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일 설교

June 9, 2019

                                                 “날마다 큰 소리로!” (대하 30:13-22 ‘유월절의 축제’) 19.6.2.

   회갑을 바라보는 어느 부인이 결혼기념일 다음 날 남편에게 투덜댔다. “당신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나에게 꽃 한 송이 사줄 줄 모르는군요.󰡓며칠 후에 남편은 아내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고 퇴근길에 꽃가게에 들러서 빨간 장미꽃 백 송이를 샀단다. 그런데 그 꽃을 들고 집에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이웃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쑥스러워져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에게 신문지로 꽃이 보이지 않게 잘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문지로 포장한 꽃다발은 마치 신문지 뭉치 같았다. 남편은 그 신문지 뭉치 같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와서 “이거 받아 봐요.󰡓하면서 꽃다발을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그 부인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먼저 장미꽃 백 송이는 상상도 못하고 그냥 신문지 보따리만 보고 쓰레기를 받은 기분으로 반응한 것이다. 아니면 신문지 뭉치가 분명할지라도 일단 풀어보고 장미꽃 백 송이를 반기는 거다. 그러고는 튀는 행위를 광장이 쑥스러워 하는 남편의 투박한 성격을 알아차리고 씽긋 웃으며 껴안아 준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비록 포장은 거칠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정성을 보려고 하는지? 다시 말해 상대방의 드러난 모습만 보느냐? 아니면 속마음까지 보느냐? 그 남편이 신문지로 장미꽃을 포장을 한 것은 그 분의 속마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분의 성격이었다. 표현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성격, 진정한 마음을 자기 삶으로 대하는 투박한 성품 말이다. 여성들에 비하여 남성들에게 상대적으로 흔하지요.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으니, 포장도 예쁘게 하면 훨씬 더 좋겠지요. 그러나 그걸 다 알면서도 대단히 힘들어 하는 성품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편이 장미꽃 백 송이를 샀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것도 그 남편의 성격상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흉한 포장을 물고 늘어지고, 잔소리를 하면서 바가지를 긁어댄다면, 그것도 그 부인의 모자람이요, 지혜롭지 못한 흠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부인은 남편의 거친 겉모양 속에 담겨져 있는, 진심을 읽어낼 줄 안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관계로 한층 더 높여나간다. 이렇게 마음을 읽는 것은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나 하나님의 자녀 삶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말만 들을 게 아니라 그 중심까지 잘 헤아리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이것이 문제의 정답이 되고 인생의 질을 결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아멘하고 찬송하지만,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거절한 적은 없었느냐는 것이다. 찬송가를 우리의 속마음과 일치하게 사실대로 부른다면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괄호 ‘내게 손해될 때는 말고’ 이렇게 되는 교인도 많아져 있다. 

   오늘 설교본문이 보여주는 그 현장을 좀 생각하면서 살펴보노라면 굉장히 부러워지기 마련인데, 저랑 같이 살펴보자(21-23). 지금 우리가 함께 읽어본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유월절을 7일 동안 지키면서 큰소리로 찬송하고, 마음껏 화목제를 드리고, 즐겁게 친교하면서 신바람 나게 감사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축제일색 이었다(םתודים 미트와딤  ידה 야다 to throw, to confess openly and freely, to give thanks, praise. ‘confession’ -NKJV-, ‘praised’ - NIV, GN- 사실임을 확인하고 실감나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임!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22>라는 말씀을 주시하자. 그러니까 다윗 왕에게 언약해주시고, 다시 솔로몬 성전건축 봉헌 때 언약해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한 사실로, 응답으로, 체험으로 확인되었다는 반응을 했던 것임). 

   예레미야 1장 16절-1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עזב ‘버리다’  עזב 아잡 to leave, give up, cease from, forsake.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포기하고, 버리고, 끊어지고.....> 거짓 신에게로, 거짓 길로 가는 것이다. 교인들이 하나님과 순종을, 충성을, 헌신을 깨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관계와 소속을 바꾸고 옮기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엄청난 소망을 주는 말씀이 있다. ‘말하라’( דבר to speak, to range in order, to connect, guide, subdue, destroy, affair, something. 파괴를 하여 정돈하더라도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게 깨우치라는 것임). 

   어느 권사님이 자기 교회 부흥회를 통해 남편을 전도하려고 간신히 참석시켰대요. 설교 목사님이 설교 끝에 “지금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분 손을 드십시오.”라고 하자. 권사님이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손드세요.” 그랬는데도 남편은 그냥 앉아 있더래요. 집에 와서 속상하다고 신경질을 냈더니 남편 왈 “목사님 설교에 감동을 받아 교회를 다닐까 생각을 해봤는데, 이렇게 좋은 설교를 수없이 들었을 텐데, 내가 화를 내면 당신도 똑같이 화내고, 내가 불평하면 당신은 나보다 더 하고, 노래방 가면 당신도 따라 나섰고, 나와 다르게 사는 것을 못 본 거 같아서... 그냥 포기한 거요.”

