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8일

September 8, 2019

                             “발견이냐? 준행이냐?” (대하 34:14-21 ‘율법책의 순기능’) 19.9.8.

   1970년대 우리 한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세 가지는 시계와 자전거, 재봉틀이었는데, 1980년대에는 컬러TV, 냉장고, 세탁기였단다. 요즘 학생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핸드폰, 노스페이스, 게임기. 청년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스펙, 이성친구, 인스타그램. 장년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건 집 평수, 자동차 배기량, 골프채. 노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할망구, 영감, 틀니.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3가지는 ‘축복, 은혜, 기도응답’인데도, 목사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3가지는 ‘예배당 건물, 교인 수, 헌금 액수’ 라고 한다. 물론 목회자에 대한 실망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소감은 씁쓸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중한 것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것을 지녔다고 자랑하고 목에 힘을 줬구나!’하고 실소(失笑)를 하게 된다. 요즘도 자동차나, 큰집, 골프채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중에 내가 그따위 것을 자랑했다니... 참으로 옹졸한 사람임을 자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투병하는 교인을 문병하고 오면서 “하나님, 손만 대면 척척 병이 낫는 그런 치유의 은사를 저에게도 주시던지 아니면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해 주시옵소서. 제발. 우리 교회는 왜 이렇게 아픈 교인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한탄하는 기도를 하였단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더란다. “손을 대보기라도 했느냐?” 그러고 보니 손을 얹고 치유기도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손을 얹고 치유기도를 해 본 기억이 없더란다. 기도해도 그대로 있으면 속보여서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자신감을 상실한 제자들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낙심충만해 빗나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처럼 해보라는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고요한 마음으로 읽고 있으면 양궁의 화살을 정중앙에 맞히려는 진지한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5, 18-19. 좀 더 설명하면, 요시야 왕은 전국적으로 우상청소를 하고, 2차적으로 성전을 수리하다가 여호와의 율법을 발견하였음. 그래서 그 율법책을 대제사장이 서기관에게, 서기관이 왕에게 가지고 가서 읽었고, 왕은 율법을 듣고 옷을 찢었다는 것임.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중심을 점점 잘 맞춰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함. 우리가 이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해야 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종이요 충성 때문임.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종교개혁 이전시대에 드린 예배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송이 없었다. 4세기 때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회중찬송을 법령으로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회중들은 예배시간에 찬양대가 부르는 뜻도 모른 찬송을 듣기만 하고, 또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라틴어 성경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예배시간에 그 자리에 그냥 앉았다가 오곤 하였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가장 먼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을 예배하게 하였고, 곧 이어서 예배자들이 함께 찬송할 수 있도록 독일어 찬송을 직접 작사 작곡하였는데, 그 찬송도 예배자들이 부르기 쉽게 당시 유행하던 멜로디에 찬송가사를 붙이기도 했다. 루터가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동역자였던 스팔라틴 목사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제가 독일어찬송을 만드는 이유는 노래란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살아있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보인 모범입니다.”

   찬송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확인된 하나님의 뜻(언약들, 언약실현의 원리와 법칙, 실현하심...)에 대한 신앙고백적인 반응이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만의 마음과 정성을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응답하는 바 곧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 중에 드높이는 찬송은 더욱 진실한 신앙고백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하시는 하나님을 시인하여 솔직히 표현하여 올리는 것이다. 찬송하는 것은 엄청난 믿음사건이다. 감사함으로 실감나게 늘 찬송하기를 축복한다.

   어른이 되면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 참된 어른이라면 ‘산타클로스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멘.

   자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신앙중심을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언약성취에 더욱 잘 맞추는 믿음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 답이 설교본문에 있다 함께 찾아 챙기자. 아멘.

   1) 헌금(14)

   ‘헌금한 돈을 꺼낼 때’ 이 말씀은 헌금을 성전수리비로 충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 예수님은 뭐라고 가르치셨는가? 열 달란트 만들기 믿음생활이다(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0-21).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마 25:25-28).

