서 조사를 해 보았더니 5천만 우리나라 국민 중에 천주교를 포함하여 ‘교인은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약 1200만 명 정도 되더란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교회예배나 미사에 참석해 본 사람도 1200만 명으로 나타나더란다. 그렇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그때 모두 우리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이유를 발견하고 감동했더라면 지금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신자가 2400만 명을 충분히 넘었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예배당의 앞문으로 들어와서 뒷문으로 통과하는 교인들도 많다는 현실이다. 그들은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머물 곳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앞문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많이 불러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예배자들이 머무를 만한 매력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은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찬송이유나 봉사내용, 예배이유와 자세, 내용을 깨닫도록 설명하고 보여주고 돕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가길 바란다. 아멘.

   3) 대성통곡(12)

   포로귀환자들이 성전건축을 하는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세 번째 특성은 요란한 소리였는데, 이것은 대성통곡과 함성소리가 섞여서 분간할 수 없었다고 했다(13). 그런데 대성통곡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성전지대를 보면서 첫 성전(솔로몬 성전)과 차이 때문에, 초라해서, 황송해서,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요, 함성은 비교적 젊은이들이 성취감에 복받쳐서, 감격해서, 좋아서, 감사함을 반응했던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쉽게 간단히 파악되지 않는 게 많다는 것이다.

   영국의 목사님으로 찬송가 305장 작사가 존 뉴튼이 이런 말을 했단다. “내가 천국에 가게 되면 깜짝 놀랄 일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분명히 천국에 와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그 사람이 없어서 놀라고, 또 저런 사람은 영영 구원 받지 못할 교인으로 생각했는데 그 교인이 천국에 와 있고요. 세 번째는 나 자신은 어떤 기준으로 천국에 있는지 몰라서 놀란다는 것이다. 그렇다. 틀림없는 내 예배가. 헌금이, 봉사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결국은 전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함이지요.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요.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그 은혜라고. 여러분, 환경을 바꾸는 정도는 성경이 말하는 은혜가 아니다.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거다. 은혜를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함성으로 반응할 수 있고요, 대성통곡으로도 고백할 수 있다. merry christmas and sorry christmas인 것이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에 맞게 우리의 삶을 결단하자. 우리는 포로귀환자들이 성전건축 하는 현장을 보았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게 감독했다. 아주 종합적인 찬송을 드렸다. 대성통곡과 함성이 뒤섞였지만 멀리서는 알 수 없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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