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어떤 성탄입니까?” (눅 2:4-14 ‘성탄의 의미’) 2020. 12. 25.

인간의 눈물 화학실험으로 분석해 보면 99%는 수분이고 나머지 1%는 염화나트륨(소금)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실험에는 분명한 실책이 있는데 그것은 눈물에 녹아 있는 아픔과 기쁨 전혀 밝혀내지 못한 점이다. 자식의 임종을 바라보는 엄마가 말없이 흘리는 그 눈물에는 가슴에 무덤을 만드는 통한이 녹아있고, 또 아들을 해산하고 그 아들을 품에 안은 산모의 눈물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희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3월 4일 3시 4 7분, 방화로 발생한 홍제동 주택 화재사고는 진압하는 중에 불타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소방관 6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은 부상을 당했다. 희생자 여섯 명 중에는 결혼을 며칠 앞둔 소방관이 있었고, 고생만 하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려고 보다 넓은 집을 사 놓고 이사준비를 하던 40대 소방관도 있었다. 그토록 고맙고 자랑스러운 아들을 잃은 어머니나 아내, 어린 딸들이 쏟아내는 눈물에 어찌 99% 수분과 1% 소금밖에 없다고 하겠는가? 오히려 99%는 뼈가 녹아내리는 한탄이었을 것이다.

현대과학이 눈물의 핵심을 놓친 것만큼이나 실수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성탄이다. 그러면 먼저 성탄현장부터 보자.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눅 2:7). 인류역사상 아무리 빈곤하고 다급할지라도 아들을 낳아서 외양간 말 밥통에 놓아둔 경우를 듣도 보도 못하였다. 산후조리할 방을 다 놓쳐서 말 밥통에 누워 울어대는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산모와 그 산모의 남편이 소리 없이 흘렸을 눈물은 바로 비통함 자체였으리라. 그런데도 현대 성탄절 풍속도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일색이다. 즐거운 성탄절은 눈물을 99% 수분으로 분석한 현대과학의 눈으로 성탄을 바라본 결과인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라도 성탄을 이쪽저쪽 아픔까지 올바르게 살펴보면 ‘죄송한 성탄’(sorry Christmas)도 분명하다. 우리라도 성탄현장을 제대로 보자. 오늘날 메리 크리스마스는 구세주 예수님을 장사꾼 산타로 대체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이 보여주는 성탄을 올바로 인식하고 성탄현장을 간직한 성탄절로 회복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가?

1) 성탄의 참 뜻을 깨닫자(10-11)

천사가 목자들에게 성탄을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차려할 바는 성탄소식을 4중으로 수식(미칠, 큰, 좋은, 기쁜)하였다는 사실이다(ὑμιν 휘민 복수형, I bring you good news of a great joy which will come to all the people. -Amf- ‘미치다’<ἥτις εσται 헤티스 에스타이 which shall be ‘그것이 올 것이다.’ 관계형성이 확실하게 확대 확산될 것이다. = 전도 될 것! 구체적인 해당사건은 ‘구주관계’임. 구주관계일 때만 성탄이 크고, 기쁜, 좋은, 미칠 소식이라는 점>).

우리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범죄 이후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지요. 저주와 가난, 질병, 실패, 고충, 사망... 이런 험악한 환경에서 살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참한 삶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 만들어졌는데 그 길의 입구를 바로 ‘성탄’이라고 부른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14:6). 그러므로 “성탄은 유일한 길”(The Way = 의롭다 하심과 죄가 만나는 길<The way>,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신 길<The way>, 영이신 하나님이 육의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길<The way>)이다. 성탄이라는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계속 가야지 벗어나면 크고, 좋고, 기쁜, 미칠 소식이 즉시 중단된다. 탈선이나 중단, 포기가 용납되지 않는 길이 성탄이다.

