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설교

October 27, 2019

                                          “왕도 포로된다!” (대하 36:5-8 ‘여호와 김 왕의 통치일생’) 19.10.27.

   지난 월요일 아침에 후배목사님의 선친께서 별세하셨는데, 후배목사님이 입관예배를 부탁하기에 다음 날 낮 1시에 서울대 병원에서 입관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저는 참으로 감동을 받았다. 저는 12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조문을 하고 식사를 하면서 후배 목사님에게 물어봤다. “선친의 연세가 90 넘었지요?” “예, 92세입니다.” “그 동안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예, 2년 전부터 집을 잘 못 찾아오시기도 할 정도로 가볍게 침해를 앓았는데 최근에 사람을 몰라볼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경을 보시다가 찬송하고 그것을 잊어버리시고 다시 성경을 보시다가 찬송하길 반복하시는 그러한 침해였어요. 그러시던 중에 1달 전, 일어나려다 그냥 주저앉으시더니 한 20일 간 누워 지내다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두 아들과 양손을 붙잡고 온 가족이 함께 기도했는데 기도를 다 끝마치자 손을 내려놓으시고 숨을 점점 천천히 거두셨습니다.” 마냥 부러워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임종이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핵심은 어떤 지역이나 크기의 저 깊숙이 한 가운데 있는 알맹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핵심으로부터 점점 크게 많은 동심원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동심원을 색깔로 칠한 후에 점수를 10점, 9점, 8점... 점점 작게 평가하는 게 양궁경기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어느 색깔 양궁동심원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니 나의 목회는 어느 동심원에서 해 왔는가?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동심원을 크게 그리기도 했고,

   외부생김새나 크기, 지위, 목회유행으로 제 마음에 평강이 흔들릴 때 목회동심원이 파래지기도 하였다. 확실한 고백은 마음의 평강이 환경바람을 이겨낼수록 목회동심원은 핵심과 가깝게 그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핵심동심원의 삶에 대한 이치를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자녀생활에 활용한다면 훨씬 현명해지고 또 감사하며 행복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본문을 좀 조용한 마음으로 읽고 있으면 핵심동심원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는데 지금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8). ‘가증한’(תועבה  토에바 구역질나게 싫음.  abominable thing <act>. 여호야김 왕은 어느 정도이었을꼬?).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렘 26:20-23).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36:22-23, ‘여호와 김’<1>).

   탈무드에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을 기록해 놓았다. 우리 찬송가에도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라고 하였다. 빵도 부서뜨려진 밀가루로 만들어지고, 옥합이 깨질 때 향유가 흐르는 법이다. 대장장이는 쇠붙이를 불에 달궜다가 물에 집어넣고 큰 망치로 치고 다시 몇 번씩 반복하는 동안 그 쇠는 마침내 소중한 연장으로 변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교인된 우리를 혹독한 광야훈련장으로 몰아내시고, 우리의 단단한 고집이 깨어지기까지 망치질은 멈추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용할 때 교회에서 유익하도록 함이다. 그래서 믿음생활은 죽는 길이 사는 길이며, 부서지는 게 산 소망 믿음생활의 첩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옛사람의 기질이 맥을 못 쓸 때 하나님은 일하실 때가 많다. 사실 우리의 기다림보다 교인들의 옛사람이 깨어지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이 더 처절하다. 그런데 벌써 몇 년째인가? 깨어지지 않은 채로 예수님을 믿고 있음이..... 이 안타까운 시절이 사도 바울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니 예배당은 널려 있는데 교회는 드물고, 목사님들은 넘치는데 선한 목자는 줄어들고, 교인은 흔한데 성도는 볼 수 없고, 은혜는 받았다는데 자원헌신은 희귀하고, 성장은 되었는데 성숙을 보기 힘든 목회현실이다. 바로 이게 교회의 위기요, 문제인 것이다. 유다 왕 여호야김도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애통터지게 하는 시대환경에서 갑갑하게 고집을 부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망했다. 그것도 처절하게...

