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설교
“망해가는 왕!” (대하 36:9-10 ‘왕 여호와 긴의 통치’) 19.11.3.
조국 법무부장관이 취임 35일 만에 사퇴하자, 바로 다음 날 10월 1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는 ‘JTBC 썰전’ 프로에 출연하여 높은 인지도를 쌓았고, 전략적 사고는 당 안팎에서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던 이 의원은 불출마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정치의 한심한 꼴 때문에 많이 부끄럽다.” “야당만을 탓할 생각은 없다.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고, 당연히 저의 책임도 있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한국정치를 바꿀 자신이 없다.”라고. 이철희 의원은 내년 총선 때 민주당이 활용할 주요인물로 평가되어 왔는데, 최근까지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에 전략공천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 주일이 지난 10월 2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조국 장관을 낙마로 몰고 간 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여상규 의원 등 14명의 전·현직 의원에게 표창장과 부상(副賞)으로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었단다. 그러자 2일 후 24일, 표창원 민주당 초선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표창원 의원은 범죄심리학자로 유명해서 문재인 정부가 영입한 20대 총선카드였지만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하였다. 여야 각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은 있겠지만, 국민 앞에 내놓을 변명은 없어야 한다. 20대국회 구성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반성과 참회를 해야 한다.” “사상 최악 20대 국회의 책임을 제가 질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의 방식으로 참회하겠다.”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의원은 여당의 스타의원이었다. 하지만 20대국회를 반성하고 책임지면서 동시에 21대국회의 쇄신과 혁신을 위해 희생양을 자원하여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정치를 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긴 당이 권력을 잡아도 100석 정도 가진 야당이 반대만 하면 ‘노는 국회’로 둔갑한다. 여당이 야당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이 뭘 하든지 야당은 무조건 안 된다고 ‘봉쇄전략’으로 맞서기 때문이었다. 너희도 봉쇄전략을 당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책은 성공할 수 없고 국민만 등골 빠진다. 정치에는 양보할 수 없이 대결할 정책과, 협력 가능한 민생과 경제의 국익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 때문에 후자를 못하고 기회를 놓친다. 여야당 간에 견해차가 별로 없는 법안들조차 묶어두고 고함만 치고 있는 국회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국회자체가 국민의 걱정거리로 변해버렸다.
오늘 설교본문도 그 현실의 실체를 목격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읽고 있으면 ‘식물정치’를 실감하게 된다(10. 유다 19대 왕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압송당하고 작은 아버지가 대신 강제로 왕좌에 올랐다는 것임.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즉위’와 ‘폐위’인데, 특히 폐위당한 여호야긴 왕은 8살 때 왕이 되었다가 ‘석달 열흘’ 100일 만에 포로로 압송 당하였음<9>). 8살 먹은 아이라면 정치가 뭔지 감도 잡을 수 없는 나이 아닌가! 그러니 8살에 유다 왕이 된 것도 바벨론 왕이 순 억지로 한 일이요, 100일 만에 폐위당하고 포로로 압송당한 것도 바벨론 왕이 순 억지로 한 일이었다는 게 자명해짐으로 설상가상으로 피를 토하게 하는 나라비극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음!).
1592년(임진년) 일본은 막강한 병사를 이끌고 부산으로 상륙하였다. 20여 일 남짓에 거칠 것 없이 한양까지 침략하였고, 당시 조선임금 선조는 왕궁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치고 말았다. 선조대왕 왈 “지금 왜군의 절반이 조선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만주로 가서 붙는 것이 본래 나의 뜻이다.”(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음) 그래서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을 거친 수많은 문화재는 불타고 강탈당하고, 또 포로는 압송 당했다. 훗날 6000명 정도 조선으로 귀국시켰지만, 전체 포로의 10%도 안 되었는데, 조선인들 스스로 귀국을 거부한 탓도 컸단다.
