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4일 설교

August 4, 2019

 

                                                      “여호와께서!” (대하 33:10-13 ‘불순종과 하나님’) 19.8.4.

    어느 집사님이 잔뜩 고민을 하다가 불쑥 목사님을 찾아갔단다. “목사님, 저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요. 믿음생활을 새롭고 뜨겁게 하고 싶은데 늘 작심삼일을 하게 되고 새해에 결심한 계획들도 지금은 모두 멀어져버렸습니다.”

   목사님은 집사님의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창고로 가더니 먼지가 뿌옇게 쌓인 허름한 소쿠리를 들고 오더니 집사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유를 묻지 말고 여기에 물을 가득 담아 오시면 그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짚으로 엮은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라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 집사님은 이유를 묻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을 생각하면서 우물로 향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소쿠리에 물은 담기지 않았고 지쳐갈 때, 집사님은 잔뜩 신경질 난 얼굴로 소쿠리를 들고 돌아와 목사님께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쿠리를 말없이 내밀었다. 그러자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단다.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소쿠리의 먼지는 깨끗이 씻어졌지요? 마음먹은 그대로는 안 되었을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노력은 그 자체에 의미 있는 사실을 간직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만들어 공감시켰다. 시작은 출발점이지 어떻게 반이나 된다는 것인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어마어마한 과장이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과학적인 사실로 따져보면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나라 선조들은 ‘시작이 반’이란 말에 공감을 하고 속담으로 남겨주었을까? 이 속담의 핵심은 시작하는 지점이나 진도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시작을 방해하는 곤란한 갈등과 고충들 속에 시작을 결정하는 경우에 그 시작 자체가 큰일을 해냈다는 격려요 응원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개혁을 시작하려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수없이 본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결심했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여 붙잡고, 그것을 희망으로 삼아 그 소망지점인 미래에 가 서서 시작을 한 것이니 사실상 반 이상을 이룬 셈이다.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고 시작하였다면 성경전문용어로 ‘거룩함’이고 ‘경건함’이며 존경할 일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결단이다.

   오늘 설교본문도 창조적인 기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큼 새로운 삶으로 이루어진 대역전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13).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를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11)와 비교해보면 기적수준으로 새로워진 게 확실하다. 이토록 놀라운 변화를 이룬 므낫세 왕의 비결, 비밀, 비방은 바로 기도였다! 기도는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잘 알아차리고 순종해서 한다면 누구든지 얼마든지 기적수준으로 변화되는 체험들을 할 수 있다. 좀 더 설명을 한다면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기도로 기적 같이 처지를 바꾸고 고친 사례가 성경 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다.

   1970년 발사된 아폴로13호는 당초 세 번째로 달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구로부터 32만1860㎞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갑자기 산소탱크 하나가 폭발하였다.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확률은 0,001%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닉슨은 TV를 통해 전 국민에게 기도를 호소하였다. 오전 9시에 모든 국회의원과 온 국민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우주선을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 세 사람도 함께 기도했다. 모든 교회는 종을 울리고 관공서는 반기를 올렸다.

   인간의 최고 과학적 기계가 고장을 일으켰을 때 최선진국 미국국민 모두가 선택하였던 그 방법은 기도뿐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모순처럼 보인다. 그토록 위험천만한 상황 중에 아폴로13호는 3일 후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태평양에 귀환했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미 해군 군함에 의하여 모두 구조되었다. 그러자 그 과학자 우주인들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은 해군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Thanks God. Praise the Lord!)”라고 드린 감사기도였단다. 그리고 그 주간 타임지 표지에 그들이 기도하는 사진이 실렸단다. 아폴로 13호가 무사히 귀환하였을 때 닉슨 대통령은 모든 미국국민에게 “이번 주에 우리 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예배를 드리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단다. 아폴로 13호는 달 착륙을 하지 못했지만 관계자들이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으로 최악의 사고는 막아냄으로 ‘성공적인 실패’라고 불린단다. 그래서 1995년 ‘아폴로 13호’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기도에는 이렇게 신비한 위력이 작용한다. 신비한 위력이란 실제로 우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게 도와주심이다. 므낫세 왕도 기도함으로 포로에서 임금님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최하에서 최상으로 회복되어졌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므낫세 왕이 드렸던 기도를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그 신비한 응답을 찾아내 활용해보고 저와 여러분도 체험해 보자.