   자 그러면 유다 왕 여호야김은 왜 그토록 갑갑한 고집을 부리다가 망했는지 좀 더 살펴보자.

   1) 악(5)

   ‘여호와 보시기’(הָרַע 하라아 the evil. to break in pieces. to make a loud noise. hurtful, worthless).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 4:3-8).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심은 제물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자의 중심 때문이었다!(‘세월이 지난 후에’와 ‘첫 새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일 3:12). 우리 하나님은 중심부터! 속 내용까지! 골고루 다 보시고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아멘.

   2) 발견된(8)

   ‘발견된 악행’ וְהַנִּמְצָא 웨한니므차 and what was found. אצמ<마차아 arrive at, happen, discover, acquire>의 수동 분사형. 표면 위로 드러나지는 것(= ערה 하라아 to break in pieces. to make a loud noise. worthless).

   어느 주일 홀어머니가 아들 댁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들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들 손이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너 지금 뭐하는 중이니?” “예, 빨래하는 중이지요” “아니, 네 아내는 뭘 하기에 네가 빨래하니?” “감기 걸려서 누워 있어요.” “잘 한다. 대학공부까지 시켜주니까 고무장갑 끼고 빨래나 하고...” 어머니는 홧김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과부되어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은 대학졸업 시켜서 좋은 직장을 잡아 장가보냈더니 아내 시중드는 꼴이 싫었던 것이다.

   몇 달 후에 그 홀어머니가 딸네 집에 들렀다. 사위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문을 열었다. 사위에게 물었다. “자네, 지금 뭐하는 중인가?” “네, 화장실청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애는 어디가고 자네가 청소를 다 하는가?” “몸이 으슬으슬 춥다고 방에 누워있어요.” “그래, 자네가 1등 남편일세!”

   그 뒤로 홀어머니는 남편 망친 며느리라고 야단치면서도, 사위에게는 너그러운 남편이라고 칭찬을 해댔단다. 똑 같은 어머니가 흠을 볼 줄도 알고 덮어 줄도 아는데, 시어머니 때는 며느리의 허물을 보고 화를 냈고, 친정어머니 때는 딸의 흠을 보고 덮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흠을 찾아낼 수 있고 또 덮어줄 수도 있다.  부수는 데는 서툴고 덮어주는 데 익숙해지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아멘.

   3) 또(7)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분통터지는 전쟁참패를 두 번째 당했다는 표현이다. 첫 번째는 왕 자신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6).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전을 쑥대밭 당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일수록 참으로 환장(換腸 바꿀 환, 창자장)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환장할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럴 때 얼른 깨닫고 단 한 번으로 끝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정답이 되는 회개는 요한계시록에 잘 소개되어 있다. 두 군데만 보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2:21).

   우리는 종종 성경책 이외에는 아무 책도 읽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한 보수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껏 성경을 너무나 사랑하고, 성경의 진리를 크고 높게 평가한 나머지 다른 독서는 거의 하지 않는 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많이 읽는 게 사실일지라도, 성경을 통해 정직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곤 한다. 이 세상의 양서를 읽지 않고 오직 성경만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다른 서적만 읽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쪽에 대해서 무지한 고집에 갇히기 쉽다. 그래서 성경은 양서들과 함께 기도생활을 하면서 읽을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에 풍부한 자원인 하나님의 계획과 그 법칙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성경에서 발견생활을 할수록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생활을 할 수 있고, 유다 왕 여호와김이 범했던 ‘가증한 일들과 그에게 발견된 악행’을 끊고 멀어지게 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서 꼭 챙겨갈 그 가르침을 붙잡자. 저와 여러분은 오늘 유다 왕 여호와 김의 통치일생을 보았다. 25세부터 11년, 포로와 성전박살. 악함 평가! 파괴행위 일관! 회개거부! 이 세 가지가 우리 믿음생활의 나침반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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