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일 설교

September 1, 2019

                              “정직 + 성전 수리 = ?” (대하 34:8-14 ‘복된 성전봉사’) 19.9.1.

    미국에서는 해마다 허풍쟁이를 뽑는 대회를 연다고 하는데, 한 번은 이런 허풍대결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었는데,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던지 찍었던 화상들을 모두 날려버려서 사진이 하얗게 나왔더라.” 그러자 다음 사람이 이렇게 허풍을 쳤단다. “바로 그해 여름 날씨가 어찌나 뜨겁든지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가 뻥뻥 팝콘으로 튀는 바람에, 눈이 오는 줄 알고 소들이 기절하기도 했지요.” 이런 얘기는 허풍쟁이들끼리 그냥 허풍을 치는 말이니까 듣는 순간 웃고 끝낼 일이다. 그런데 사회 통념적이지만 ‘믿음’과 ‘불신’과 ‘미신’에 대한 구분은 다르다. 미신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경우이고, 불신은 분명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을 말한다. 그러면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 사실을 확실하게 시인하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맞다. 올바른 믿음은 항상 사실에 근거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엄연한 사실을 확신하지 못해서 불신앙하거나, 거짓 것들을 사실로 맹신하다가 미신이나 이단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데 실제 그대로 말하면 다 불신앙이다.

   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자 제이콥스(A. J Jacobs)는 성경을 읽고, 성경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려고, 성경에서 계명들을 700여 개 정도 선정한 후에 1년 동안 실천해 보았단다. 물론 실수도 하였지만, 예를 들어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느라고 식당에서 가족과 식사하고 나오다가 부인의 동창생을 만났을 때, “조만간 다시 봅시다.”라는 인사말을 듣고 “그러지요”하면 될 텐데, 그 순간 생각해 보니까 조만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부인의 동창생에게 정직하게 말하느라고 이렇게 대답하였단다. “조만간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냥 약속하지 말고 헤어집시다.” 헤어진 직후에 아내에게 따끔한 조롱을 당했고, 또 민수기 15장 32-36절에『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는 내용대로 순종하느라고 주일에 뉴욕거리를 가다가 안식일인데도 일하는 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단다. 이렇게 일 년 동안 미친 척하고 계명 그대로 실천한 후에 믿음 삶을 점검하여 보았더니,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하며 흠 많은 교인인지 깨달았고, 그래서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단다.

   오늘 설교본문도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교회봉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14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이것은 요시아 왕이 26살 때 일이었음). 요시야 왕은 8살 때 왕좌에 올랐는데, 16살 때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찾았고, 20살 때 우상청소를 전국적으로 하였으며, 26살 때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다가 그때,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임. 그런데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한 일을 왕하 22:3-8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다(‘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왕하 22:3-8>.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라는 말씀이 ‘열왕기하’에는 없지만, ‘역대기하’에는 있음. 이것은 성전수리비를 챙기다가 전혀 뜻밖에 여호와의 말씀을 발견한 것처럼 볼 수 있음. 하지만 그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발견한 것도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임. 흔히 통용되는 말로 ‘기적체험’임. 이것은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에 따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그러다가 기적체험도 종종 하게 된다는 것임).

   믿음을 오해하는 교인들이 의외로 많은데, 가장 흔한 바는 자신의 신념이나 지식까지도 믿음이라고 고집부리는 경우이다.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외식’이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자신의 관(觀; 학문, 사상, 종교...)에 따른 확고한 결심인 경우다. 그러고 또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믿음’이라는 말과 성경이 교훈하는 ‘믿음’은, 용어로는 똑같지만 그 의미한 바는 전혀 달라서 식물을 나누는 종(種)처럼 차별된다. 그렇다면 성경에 따른 믿음은 자기 입맛대로 고집부리는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한 언약들을 알아차리고 신뢰하는 삶까지를 말한다. 그래서 올바른 믿음은 자기고집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심’에 대한 ‘청종(聽從)함’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서서히 보다 급성장을 좋아한다는 게 정평이 나 있지요. 그런데 청종함을 성경에서 확인해 보면 대부분 급성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귀히 쓰셨던 사람들은 오랜 동안 철저하게 훈련하며 준비하였다. 요셉은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였고,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훈련을 했으며,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배웠다. 예수님의 12제자들 역시 3년 동안 예수님과 숙식을 같이 한 후에, 또 마가의 다락방에서 10일간 합심기도에 몰두하여 성령님께 사로잡힌 후에야 청종함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청종함’ 수준의 믿음생활이 있는데, 이 믿음생활이 사실상 ‘제자’요, ‘성령충만’이다. 요시야 왕도 ‘청종함’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청종함의 믿음생활을 하게 되는가? 본문을 보자.

