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설교

July 21, 2019

                                  “하나님이 보신다!” (대하 32:31-33 ‘히스기야 왕의 마지막’) 19.7.21.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어느 여자 집사님이 자주 피로감을 느끼다가 병원에 갔더니 간암선고를 받았는데, 두 달 정도 살겠다고 하더란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지만 집으로 와서 정신을 차리고 냉정히 생각해 보았단다. ‘이제 두 달 후에 심판대에 설 텐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먼저 재산부터 정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을 해보자!”라고 결심을 했단다. 그런데 심판대에서 내놓을만한 헌신다운 헌신이 생각난 게 없더란다. 그래서 먼저 양심껏 헌금부터 하나님께 바쳤단다.

   처녀 때 선교사가 된다고 기도했는데 결혼하고 그만 바쁘게 살다가 그 기도를 잊어버렸다. 헌금을 받치고 목사님이 축복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 사실이 생각났다. 그래서 후방에서 ‘보내는 선교사’라도 하겠다고 선교헌금을 바쳤단다. 그러고 매일 성경을 읽고 느낀 점을 유서 쓰는 심정으로 애들에게,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교우들에게, 목사님께... 썼단다. 미움도, 속임도, 화냄도, 게으름도... 다 털어버리자는 심정으로 썼고, 때로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 쓴 글을 보여주면서 화해하였고, 평소에 전도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전도도 했단다. 그렇게 2달을 보내면서 죽음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2달이 지나도 죽을 몸이 아니었다.

   그 집사님은 다시 간암판정을 했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의사는 난처한 듯이 말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지난번 간암진단은 오진 같습니다. 암 덩어리가 안 보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란 생각에 목이 멨다. 오진인지 그 사이에 병이 나았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령 오진이라도 전혀 원망하고 싶지 않더란다. 나중에 누가 물었다. “집사님! 오진으로 돈을 많이 써서 억울하지 않나요?” 집사님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게는 지난 두 달처럼 보람차고 소망 속에 살았던 때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보렵니다.”

   심판대에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믿음생활이 확실한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이다. “주님! 기다렸습니다. 정말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동일한 사람이 똑같은 처지에서 해오던 믿음 삶을 전혀 다르게 2달간 해냈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본문을 읽고 있으면 히스기야 왕의 심판대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또 나름대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지금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33. ‘그의 죽음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더라.’ 이 말씀은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간 29년<29:1. 25-54세>을 온 국민이 존경하는 왕으로 살았다는 것임. 29년 통치정책들을 정리하면; 성전정화와 희생제사, 유월절복구 대잔치, 우상산당 제거, 헌금관리제도 정착,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을 기도로 대응하여 승리함, 사형선고의 중병 역시 기도로 기적회복을 받음,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누리고 후손에게 물려줄 축복유산은 ‘지극한 부와 영광과 형통함’이었음!). 히스기야 왕은 29년(25-54세, 성인시절)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하였고, 그러한 신앙 삶의 열매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국가로 작심하고 개혁해 나감’이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등에 아기를 업혀 주면서 말하길 “아버님, 오늘 시장에 갖다가 돌아올 때까지 손자 좀 엎고 봐주세요.” 그러고 며느리는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시아버지는 손자의 오줌똥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 받아 처리해주고, 우유를 타 먹이고, 또 업어주었다. 며느리가 말했다. “아버님! 죄송해요. 굉장히 힘드셨죠?” 그러자 시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니다. 즐거웠다!” 그러면서 손주를 등에서 내려주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옆집에서 빌려온 항아리를 돌려주려고 항아리를 붙들었다. 그 모습을 보신 시아버지가 말하였다. “거기 놔둬라. 내가 갖다 주마.” 그리고 시아버지가 항아리를 어깨에 메었다. 시아버지는 옆집으로 가면서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여러 번 쉬기를 반복하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이 항아리는 왜 이렇게 무겁지?” 그런데 그 항아리는 손자의 몸무게와 엇비슷했단다. 사실 손주는 하루 종일 업어주면서도 무겁다고 하지 않았는데, 항아리는 조금 메고 가니까 금세 무거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관계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짜증스럽지만, 사랑관계로 하면 힘들어도 힘든지 모른다. 하나님의 일도 억지로 봉사하려면 너무 힘들고 자칫하면 삐진다.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짜증날 봉사도 힘든지 모르고, 오히려 기쁨으로 한다. 왜 그런가? 사랑은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야곱을 보자(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게 사랑의 힘이란 것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기다림이 짜증나지 않았다.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길 정도로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 삶에는 힘든 고난도 아픔들도 넘어서게 하는 비밀한 초능력이 작용하게 된다. 히스기야 왕이 29년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재미로 살아가면서 초능력을 체험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히스기야 왕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그 사랑 삶의 비밀한 것들을 찾아내서 저와 여러분의 믿음생활 저울로 활용해 보자.