그러면 왜 조선은 20여 일만에 조선수도까지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했을까? 그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합지졸의 일본을 통일하고 서양문물 ‘조총’으로 무장하여 조선은 물론 명나라까지 침략을 꿈꾸었다. 그런데도 우리 조선은 국방대비는커녕 신하들이 권력을 더 차지하려고 붕당정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2년 전 1590년에, 조선조정은 정사(正使) 황윤길과 부사(副使) 김성일로 구성된 일본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황윤길은 “히데요시는 반짝반짝한 눈빛과 담력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 해 반드시 전란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보고하는데, 부사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아서 두려워할 위인이 못되고, 전쟁기미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정반대로 보고하였다. 정사와 부사가 보고를 다르게 하면 당연히 총책임자인 정사의 보고를 채택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조정은 부사 김성일이 속한 동인(東人)이 조정의 주도세력이었기 때문에, 서인(西人)인 정사 황윤길의 보고는 무시당했고, 안일하게 대응하다 비통한 임진왜란을 당했다고 역사는 밝혀주고 있다.
조선 선조대왕이 도피했던 그 비통함이나, 유다 왕 여호야긴을 통곡시킨 그 포로압송은 인생사에 흔한 일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지금 저랑 같이 설교본문에서 찾아보고 챙기자. 아멘.
1) 보시기(9 וַיַּעַשׂ הָרַע בְּעֵינֵי יְהוָ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וַיַּעַשׂ הָרַע בְּעֵינֵי יְהוָה 와야아스 하라 베에네 와흐야 And he did the evil in the eyes of Jehovah. 하나님이 평가하심 =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렘 36:27-31. ‘부정적인 설교’라서 싫어하고 거절함. 자신의 신앙삶은 돌아보지 않고 위로되고 응원되는 설교만 기대하고 기다리는 모습임!).
어떤 집사님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를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불러주세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천국을 사모합니다.” 곧바로 강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바라기 전에, 먼저 집 정원을 깨끗이 정리하길 바라신다.”고. 집사님은 즉시 정원으로 가서 휴지를 줍고, 잡초를 뽑고 나뭇가지도 손질해 놓고 다시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제 저를 불러주십시오.” 다시 한 가지가 생각났는데 집 밖에 서성거리는 거지였다! 그리하여 집사님은 물론 온 집안 식구가 찾아오는 걸인은 물론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고 다시 “하나님, 이만하면 됐지요?” 하고 기도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들려왔다. “잘 보아라. 너는 천국에 있느니라.” 믿음직한 가족과 사랑스러운 이웃들,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였다는 것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순종이게 믿음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아멘.
2) 함께(10)
‘함께 가져가고’(‘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왕하 24:13-17. 쑥대밭이요 엉망진창이었음!).
김소월은 천재적 시인이었다. ‘진달래꽃’ ‘못 잊어’ ‘초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등등 마음을 사로잡는 시를 많이 지었지요. 그는 조만식 장로님이 교장으로 있던 오산(五山)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일본유학 중에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였고,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업을 도우다가 광산업 실패로 크게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처가동네로 이사하여 동아일보지국을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생활고까지 겹치자 염세적이었다. 그래서 작품활동도 저조해졌고 결국 1934년(32살)에 고향 곽산에서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시 86:7-8 “다윗의 기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아멘.
3) 그해(10)
‘그 해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이 말씀에 해당한 실제현장을 보면 풍전등화처럼 난리판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삼상 3:11, 13-14). 여호야긴 왕 때도 제사장들이 침묵했다(14). 하나님의 종들이 아무리 많아도 세월호 같은 재난을 보고 종의 역할을 안 할 때 풍전등화는 점점 심해지고 줄줄이 감옥살이하다 결국 망해버린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깨우치려 하시는 그것을 챙겨 담자. 여호야긴은 8살에 왕이 되어 100일 만에 포로로 몽땅 잡혀갔다. 칭찬 설교만 찾았기 때문! 총체적 난국 반복 때문! 하나님의 종들 침묵 때문이었다! 우리의 남은 생애와 가정, 일터에서 저울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