   1) 정결하게(8)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이 말씀은 바로 앞 절 끝을 이어서 읽어보면 곧바로 납득할 수 있다(‘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아직도 현장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분은 33:17을 보면 선명해짐.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수도 예루살렘은 물론 전국을 말끔하게 우상청소 한 왕이 요이야였다는 것임).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요시야 왕을 훌륭하게 보신 점은 단연 전국을 우상청소 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 ‘여호와의 전 수리’이다. 우상청소를 눈에 보이는 외적이요 엿새 동안의 믿음생활이라고 한다면, ‘여호와의 전 수리’는 내면적이며 주일예배이다. 그래서 마음성전까지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아멘.

   1937년에 하버드 대학 2학년이었던 268명에 대한 인생추적 연구보서가 있는데, Grant백화점의 재정지원을 받아 연구하였기에 ‘Grant 연구 보고서’라고 부른단다. 30년 후에 1967년부터 268명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심층 조사한 연구보고서에 268명의 ⅓이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명문대학을 졸업한 수재일지라도 정신병과 투병하다가 마치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노점장사꾼으로 살아갈지라도 웃으면서 건강한 일생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다. 정신건강의 최고명약은 성령충만이다. 아멘. 그래서 요시야 왕의 성전수리는 훌륭한 것이고 꼭 배워야 할 바인 것이다.

   2) 성실하게(12)

   ‘성실하게 그 일을 하니라’(אֱמוּנָה ּ에무나 steadiness, faithfulness. 맡은 일<자리>을 흔들림 없이 완성함. אמן 아만 아멘) 그런데 요시야 왕이 우상청소를 하고 그 영적 축복의 통로인 성전수리를 해낼 수 있었던 한 축은 분명히 ‘성실한 일꾼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한 성전수리를 요시야 왕의 8대 할아버지(255년 전) 요아스 왕도 시도했는데도 실패하고 말았다(24:4-5). 실패한 이유를 알고 나니 안타깝지 않는가? 성실한 일꾼부족! 지금 우리의 처지는 NO인가? 지금도 YES!

   한 교수님이 마지막 수업을 제자들과 들판에 빙 둘러앉자 했단다. 교수님이 물었다. “이 들판에 잡초를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쟁기로 갈아엎어야죠.” “불로 태우면 됩니다.” “뽑아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자들의 대답을 듣던 교수님이 말했다. “마지막수업을 끝낸다. 숙제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자기 마음속의 잡초를 전부 없애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한 학생은 1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서 해답을 찾아내자.”

   1년 후, 제자들이 모두 그 벌판으로 모였는데 그 들판은 콩밭으로 변해있었고, 교수님은 이러한 글귀가 적힌 팻말을 꽂아놓고 오시지 않았더란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그 잡초벌판에 곡식을 심고 가꾸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의 마음 밭에도 말씀을 뿌리고 결실하게 할 때 성실한 일꾼으로 충성하게 된다. 체험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3) 일꾼들(10)

   요시야 왕이 성전수리를 하는데 동참한 일꾼들은 참으로 많고 다양하였다(목수들, 감독들, 서기, 관리, 문지기... 그런데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도 있었음. 놀라운 점은 현실적으로 성전수리와 거리를 두기 쉬운 전문예술인들이기 때문임!).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교의 생활을 로마서 12장부터 써 놓았는데 12장 5절에 이렇게 써 놓았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이와 같이’ = 하나님이 정해놓은 믿음법칙! ‘많은 사람’ = 동참 헌신! ‘안에서’ = 예수님과 조화관계! ‘한 몸’ = 협력충성! ‘서로 지체가’ = 맡은 일!<자리>).

   로마의 바티칸에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이 있다. 수백 년 전에 그처럼 화려한 예술적인 건축물을 어떻게 지을 수 있었는지 놀라움의 극치를 이룰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마시 외곽에 사도와 속사도시대(續司徒時代)의 지하 공동묘지였던 카타콤(catacomb)이 있다. 그 지하에 있는 예배장소는 베드로 성당에 비해 처참한 순교자의 삶을 남겨놓은 곳이다. 카타콤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단다. “여러분은 바티칸의 화려한 베드로 성당을 보시고 이제 여기로 오셔서 지하성전을 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곳이 진정한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성당은 화려하고 웅장해서 예술적 가치는 최고였지만 면죄부 발행하여 성전을 건축하였고, 카타콤의 지하성전은 그 면죄부 신앙 삶을 거부하다 순교의 피를 바쳤던 예배당이었다. 카타콤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래스(staind-glass)도, 벽화도, 대리석들도 없다. 수십억 원씩을 주고 산 총회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줄 당회장 자리도 없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성전의 일꾼이고 싶은가?

   자 이제 오늘 설교를 들었으니 어떻게 하려는가? 말씀을 발견하게 했던 요시야 왕의 성전보수(‘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누구나 볼 수 있어 기회이었음) 안팎으로 우상청소! 성실한 일꾼들과 함께! 협력조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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