   1) 심중에 있는 것들(31)

   히스기야 왕이 중병을 고침 받은 후, 바벨론 왕에게 축하와 선물을 받았는데, 그때 히스기야 왕이 자랑을 과도하게 하다가 하나님께서 ‘떠났다’고 할 정도로 혼났다는 것이다. 그때 활동했던 이사야도 기록해 놓았다(‘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 39:1- 2, 5-7).

   치료받고, 응답받고, 형통할 때 간증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간증금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간증이라야지 자신을 자랑하는 기회는 망조간증이다. 히스기야 왕이 그랬다.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다.’(‘to test’).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3:6-7).

   2) 묵시의 책(32)

   ‘이사야의 묵시의 책’은 성경 이사야서를 가리킨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חסדים  하씨딤  חסד 하쎄드의 복수형 to show kindness to anyone, mercy, beauty, grace, favour. ‘his acts of devotion’ -NIV-. 그런데  הנם 힌넴<behold! surely! here!>이란 말이 있음). 이것은 역대기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히스기야 왕의 선행들(חסדים)은 분명히 많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모두 성경에 기록하지 않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천국의 생명책에는 빠짐없이 기록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2). 빠짐없이 녹화된다!

  어느 보석상에서 손님이 보석을 이것저것 살피다가 한 보석을 가리키면서 “이 보석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왜 이렇게 비싸지요?” 하고 묻더란다. 그 보석은 ‘오팔’이라는 보석이었다. 보석상 주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보석을 꺼내 두 손으로 감싸주고 어루만졌다. 그랬더니 잠시 후 손을 펴자 그 보석은 무지개색깔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더란다. 그때서야 보석상 주인이 손님에게 말했다. “오팔이라는 보석은 사람 손으로 따뜻하게 감싸주면 아름다운 빛을 낸답니다.”

   우리 교회에도 따듯한 손길로 감싸주면 보석노릇을 하는 교인들은 많다. 그런데 차가운 시선으로 그냥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빛을 숨기고 있다가 결국 떠나버리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사람들을 보석으로 만들어 주는 믿음생활을 시도해보자. 어렵지 않다. 따뜻한 마음으로, 다정하게 바라보고 먼저 미소 짓고, 말을 걸고, 손을 내밀면 된다. 이런 게 작은 일에 충성함인데, 다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아멘.

  3) 높은 곳(33) 

   히스기야 왕의 묘는 높은 곳에 장사되었다는 것이다(מעלה 마알레 long and full, upper, 좋다는 개념. 그래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음.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는 뜻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응답, 축복, 은혜, 성령충만, 교회부흥... 다 좋지요. 그러나 죽었을 때 조롱당하지 말아야 함. 왜 조롱당하는가? 탐욕 부리느라고 속인 게 발각되기 때문임).

  사막에서 자라던 선인장 몇 그루를 부드러운 햇볕이 비추는 화단에 옮겨 심고 비료를 주고 물도 적절하게 맞춰주었더니 선인장들이 변하기 시작하더란다. 선인장의 뾰족한 가시는 부드러운 털로 변했고, 조금만 물을 주지 않아도 빨리 시들었다.

   이 선인장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뭘까? 사막 선인장의 날카로운 가시는 가물고 고온 땅에 적응한 결과이었고, 사막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비결이었다. 날카로운 가시는 식물들을 뜯어먹는 동물들로부터 선인장을 보호하는 전략이었고, 메마른 땅에서 아주 적은 양의 수분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적응력이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험난한 환경을 당하게 하시고, 때로는 울타리도 없이 익은 열매 가득한 과수원을 지나가게 하시지만, 신앙양심을 민감하게 하신다. 우리가 말씀과 위배되는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양심은 그때마다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신다. 그럴 때 순종하면 돌밭을 통과하고, 가시밭을 이겨내 좋은 땅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다.

   자 이제 오늘 설교말씀 중에 우리 성령님이 보혜사 되어 가리켜주셨던 화살표를 다시 확인하자. 오늘 설교는 히스기야 왕의 마지막 부분을 기록한 말씀이다. 히스기야 왕은 안타까운 실수를 남겼지만 그래도 죽었을 때 국민에게 존경을 받을 만큼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 이루어질 평가를 이제부터 잘 만들어가는 믿음생활을 점검하기를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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