   삶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언약실현 대상으로, 소망이 확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은 그러한 소망생활을 확인하였고, 예약하였으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냈는지 그것을 함께 살펴보자.

   1) 부끄러움(15)

   유월절 양을 잡을 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부끄러워하였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능하고 한심한 자신들의 실체를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전에 청소부터 하였다(14). 이는 기절초풍할 만큼 대단한 충격과 산 소망을 주는 선지자 같았다(왕하 18:3-7,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잠 1: 22-23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람이 어리석고 거만하기 쉽지만 그래도 책망을 반영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예약되고 적용되며 성취되어간다는 것임!).

   시골 소녀가 서울 부잣집에서 가정부생활을 하는데 몇 년 후에 이웃 집 젊은이를 자주 만나더니 배가 불러지기 시작하였다. 주인은 눈치를 채고, “다행히 우리에게 자식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양자로 키우겠다.”라고 안심시키고, 사내아이 출산비용과 산후조리를 지원하고 아이를 양자로 삼아 키웠다. 그런데 가정부가 또 임신을 하였다. 그래도 주인은 “혼자 크는 것보다 동생이 있는 게 더 좋지.”하면서 둘째도 양자로 삼아줬더니만 셋째를 임신하였다. 그 주인은 몹시 속상했지만 참는 김에 끝까지 참고 셋째도 양자로 호적에 올렸다. 그런데 그 가정부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더란다. 이유인즉 “이렇게 애 많은 집에서는 식모살이를 못하겠다.”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것 대단한 소망이요 인격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것이다. 히스기야 왕이 주도하는 유월절에 그 부끄러움이 있었다. 배우길!

   2) 많은 무리(18)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기념잔치에 많은 사람을 참석시켰다(13). 그런데 18절의 많은 무리는 북쪽 이스라엘 지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조롱하고 비웃던 사람들’을 많이 참석시켰음을 입증한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의 의중과 닥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18-23).

   밝은 달밤에 한 사람이 연못에 비친 보름달을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생각에 빠져있는데 그때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장난치려고 돌멩이를 연못에 던졌다. 그러자 은쟁반 같던 보름달이 곧바로 찌그러졌다. 그래서 연못을 보고 있던 사람이 중얼거렸다. “달이 산산조각 나버렸네!” 친구가 조롱하기를 “달이 깨지다니! 자네, 미쳤구만.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나. 달은 여전히 밝은 보름달이네. 변한 건 출렁대는 연못 속에 비친 달이네.”

   맞다. 하나님의 자녀 삶도 믿음중심은 연못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름달처럼 밝게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맞춰 흐르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한 믿음중심은 성령님이 보혜사로 끊임없이 감동감화 인도하고 반응하길 기다리신다. 그런데 세상의 풍조나 탐욕이라는 돌멩이가 믿음중심에 떨어지면 보혜사 되심은 굴절 되고 성령을 근심시켜서 기쁨도 평안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3) 히스기야 왕의 기도(19)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나눠먹을 때 갑자기 제사장처럼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치료로 응답해주셨다는 것이다(רפא 라파 to heal, cure, repair, pardon, restore to prosperity. 그 정황은 18-2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핵심은 제사결함과 결심동참임 ‘결심’  כל-לבבו 칼레바보 all his heart ‘who sets his heart on seeking God’ -NIV-).

   어느 가정에서 손 자랑이 벌어졌는데, 부드러운 피부가 제일이라 하고 딸과 흠하나 없는 아기의 손이 첫째라고 하는 어머니, 쭈굴쭈굴한 할아버지의 손이 으뜸이라는 아버지도 있었다. 마침내 온 가족이 투표를 했는데 가장 아름다운 손은 어머니의 손이 뽑혔다, 그 이유로 어머니의 손은 수많은 가사 일과 온 가족을 위한 봉사로 못이 박힌 탓이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은 사랑함과 봉사임에 틀림없다. 우리 하나님도 못이 박힐 정도로 하나님께 헌신을 결심한다면 지금의 흠들을 알지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언약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응답이 그랬다.

   자 이제 오늘 설교에 우리 자신을 찔리게 하셨던 그 말씀을 챙겨들자. 오늘 설교는 히스기야 왕이 주관하여 복구시켰던 유월절제사였다. 온통 행복한 축제였다. 부끄러움을 자인시킨 회개 때문이었다. 조롱하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기 때문, 제사장적인 기도응답 때문이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저울이 되길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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