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3일 설교

“왜 손을 댑니까?” (막 6:53-56 ‘예수님의 교회’ 20.12.13)



위 두 그림은 지도인데, 파란 색은 섬진강 유역의 홍수피해위험 지도이고 붉은 색이 올여름에 실제로 발생한 홍수 피해신고 지도이다. 두 지도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올여름에 섬진강 유역을 휩쓸고 엄청난 침수피해를 입혔던 그 물난리는, 사전에 홍수피해를 예상한 홍수위험지도와 거의 틀리지 않았다. 하동 화개장터 일대는 침수위험이 클 것으로 표시해 두었고, 구례도 마찬가지였는데, 홍수위험지도에 표시해 두고 염려하던 그대로 홍수피해는 이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동군은 2015년 화개장터 일대를 침수위험이 클 ‘하천재해 위험지구’로 선정하고 이 지역에 1.7km길이의 보축을 설치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정작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이렇게 하동군청 공무원이 해명하였다. “해당지역을 공사하면 주변 상인들의 민원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공사를 늦췄습니다.”라고. 구례군청도 답답한 입장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올 여름에 막대한 수해침수피해를 당했던 구례읍 봉동리 바로 옆 마을인 봉북리 일대를 최우선 방재사업 구간으로 지정해두었지만 정작 방재사업을 실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동군과 구례군 모두 이번 침수이후에 당장 해당 방재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를 ‘인재’(人災) 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하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지만 독버섯처럼 우리의 생활환경 곳곳에서 생기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2001년부터 예산 100억 원을 투입하여 각 지역별로 홍수위험지역을 선정하고 분석하여 홍수위험지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시민들에게는 공개를 하지 않고 공무원만 보게 해 놓았단다. 그런데 지도를 관리하는 환경부는 시청과 군청에 방문하면 일반시민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안내한다고 하니 이랬다저랬다 하는 핑계행정이 나태를 초래하고 그러한 나태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같은 안타까운 신앙생활을 교인들한테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바로 오늘 설교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설교본문을 좀 생각하면서 그 현장을 살펴보면 굉장히 훌륭한 교회를 떠올리기 쉽다(그 이유는 우선 “사람들이 예수신 줄 알고”<54> 먼저 믿음의 대상부터 똑바로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오니” (55 τοις κραβαττοις τους 토이스 카라밧토이스 투스 the beds those that 복수형태) 이러한 경우를 전도라고 하지요. 그러고 또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56> 풍성한 기도응답까지 이뤄졌음). 그렇다면 이 엄청난 모습을 보고 ‘훌륭한 교회’라고 단정한다면 마가복음 기록자 마가가 밝히려는 ‘복음의 시작’ (1:1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과 일치한 견해일까? 물론 마가한테 물어봐야 정확하겠지만 성경을 종합해보면 훌륭한 교회라고 하게에는 너무나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요 6:2). 그러면 그 성경근거를 좀 찾아보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6-19)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 16:23). 우리가 많이 소개받아왔던 말씀이지요. 이 말씀에서 제일 중요시할 말은 “내 교회”인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라는 이 신앙고백을 기초로 세워진 교회이고, 그 신앙고백은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이다. 그래서 이 신앙고백에서 빗나가 자기 욕심을 부리면 그 자리에서 사탄으로 취급해버리신 예수님이셨다! 그러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는 이 말씀으로 현재 한국교회를 저울질한다면 베드로처럼 사탄으로 평가될 교회는 별로 없다? 조금 있다? 많다! 상관없다? 제 질문은 대부분 3번이 정답이었다. 올바른 교회를 생각하면서 반드시 점검할 사실은 또 하나님 나라이다(“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에 있느니라.”( 17:17 εντος ὑμων εστιν 엔토스 휘몬 에스틴 within you. in the midst of you, among you.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마음에도, 인간관계에도 이루어져 지속되고 있음<εστιν = ειμι의 현재형, 지속!>). 그렇다면 설교본문은 넘쳐나는 치유기적 총동원전도, 쏟아지는 기도응답은 실제지만 하나님나라는 즉흥적이었다.

그렇게 보는가? 1) 알고(54)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 알고”(ευθυς επιγνοντες αυτον 유쒸스 에피그논테스 아우톤 immediately they recognized Him. to arrive at knowledge from preliminary 예비 된 지식에 도달함. 철저하게 올바로 깨달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γαρ 가르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1-12> γινωσκω = ‘지금’, ‘희미하나’, ‘부분적으로’ ... επιγνωσομαι ... επεγνωσθην = ‘주께서’ ‘온전히 알리라’ 바울은 분명하게 차별하였음). ≠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7, 21. =착각이나 억지! 고집, 긍정적... 성령으로 가능함?<“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대충, 보고 아는 정도를 너무 긍정적으로 온전히 알았다고 고집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둘씩 짝지어 갈릴리 마을들로 전도실습을 보내신 것을 우리는 마가복음 제6장에서 보았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며, 죽은 영혼을 살리는 권능을 주셨다. 그러고 지팡이 외에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신고 있는 신과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떠나라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하였다. 30절에 보면 제자들은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예수님에게 보고했다. 여기서 ‘낱낱이’라는 단어를 중요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나 진실하게 다 아뢴 것이다. 눅 22:35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대충, 희미하게, 일부분만, 긍정적으로? 그렇지 않다. 낱낱이! 온전히! 진실하게! 이다. 2) 어디(55)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ὅπου ἤκουον ὅτι εστιν wherever they heard that He is ≠ what? why?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 παρεσιν to let pass) what? why?이 빠진 어디(wherever)는 대충(일부분, 희미한 것, 곧 버리게 될 것)이다. 더 온전한 깨달음으로 자꾸 바꿔가야 한다. 아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사 1:1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이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 알맹이가 없는 종교행위를 반복함으로 지긋지긋해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이요 헛수고 헛예배 라는 것임!). 우리 자신을 점검해보는 게 축복이다. 아멘. 3) 간구(56)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굉장한 환호와 만장일치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눅 17:17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아홉’이 나쁘다는 것은 문둥병 치료가 아니라 치료로 종결지은 것이다. 그런데 ‘그 아홉’이 설교본문 56절에는 전혀 섞여있지 않았다. ② 기적치료만 많으면 된다. ③ 정황상 많이 섞여있었다고 보인다. ④ 관심 없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기도는 자기 욕심 채우는 방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웬만한 병원에 가보면 의사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지 않는 환자도 많다. 과외병, 사치허영 병, 자기 밥그릇 뭉치기 병, 편파수사 병, 몰라요 병, 배 째라 병, 대통령 감옥가는 병, 국회의원 병, 방탄국회 병, 철새정치인 병, 투기병, 뇌물상납 병, 재산 빼돌리기 병, 부정입학병, 노조만들기 병, 파업 병, 지역차별 병 등등 이러한 중환자들은 치료받으려고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병자들이 사회를 썩히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찾아 간구하고 만지려는 환자도 없고 교인들까지도 드물다.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의 믿음생활을 비춰보자. 가짜인데 진짜 같고, 기복주의가 복음으로 판치는 믿음혼돈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하나님 자녀의 삶인지 모른 채, 맹목적이고 상업적이며 추상적인 종교생활의 유행에 빠져 들어서 복음의 ‘시작’<αρχη 아르케 beginning, head, chief, important.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언약실현과 그 법칙과 원리를 팽개치고 자신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하는 교회생활에 길 들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순 복음생활이라고 고집 부린다. 깨닫고 거기서 나오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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