   1)간구(12)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은 ‘여호와’라고 부르는 신은 ‘전지전능하심’이라고 시인하는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께’( את-פני 에트 퍼니 the face of)는 기도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음을 의미해 준다. 그리고 ‘간구하고’(חלה 할라 to be sick<weak, pained>, to seek mercy). ‘when he was affliction, he implored’ -NKJV-).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현실 시인과 소망제시가 기도응답을 전지전능하게 하는데 그렇게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명한 대통령 둘을 들라고 하면 첫째 16대 대통령 에브라함 링컨 둘째 초대 대통령 워싱톤이란다. 그런데 두 대통령의 공통점이 있단다. 하나님을 확실히 신뢰하는 믿음이다. 워싱톤 대통령은 어떤 악조건이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확실히 시인하는 그 믿음을 지니고 살았는데, 워싱톤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단다. 어릴 때 말라리아로 죽을 뻔했고, 또 천연두로 죽을 뻔 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살려주실 줄 믿었단다. 소년 때 이질과 늑막염으로 죽게 됐는데 그때도 워싱톤은 과거에 살려주신 하나님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살려주실 줄 믿었단다. 프랑스군과 싸울 때 얼어붙은 강물에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 위기 때도 워싱톤은 하나님을 찾았더니 하나님이 기적수준으로 살려내시더란다. 또 인디언이 눈앞에서 총을 쏘았는데 놀랍게도 총알은 뺨을 스치고 지나쳤다.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브래독크 싸움(Vraddock defeat-1755) 때는 총알 4개를 맞았다. 그런데도 모두 외투에 구멍만 뚫고 지나갔다. 워싱톤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드라마처럼 살아남았다. 희한하지요? 그런데 워싱톤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네게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믿었고 항상 붙들고 다녔단다. 하나님의 인식은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따라 할 줄 알아야 한다. 체험해 보기를!

  2) 겸손(12) 

  ‘크게 겸손하여’(ויכנע אמד 와이카나 메오드 exceedingly, to be strong, power. to bend/ to bow down, subdue, submit, humble). 기도할 때 겸손함을 크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꼭 필요한지 다니엘이 잘 입증해 준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단 10:12.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이 정도이다!).

  이웃동네 할아버지였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미에 가셨을 때, 식사기도를 안 하고 밥을 드셨단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 “추기경님, 왜 기도를 안 하고 밥을 드시지요?” 그러자 김 추기경님 왈, “제가 밥을 먹고 나서 기도하면 왜 안 됩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이 보혜사로 계시고 우리가 교통하고 있다면’ 바깥 형식이나 격식에 꼭 매일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생명이 없을 때 격식에서 벗어나는 걸 보면 엄청난 믿음사고 쯤으로 속단한다. ‘외식’이라도 붙잡아야 신앙인으로 통하니까 그렇다. 그런데 믿음생활이 이렇게 치우치면 성경의 바리새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목사 디모데에게 가르치기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고 하였다. 능력응답 되게 하는 겸손한 믿음생활하기를!

  3) 알았더라(13)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았더라’(ידע 야다 to experience,  ויהתפלל 와이테팔렐<기도하였으므로 and he prayed, פלל   팔랄 to execute judgment, to intercede>. ‘기도를’<תחנה  테히나 prayer for mercy, supplication>,  = 왕하 21:10<변화됨>. 하나님은 므낫세의 재판받는 기도를 탄원하는 기도로 보셨다는 것임! 이게 중요함.)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별세하자 60세에 왕위를 계승하였단다. 어느 날 에드워드 7세가 혼자 민정을 시찰하러 멀리까지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졌다. 궁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길이 너무 멀고 다급해 하고 있을 때, 마침 낡은 마차 한대가 지나갔다. 임금이 마차를 세운 후에 농부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하였다. 농부가 왕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에드워드 7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농부는 농담으로 알아듣고 “그렇다면 나는 로마교황이요”라고 말장난을 했단다. 노인이 임금이라고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중세교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라고 농담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왕이 다시 물었다. “교황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농부가 대답했다. “새 마차를 갖는 게 소원이지요.” 이제 마차가 궁정에 가까워졌을 때 어린 왕이 마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러자 호위병들이 급히 달려와 모셨다. 농부는 곧바로 그 어린 사람이 진짜 왕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고, 자신의 농담을 사과하려고 했지만 호위병들 때문에 불가능했다. 농부는 후환을 태산 같이 걱정하게 됐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농부의 집에 군사들이 새 마차 한 대를 전해주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었다. “로마황제께 새 마차를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에드워드 7세.” 그래서 농부는 자신의 소원대로 새 마차를 갖게 되었다. 농부가 “나는 에드워드 7세입니다”라고 대답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더라면 농담도 진담으로 바꿔졌을 것이고 자신의 소원도 달라지고 마차선물도 평생소원으로 실현되었을 것이다. 므낫세 왕은 최악의 궁지에 몰렸을 때 하나님께 솔직하였고, 그대로 시인하였다. 그리고 소원을 말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지전능하게 이루어졌고 그래서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거다.

저와 여러분도 므낫세 왕처럼 체험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우리 자신에게 감동으로 깨닫게 하신 믿음신호등을 챙기자. 오늘 설교는 므낫세 왕의 기도기적이었다. 하나님 시인과 겸손함, 탄원으로 인정받음이 기도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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