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2일 설교

December 22, 2019

                                            “밝힐 수 있습니까?” (스 2:59-70 ‘참 은혜의 믿음생활’) 19.12.22.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온갖 동물이 모여 살아가는 ‘동물동산’이 있었다. 원숭이와 토끼, 기린, 뱀, 비둘기, 두더지, 모기 등등 다양한 동물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터이었다. 어느 날 그 동산의 왕자 호랑이가 동물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단다. “이제부터 우리 동산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영웅 몇 분을 뽑아 합당한 예우를 해주며 모시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으로 각자 똑같은 시험을 치러서 영웅 세 분을 선정하려는데, 그 시험방법은 ‘저 돌산 꼭대기까지 가장 먼저 올라갔다 내려오는 동물 순으로 뽑아 영웅을 정하는 것’이다.”

   사실 이 시험 방법은 각 동물들에게 전혀 공정하지 않지요. 시험성적을 평가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한 방식인 게 틀림없다. 하지만 각 동물의 장단점이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가방식이다. 비둘기나 호랑이, 말은 누워서 떡먹기이겠지만 지렁이나 굼뱅이는 평생하여도 못할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땅속으로 1m 들어갔다 나오기를 평가방법으로 선정했다면 두더지와 뱀, 여우에게 아주 유리하게 기울어진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한 쪽 입장에 유리한 장점이나 소통으로 교육을 시키고 평가하여 줄을 세우며 칭찬하는 학교나 회사, 모임들, 심지어 교회까지도 우리사회는 자주 볼 수 있다. 재력 순, 학력 순, 암기력 순 등등 많지요. 하지만 헌신 순, 창의력 순, 덜 인색 순, 안 변덕 순... 이런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만의 고집’이나 ‘우리 편에 유리하도록’ 바로 이게 아주 이기적인 제도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심보를 지배하고 있는 흉악함이다. 따라서 역지사지(易地思之 易神思之)를 잘 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바벨론 왕 고레스 왕이 갑자기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위하여 귀환명령을 내렸을 때 가장먼저 자원동참 하였던 42,360명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59 ‘밝힐’ נגד 나가드 to show, in the presence of, manifest. 확실하게 면전에 보여주는 것. 누구나 공감하는 근거를 보고 인정하는 것임!). 우리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비슷한 일을 가르치셨다(‘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8, 31-33. καταμανθανω to learn or observe thoroughly, accurately and diligently. ‘생각하면’<καταμανθανω>를 제대로 잘한다면 ‘염려’와 ‘무엇을 먹을까’는 다 ‘이방인들’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앞세우고 중요시하면서, 그 나라와 의에 정통하는 신앙생활을 함으로 하나님께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임).

   늦은 저녁이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려고 정육점에 들렀다. 마침 정육점주인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문을 닫으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주머니는 정육점주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가 조금 필요한데 살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어봤다. 다행히 닭이 한 마리 남아있었다. 주인은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그 닭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3kg이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큰 것을 부탁했다. 주인은 알았다는 듯이 그 닭을 들고 냉장고로 돌아갔다.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다른 닭으로 바꾸는 것처럼 하면서 똑같은 닭을 그대로 들고 왔다. 왜냐면 닭은 딱 한 마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똑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저울바늘이 4kg이란 수치를 가리켰다. 그 이유는 주인이 자기의 손가락으로 저울을 살짝 누르고 있어서 그랬다. 그걸 모르는 아주머니는 “닭 값은 얼마죠?” 아주머니는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으로 가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아무래도 이 닭만 가지고는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닭도 함께 살게요.”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 해도 괜찮을까요? 탈무드에는 두 가지 경우에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했다. 첫째, 이미 사 버린 물건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을 때, 그것이 나빠도, 훌륭하다고 거짓말을 하라. 다음에 친구가 결혼하였을 때, 반드시 부인은 대단한 미인이며 행복하게 살 거라고 거짓말을 하라. 굉장히 긍정적인 처세술이라고 지지한 사람도 많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하여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런 예외조건을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직한 저울질은 어디까지이고 진정한 성공은 어떠한 진실함을 갖추게 되는지, 그 대답을 생활할 때 ‘빛과 소금된 그리스도인’이란 별명을 자연스럽게 갖기 마련이다. 아멘.

