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송구영신

January 2, 2020

                                           “세 가지 복!”  (사 58:13-14  “송구영신”) 19. 12. 31. 11:30.

   우리는 지금 송구영신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지난 것을 다 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선조들은 새 옷이나 새 일, 새 학년을 시작할 때 새로운 획을 그으려고 하였다. 특히 새 해를 맞이할 때 그 동안 사용해 오던 낡은 것을 계속해서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새 달력, 새 수첩, 새 옷만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도 생활도 새롭게 바꾸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 삶도 우리의 옛 습관을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엡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는 촛불을 켜 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촛불은 어둠 속을 밝혀주고 있다. 어두움은 지나간 과거일 수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갈 세상 일 중에 실패를 예감시키는 먹구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게 빛이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36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함 이로라.’ 빛의 아들이 되게 해주시는 우리 예수님이 천국길로 안내하시는 생명의 빛으로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가로등처럼 비춰주심에 우리의 믿음중심을 맞추자.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 2020년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 은혜로 교회에게는 은혜 충만함이어서 그 은혜를 받고 예배로 화답하는 우리이기를 축복하고 중보기도하며 기다리겠다. 아멘.

   그러면 이러한 산 소망으로 오늘 설교본문을 읽어보자(14). 우선 소감이 어떠한가? 2020년 올 한 해는 어떠한 어둠이 오더라도 물리치고 남을 것 같은 확신을 주는 말씀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생길 어둠한테는 그래도 역부족이겠는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라고 기록한 이 말씀( כי  פי  יהוה  דבר 키 피 여호와 디벨 for/ the mouth of/ Jehovah/ has spoken.<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이 말하였다.> ‘I, the LORD have spoken.’ -GN-.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문서의 끝에 서명 날인함과 똑같아서 ‘해당한 말씀의 내용과 확실성을 보장함’에 대하여 한 치도 틀림없음을 하나님께서 공개선언하시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공개선언하시는 바 그 핵심은 무엇인가? 설교본문에 3가지로 밝혀놓았다. ‘즐거움을 얻을 것’과 ‘높은 곳에 올리고’, 그리고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이다. ‘즐거움’(ענג 아나그 :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여호와 때문에> 누리는 기쁨 시 37:4). 여호와를 체험하여 알고, 이 땅에서 누리고 싶어 사모하는 것으로도 즐거운 그러한 즐거움이다.

   ‘높은 곳에 올리고’에서 ‘올리고’( רכב 태울 것)이다.’ 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모세도 축복할 때 사용하였다(신 33:29, 32:13).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והוהאכלתיך  נחלת  יעקב  אביך  웨하아칼티카  나할라트  야아콥  아비카 and feed you/ with the inheritance/ Jacob/ of your father.  אכל<아칼 to ate, peed> 또 ‘기업’< נחלת 나할라트 유산’, ‘기업’> ‘그리고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조상 야곱의 유산을 먹게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즐거움과 높은 곳에 올려주심과 야곱의 유산을 먹어보게 하시는 그러한 체험을 하면서 믿음생활을 하는 신앙인은 죄악 된 세상을 이기려 한다. 왜냐하면 육신적 안목으로 보는 즐거움 즉 육신적 쾌락이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때 생기는 즐거움과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즐거움(ענג)과 높은 곳과 야곱의 유산을 체험해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욕심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고 또 확인하며 동참한다.

   ‘백화점 왕’으로 불렸던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1838.7.11-1922.12.12)는 14세 때 서점의 사환생활을 시작해서, 18때 의류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23살까지 필라델피아 기독교청년회(YMCA)의 간사로 근무했다. 31살 때 존 워너 메이커사를 설립했고, 37살 때 필라델피아 철도청의 화물보관창고를 구입해 상점을 개업하였는데 그게 미국에서 가장 큰 백화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단다. 그리고 51~54살까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 행정부의 체신장관을 지냈다.

   평생 성경말씀과 기도에 의존하고 살았던 존 워너 메이커는 이런 말을 했단다. “만약 세상에서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했을 때,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했을 때,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했을 때, 주님이 베풀어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했을 때,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했을 때 여러분은 신앙 삶에 경고를 울려야 한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도 2020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공개선언하신 세 가지; ‘즐거움을 얻을 것’과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무엇이 경고사항인지 그것을 설교본문에서 알아보자.

