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4일 설교

July 14, 2019

                                           “뉘우침의 위력!” (대하 32:24-30 ‘진보하는 믿음생활’) 19.7.14.

   1981년 이탈리아의 프린스카타에서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였다. 저녁이 되어도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부모님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온 마을을 샅샅이 뒤져 아이가 우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물은 좁고 미끄러워서 안전장치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구조대원들이 사고연락을 받고 급히 도착하였을 때,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을 거라는 분위기이었다. 구조대원 중 한사람이 밧줄을 묶고 우물로 내려뜨리고 우물로 내려갔다. 구조대원은 우물바닥에 다다랐을 때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아이가 우물 벽 쪽 바위를 붙잡은 채 떨고 있었는데, 아이는 심하게 다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아이의 의식은 멀쩡하였다. 구조대원은 아이에게 다정히 말을 걸었다. “애야, 이제 안심해라! 아저씨가 구해줄 테니까.” 그러고 위를 향하여 외쳤다. “아이가 살아있다!”라고. 기뻐하는 부모와 동네사람들의 환호 속에 추위와 공포로 벌벌 떨고 있던 아이가 시퍼런 입술로 구조대원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엄마는 언제와요?”라고.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온 구조대원이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주면서 말했다. “이 아이가 우물에 빠져 혼자 추위와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다 참아냈던 것은 단 한 가지 소망 저희 구조대원이 아니라 바로 엄마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어머니는 필요하고 엄청난 에너지이지요. 누구나 어머니를 통하여 한없는 희망을 얻곤 한다. 자식 사랑에는 끝이 없던 엄마를 향한 신뢰가 아이를 극한 처지에서도 견딜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죄들을 위하여 친히 목숨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내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실재하기에 언제든지 산 소망으로,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어떤 일에도 형통을 기다릴 수 있다.

   오늘 설교본문을 읽고 주인공인 히스기야의 믿음생활을 잠시 그려보고 있으면 지휘자의 손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지는 데 저랑 같이 확인하여 보자(25). 지금 함께 읽어본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지만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가 하나님의 진노환경으로 몰리게 되었던 일을 밝혀준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의 삶을 좀 더 떨어져서 세월이라는 한동안을 보면 히스기야 왕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25)에서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15년 생명을 연장시켜주심.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1-2, 5-6>), 이렇게 생명연장의 은혜를 받고도 히스기야 왕이 보답하지 앉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고,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다시 뉘우쳤더니 하나님의 진노 대신 오히려 부와 영광이 지극하게 되었고 형통(창고들)까지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 오늘 설교본문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한 마디로 ‘존귀’ - ‘죽을 병’ - ‘기도’ - ‘진노’ - ‘뉘우침’ - ‘부와 영광, 형통’을 숨바꼭질하였던 왕이 히스기야였다. 사실 좀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도 개인차이만 다를 뿐 히스기야 왕처럼 숨바꼭질 중인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러시아 옴스크주에 사는 바체슬라프는 2017년 6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이르타이스치 강변으로 나들이를 나갔단다. 그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차에 자전거를 싣고 있는 순간, 두 딸이 강변 난간 바깥쪽 강물로 빠졌다. 두 딸은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려고 몸부림을 쳤다. 아빠는 두 딸을 구하러 강으로 뛰어 들어갔고, 두 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빠를 붙잡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줄을 던졌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빠는 두 딸을 줄로 몸을 묶으려고 하였지만 힘이 빠져 역부족이었다.

그 긴박한 순간에 ‘샤샤’라는 10대 소년이 강에 뛰어들어 구조를 도왔다. 매달린 아이들 때문에 샤샤도 위험천만하였지만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 멀뚱멀뚱 지켜보는 행인들 가운데 한 소년만이 물에 뛰어든 용기를 높게 평가해서 샤샤는 표창 상을 받았단다. 그런데 곧바로 지역신문에 샤샤의 가정사가 보도되었다. 샤샤는 알코올중독에 빠진 어머니에게 무관심하게 자라왔고, 청소년센터와 지역경찰들도 주시하고 있을 정도로, 샤샤의 행동은 난폭하고 위험했다는 보도이었다.

   하지만 신문보도 때문에 샤샤의 교육과 복지 등 실질적으로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샤샤는 그날 한 가족의 목숨과 함께 자신의 인생도 살리는 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 삶도 춘하추동(春夏秋冬)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을 반복한다. 아멘.