고훈 목사님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시이다. “주여,/ 내가 당신의 종이기 전에/ 나도 연약한 인간입니다.// 내게 향한 풍랑이 너무 심하여/ 토하고 쏟음으로 힘을 잃고/ 견딜 없나이다.// 차마/ 감당키 어려울 때/ 모든 싸움 중단하고/ 승패에 관계없이/ 영원한 안식을 넘겨보지 않겠습니까// 인내한 자가 복이 있으리란/ 말씀이 없었다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란/ 말씀이 없었다면/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갚아 주시리란/ 말씀이 없었다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란/ 말씀이 없었다면//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란/ 말씀이 없었다면/ 나보다 더 큰 믿음 갖고/ 울부짖어 부르짖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만 없었다면/ 좋은 결과만을 바라보며/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처절한 기다림만 없었다면/ 나는 벌써 쓰러졌을 것입니다.// 주여/ 나는 쓰러져도 승리해야하고/ 일어서도 승리해야 할/ 물러설 없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토록 힘든 생명길이지만 이탈하지 않고, 지속하면 영생으로 틀림없이 인도하는 문이 성탄인 것이다. 아멘.

2) 찬송을 배우는 성탄(13)

성탄 때 천군천사들이 불렀던 찬송 14절에 기록해 놓았다. 핵심은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이다(그런데 세밀하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이다!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well pleased men of good will, of His favor.” -Amf- 사람들 가운데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천국에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계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그때 천군천사들이 찬송 불렀고 가브리엘 천사들은 들판으로 목자들을 찾아가서 이러한 언약성취를 알려주고 천군천사와 함께 찬송을 불렀다. 그것을 성탄이라고 부름!). 그런데 목자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자(“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13>, “천사들이 떠나 ... 목자들이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보자’ 하고 빨리 가서”<15-16>,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20=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150:1-2> = 신앙성숙을, 발전을, 진보를 이루는 성탄!).

찬송가 109장(①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② “Silent night, holy night, Darkness flies, all is light;” 영어 찬송가는 어둡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오히려 어둠이 날아가고 있고 그래서 모든 게 밝아있다고 하였음). 밝아진 삶(이 능하신 일 위대한 일)을 보면서 찬송하는 성탄절이기를 축복한다. 아멘.

3) 실천을 배우는 성탄(10)

“천사가 이르되”(ειπεν αυτοις ὁ αγγελος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앙겔로스 ‘the angel said to them’) 한 천사가 여러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이다(17-18 목자들도 천사에게 들을 것을 밤에 즉시 전하였음! 성탄은 목자들처럼 천사의 전도를 본 대로 실천하는 날이지 장사행위로 대체시킬 날이 아니었음).

“D L 무디 목사님께.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가신 사랑하는 분을 조용히 추억하면서 이 책을 드립니다. 이 성경은 소중한 나의 남편이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이제 복된 사역을 이어가고 더욱 발전시키실 분에게 진실 된 기쁨으로 드리는 바입니다. S. 스펄전(스펄전 부인) 1892. 11. 30.”

스펄전 목사님의 사모님이 낡은 성경책을 전도자 무디 목사님에게 선물하셨던 것은 다수다량의 전도를 반복하는 무디 목사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게 성탄의미, 영혼구원을 올바르게 이어가는 신앙생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 삶에 저와 여러분도 동참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성탄현장을 오늘 손수 보고 들은 성도답게 저와 여러분도 엠마오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믿음푯대를 새롭게 수정해 보자. 진정한 실패는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진 그 자리에 엎어져있는 것이다. 비관이 우리 자신의 삶으로 밀려와 소중한 꿈을 흔들고 현실을 뒤집을 때, 우리 자신의 신앙관에게 말해보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는 것은 중얼대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신앙의식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산 소망은 반드시 성취를 이룬다. 낙심이나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아서 순종이나 꿈을 소모시킨다. 자신의 습관과 성품을 통제하여 주 안에 있게 하는 신앙인은 일생 동안 큰일에 동참할 있다. 2000년 베들레헴 말구유에 실현된 아기 예수님의 성탄사건 때, 인류역사상 첫 성탄반응인 성탄절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문제는 말구유의 성탄을 과거사건 그대로 반복만 하는 올바른 성탄절이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구유에 오셨던 아기 예수님이 영으로 저희의 마음을 성전삼고 계시는 성탄을 시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베들레헴의 성탄풍속도보다 임마누엘하시는 성령성탄의 문화로 개혁하여 나가자는 것이다. 이게 우리 하나님이 바라시는 21세기의 성탄절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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