   “저는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걸러내어서 제 작품 속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 방이나 허름한 카페에서 저는 스스로와 싸우며, 온갖 종류의 허상을 피하여 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답니다. 감동을 목적으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대중음악이 어머니를 자극하는 것처럼 많은 작가들은 너무 쉽게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프랑스작가요 쌩 떽쥐베리(1900.6.29.- 1944.7.31.)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감동을 목적으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에 대하여 쌩 떽쥐베리는 엄격하였다. 21세기는 감동 시대요, EQ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억지 감동’ ‘상업화를 위한 감동’이 판을 치고 있는 게 너무나 흔하지 않던가요? 교회의 예배에까지 억지 감동이 스며들었다. 안타깝다. 쌩 떽쥐베리가 지금 이러한 ‘억지인조 감동’을 본다면 얼마나 단호하게 x표를 해버릴지 당연해 보인다.

   2) 들을 때(19)

   ‘옷을 찢더라.’ 요시야 왕이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반응한 모습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옷을 찢거나, 재를 뒤집어쓰거나, 금식하며 울부짖음은 잘못됨을 철저하게 시인할 때 모습이다. 진실한 회개이다.

기도를 4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인간은 중언부언하고 하나님은 무관심 하는 기도가 있다. 둘째로 인간은 호소하고 하나님은 듣는 기도. 셋째로 인간은 울기만하고 하나님은 읽으시는 기도. 넷째는 인간도 하나님도 침묵하면서 알아듣고 응답하는 기도이다.

   말을 넘어서서 침묵세계로 들어가 교통함이 기도중의 기도요, 이것이 진정한 대화기도이다. 복식호흡을 하루에 1시간씩 두세 달만 하더라도 건강이 변한다고 한다. 조급하게 살아가는 삶이 호흡을 변질시키고 복식호흡을 내 욕심대로 쉽고 빠른 속도로 바꾸어갔다는 것이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들숨과 하나님이 가져가시는 날숨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게 성령충만이다. 그 사람이 진정한 성전인 것이다. 그런 기도를 하는 시간은 보혜사 성령님의 통제 아래서만 가능하다. 요시야 왕이 율법을 들을 때 하나님의 들숨과 날숨의 통제에 들어갔던 것이고 그래서 그는 옷을 찢게 된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요시야 왕처럼 되기를 사모하고 또 기도하여 꼭 체험하게 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준행(21 עָשָׂה)

   ‘준행하지’(ׂעָשָׂה 아사 to work, labour, make, create, accomplish 창 1:31<‘지으신’> 창조수준으로 하는 정성껏 하는 순종이나 충성, 동참함).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들을 때 준행할 그것을 보았고, 깨달았으며, 자신의 삶과 비교해 보고 현실 그대로 시인했다. 이런 성경읽기, 설교듣기를 할 줄 알아야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산 소망 믿음생활이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신 4:1 미래형).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는 애국단체가 있었다(안중근 의사가 1909년 3월 김기룡, 강기순 등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넷째손가락 첫마디를 자르고 결속한 모임).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취지문 :

   “오늘날 우리 한국인종(人種)이 국가가 위급하고 생민(生民)이 멸망할 지경에 당하여 어찌하였으면 좋은 방법을 모르고 혹 왈(曰) 좋은 때가 되면 일이 없다하고, 혹 왈 외국이 도와주면 된다거나, 이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니 이러한 사람은 다만 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의뢰하기만 즐겨하는 까닭이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일심단체(一心團體)하여 생사를 불고한 연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 생명을 보전할지라. 그러나 우리 동포는 말로만 애국이니 일심단체이니 하고 실지로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단체가 없으므로 특별히 한 회(會)를 조직하니 그 이름은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 우리 일반 회우(會友)가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첫째는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빙거(憑據)요, 둘째는 일심단체하는 표(標)라. 오늘날 우리가 더운 피로써 청천백일하에 맹세하오니 자금위시(自今爲始)하여 아무쪼록 이전의 허물을 고치고 일심단체하여 마음을 변치 말고 목적을 도달한 후에 태평동락을 만만세로 누리옵시다.” 의와 정을 말로 말고 실천하자! 설교를 말로만 말고 생활하자!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생명의 면류관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확인하자. 사실 설교본문은 요시야 왕이 성전수리 중에 발견했던 율법책이다. 요시야 왕은 헌금의 거룩한 재활용과 말씀교훈 시인과 말씀생활화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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