   자 그러면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힌’ 그 현장을 설교본문을 통하여 좀 더 세밀하게 보면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값진 이정표로 손색없을 그것을 챙기자.

   1) 42,360 명(64)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장 먼저 자원하여 귀국한 유대인들이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었다는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그 당시에 유대인 포로를 2-300만 명으로 추정했는데 그렇다면 2%미만이니 극소수에 속한 희귀한 신앙인들이었다. 이런 신앙들을 사도 바울은 ‘남은 자’라고 불렀다(‘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4-5. 우리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 신앙인’이 있다고 가르쳤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협착’ τεθλιμμενη, θλιβω 쓸리보. 완료 수동태. squeeze, press. 밀리고 조이며 눌리면서도 신앙관 그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임).

   어떤 청년이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하면서 믿음을 중요시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단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귀던 여자와 결혼하려는데 문제는 그 여자가 불신자였다.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그래도 다른 조건들, 이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였고, 좋은 직장, 집안까지 좋아서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남편이 무슨 별명을 얻었는지 아는가? 점쟁이 남편.... 알고 보니까 대학생 때 점 동아리에서 점치는 법을 습득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고 결혼한 후에 결국 점집을 차렸단다. 그래서 믿는 청년이 점쟁이의 남편으로 변신하였다! 그 청년이 믿음을 중요시한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동의하셨는지 그걸 알아차리게 하는 지각이 어른신앙을 좌우한다(‘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3-14). 아멘.

   2) 제사장 직분(62)

   ‘제사장 직분을 못하게’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충성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어서 보류시키고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성전건축을 위하여 자원 귀환함을 참고할 때 이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짓으로 보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당연했다(‘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0-13).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제한시키는 게 맞는가? 42,360명은 극소수요 ‘남은 자’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하였다. 그럴지라도 제사장 겸 학자 에스라는 이렇게 대답하여 놓았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스 7:10-11).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그 날’은 심판대를 가리킨다. 이러한 말씀은 너무 무섭고 냉정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에스라 제사장도 심판대에 맞추느라고 제사장들을 잘랐다.

   어느 시골 노인부부가 전 국민이 보는 TV방송국에 나와서 카드에 쓴 단어를 보고 빨리 설명하면 도중에 맞추는 스피드퀴즈를 하게 되었단다. 한참 설명해 가는데 ‘칠갑산 산마루’라는 말이 나와서 부인이 거침없이 설명하였다. “여보, 당신이 노래방 가면 자주 부르는 거 6글자인데?” 남편이 당장 대답했다. “도우미 아줌마” 그날 밤에 남편은 입원했단다. 그리스도인도 머리털까지 전부 드러나고 냉정하게 판단 받는 그날 그곳이 있다. 저와 여러분은 그날 거기서 춤추게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기쁘게(68)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נדב 나답 willing, freely, voluntary.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동참하는 자원순종을 ‘기쁘게’라고 하였음). 모세가 성막을 짓고 나니까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출 40:35). 그런데 모세는 성막을 이렇게 지었다고 밝혀놓았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출35:21-23. 하나님은 자원을 그렇게 크게 보심).

   독일교회는 80%넘게 히틀러를 지지하였고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했던 한국교회는 98.6%였다. 신사참배를 이겨낸 성도는 1.4%뿐이었다. 기쁘게 알곡신자는 드물지만 그래도 시도하길 축복! 아멘.

   자 이제 오늘설교를 거울삼아 우리자신을 비춰보자. 행동하는 참 은혜신앙 = 42,360명의 극소수! 제사장 직분을 중단시킴! 기쁘게 자원함!<70년 포로살이 예방책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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