   그러면 히스기야 왕의 숨바꼭질 삶을 다시 살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챙겨 담자.

   1) 기도(24) 

   히스기야 왕은 존귀하게 되었다가 사형선고의 병에 걸렸을 때 기도했다고 성경말씀은 밝혀준다. 지난주에도 설명하였는데,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는 모습은 겸손함이었다(ויתפלל 와이테팔렐 and he prayed,  פלל  팔랄  to execute judgment, to intercede. 삶을 내보인 기도!<‘진실’, ‘전심’ ‘선’ 사 38:3>). 히스기야 왕이 기도를 선택한 것은 퍽 다행이고 잘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 26:40-4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 시험에 들었을 때, 시험에 든 후에, = 기도생활!<‘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 6:9-11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그날그날' 개념임).

   수없이 울부짖어 기도하는데도 제대로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그러한 기도는 저 높은 천국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도는 하나님께 받쳐져야 한다(‘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 8:3-4). 그렇다면 기도는 가벼워야 신속하게 솟구쳐서 잘 올라가는데, 기도가 무거우면 올라가는데 방해를 받지요. 욕심, 이기심, 명예욕, 권세욕, 근심, 걱정, 의심, 불평불만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기도는, 올라가 하나님께 받쳐지는데 당연히 실패하지요. 기도를 무겁게 만드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기도가 둥둥 떠오른다. 오직 십자가 예수님을 닮은 기도라야지 이 세상에서 기쁨이나 만족, 성공은 기도를 떨어뜨리게 한다. 아멘.

   2) 뉘우치고(26)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 때문에 기도했다가 15년 생명연장을 응답받았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은 그 응답 때문에 교만해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 때 히스기야 왕은 또 ‘뉘우치고’를 해서 진노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כנע 카나 submit. 안 하던 것을 함. 거민도 동참함, = '함께!' ).

   날개를 심하게 다친 독수리가 절벽 위로 힘겹게 날아가서 한참 고민을 했단다. 몇 번이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다친 날개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독수리가 하늘높이 날 수 없다면 이제 삶을 끝내야지.” 그는 절벽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 순간, 절벽 위 창공을 빙빙 돌던 독수리가 그 모습을 보고 직선으로 날아왔다. “야, 너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하지?” 다친 독수리가 힘없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평범한 새가 아니잖아.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가는 새들의 왕이지.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럴 수 없는 새가 되어버렸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러자 날아온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폈다. 여기저기 상처 자국이 보였다. 찢긴 자국, 할퀸 자국 찔린 자국 등등 흉터는 많았다. “똑똑히 봐라. 내 몸도 이렇게 상처투성이다. 독수리가 상처 없이 살 수 있나?” 자살하려던 독수리가 고개를 푹 숙이자 흉터 많은 독수리가 한 마디 더 했다. “나는 몸에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엔 상처 자국이 새겨져 있지 않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야.”

   아픔과 상처를 격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혼자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힘든 고비를 넘기곤 한다. 다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골방을 찾아가는 게 현명한 지름길이다. 체험하길 축복한다. 아멘.

   3) 샘물(30)

   히스기야 왕은 ‘부와 영광이 지극’할 때 ‘윗샘물을 막아’ 끌어들였더니 형통하게 되었다고 한다(왕하 20:20. ‘저수지’ ‘수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바에 의하면 그 수로는 총 520m인데 높이 60cm-150cm, 너비 60cm, 연중 강수량은 500mm). ‘부와 영광이 지극’할 때 10달란트 믿음생활을 했던 사람이 히스기야 왕이었다는 것이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웨슬레는 말로만 이웃사랑을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하자고 하면서 ‘성경에 있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메쏘디스트(methodist)’운동을 펼쳤는데 이 methodist삶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7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단다. ① 기도를 충분히 하고 있는가? ②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일이 있는가? ③ 범사에 감사하는가? ④ 지나친 욕심을 내진 않는가? ⑤ 옳은 일을 하지 못할 만큼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가? ⑥ 내 중심에 임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는가? ⑦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부와 영광이 지극’할 때 더 충성할 줄 알아야 한다(조심!) 아멘.

   자 이제 오늘 설교 중에 우리 자신을 사로잡은 말씀을 챙기자. 히스기야 왕은 자타가 인정하는 존귀함에서 사망 병으로, 사망 병에서 기도로, 기도에서 진노로, 진노에서 부와 영광 형통으로 이어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얼마든지 개혁할 수 있고, 기적되게 할 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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