   1) 안에서(14)

   ‘안에서’( על 알 on, above, near, by, with. = 가까운 관계! ‘in Jehovah’ ‘in the Lord’. 하나님과 관계를 끊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하나님을 상대로 나날을 살아가는 것! 임마누엘임). על

   세계적인 암전문의 원종수 박사는 많은 암환자를 치료하다가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왜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환자가 고생 않도록 곧바로 데려가시지, 1년이고 2년을 고생시키다가 데려가십니까? 왜 사람이 중풍에 걸리면 하나님은 그 환자를 그냥 데려가시지, 왜 6, 7년을 시달리게 하여 가족들이 똥오줌을 치우도록 고생시키십니까?” 라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응답을 주시드라고 간증했다. “그런 환자를 남겨두는 이유는 그 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주기 위함이다.”

저와 여러분 주위에 참으로 딱한 사람은 많다.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항상 있지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많이 있기 마련인데요. 우리 자신이 도와주면 우리는 복을 받게 되는 이치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이루어주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기회로 활용하여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움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신앙관으로 받아들이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많아진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7-10). 이 말씀은 암기로 끝내라는 게 아니다. 축복으로 안내하는 말씀이다.

   2) 안식일(13)

   지금 함께 읽은 말씀 중에 ‘안식일’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늘 날의 주일이요, 요일로 말하면 일요일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은 한 시간 정도 예배가 안식일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옛 우리 할아버지들은 새벽기도를 드렸고, 1시간 정도 성경 공과공부를 하고 11시부터 ‘대예배’를 드렸다. 그런 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전도나 심방을 하고 저녁에 찬양예배를 드렸다. 예배시간은 1시간 반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었다. 중요한 것은 한 시간 정도 예배당에 앉아있는 것을 주일예배라고 생각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를 이룬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상대로 진지하게 반응을 하고 고백을 하며, 좋아하고 칭송하는 것을 다른 엿새와 차별되게 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작은 시골 안스도르프에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단다. 1818년 성탄절 전날이었다. 모어(26) 보좌신부가 그날 성탄전야 행사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데, 멀쩡하던 오르간이 고장이 나 있었다. 너무나 외딴 시골이라서 오르간 기술자를 부를 수 없었다. 모어 신부는 궁리 끝에 오르간 대신 기타 반주로 부를 노래를 지어보기로 하였다. 단 한 번도 시를 지어본 적도 없었지만 어찌나 옹색한 처지인지라 그냥 기도 하고 펜을 잡았는데, 놀랍게도 그의 마음속에 2천 년 전 베들레헴 외양간의 정경이 그려지더란다. 그래서 그대로 적어보았단다.

   모어 신부는 급히 그 마을 음악교사 그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하여 즉석에서 곡을 만들고, 그렇게 한 후에 모어 신부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로, 작곡자 그루버는 베이스로 노래를 불렀단다. 그리고 그냥 잊어버렸다. 한참 뒤에 오르간 기술자인 모라커가 고장 난 오르간을 고치러 왔다가, 우연히 그 자작곡 성탄찬송을 보고 감동을 받고 알리기 시작했는데, 하나님께 영광과 땅에는 평화를 전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탄찬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란다.

   안스도르프 마을은 외딴 시골마을이었다. 그 동네는 유명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모어 신부와 음악교사 그루버 역시 시인도 작곡가도 결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무명이었다. 그들이 자작곡한 노래를 홍보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계를 감동시키는 성탄찬송이 되었다. 단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우리도 시도해보는 올해이길 축복한다. 아멘.

   3) 아니(13)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며’(שוב 숩 turn, return = 단절!<= 단절 그 자체보다 연결!> ‘네 길’ ‘사사로운 말’<‘your own ways’ ‘your own pleasure’ ‘your own words’ -NKJV- 너 자신에게만 위하는 방법들과 즐거움과 말을 끊고 대신 하나님과 연결시켜서 해보라는 것임>

   사도교회 성도들은 세례 받을 때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었단다. 그것은 형식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결심의 표현이었다. 교회의 청년이 학생 때 헌금을 훔치더니 청년 때 자동차를 훔치다 붙잡혀서 감옥에 갇혔다. 목사님이 면회를 가서 위로하였다. “청년, 출옥하면, 교회가 힘껏 도울 테니 용기를 잃지 말게!” 그러자 청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목사님. 자동차를 훔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설교나 잘해주세요.”

   인생에서 세 가지 안타까운 변명 있단다. ‘할 수 있었는데’ ‘하려고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란다. 결단을 할 때 실수를 조심하되 새로운 실수를 두려워 마라. 실수는 곧 경험이 된다. 오늘은 우리의 남은 인생 중 첫 날이다. 곱셈인생을 시작하는 갈림길로 들어선 순간이다. 오늘 설교가 선택하는 일을 할 때 저와 여러분에게 가로등 같은 빛이 되길 축복한다. 안에서(관계)와 주일! 아니(단절)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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